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7-2. 현대시와 상징
7-2-1. 상징(象徵. symbol)이란?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구성의 원리에 비유가 있다면 상징은 비유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현대시의 표현기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볼 때, ‘비둘기’라는 사물만 겉으로 드러나고 나머지는 모두 숨어 버림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음은 앞뒤의 문맥이나 전통적인 해석에 의해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둘기(평화), 십자가(예수의 수난 또는 인류나 사회를 위한 희생), 백로(순결 또는 결백한 충성심), 까마귀(음흉하거나 반역하는 마음), 장미(사랑) 등의 상징은 전통적으로 또는 관례적으로 그 의미가 굳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전통적 상징(traditionl symbolim) 또는 관습적 상징(conventionl symbolim)이라고 합니다. 화폐, 상표, 회사 마크, 결혼반지, 태극기 등과 십자표(+)가 병원이나 교통안전, 교회 등의 상징으로 오랜 관습에서 관례화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은 개성, 독창성, 참신성을 추구하는 근대시의 경향과는 어긋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록 전통적 상징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에 얼마만큼 이바지하도록 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적(私的)상징(private symbolim)dl T습니다. 사적이란 개인적, 개성적이라는 뜻과 통합니다. 개인이 멋대로 만든 상징으로서 말하자면 암호나 수수께끼와 같이 좀처럼 알기 어려운 그런 상징을 말합니다.
또한 시의 상징에서는 정서상징과 지성상징으로 나누어서 살필 수 있습니다. 정서상징은 정서를 환기(換氣)하는 것은 음조(音調), 색채(色彩), 형식(形式) 등이 서로 음악적인 관련을 가질 때 정서를 환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 바닥엔 못이 찔림
이마에는 가시 찔림
옆구리에는 창에 찔림
생명여울 일체는
자고 있었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무 것도 없네
--박두진의 「사도행전(使徒行傳」중에서
이 작품에서는 예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십자가에 대한 상징이 다양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성상징은 관념상징이라고도 합니다. 감정과 뒤섞인 관념을 환기하는 상징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W. M. 어번은 상징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모든 상징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표시한다. 따라서 아무 것도 뜻하지 않는 유야무야(有耶無耶)한 상징을 있을 수가 없다.(십자가→믿음, 순결 등)
② 모든 상징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십자가는 실제의 십자가와 ‘믿음’이라는 이중의 뜻을 가짐)
③ 모든 상징은 허구(虛構. fiction)와 사실을 지니고 있다.(실제의 십자가는 허구이고 ‘믿음’은 사실임)
④ 모든 상징은 이중의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성스러운 십자가와 굳건한 ‘믿음’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음). 만약 이런 유사성이 없으면 그 상징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상징을 다시 정리해보면, 어떤 유사한 성질이 있거나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점이 있어서 하나의 것이 다른 것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고 또는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 이것을 상징이라고 합니다.
7-2-2. 상징과 비유의 차이
이처럼 비유(특히 은유)의 속성과 상징은 분명히 그 본질을 달리하면서도 또 동질적인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어서 상징과 비유는 유사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한 가지의 사상이나 심상과 상징이 이와 다른 심상 . 사상 등을 하묵함으로써 그 의미가 명료하게 되거나 복합 확장을 Rjl하는 응축된 언어로 은유를 해석하는 점에서 은유는 마치 상징과 같다는 뜻을 지니게 됩니다.
그의 머리는 최상의 순금이며
그의 머리는 텁수룩하고 까마귀처럼 검구나
--밀튼의 「실락원 중 ‘아가(雅歌)’」중에서
여기에서 보면 ‘머리는 순금’이라는 은유가 성립되고 ‘머리는 까마귀처럼’이라는 직유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유추한다면 1행은 와관을 쓴 머리이며, 2행은 왕관을 쓰지 않은 ‘텁수룩’한 머리의 형상은 그대로 직유의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2행은 비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1행은 머리가 순금으로써 왕관을 쓴 왕의 머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요소가 배어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포도원지기로 삼았으나
나는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구나
--「아가서 1장 6절」중에서
여기에서 ‘포도원’과 포도원지기‘가 ’지키지 못한 포도원‘이라는 보조관념만 제시되고 정작 ’포도원‘에 대한 진술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포도원의 본래 진실은 나타나지 않고 그 대신 ’포도원‘이라 허구만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포도원’은 관례적으로 처녀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처녀가 처녀성을 상실했다는 암시를 이해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 작품을 비유로 성립시키면 ‘포도원’은 처녀성 / 나는 처녀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야 은유가 됩니다. 이론적으로 은유와 상징의 차이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상징은 관념으로 사물이미지로 표현하지만, 은유는 사물을 다른 사물의 이미지를 빌어 표현한다. 또 상징의 경우는 원관념이 생략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시에 드러낸다.
