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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부경 하나부터 열까지" (이현숙 지음)에서 발췌
가림다(加臨多) 문자의 역사
‘가림다(加臨多)’란 우리말 ‘가리다’에서 나온 것으로 소리를 그려서 뒤에 다툼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가린다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이다. ‘가림다’의 한자 이름에는 뜻이 없고, 우리말 ‘가림다’를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가림다’에 사용된 ‘다’는 우리말로 ‘땅’을 뜻하므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흙 토(土)’로 대체하여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도 부른다. 소리를 그린 것이므로 표음문자인 것이다. 단군조선(檀君朝鮮) 때에도 한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에서 유래한 참글이라 불리는 진서(眞書)가 있었지만 이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로 일반인이 익혀서 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새로 만든 것이 ‘가림다’문자이다. 세종대왕 때에도 한자가 있었지만 일반 민중이 익혀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서 새로이 훈민정음이라는 한글을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따르면 3대 단군인 가륵 재위 2년(BC 2181년)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 목적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취지를 설명하는 대목과 동일하다. 즉,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진서], 한자의 어원이 되는 녹도문[鹿圖文]이나 전자[篆字]로 추정됨)이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인 한검세기에는 BC 2305년 삼랑 을보륵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라고 하였다고 한다. 연도의 차이는 있으나 가림토 문자는 적어도 BC 200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가림토 문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며,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는 한단고기마저 진위가 의심받는 논란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지금부터 한글이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인류 최초의 나라이자 우리민족 최고(最古)의 나라는 천산(天山, 현재 중국의 산)에 개국한 한국(桓國, 환국)이며, 시기는 BC 7198년이다. 한인(桓仁, 桓因, 환인) 천제(天帝)가 나라를 다스렸다. 이 후 한인(桓仁) 천제(天帝)께서 삼위(三危), 태백(太白)이 좋은 땅이라는 말을 듣고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겨 환웅(桓雄) 천황(天皇)을 보내어 태백산(太白山, 현재 중국의 산) 아래에 나라를 세우게 하니 이것이 배달국(倍達國)이며, 시기는 BC 3898년 10월 3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천절은 실제로는 배달국에서 기원하는 것인데 현재는 단군조선의 개국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배달국은 천산의 동쪽에 있다고 하므로 현재의 지도를 보아도 이것은 일치하는 내용이다. 다음에는 한국(桓國)의 정통성을 계승한 단군(檀君) 왕검(王儉)이 BC 2333년 10월 3일에 조선(朝鮮)을 건국한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이름이 동일하므로 구분하기 위해 단군조선(檀君朝鮮) 또는 고조선(古朝鮮, 옛 조선)이라 부른다. 우리가 단기(檀紀) 4333년이라고 하면 현재 연도(AD)에 단군조선이 설립된 2333년을 더한 것으로 현재 연도는 2000년이 되는 것이다.
고대 우리민족의 국호와 임금의 호칭도 한자로는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것이다. 한국(桓國)은 환한 나라, 밝은 나라, 광명의 나라라는 뜻이며, 한인(桓仁) 역시 밝은 사람, 환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한자 천부경 해설에 나오는 명인(明人, 밝은 사람)인 것이다. 다음의 배달국(倍達國)도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했을 뿐으로 ‘밝은 나라’, ‘밝달 나라’이니 한국(桓國)과 동일한 의미이다. 여기에서 ‘배달 민족(밝은 민족)’, ‘배달의 겨레’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임금의 호칭인 환웅(桓雄, 한웅) 역시 우리말로 환한 님, 밝은 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인(桓仁)과 동일한 의미이다. 그 이후의 조선(朝鮮)은 우리말 ‘앗선’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처음으로 세운’이란 뜻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이 있었으므로 이는 ‘앗’의 원래 뜻인 ‘아침’ 즉, 해가 뜨는 나라, 광명의 나라를 의미하므로 결국은 ‘밝은 나라’라는 뜻이다. 단군(檀君)이란 호칭도 우리말의 한자식 표기이며, 밝은 님, 환한 님을 의미하므로 한인(桓仁)이나 환웅(桓雄)과 동일한 뜻이다. 단군(檀君)의 단(檀)은 박달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밝달’을 한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군(君)역시 ‘님’, ‘임금’을 뜻한다. ‘밝달’은 ‘배달’과 같은 뜻이다.
