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여유
햇볕이 따사로운 봄날 차 한 잔이 그리워진다. 찻물을 불에 올려놓고 다기를 꺼내놓는다. 물이 끓어오르는 기포를 바라보며 혼자만이 누리는 여유도 부려본다. 차는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서넛이 같이하면 멋이라 했으며, 대여섯은 담담할 뿐이고, 일고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음료수라 하던가.
오늘은 혼자서 그윽하게 마시고 싶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볕을 받으며, 매화 나뭇가지 꽃봉오리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지치기한 매화나무 자투리가 눈에 띄었다. 실한 성근 가지 몇 개를 골라 화병에 꽂았다.
자고 일어나면 은은한 향수가 베란다에 가득하다. 거실에 두었다가 안방으로 잠깐 옮겨 두었다, 그래도 햇볕이 환한 베란다가 제격일 것 같았다. 두세 송이씩 살포시 피어나는가 싶더니 곧 만개하였다.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매화야, 더 많이 피어났구나. 어제보다 오늘 아침이 더 향기로운데?”
가까이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고, 바라보면 볼수록 수줍은 듯 여리게 핀 작은 꽃술들이 숨이 멎도록 예쁘다. 하마터면 그냥 말라 삭정이가 되었을 텐데 우연히 발견되어 매화로서 다시 태어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는 다섯 잎의 홑꽃으로 함초롬히 피어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물이 끓어 오르면 작설차를 옅게 우려내어 한두 잔 마시고 두 번째 우려낸 찻물에 조심스레 매화꽃을 두세 송이 톡, 따내어 찻잔에 띄운다. 잠시 바라보며, 첫 잔은 꽃술을 보며 눈으로 마시고, 두 번째 잔은 그윽한 매화 향을 코끝으로 느끼며 마신다. 녹차 물이 아닌 백 탕으로 뜨거운 물에 꽃을 띄우면 천연 야생차 맛이, 그 은은한 향기가 단아하면서도 맑고도 깊은 향이 신선하게 살아있어서 감미롭다.
굳이 입술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향기가 다가온다. 예쁘고 고결하기까지 한 꽃송이를 뜨거운 찻잔에 띄우는 것이 잔인한 것 같지만, 꽃과 내가 그 맑음과 고요로 향기를 더하여, 사랑으로 승화되어 하나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매화는 새봄을 알리는 꽃답게 우리 삶에 희망으로 다가온다. 오늘 성당에서 담 너머에 홍매화가 수줍게 피워 꽃샘바람을 맞고 있다. 찬바람 맞으며 반짝이는 홍매화가 더 매혹적이다. 삭막하고 메마른 도시인들에게 문학적, 정신적인 풍요로움까지 더해주는 매화,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혜택은 영원한 공존의 삶이 아닐까 한다.
비록 나무가 곁가지로 태어나 생을 다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해도 누군가에게 시선을 줄 수 있다면 그 운명 또한 헛되지 않고 태어난 보람이 있으리라.
조금 한가로운 오후에 정화된 마음으로 매화차를 마시며 찻잔을 기울인다.
첫댓글
우리집 매화나무도 꽃을 활짝 피었다가 졎네요.
베란다라서 바깥보다 빨리 피우기 때문에 일찍 보게 됩니다.
매화차의 향기를 더듬어 보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아침기온이 영하5도 매화가 꽁꽁 얼었겠어요.
남녘에 매화는 무사한지?
완산칠봉 오르는 언덕에 매화 몆그루가 어제밤에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꽃샘추위가 너무합니다.
차에 대한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한가로운 오후
햇볕이 환한 거실에 앉아 매화 향을 맡으며 차를
음미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부럽습니다
봄매님 반갑습니다. 커피 못마시는 사람 여기 있어요.
건강에 이롭다는 차를 몇가지 마시는데요. 스스로 위안을 삼는 답니다.
꽃샘추위 치고는 너무 춥죠?
오늘은 작두콩차로 몸을 데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