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성전 봉헌 예배
一. 성전 기구 제작을 필하고 그것들을 성전 곳간에 둠(1)
二. 언약궤를 메어다가 지성소에 안치함(2-10)
三. 봉헌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하싱(11-14)
(본문강해)
一. 성전 기구 제작을 필하고 그것들을 성전 곳간에 둠 (1)
. 5: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그 부친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솔로몬왕이 즉위한 지 제 4년 2월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제 11년 8월에 완공하였고(3:2 ; 왕상 6:37-38), 성전에 사용할 모든 기구들을 부친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여 예비해 둔 금과 은(대상 29:3-5)으로 만들어 전(殿) 곳간에 두었다.
二. 언약궤를 메어다가 지성소에 안치함 (2-10)
. 5:2-3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 칠 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로 모이고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필역(畢役)하고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담겨있는 법궤를 성전에 안치(安置)하려고 이스라엘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다. 아무리 성전을 잘 지었다고 해도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없다면 생명이 없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전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는 일은 더 중요하다. 오늘날도 교회 건물을 세우는 일보다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임하셔야 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칠 월 절기는 7월 15일부터 지키는 초막절(수장절)을 가리킨다 (레 23:33-36).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장막(帳幕)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11월에 지키는 추수 감사절이 이 절기에 해당된다.
. 5:4-5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 궤와 회막과 장막 안에 모든 거룩한 기구를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언약궤와 회막(會幕)과 장막(帳幕)안의 모든 기구들을 메고 성전으로 올라갔다. 회막은 모세 때에 광야에서 만든 성막이며 수백 년 동안 법궤가 그 안에 있다가 이제 성전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성전 안에 언약궤뿐 아니라 회막과 장막 안의 기구들까지 다 들여 놓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과 기구가 완전히 통일되었다. 솔로몬이 금으로 기구들을 다시 만들었으나 과거 수백 년 동안 쓰던 성막의 여러 가지 기구들을 내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과거에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던 것을 존중히 여겨 보존하는 신앙 행위이다.
. 5:6 솔로몬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들이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다윗이 전에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다윗 성으로 옮길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웃사가 죽었다(삼하 6:7).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언약궤를 레위 고핫 자손이 메고 옮기려 한 것이다(삼하 6:13-14 참조). 여기서 제사를 드린 목적은 자기들의 죄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려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려는 것이다.
. 5:7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에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 놓은 곳은 성전의 지성소이며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안치(安置)하였다. 이 언약궤를 안치한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일 외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만일 다른 사람이 들어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 5:8-9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이 내전 앞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궤가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언약궤에는 그것을 메고 다닐 때에 사용하는 채가 꿰어져 있는데, 그 채가 길어서 내전(지성소) 앞에서 보였다(왕상 8:8).
. 5: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언약궤 안에 있는 돌판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친히 써주신 두 돌판이다. 그 하나에는 1계명에서 4계명까지 기록했고 다른 돌판에는 5계명에서 10계명까지 새겨진 것이다. 그 두 돌판을 궤에 넣어 대대 손손 내려가며 보존하게 하였다. 이 돌비석에 새긴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출애굽기 16:33-34과 민수기 17:4-10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하나님의 증거궤 앞에 놓으라고 하였다.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신령한 양식을 주시며 앞으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모세 때 레위 자손 가운데 고라와 그 당파가 모세를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매 지파에서 지팡이 하나씩 가져다가 성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 이튿날 보니 다른 지팡이는 그대로 있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쓰시는 증거였다. 그러므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법궤 앞에 놓아 두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쓰시는 것을 알게 하셨다.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 9:4에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두 돌판과 함께 있다고 하였으므로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다 궤 안에 있었는데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법궤를 6 개월간 빼앗겼을 때에 만나 담긴 금항아리와 싹난 지팡이는 잃어버렸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후대에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두 돌판만 남았다고 한다. 하여튼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전에는 언약궤 안에나 혹은 언약궤 앞(밖)에 있었는데 솔로몬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없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들을 친히 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치는데 사용하였으나, 실지 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죽은 후 시대에는 그것들이 상장하는 진리로만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三. 봉헌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하심 (11-14)
. 5:11-12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지성소에 언약궤를 모셔 놓고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린 다음에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인도로 노래하는 모든 레위인들이 제금과 비파와 수금 등 여러 악기를 잡고 나팔을 부는 120인의 제사장들과 함께 일제히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하였다.
. 5:13-14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여호와의 전(殿)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구름"은 여호와의 임재(臨在)와 영광을 상징한다(출 19:9). 구름이 성전에 가득히 채워진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하신 증거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된 증거이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 충만함을 인하여 제사장들이 서서 섬기지 못하였고 감히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엄위가 나타날 때에 죄인 된 인간들이 그 앞에 설 수 없고 가까이 할 수 없다(출 40: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