|
[전통컬럼] ㅡ 뮤지컬과 전통문화 ㅡ
서양뮤지컬을 전공하여 밥을 먹었고, 우리 것을 한다는 것은 운명인 것 같습니다.
봉산탈춤의 원형을 황해도 봉산에서 월남하신 인간문화재분들에게 직접 배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85년도 38선을 통해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보편적으로 여기가 대한민국인데 우리 것을 하면 무시당했기 때문에 서양뮤지컬 돈키호테, 포기와 베스, 지붕위의 바이올린 등 공연을 했고 우리것인 양반전, 춘향전, 이춘풍전 등 현대극과 시대극 작품을 공연했다.
필자는 뮤지컬 기획ㆍ제작자 및 연희자로서,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 공연(2017.5.19 - 6.11 세종문화회관 M시에터/ 뮤지컬단)을 초청받고 觀劇을 하면서 ~ 한국 "뮤지컬사" 라기 보다 현장 근무 경험자로서 연기자, 조연출, 기획, 제작자, 담당 관계자 및 후대들(학생)을 위해 포괄적으로 나열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예그린악단원에서 부터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에 현장 근무경험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학과장으로서 정년퇴임 후에 한국문화예술위원장(차관급) 대행으로 블랙리스트 수습으로 기자회견을 하며 임기를 마치면서 ~ 그동안 뮤지컬과 탈꾼으로서 생활을 해왔으며, 강력한 교육 시스템은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고 그 나라의 전통문화예술의 원형은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은 예그린악단에서 시작했지만 국립극장부터 세종문화회관 근무하면서
77년 아시아 쇼사이티 초청으로 미국 30개 주립대학을 순회 중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시카고" 작품을 보며 기획ㆍ제작자로서 우리 것과 뮤지컬을 비교하면서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78년도에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을 순회하며 오페라를 알게 되었고, 덴마크를 방문하면서 우리의 국민보건체조가 덴마크식 체조라는 것을 알고 귀국해서 탈춤체조를 창안발표 개발하게 되어 국민건강을 위해 건강 캠페인을 벌이고 보급했다.
초창기 뮤지컬(musical)하면 민스트렐(Minstrel), 보드빌(Vaudeville Show), 벌레스크(Butlesque), 레뷰(Revue Show) 등의 단어(용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요즘 정년을 했기에 각 대학 및 사회에서 특강 초청을 받고 있어, 강의 전에 유대인 식으로 질문부터 먼저하고 특강에 임한다.
뮤지컬이 뭐냐? 연희극이 뭐냐?
위의 단어(용어)와 함께 답변을 못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었지만, 보편적으로 뮤지컬하면 "노래, 춤, 연기가 함께하는 가무악극이 독립된 하나의 장르인 공연양식이다."
필자는 뮤지컬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꼭 "가무악극이 독립된 하나의 장르다" 라고 반복 설명하고 답변을 요한다.
즉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이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뮤지컬, 연희극(演戱劇)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한 것은 위 용어(단어)들로 공연하였기에 ㅡ 간단한 요지만 정리해본다.
1)희극물인 가무의 예능적 재주와 악기연주, 2)곡예사, 마술, 요술사, 이것 저것 합작, 기품, 가정적, 어린이 대동 요망, 3)농도짙은 스트립쇼, 성문제와 술주정꾼 상대로 이튼날 아침까지 ㅡ
4)레뷰는 1914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대중에게 새로운 양식으로 숙성된 무대형식의 뮤지컬 ㅡ
5)런던에서 1893년 다른 쇼와 구별하기 위해 뮤지컬 코미디(게이터걸)라고 명명했다. 6)미국의 뮤지컬플레이(Play)는 스태프에 의해 극본, 작곡, 안무, 연출 수법으로 1927년의 쇼보트(ShowBoat)
작품은 본격적인 뮤지컬로 선보이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럽 오페랫타 양식의 기원에서 도입되어 미국 쇼비즈네스의 토대로 브로드웨이에서 ㅡ 또
북한에서는 "가무이야기" 필자는 뮤지컬을 "연희극" 으로 제시했다. 등,
<최창주. 한국뮤지컬. 2010. 앰애드, 참고하면 되겠다.>
한 예로 춤과 舞踊이 있고, 연희演戱가 있으며 민요와 판소리가 있기 때문에 벨칸도 창법과 국악읕 비교하면서 공부해도 좋겠다.