※ 우리나라의 수 많은 고전에 환웅(桓雄)이 세운 배달국(倍達國)의 위치는 태백산(太白山)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과 유물이라고 입에 침이 튀도록 강변하는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태백산(太白山)을 왜 백두산(白頭山)이라고 우기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태백산(太白山)은 크고 흰 산으로 백두산(白頭山, 흰 머리 산)과는 의미가 다르다. 우리 상고사와 신화를 베껴서 사용하는 일본에서는 이 태백산(太白山)을 ‘히코산 (희고 큰 산)’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나타낸 예전의 중국 관광지도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국에서는 태백산(太白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태백산은 평야가 없고, 물이 부족하여 나라를 세울만한 자리가 아니다. 우리의 녹도문(鹿圖文)은 한국(桓國)에서 유래하여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배달국(倍達國)을 이은 단군조선(檀君朝鮮)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그 유물은 현재 한반도보다는 중국에 있는 태백산(太白山) 유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흔적이 현재 중국 길림성에서 발굴된 적이 있으나 그것보다는 지도에 나타나 있는 서안(西安)과 천수(天水) 지역에 더 많은 유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를 천천히 음미해 보면 무척 재미있는 것들도 많다. 얼핏 보면 꼭 우리나라 특정 지역의 관광지도처럼도 보인다. 지도상에서 ‘복희(伏犧)’ 묘와 ‘신라왕릉지역’이 매우 이채롭다. 복희(伏犧)는 우리민족의 한 갈래로 그 무덤이 있는 곳은 곧 그곳이 우리의 영역이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신라왕릉지역도 예사롭지 않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나라를 진한, 마한, 변한(역사가들은 가락국을 변한으로 보고 있다)의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며, 이들이 나중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된다. 진한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로 지금의 서안 훨씬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다. 신라를 대표하는 지명이 ‘계림(桂林, 중국 관광지)’이므로 그 부근이 신라 지역인 것이다. 백제와 신라가 피 터지게 싸운 황산(黃山) 역시 중국 지도에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옛 기록을 보면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수 십 채의 성을 뺏고 뺏기는 싸움을 벌이는데 성이란 것이 무슨 빌라도 아니고 그 수 백 채의 성을 기존의 이론대로 남한에 지어 놓으면 남한 전체가 성으로 꽉 찼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토는 70%가 산이며, 조선시대에만 해도 개간이 덜되어 지금보다 산이 더 많았으며, 마을도 널찍이 떨어져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마을 하나가 성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역사가들은 또 경주가 계림이라고 우겨대니 그들은 계두(鷄頭, 닭대가리)임에 틀림없다. 백제 근초고왕 때 현재의 중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식민지가 아니라 원래 그곳이 백제의 땅인 것이다. 한반도에 있는 백제는 백제가 신라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며, 이에 따라 신라는 중국에 있는 신라와 한반도에 있는 신라로 분리된 것이다. 계림에 대해 삼국유사에서는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조(條)에 보면, 왕은 계정에서 태어났고 왕비 알영은 계룡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계림국이라 나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으나 이는 계림의 계(鷄)를 ‘새’로 읽어 계림은 ‘새벌’의 다른 표기에 불과한 것이다. 신라의 서울 이름은 서라벌이며, 이것이 셔블로 발음되고, 현재의 ‘서울’이 된 것이다. 신라시대 처용가에 보면 처용이 “셔블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달 밝은 서울에서 밤이 깊도록 놀다가...)”하고 노래를 부른데 여기에 나오는 셔블이 서라벌인 것이다.
