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의 뜻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하신다고 보지 않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오성(悟性)으로 그 원인에 대해서 유능한 판단(判斷)을 내리고 그것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對抗)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이런저런 고소(告訴)를 당하는 것이
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여긴다.
먼저 그들은
무슨 권리(權利)로 주님이
아직 어떤 범법(犯法)으로도
주님을 노엽게 한 적이 없는
자기 피조물들에 대해서 분개(憤慨)하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이 자기가 기뻐하시는 대로
사람들을 멸망(滅亡)에 이르도록 내맡기신다면
이는 심판자(審判者)의 합법적(合法的)인 심판이 아니라
독재자(獨裁者)의 육욕(肉慾)에 불과하며,
만약
사람들이 각자에 속한 공로(功勞)와는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의지(意志) 그 자체로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예정(豫定)된다고 한다면
이를 두고 그들이 하나님과 다투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다고 그들은 항변(抗辯)한다.
만약 경건(敬虔)한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혼란(混亂)을 겪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에 무슨 원인(原因)들이 있기라도 하듯이
호기심(好奇心)을 갖는 것 자체(自體)가
사악(邪惡)한 일이라는 것을 깊이 고려하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무장(武裝)되어
그러한 생각들로 인한 충동(衝動)들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의 뜻에 어떤 원인이 있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에 앞서야 할 것이며,
그 어떤 것에 하나님의 뜻이 매이듯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상하는 것은 불법(不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의(義)의 최고규범(最高規範)이므로
무엇이든 그가 원하시는 것은
그가 그것을 원하신다는 사실 자체(自體)로
의(義)롭다고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셨는지 누군가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더 나아가
왜 그가 그렇게 원하셨는지 당신이 묻는다면
당신은 발견(發見)될 수 없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위대하고 더 고상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무모(無謀)함을 자제(自制)시켜
그들이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을 찾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굴레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운데
그에게 속한 은밀한 것들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려는 모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제지해 줄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진정 하나님의 뜻은
모든 악(惡)과 동떨어진 순수(純粹)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완전(完全)에 속한
최고(最高)의 법이고 모든 법 중의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의 뜻에 대해서
설명(說明)을 해야 하신다고 보지 않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오성(悟性)으로
그 원인에 대해서 유능한 판단(判斷)을 내리고
그것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허용(許容)된 것 이상(以上)을 시도하려고 든다면,
하나님은 죽을 인생(人生)에 의해서
판단(判斷)을 받으실 때마다
승리자가 되실 것이라는 시편의 위협에(시 51:4)
공포심(恐怖心)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 칼빈의 예정론(기독교강요 제3권 23장 2(라틴어 최종판 직역, 생명의 말씀사, 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