춤의 기본에는 가면극假面劇으로서 13개의 국가지정 탈춤의 기본동작만 연구해도 몸의 기본동작을 숙달할 수 있고 가무악극의 종합예술을 터득할 수 있다.
필자의 저서를 보면 되겠지만ㅡ fb친구들을 위해 평생 공부한 나의 양식을 바다가 아닌 fb에 던지며 뮤지컬에 대해 제공하니 인용해서 연구와 강의를 해도 좋다.
뮤지컬은 대중 속에 파고드는 침식성의 강한 힘이 있기에 순수예술이라기 보다 대중예술이다. 따라서 뮤지컬이란 "형용사" 뒤에 공연물의 "명사"가 붙여져야 한다.
예로, 희극적 요소이면 뮤지컬 코미디(comedy), 드라마 위주라면 뮤지컬 드리마(drma), 미국식으로 뮤지컬 플레이(play), 춤과 노래 위주라면 뮤지컬 쇼(show), 혹은 버라이어티 (variety)를 뜻하는 말로써 점점 발전이 된다.
즉, 뮤지컬이라는 낱말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나, 오늘날 명사를 편의상 생략하고 있다.(77년도에 브로드웨이를 방문하여 "시카고Chicago" 라는 뮤지컬을
한번 觀劇하고)~ 또 보려고 하니 예매를 못해 비록 뒷돈(암표)을 주고 관람했지만, 현장의 뮤지컬을 직접보고 매력을 느꼈기에 연구ㆍ노력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그래서 fb친구들을 위해 뮤지컬에 대해 글을 길고 쉽게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그 외 얼마 전에 본인이 작성된 관극평인 "영웅"부분에서 중복되지 않게 글을 쓰려고 한다.)
그동안 학교에서 전공학과는 물론, 단체 지도자들의 전공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에 위 단어를 숙지를 못했을 것이다. 본인 역시 뮤지컬이 본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위의 단어를 그 누구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필자가 예그린악단원 -> 부수석, 수석-> 부총무, 총무-> 기획담당(실장, 제작자) 등으로 출연, 뮤지컬 기획, 제작자로서 예그린직장에서 월급 3만원(당시 공무원 월급 1만 2천원 정도)부터 월급을 받으며 예그린단원으로서 밥을 먹었지만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뮤지컬단에서 단장만 못해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설립되면서 한예종 연희학과장으로 갔다.
당시 예그린악단으로 되돌아 가서~
1970년 봉산탈춤보존회(회장 김기수. 총무 최창주) 보직을 맡으면서 퇴근 후에 밤에는 황해도에서 월남하신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하며 전승전수기능을 배웠지만, 당시만 해도 전수회관이 없어 중구 광희동 4층 건물에 봉산탈춤보존회가 전세를 얻어 숙식을 하면서 탈춤을 배우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예그린악단원으로 직장에 출퇴근하면서
혼자 열심히 연구하고 인간문화재(보유자) 선생님들에게 직접 배웠다.
그리고 각 대학(서울대, 고대, 이화여대, 건국대, 광주대, 강원대 등) 탈춤반을 만들어 탈춤의 대중화를 만들었다.
이것은 예그린이라는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시간만 되면 퇴근 후에 밤에는 대학로 흥사단, ymca, ywca, 걸스카웃, 보이스카웃, 적십자사 등 기업체는 물론 연수원에서 지역부터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탈춤을 보급했다.
지금도 밤(매주 금요일, 화요일) 7시에는 탈꾼(봉산탈춤 전수조교/지금은 전승교육사)으로서 탈춤을 추면서 건강을 유지하며 국민건강을 위해 국민건강탈춤체조 창안, 개발하여 전국초중고교사들 3천명에게 잠실체육관에서 특강을 한 바 있다.