※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신라의 서울 서라벌을 한자로는 동경(東京)이라고 적는다. 현재 일본의 서울도 동경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신라의 서울이 동경이라면 어딘가에 서경(西京)이 있어야 하는데 서경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서경, 북경(北京), 남경(南京)은 있으나 동경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배달국의 영역이 동경, 서경, 남경, 북경을 중심으로 하며, 이 영역의 서쪽과 남북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전신인 변한은 몽고에서 시베리아 바이칼호를 거쳐 아무르강이 바다에 닿는 쪽까지를 영역으로 하였다. 몽고의 신은 뎅그리(Tengri)이며, 이는 단군의 이름이 변형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위대한 고구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백제의 전신인 마한은 북경을 중심으로 하여 백두산 북방까지, 변한 영역의 아래쪽을 영역으로 하고 있었다. 신라의 전신인 진한은 마한의 아래쪽인 서경과 남경에서 한반도에 있는 동경까지의 영역이며, 아래로는 티베트와 인도,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단고기에서 말하는 한국(桓國)의 영역이 동서 이 만리, 남북 오 만리라는 것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한반도에 신라의 서경이 없는 것은 신라의 영역이 이렇게 광대하여 저 멀리 중국에 있었던 것이다. 이를 좁은 반도에서만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역사학자들도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보아야 우리의 역사가 올바르게 보인다.
※ 복희(伏犧)에 대해서는 우리 고전(규원사화)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풍족(風族)에서 태어나서 숫자에 의지하여 변화를 바라보는 이치에 대하여 자세히 익힌 뒤, 서쪽으로 중토로 나아가 수인씨(燧人氏)의 세상을 이어 황제가 되어 사황(史皇)의 도움과 하도(河圖)의 상서러움을 얻어서 팔괘(八卦)를 그리니, 중토 역리(易理)의 원조가 되었다. 복희씨는 스스로 능히 희생(犧牲, 제물에 쓰이는 동물)을 잘 길들이고 복종케 하여 그 위엄이 승냥이와 표범에까지 이르렀기에 '복희(伏犧)'라는 이름이 그로 연유한 것이며, 풍족에서 태어난 까닭으로 '풍'을 성씨로 삼았다. 용(龍)으로 벼슬을 기록한 것 또한 호가(虎加)나 마가(馬加)라고 일컬음과 같은 유형에서 근원한 것이다.”
※ 한인(桓仁)은 한인(桓因, 환인)으로도 표기하며, 이는 우리말의 한자식 표기일 뿐이다. 우리말 한인은 ‘환한 님, 밝은 님’을 의미한다. 이것이 뒤에 가면 ‘한나 님’, ‘한얼 님’, ‘한울 님’ 등으로도 발음되며,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으로 자리잡게 된다. 처음에는 한인(桓仁) 천제(天帝)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이 후에는 천부경에서 말하는 천일(天一>天極>天神), 지일(地一>地極>地神), 인일(人一>人極>人神)의 삼신(三神)을 주제하는 한(一)을 의미하는 하느님이 된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도 이러한 하느님을 의미한다. 즉,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의 삼신(三神)이 하나로 되는 것으로,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도 천부경(天符經)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교세를 그렇게 빨리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민족에게는 이미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하느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의 창세기편이 우리의 고대 상고사를 모방한 부분이 많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환웅(桓雄) 천황(天皇)이 태백산(太白山, 현재 중국의 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배달국(倍達國)을 개국할 때 한인(桓仁, 환인) 천제(天帝)가 개국의 선물로 천부경(天符經)과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환웅(桓雄) 천황(天皇)이 개국 행차를 할 때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행진을 하는데, 앞에서는 북을 치면서 흥을 돋구고 길을 열며, 다음은 천부경을 새긴 청동거울을 말에 올라 높이 들고 나아가며, 그 옆으로는 청동검을 든 무사들이 호위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천부인(天符印) 3개가 북(또는 방울), 청동거울, 비파형 청돔검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고인돌 등을 발굴하면 늘 함께 발견되는 것이 비파형 청동검, 번개무늬 청동거울, 청동 방울이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천부인은 한자 천부경 해설에서 설명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의 상징물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천지인(天地人) 즉, 원(圓, 하늘[天], ○), 방(方, 땅[地], □), 각(角, 사람[人], △)의 상징물이다. 천부인(天符印)은 천지인(天地人) 3개를 상장하는 상징물이며, 이는 원방각(圓方角), 즉 ○□△을 나타낸다. 이 천부인(天符印)은 한국(桓國)의 신표로 하느님의 나라이고, 하느님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 한글은 한국(桓國)의 신표로 부여 받은 이 천부인(天符印) 3개에서 유래한다.