② 은유가 유사성이나 비교 그리고 대조의 관계로 대각선을 긋는다면, 상징은 그러한 편견이 없거나 회피한다. 따라서 상징은 운유보다 더욱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③ 용어에 있어서 상징이 보다 많은 동사나 형용사를 사용한다면 은유는 명사형을 주로 많이 사용한다.
④ 상징이나 비유가 다같이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상징은 비유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7-3. 현대시와 아이러니(irony)
7-3-1.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아이러니라고 하면 풍자(諷刺) 혹은 역설(逆說) 등 어떤 말로 비꼬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해석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실은 우리 현대시 창작에서도 이를 상당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의 어원은 희랍어 에이로니아(eironeia)에서 온 말로서 일종의 심침떼기를 의미했으며 조롱(嘲弄)을 목적으로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희랍의 희극에 등장하는 에이론은 겉으로는 약하고 어리석은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고 힘센 허풍장이 알라론을 골리고 골탕 먹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실제로 나타나는 것과 이면에 감추고 있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관계를 설정하는 반어(反語)적인 성격을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이 반어의 속성은 슬플 때 웃는다든지 성이 났는데도 기쁜 척한다든지 속으로 경멸하면서도 밖으로는 존경하는 척하는 것과 같이 원래의 뜻과 반대로 말을 하거나 부정적이고도 소극적인 표현으로 도리어 긍정적, 적극적인 뜻을 나타내는 표현법을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쓰는 말로서 너무 예쁜 어린애를 보고 미워죽겠다거나, 너무 영리한 삶을 보고 얄밉다고 하는 표현들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작품들에서 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한 점 여린 바람에도
눈물짓는 꽃이거늘
오밤중 저 별들마냥
흔들림에 길들여 졌을까
--졸시「대화」중에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 은의「문의마을에 가서」중에서
하늘에
자유 사랑과 평화의 나라 ‘프랑스’가
군화를 뿌렸을 때
--전봉건의「江河」중에서
햇살과 바람은 숨바꼭질을 한다
그 숨가쁜 호흡
미루나무 잎새 사이에서
사랑하라
바람이 삼킨 그대 울음
--윤서희의「바람의 얼굴」중에서
우리의 꿈은
황량한 세계에 다리를 놓고
미지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어디든 간다
--홍윤숙의「사랑연가 . 2」중에서
이처럼 시에서만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금언(金言)이나 성경에서도 진실을 강조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예를 볼 수 있습니다.가령 마태복음, 그리스도의 산상구훈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저희가 위로를 받으리라’라고 해서 반어적인 성격의 어조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아이러니는 좋은 시를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로 결합시키는 위트(wit-지혜, 기지, 재치)로서 시의 대조나 구조의 원리로 보고 있다. 아이러니의 일반적인 특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아이러니는 ‘체함’과 ‘아닌 체함’의 상호 대립된 어항의 속성을 지닌다. ‘아는 체’, ‘잘난 체’, ‘똑똑한 체’ 등과 더불어 반대로 ‘모르는 체’, ‘못난 체’, ‘바보스러 체’ 등이 있다.
② 대조가 있다. 내면계(內面界)와 외계(外界), 현실과 외관(外觀)의 대조가 있다.
③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가 있다.
④ 거리감과 자유로움 그리고 재미가 있다.
⑤ 비꼬거나 비판의 풍자적 요소가 있다.
⑥ 비개성적이다.
⑦ 미적요소가 있다.
⑧ 순진하게 자기를 폭로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특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풍자, 역설, 패러디 등에 대해서도 이해하면 시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