아무튼, 나의 뮤지컬 스승은 박용구, 김희조, 최창권, 박만규 등, 뮤지컬에 대해 의심나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포니1
>으로 댁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뮤지컬에 대해 공부를 했다. 또 서울시민회관의 화재로 인해 세종문화회관이 건립되었을 때 건립기념 공연으로 관객동원 함에 시내 각 동사무소에 초대권을 제공하니 "뮤지컬이 뭐냐?" 고 질문했을 때 "가무악극이 독립된 하나의 장르다!" 라고 홍보하며 다녔다.
특히 IMF 때는 세종문화회관 3895석을 일주일동안 객석을 만석으로 꽉채우는 기적을 만들었다. mbc후원으로 <포니1>를 타고 다니며 어린이 뮤지컬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이상한 나라 엘리스, 머털도사 등 유치원을 순회하며 관객 동원을 매년 했기 때문에 뮤지컬의 황금시기를 맞이하게 하였고 뮤지컬을 활성화ㆍ대중화를 시켰다.
평생동안 현장에서 뮤지컬만 할 줄 알았는데 ㅡ 한예종 교수가 되어 다음과 같은 뜻을 터득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서양문화예술과 한국전통문화
예술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민속예술과 공연예술의 차이점? ㅡ 에 대해 간단하게 강의를 하면서 오페라하면 한국말로 '음악극', 뮤지컬하면 '연희극'이라고, 학교에 와서야 논문을 쓰면서 뮤지컬이라는 것을 학생들과 함께 뮤지컬 강의를 통해서 뮤지컬 흥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순수예술과 기획, 공연사업계획서 작성법, 예술행정과 일반행정, 현장행정과 확인행정 등, 서양뮤지컬과 한국적뮤지컬, 조선연극사(탈춤)를 비교분석, 파악하여 학생들에게 뮤지컬기획, 제작자로서 강의를 정리를 하게되었고, 또 교수로서 제 몫을 하게 되었다.
요즘에야 뮤지컬이 활성화되어 대중화가 된 것처럼 신문방송이 보도하고 있고, 대구 및 용인 등, 지방마다 뮤지컬학과와 대학생 뮤지컬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뮤지컬협회 창립(91.11.4 사진 참고)하게 되었고 뮤지컬사설 단체와 프로단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특히 서울예술단(당시 필자 총무)을 창단하게 되어 평양방문을 하였다.
처음에는 뮤지컬단체가 아니었고, 옵니버스 스타일로 제1차 남북문화동시교류 평양방문의 일환으로 문화교류공연을 위해 84년에 창단되어 1985년 9월, 38선 死線을 통과하여 목숨을 걸고 평양대극장 공연을 위해 평양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고 평양대극장에서 한국전통문화 전반적인 것을 옴니버스 형태로 기획 공연을 했다 후에 서울예술단을 88예술단(총체극)에 인수 인계된 단체이름이 되었다.
이제 뮤지컬시장이 활성화 되어 한국뮤지컬협회와 충무아트홀과 함께 뮤지컬대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렇듯 뮤지컬의 관객동원 문제와 사업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서양의 라이선스 작품을 선택, 선호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단순예술단체인 연극단체가 사업의 일환으로 뮤지컬단체로 명칭의 타이틀만 변경, 바뀌어 전환하여 사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우 많은 연극인들이 뮤지컬을 염원하고 또 공연해왔다. 순수연극에 비해 어렵지만 재미있을 뿐 아니라 흥행면에서도 훨씬 효과적이었고 사업성을 위해 연극단체가 뮤지컬을 선호하고 있다.
삼위일체가 멋있게 구사하는 실물의 현장감으로서 관객들에게 호감을 가는 뮤지컬을 단순장르와 영화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대중예술의 무대 뮤지컬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작품과 욕심과 사업의 종합예술로 전환하여 뮤지컬사업을 하는데 있어 프로단체가 되어서 사업을 하고 있다.
