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 다섯번 갔던 친구, 세번 갔으나 지금은 혼자 사는 친구, 서울 시내 버스에서
객사한 송영삼, 대학교 입시 부정으로 감옥갔다온 친구 (이는 보통 성적의 학생이
이대 입학에 수석을 하는바람에 수사 끝에)
수색에서 등교해도 지각 한번 없던 친구, 학교 문앞에 살면서 지각하던 친구,
지는 군인 안갔었도 지 아들은 미 해병대 보내서 제대시킨 고 오예영, 육사에서
퇴교후 육군 중사로 예편후 연대 졸업하고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한 고 박승우,
전기과 나와서 중앙방송국 기술을 맡아 일하다가 삼성전자로 옮기어 이병철 회장
의 신임을 얻어 삼성전자 수원 공장장을 한 강영문 전무, 그런가하면 똑같은 신임
으로 이병철 회장의 개인 면담에서 사정을 하였어도 이직한 우리나라 1기생의 구조
역학 기술사 김상환,
학교때 떼부자집 아들 고 황원근 중3 때 영어 선생님 하던 수탉 김학수 선생께서
원근이 집으로 왕임하였던 친구가 미국에서 코로나로 별세하였고, 돈암동 전차
종점에 살던 정우선 어려서부터 아코디온을 하모니카 불듯이 잘 치던 고 우선이는
LA에서 골프치고 나서 卒, 타계하는 복을 잘 받은 친구.
유일하게 약학 전공하고 약국을 하던 고 이상권, 그는 안타갑게도 당뇨로 卒,
지 약국에 쌓여있던 약 안먹고 버티다가. 술집하다가 말아먹고 미국가서 생을
마감한 이덕열, 그밑에서 지배인하다가 卒한 김철규, 덕열이네 외상값 받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卒
산좋아해서 동네 친구 다섯이서 정선 산골에 집을지어 집들이 겸 등산하려다가
밤새 스며든 연탄 까스에 다같이 卒한 이웅일, 장지량 공군참모총장 동생 고 장지현
그는 목사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떠났다.
중정에서 워싱턴 우리 대사관에 근무하던 중 미국 고속도로에 나가 자진 사고를 빚어
중상으로 귀국하여 서울대 병원에서 졸한 고 김호준, 현대 상선의 30만 톤짜리 원유
운반선 선장 출신의 박정효 국민학교 때 그의 가정교사는 수학 가르치시던 심경보
선생님.
신문쟁이로 한겨레 신문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사원 투표로 사장이 된 최학래
신문협회 회장으로 박지원이와 같이 평양 방문하여 김정일이와 손잡고 다녀온
실력.
육사 입시 전일 왕십리에서 을지로 4가 왕복 뜀박질로 체력을 길르려했으나
체력검정 당일 뛰지 못하여 낙방하여 22기로 임관 후, 대위 시절에 영내에서
축구시합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장군을 바라보지 못하고 대위에서 전역, 삼성
전자에 입사해 미국에서 근무하던중 퇴사하고 자기만의 회사를 차려 지금
까지 산 호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권영무 회장.
학교 때 말 더듬이 비슷하였는데 미국가서 영어를 쓰기시작하여 온전해 졌다는
미국 건축공학 기술사 최재익 - 아마도 미국에 사는 친구들 제일 부자일게다.
창덕여고 교장으로 정년한 이보영, 장충국민학교 교장으로 정년한 서충근.
통일교도 안 믿으면서 교주 문선명의 절대 신임을 받아 교주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던 신상열, 부산의 떼부자집 아들로 58년에 혜화동에 입성.
이를 입증하여 내게 전해준 쉬카고에 살던 고 김부혁. (한문에 어두었던
영어 선생님 정경순은 그를 "김박혁"으로 출석을 부른 일이 있어 그는
한 때 "박혁"으로 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