가림다(加臨多) 문자는 한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에 따르면 3대 단군인 가륵 재위 2년(BC 2181년)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만들게 한 정음(正音, 바른 소리) 38자이며, 이를 만들게 된 동기는 세종대왕이 예전에 있던 가림다(加臨多) 문자를 음운학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실제 운용법과 사용법을 설명하여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제작 취지와 동일한 것이다. 즉, 가림다(加臨多) 문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제 각각이어서 이를 정리하여 정음(正音) 38자로 정립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 가림다 문자는 BC2181년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그 역사는 배달국(倍達國)의 천부인(天符印) 3개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훈민정음이라고 이름이 붙어있던 것이 ‘한글’이라고 불리게 된 것 역시 한글은 ‘한국(桓國)의 글’이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글은 가림다(加臨多) 문자에서 온 것으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자라고 하는 것은 말(언어)이 생겨난 후에 그 소리를 그리는 표음문자(表音文字)나 그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表意文字)가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표음문자는 영어의 발음기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 한글이나 영어와 같은 것이고, 표의문자는 그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자가 대표적인 것이다. 표음문자는 불과 몇 십 개의 기호로 수 많은 낱말을 만들 수 있는데 반해 표의문자는 말 그대로 사물 하나에 하나의 글자가 있어야 되므로 글자 수가 많을 수밖에 없고 문자로서는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반면에 표의문자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일례로 사장이라는 단어를 보면, 한글로는 모두 사장이지만 회사의 사장(社長), 바닷가의 사장(沙場, 모래밭),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는 사장(死藏), 사돈을 일컫는 사장(査丈), 활을 쏘는 사장(射場), 네 가자 장애를 일컫는 사장(四障) 등등 많은 사장이 있지만 한글로 사장이라고만 적어 놓으면 부수적인 설명이 없이는 어떤 의미의 사장인지 알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표의문자는 문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며, 우리가 과학 시간에 배우는 원소주기율표의 중국식 이름만 보아도 새삼 한글이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한글은 분명히 소리를 그리는 표음문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거기에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언어)이 한글의 형태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는 한글이라는 문자와 우리의 말(언어)이 동시에 같이 만들어졌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을 할 수도 없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 우리의 말과 한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림다(加臨多) 문자의 역사는 단군조선의 기록인 BC 2181년보다 앞선 배달국(倍達國)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우리말과 한글이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가정하면 한글은 말이 생길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그 역사는 BC8000년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약이 너무 심하므로 가림다(加臨多) 문자는 최소 BC250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림다(加臨多) 문자는 천부인(天符印)에서 유래하므로 배달국에서 처음 만들어 진 시기는 적어도 BC2500년 이전이지만 기록상으로는 BC 2181년에 만든 정음(正音) 38자이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정음(正音) 38자는 가림다(加臨多) 문자의 창제가 아니라 기존의 가림다 문자를 38자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이 전해져 오는 가림다 문자를 28자로 정리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이 ‘한국(桓國)의 글’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桓國)이 세계의 중심인 중국(中國)이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