이제 뮤지컬시장의 내실화로 한국뮤지컬협회와 충무아트홀과 함께하여 한 때, 한계를 극복하고 대표시상식과 페스티벌형 어워즈를 지향하므로서 대한민국의 창작 뮤지컬을 해외진출하여 뮤지컬의 선진국으로서 세계화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획, 제작자들이 겁없이 뮤지컬 제작에 뛰어 들었다가 소수단체 외에 망하기가 일수이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더욱 연극에 노래 몇 곡을 삽입했다고 해서 성급하게 뮤지컬이라고 이름 붙여 뮤지컬 단체인냥 활동하고 있는 조직도 있을 것이다.
연극이나 무용, 음악 등 한 장르단체도 운영(용)하기도 힘든데, 가무악극이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의 단체를 운영하려고 하니 단원들의 기능 연마도 문제가 되겠지만, 우선 예산 등 진행비가 부족하여 운영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다.
그래서 예산관계 때문에 단장으로 발령받아 왔지만, 단순예술가인 기관장과 충돌, 의견대립으로 중간에서 단장이 사퇴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필자도 뮤지컬 기획, 제작함에 있어 큰 월급은 아니지만, 월급 받았으나 홍보비, 진행비가 부족하여ㅡ 집에다 월급을 갔다 줄 수가 없었던 시절이 생각케 한다.
그래서 뮤지컬 기획, 제작자, 단체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단체장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낙하산으로 내려와 일회용으로 임기만 채우고 왔다가는 형식이 되어, 근본적인 뮤지컬단체가 미래가 없고 발전되지 못하는 과정이 되었다.
뮤지컬은 단순단체처럼 그런 분야가 아님을 정책입안자들은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
한 장르단체도 운용하기도 힘드는데, 연극, 음악, 무용을 하나의 장르로 스태프들이 종합적예술로 제작을 함에 있어 ㅡ 힘든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능력보다 자신의 욕심으로 분위기는 좋은데, 그리고 뮤지컬의 매력 때문에 마약처럼 겁없이 덤벼들곤 하였다.
그러다보니 사설단체도 정상급 단체가 되어 활성화되었지만, 지금은 전용극장도 있어, 몇 몇단체의 조직은 보수도 좋아 연희자 대우가 최상급으로 월급을 제공받는 단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단체도 있어 열심이 하다보니 뮤지컬이 대중화, 활성화된 것처럼 ~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스태프는 작품을 기획, 제작하지만 연희자들은 본질을 더 알고, 작품의 생명력있고 근본을 찾아가는 개념부터 공부하고 더 연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사설단체와 국, 공립단체가 비교되고 평가되는 것은 관객의 수준이 되었다. 프로냐? 아마추어냐? 그러다보니 기질과 본질에 있어 작품을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예술적 현실이 되어, 무대가 현실이고 현실이 무대가 되었다.
그것은 작품으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 역시 관객의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뮤지컬 관객들은 작품을 대략적으로 알고 관람하는 것 같지만~ 무섭게 평가한다. 작품의 앙상블을 보면 등장인물들에 있어 캐릭터 조화의 문제가 따른다. 배역문제로 남모르게 보이지 않는 내부의 갈등도 있겠지만, 한 작품을 통해 단체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는 계기가 된다.
작품을 기획, 제작함에 있어 예산, 정책, 공연장소, 홍보 등 동ㆍ서양의 지원금 문제, 전형위원의 문제가 있어 눈먼돈, 택배회사 등 글을 쓰고 지적했지만, ~ 근본적인 문제는 뒤로하고 한가지만을 이유의 예를 든다면ㅡ
작품을 기획하다보면 외부객원의 특별출연을 하게 되는데, 기획, 제작자의 생각보다 단장 및 연출자 요구에 의해 전개된다. 내부단원들의 앙상블 입장보다 연출자에 의해 배역선정, 결정이 되는 것은 통례이었다.
