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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때 사람들이라면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 필수 코스 였던 법주사도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여느 절집과 다를게 없다.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면 법주사 랜드 마크중 하나인 미륵 대불이 첫눈에 띄인다.
법주사에는 왜 다른 절집에는 잘 없는 이런 미륵 대불을 만들었을까?
숨겨진 이야기를 잘 모르는 이 들은 흠잡기에 바쁘다. 법주사의 돈 자랑이다. 상업적인 목적이다. 등등
법주사의 금동 미륵대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있다. 이 미륵대불 이전에는 이 자리에 시멘트 대불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신라 혜공왕(8 세기 중엽)때의 승려 였던 진표 율사가 세운 높이 30 미터 짜리 청동 미륵대불이 있었다고 한다. 천년을 지켜온 진표율사가 만든 대불은 조선말 경복궁 복원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흥선 대원군에 의해 당백전 제작용으로 파괴 되었다
진표율사가 만든 청동불이 당백전이 되었고
이 당백전으로 인해 국가 경제는 박살났고.
조선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아둔한 중생들에게 표현한 미륵불의 깊은 분노 였으리라~~
지금 현재 미륵대불 이전에는 중년의 세대 라면 누구나 잘 아는 시멘트로 만든 대불이 있었다. 사진속의 시멘트 불상은 조선의 광복을 염원하던 전북 김제의 대지주 김수곤 처사의 시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김수곤 처사의 사망으로 10년넘게 공사가 중단 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시주로 1963년 완성 되었다가 시면트의 풍화등 붕괴 위험으로 철거하고 지금의 금동 대불을 만들었다. 청동 116 톤으로 주조 하였고 순금 80Kg을 들여 0.03mm두께로 도금 하였다.
법주사의 철솥이다. 약 3천명 분의 밥을 지을수 있는 솥이고 우리나라 사찰의 철솥중 제일크고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유물이다.
이 솥의 크기로 조선시대 법주사의 규모를 어렴풋이나마 카늠 할수 있다.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에 딱 하나 남아 있는 근대 이전의 목탑(木塔)이다. 조선 인조(17세기)때 만들어진 5층 목탑이다. 약 25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목탑은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법주사 팔상전등 두개의 목탑이 있었는데 쌍봉사 대웅전은 1988년 신도의 실수로 촛불을 넘어뜨려 전소되어 국보 지정이 해지되었다.
법주사의 명물 쌍사자 석등
희견보살상
튼튼한 다리 굵은 팔뚝~잘록한 허리 언밸런스한 모습이지만 상당히 세련된 조각이다
하나의 돌에 이런 조각을 할수 있었던 옛 신라인에게 경외심이 든다.
얼굴이 마멸되어 잘 알아볼수 없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곱슬머리에 눈이 약간 부리부리 한것이 서양 백인의 모습이다.
희견 보살은 성불(成佛)의 서원을 가지고 자기 몸이 불타올라도 부처에게 향을 공양한다고 알려진 보살이다. 저 머리에 이고 있는것이 향로이다.
법주사 마당 한켠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등 부재
법주사의 주 불전(佛殿)은 비로자나 불을 주불로 하는 대적광전이다.
법주사의 대적광전은 우리나라 중층 불전중
구례 화엄사 각황전. 부여 무량사 극락보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흙으로 만든 대형 불상
저녁 예불시간~~
해질녁의 법주사
여느절과 마찬가지로 법주사에도 스님이 없나 보다. 하안거 기간인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물을 치는데 최소 5명이 있어야 하는데 3분의 스님만 달랑~~
법주사 철 당간
철당간을 지탱하고 있는 저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다.
석련지
고려시대 마애불
조각수법은 상당하나 부처님의 얼굴은
못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