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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19대 숙종(이순)의 여자들
정비, 인경왕후 김씨!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희빈 장씨 등 후궁 6명
자녀 6남 2녀
ㅎㅑ~
숙종 땜시 리크라테스가 왕비들 쓰느라고 힘들겠다.
게다가 조선왕조실록이 인정한 조선 최고의 미녀 장옥정(희빈)까지 있으니...
(그래서 숙종 편에는 총 6부작이다.)
그래도 우짜나!
다 써야지. ㅠㅠ
숙종!
적장자 정통성을 가지고 순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왕이다.
효종ᆞ
현종ᆞ
숙종ㆍ
으로 모처럼 왕위 세습이 본부인 왕후의 외아들로 되었다는 것이다.
14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한가락 하신 군주이셨다. 그리고 또이또이해서 어마마마인 명성왕후의 수렴청정도 받지 않았다. 어미인 명성왕후도 아들 숙종의 성깔을 예측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르니 애미인 나도 감당이 안 되는구나!"
명성왕후의 말이다.^^
그런데...
명성왕후님 자신도 한 성깔 하신 분이다.
'母傳子傳(모전자전)'이다.
숙종은 엄마의 불같은 성격을 닮았다.
온화한 아버지 현종을 닮지 않고...
숙종은 재임기간이 아들 영조 52년에 이어 두번째로 긴 46년이었다.
46년!
저 많은 세월을 지멋대로 살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현재 5년제 단임으로 끝나는 우리나라 대통령님들이 엄청 부러워 하실 것이다.
그 5년도 마지막 1~2년은 뭐 '레임덕(lame duck)'이라는 절음발이 오리새끼가 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 레임 덕(Lame Duck)은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 현상이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기말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숙종에게 레임덕이 있었겠는가?
No way!
없다!
"감히 어딜 왕 앞에서..."
숙종은 쎈(strong) 임금이었다.
환국(換局 : 국면을 바꾸다)정치를 했다.
맘에 안 들면 요즘 말로 내각총사퇴를 시켜 버리고 마음대로 새 내각을 구성해버린 것이다.
환국(換局)의 목적은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을 왕이 결정하면서, 그 가운데 신하들의 대결을 이용해서 맘에 안 드는 자는 숙청하고, 신권을 약하게 하여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즉 정치의 주도권을 왕이 쥐고 사대부의 목숨줄을 쥐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왕조를 세울 때 정도전은 신하들의 권한(신권)을 강하게 만들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왕권을 너무 강하게 하면 나라가 한 인물(왕)에 의해 너무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임금 잘못 나오면 국정이 파탄난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왕권과 신권이 균형을 이루어야 되는데 말이 쉽지 그렇게 되기는 어려웠다.
숙종은 순금수저 출신이니 당근 힘이 셌다.
게다가 대담하기도 하고 성깔도 있었으니 신하들이 감히 엉겨붙을 수가 있었겠는가?
말 안 들으면 저 북한의 김정은이가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박살을 내듯이 아낌없이(?) 사약을 내렸다.
"One shot(완샷)"하라고...^^
숙종은 크게 세 번 환국정치로 왕권을 강화했다.
1. 경신환국 (숙종 6년, 1680년)
남인 허적의 역모사건으로 남인 Out !
2. 기사환국 (숙종 15년, 1689년)
장희빈 아들 세자 반대로 서인 Out !
3. 갑술환국 (숙종 20년, 1694년)
인현왕후 복귀하고 장희빈계 남인 Out !
이 세 환국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숙종의 여자들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건들은 여자가 끼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약방의 감초처럼 여자가 꼭 있어야 스토리가 재미난다.^^
숙종!
풍운아(?)였고 여색을 밝혔다.
그래서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한 왕이시기도 하다.
저 유명한 장희빈(옥정)이 덕(?)으로...
길고 긴 숙종의 왕비열전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론이 기냐고 불평할지 모르겠다.
이유는?
.
.
.
첫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에 대해 크게 언급할 에피소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면을 채우기 위한 리크라테스의 '고육지계'였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참~ 글쓰는 것도 쉽지 않다. ㅠㅠ
인경왕후 김씨!
숙종의 No.1 여인이다.