그동안은 뮤지컬이 유럽 및 미국뮤지컬을 한국에 이식시키려고 하다보니 하나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초창기 때야 작품과 단체 홍보를 위해 인기있는 TV 탈렌트나 영화배우를 출연시켰던 예가 되어 단원들은 忍耐하였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스타가 없어도 앙상블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뮤지컬 작품인데, 객원 출연자의 캐릭터를 보고 작품보다 연출자가 친분을 통해 욕심으로 객원 출연을 결정하여 출연을 시켜 다행히 성공을 한다해도 단원들은 찝찝해 하여 단체가 암암리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단체이름만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단체는 작품을 할 때만 기획, 제작자가 연희자를 모집(공고)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어느 라이선스 작품을 보았다. 무대장치(음향, 조명 등)와 스태프와 장소가 뒷받침해주어 좋았지만, 작품과 함께 저렇게 훌륭하고 좋은 뮤지컬연기자가 있구나. 요즘은 잘 훈련된 기능있고 성향이 좋은 연희자가 많아졌다.
그러나 근본은 여건이다. 보유하고 있는 예산과 전문장소, 인원은 단체의 발전과 미래의 대중화, 활성화의 문제가 된다. 각 단체마다 운영방식의 차이가 있으나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지만 예전에 비해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또한, 단체의 단체장(예술감독)은 원형단체와 창작단체, 그리고 단순단체와 종합예술단체의 포괄적인 기획 상태를 면밀히 관찰 정리하게 되고, 단원들의 기능과 심리와 분위기를 분석, 파악을 하여 단원들과 하나가 되어 운영의 묘를 잘 살려야 좋은 조직의 장이 되고 단체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예로, 스태프와 예산문제인데
1987년도 88올림픽 홍보를 위해 뮤지컬의 본고장에 창작뮤지컬 "양반전"을 가지고 100명의 인원으로 미국 본토와 일본에 해외공연을 실시 하였는데ㅡ MR로 공연했던 것이 실수로 인정을 받지 못한 예가 있어, 학생들에게 교육은 물론, 필자가 기획, 제작하는 크고 작은 작품은 여건이 문제이겠지만, 반주악단(연주자)을 제대로 섭외, 필수로 꼭 함께 하게 해야 한다.
이번 공연은 서울시립뮤지컬단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뮤지컬 전문단체이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창작뮤지컬, 특히 인물(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은 힛트상품이 나오기가 어렵다. 더욱 역사의 조명이 미약한 작품선택은 스태프들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성왕후ㆍ영웅에 이어 위인전으로 시립뮤지컬단이 인물작품을 시도한 선택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작품선택의 문제점을 제시라고 싶은 것이다.
대한제국이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된 어린 특사 조직원의 활동 상황이다.
침략의 부당성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고종의 명을 받고 3인의 밀사를 파견한다.
그 3인(이상설, 이준, 이위종)은 위대한 조선인으로 요즘 국제화시대처럼 언어능력의 소통이 뛰어난 특사다. 그 중 이위종은 20살의 밀사로 파견되어 33살에 전사한다. 유명한 사람들은 왜? 모두 이렇게 일찍 죽는 것이 통례인가?
한 젊은이가 독립을 위해 외치다가 살아진 큰 뜻을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뮤지컬이 전개되지만, 고종의 폐위로 인해 조국의 부당성을 규탄하나 나라가 힘이 없어 독립운동가들은 돌아갈 조국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현재까지도 한 민족이면서 두 민족이 되어, 전쟁 중이면서도 휴전 중이다. 지금도 정치적인 문제가 있어 "정치는 적을 만들고 예술은 친구를 만든다" 라고 예술가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도산선생은 "힘이 있으면 살고, 힘이 없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어느 지도자는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인용, 표현했다.
현 시대의 현실에서 충신과 간신, 좋은 지도자 배출, 역사의 인물을 재조명하여 우리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힘들고 어렵지만 학생들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들려주는 스토리의 메시지이기도 한 역사적인 작품도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작품은 한 할머니의 들려주는 이야기로 뮤지컬은 시작되는데 ㅡ
첫 장면부터 무대극은 영상도 좋지만 앞으로 뮤지컬은 ~ 오프닝 곡으로 막이 열리면, 가무악극을 자유자제로 기능의 단원들을 이용하여 춤과 노래로 3분 정도 시높시스의 프로로그로 전체스토리를 보여주고 시작했으면 이것이 뮤지컬이구나하고 ~학생들은 집중했을 것이다.
