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힘 빼라/ 김 훈
지난주 절에 가서 노스님을 뵈었다. 노스님은 불가의 큰 어른이신데, 주름 많은 얼굴로 웃으실 때는 어린아이 같다. 노스님 방에 소나무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 속의 소나무는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옹이가 튀어나왔고 가지들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다. 거친 자리에 태어나서 힘겹고 힘세게 살아가는 나무다.
노스님은 이 소나무 그림 아래 큰 물동이를 들여놓았다. 동이 속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웬 물입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나무가 목말라 보여서 물을 주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노스님이 차를 주셨다. 차 맛이 흐리고 멀어서 아득했다. 나는 노스님께 “건더기를 좀 더 넣어주세요”라고 말했다. 노스님은 웃으시면서, “건더기가 아니다. 씹어 먹는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창밖으로, 온 산에 낙엽이 내리고 있었다. 노스님은 새벽마다 젊은 스님들과 함께 낙엽을 쓴다.
며칠 전에는 어둠 속에서 낙엽을 쓰는데, 젊은 스님이 플래시를 켜고 일을 하길래 “불 꺼라, 새벽 어스름이 좋지 않으냐. 불 꺼야 잘 보인다”라고 야단쳤다고 한다. 노스님은 이것이 젊은 스님을 아주 크게 혼내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노스님은 새벽 예불에 목탁을 칠 때마다 목탁 소리에 몸의 모든 세포들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 절에서는 바다가 멀지 않다. 노스님은 한가할 때는 바닷가로 가서 파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신다. 먼바다에서 파도들이 밀려들 때마다 시간이 새로워지고 몸이 새로워진다고 노스님은 말했다.
노스님은 공부가 깊고 도력이 높으시지만 어려운 불교 이야기는 하지 않으신다. 노스님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눈에 힘 빼라, 무장해제해라! 그러고 다니다가 큰일 난다”라고 말씀하셨다.
점심때 노스님을 모시고 밥을 먹었다. 노스님은 깍두기 국물에 밥을 비벼서 맛있게 드셨다. 다 드시더니 노스님은 앉은 자세로 두 팔을 벌려서 가벼운 춤을 추었다. 노스님은 노래했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일산으로 돌아올 때 차가 밀렸다.
노스님 계신 절과 내가 사는 대도시는 아주 가깝다. 길로 연결되어서 언제나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