현종 2년(1661년) 9월 광산 김씨인 김만기와 어머니 청주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울음소리가 약하고 조용했으며, 자라서도 말수가 적고 존귀함이 있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있으면 기다렸다 모두 모인 뒤 나누고, 화려함을 자제하고 품성을 갖춰 사가에서는 인경왕후를 “천제(天帝)의 누이동생 같다”며 극찬했다. ^^♡
왕실에 들어와서는 가언(嘉言·좋은 말)과 선행을 즐겨 듣고 삼궁(三宮)과 사성(四聖)을 모시는 일에 정성을 다했으며, 몸이 아플 때도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드리고, 아침에 안부를 묻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 효부였다.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는 김장생의 4대손이고, 서인을 대표하는 송시열의 문하생이었으며 침착하고 후덕했다.
특히 딸이 왕비가 된 뒤 더욱 말을 삼가고 행동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암튼,
인경왕후는 당대 최고 명문가 규수였다.
1670년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숙종과 가례를 올려 세자빈이 됐고,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됐다.
처음에는 숙종이 싫어하는 서인들의 집안이라서 인경왕후를 멀리했으나 그녀가 이쁘고 성품이 착해서 점점 정이 들었다.
하긴 이쁘면 다 용서가 된다!
"휘~익!"
"이크~" 짱돌 날라오는 소리다.^^
그런데...
14세에 대가리(?)가 채 여물기 전에 숙종은 장렬왕후 조대비를 시중들던 장나인(옥정)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니 인경왕후는?
.
.
.
*찬밥 신세가 되었다. ㅠㅠ
*밥의 종류 :
°논에서는 쌀밥
°밭에서는 보리밥
°고들고들 고두밥
°아슬아슬 고봉밥
°이에 물렁 무밥
°혀에 찰싹 찰밥
°달달 볶아 볶음밥
°싹싹 비벼 비빕밥
°함께 하면 한솥밥
※따돌리면 찬밥
장옥정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노골적으로 접근했고, 숙종은 장옥정의 흔드는 꼬리에 홀려 넋이 나간 넋빠진 왕이 되었다.
표현이 좀 거시기해서 숙종에게 쏘리다.^^
우리의 착한표 인경왕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렬왕후 조대비에게 찾아가,
"주상이 장나인의 처소에서 침소를 드는 것은 왕실에 누가 될 것 같사오니 장나인에게 처소를 따로 정해 주시도록 하시옴이 옳을까 아뢰옵나이다."
이랬단다.
나 원 참!
원래 남편이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했거늘...^^
그래서 장나인의 처소는 '응향각'으로 옮겨져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된다.
''응~응 향~향''하믄서...
참 본부인 잘 둔 덕에 숙종 신났다.
참~ 훌륭하고 현명한 중전이셨다.
만약 시어머니 명성왕후 같았으면 숙종은 얼굴에 오선지 자국을 그리고 박살이 났을 것이다.
''어딜 감히...''
그런데..
장나인, 장옥정은 이 훌륭하신 인경왕후를 헐뜯고 이간질을 하다가 장렬왕후 조대비에 걸려 궁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때 장나인은 스물하나, 숙종은 열아홉이었다.
장나인과 숙종,
불같은 사랑을 하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강아지 신세가 되었다.
(요 말은 시골에 살지 않은 분들은 이해하기가 좀 곤란할끼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면 어찌 재미있는 사극이 드라마로 나왔겠는가?
자고로 사랑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것이 없는 법이다.^^
참~~~
배은망덕한 장나인과 숙종이었다.
인경왕후,
속으로 얼마나 열받았을까?
명문 양가 규수라 성질도 못부리고...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인경왕후는 왕실 생활 10년째인 1680년 두창(痘瘡·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20세에 만삭의 몸으로 갑자기...
이 세상에 괜히 여행 와서
장나인(옥정)한테 모함과 질시에 시달리다 가셨다.
장나인의 첫번째 희생물이 되셨다.
우짜나?
참 청순가련한 인경왕후!
저 세상에서 편히 살기를 바란다.
오늘의 교훈이다.
''호의를 베풀 때는 상대를 보고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험한 꼴을 안 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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