뮤지컬은 스포트 라이트를 이용하는 것보다 화려하고, 즐겁고, 볼거리가 제공되어야 한다.
즉, 연극적인 뮤지컬보다, 뮤지컬적인 연희적 뮤지컬로 유도하여 풀어 갔으면 지루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이 숨겨논 인물을 찾아내는 역사극이기도 하지만, ㅡ
한국에서 유일한 뮤지컬 배우들인 뮤지컬단 연희자들의 연희능력이 뛰어나고 단원들의 앙상블이 좋았기 때문에 연극적인 뮤지컬보다 뮤지컬적 연희적인 뮤지컬로 풀어 유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젊은 주인공은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가창력으로 역할의 캐릭터에 맏는 대사전달과 배역을 잘 소화 내었고 작품도 좋았다.
따라서 연출자의 퇴임을 앞두고 역사적 인물의 작품을 재조명 해준 것과 뮤지컬단의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 같고 무대전환도 좋았다.
다만, 작품의 포괄적인 역사적 일제강점기 침략의 부당성 내용을 설명하려니 단조롭고, 등장인물에 대한 메시지만 전달함에 있어 헤이그에 파견될 때까지 1시간이 지루했다. 또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과 목표와 목적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며, 반복되는 주제곡 <"이 반짝이는 것이"> 이 흥겹게 귀에 익는 반복 멜로디가 미진한 이유는 죽음과 심각할 때도, 평온 할 때나, 즐거울 때도 작곡이 반복되어 호소했기에 픽션과 논픽션의 작품이 던져주는 무게감, 민족의 아픔, 근본적인 감성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관객에게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로 든다면, 서양뮤지컬이라면 흑인영가(Negto)와 백인영가(White Spiritual)가 있고, 싱커페이션 리듬의 서양음악적 수법과 Spell 2개 단어를 합성시킨 가스펠송의 신약성경 위주의 종교적 곡과 쥬빌리(Jubilee)는 흑인들의 민요이다. 아메리카 흑인의 민속음악과 백인의 유럽음악과 융합하듯이, 우리도 다양한 산조와 굿거리곡, 타령 곡 등, 자기 자신의 즐거움과 타인, 한국적 색채를 뛴 음악적 요소가 깃들어야 멋과 맛의 흥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관객의 재미도 무시할 수 없는 무대에서의 무도회장의 경우, 포크댄스와 함께 춤곡(Blues, SoulMusis, Swing, BeBop Jazz)을 관객이 즐기는 것처럼 합성하였으면 했는데 표출의 장면이 너무 단조로웠다.
전개되는 작품이 역사의 악 조건 상황 속이지만, 사랑의 힘, 러브스토리는 관객에게 최고의 뮤지컬이 될 수 있었다. 또한 공연이 끝나면 퇴장하면서 반복되는 멜로디 음악을 관객들은 객석에서 일어 나서면서부터 오락적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감동으로 즐겁게 흥얼거리며 관객들이 무대밖으로 퇴장,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뮤지컬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실험적인 무대보다 대극장용으로 펼칠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원도 예전에 비해 인원이 부족하여 안타까웠지만, M씨어터는 뮤지컬하기가 좋은 극장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배역과 캐릭터와 연희자들간의 역사적인 장면전환의 동선이 극적분위기가 연출되어 뮤지컬전문단체가 아닌 것처럼 매끄럽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연출자의 무대표출 동작 범위가 객석에서 보았을 때, 비슷한 시기의 영웅이란 작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묻혀있던 역사적인 인물을 찾아내어 복원시킨 것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 그렇지만
비밀의 사명이 무엇이냐? 작품의 생명력있는 주제의 스토리텔링만이 메시지를 설명하다보니 1부가 지루하게 보냈다. 악단반주도 건반 등 단출하게 편성되었고, 창법도
벨칸도 창법이냐? 예그린 창법이냐? 작품선택의 중요성, 제목의 어필성도 있어야 했다.
