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설(講說)
불상(佛像)은 중생(衆生)의 눈으로 볼때 생명(生命)이 없는 물체에 불과해서 이교도(異敎徒)들은 우상(偶像)이라고까지 하는데 불교(佛敎)에서는 이 불상을 어떻게 보기에 거기에 예배(禮拜). 공양(供養)하는가?
지금 이 지장경에도 "미래세(未來世)에 불(佛), 보살(菩薩) 내지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 = 연각(緣覺)의 형상(形像)에도 공양, 보시(布施)하면 큰 복리(福利)가 있다."는 말씀이 거듭되었는데, 여기엔 어떤 뜻이 있는가?
불상이 처음 생긴 것은 바로 이 지장경과 밀접한 관계가있다.
이 경에 밝힌 부처님이 어머니를 위해서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설법(說法)하시는 3개월 동안에
우전국왕(優塡國王)이 부처님을 사모(思慕)하고 존경(尊敬)하여 조각사(造刻師)를 시켜서 전단향(栴檀香)나무로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조각하여 모시고 조석으로 예경(禮敬)했다는 것이 불상(佛像)의 시초(始初)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불상이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돌아오실 때 일어서서 영접(迎接)을 했다는 것인데, 이 때 부처님은 그 불상을 어루만지시면서 "앞으로 네가 말세 (末世) 중생들을 많이 제도하라."고 부탁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상은 그냥 생명이 없는 우상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말세의 하근 중생들을 교화(敎化)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접 거기에 생명을 넣으신 것이니,
즉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한 자비(慈悲)와 중생이 부처님을 향한 정성(精誠)이 인(因)과 연(緣)이 복합되어 나타난 일종의 화신불(化身佛)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로 불상은 물론 참부처님(진불 = 眞佛)은 아니지만 불상을보고 그 원만한 만덕존상(萬德尊像)을 통하여 참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염불, 기도하면 참부처님이 감응(봉가불이 기원즉 진불감응 = 奉假佛而 祈願則 眞佛感應)하신다는 말씀을 옛 스님들 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같은 보시를 하여도 회향(回向)하는 마음에 따라서 과보(果報)에 큰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점에 우리는 크게 유의해야 한다.
회향이란 돌린다는 뜻인데, 보시하고 공양하는 등 모든 공덕을 어디로 돌리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모든 중생의 어버이로서의 사랑이므로, 언제나 모든 중생이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고 함께 번영할 것을 원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이 부처님의 자비를 체득해서 지켜 나가는 것이 불자(佛子)의 도리(道理)요, 이것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근본(根本) 정신((精神)인 것이다.
저만 알고 제 식구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얼마나 유치하고 가치 없는 것인가를 우리의 양심은 알고 있다.
우리는 나와 남을 구별. 차등하는 어리석고 유치한 짓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부처님은 여기서 법계(法界)에 회향하라는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법계는 우주(宇宙)를 뜻하는 불교의 말씀인데 법계에 회향하라는 것은 우주 전체를 위한 모든 중생과 더불어 누리는 복된 생활이 될 것을 염원(念願)하는 마음으로 돌리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해야 할 까닭은 우리 모든 중생은 하나의 법신(法身 : 부처님의 본체(本體). 우주의 대생명(大生命), 모든 생명의 어버이)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여서 모두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남해용문사목조지장시왕상
지장보살상은 상반신을 곧게 세워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양감있고 건장한 모습이다. 신체적 특징은 무릎이 높고 像底前後徑이 넓으므로 불신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도톰한 입술은 입술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띤 모습이며, 귀는 크고 두꺼우며, 귓바퀴가 뚜렷하다. 목은 짧은 편으로 3조의 융기선을 평행하게 처리하여 삼도를 표현하였다.
좌협시 도명존자는 오른손에 석장을 쥐고, 우협시 무독귀왕은 합장은 한 채 각각 시립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어깨가 넓어 당당해보이고 온화한 인상이다. 얼굴은 방형이며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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