제목이 "특사"하면 이번 희망의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특사를 각국에 파견하고 있듯이 현실 상황의 작품도 시대에 맞게 구성해야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으로서, 현실이 무대이고 무대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예로
밀사/ 비밀로 남모르게,
특사/ 특별 임무를 띠고 파견되는 외교사절이지만 ㅡ
기획, 제작자들은 이렇게 작품의 제목 때문에 밤을 세우기도 한다.
또한 작품에 따라 시대를 적통하는 화성학적 가창법도 구성, 구별되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많은 여운을 남기고 역사의 전통 뮤지컬 작품으로 훌륭한 메시지를 그런대로 전달하였다.
☆ 종합예술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연희자의 훈련법이다.
뮤지컬단체가 市 및 구청별로 있으면 좋겠다. 물론 예산문제가 되겠지만 ㅡ
서울 광화문의 시민회관이 화재로 인해 세종문화회관이 건립되었다. 예그린악단에서 국립극장으로 이관되어 국립예그린예술단(가무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립가무단(뮤지컬)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이관시키라고 지시했을 때, 우리는 그 쪽도 시립가무단을 창단ㆍ설립해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 뮤지컬이 더 활성화되고 대중화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ㅡ
당시 단원을 선발하려면 3가지의 기능(연극, 음악, 무용)을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는 인적자원(단원)이 아직 한국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극장인 세종문화회관(3895석/시립가무단/
현 뮤지컬단)으로 가라고 강제로 보내면서 지시사항의 조건 속에 포함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종합예술단체가 인원이 부족해 보였다. 소극장이라 관계가 없지만, 뮤지컬의 종합예술은 불변의 사항과 변화의 상황인 문화복합적(Culture Complex)으로 전개되므로 종합기능인의 연희자가 필요하였으나, 당시는 뮤지컬학과도 없어 연기자(연희자) 부족현상이었지만, 지금은 뮤지컬학과도 많아 졌지만 지도자의 문제점도 있다.
지금도 그러하나 전문훈련하는 곳도 없어 연희자(연기자)의 훈련과 인적자원이 작품의 완성도에 중요한 기능의 문제가 되었던 상황이 지금도 같은 맥락이다.
1949년 중국(지나)이 공산화 되면서 종교는 아편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금지를 했지만 종교가 암암리에 지하로 스며들어 성장했듯이,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특징적인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에게 물려 받은 것이 달란트다. 핏속에 선천적인 자질, 무의식적인, 평소 몸에서 울어나오는 행위에 지나지 않게 표현되는 엔터테이먼트(예능, 예술)의 기본 바탕을 말할 수 있다.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氣/技(끼)의 비밀은 속일 수 없듯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예술은 선조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종합예술이 되어 있었다. 즉, 오늘날 그것이 뮤지컬이다. 이런 종합예술을 조상들한테 물려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강조하지 못하고 묻혀 왔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은 외세의 침략으로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진 것을 타인에게 제공하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에게는 제자가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듯이 이제부터입니다.
♤ 참고사항
우리는 당시 "연극"이나 "연기"라는 글이 없었다,
대한매일신보 1909년 5월 20일자 시사평론의 글을 보면 ㅡ
<이인직씨 드러보소! "연희"개량한다고 일본까지 건너가서 여러 달을 유전타가 근일에야 나왔더니 무슨 "연희" 배워왔나. "연희"개량 고사하고 동서분주 출몰하는 공의 형상 볼작시면 "연희"보다 재미있네. 공의 일도개탄하다.>
<생략>
당시 상황을 보면 컬럼의 글이 3줄이 연계(쓰면서)되면서 "연희"라는 용어가 4번이나 강조 사용하고 있다. "연극", "연기" 라는 용어는 후일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사용된 것이다. 당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는 우리 것인데도 예술대학 연극과에서 학과 편성의 커리로 채택 되지 않았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Dionysos),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 리어리즘 연극, 셰익스피어어 햄릿 등이 성행했듯이 지금 라이선스 뮤지컬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리의 한국전통문화예술이 종합예술인 뮤지컬이 연희극(演戱劇)이다.
건강캠페인입니다. 제일의 富는 健康입니다 건강이 있고 난 다음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한예종교수 연희학과장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