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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은 독(毒)이 변(變)해서 약(藥)이 된다고 쓰여있소.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1 조회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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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彌勒菩薩)의 유가론(瑜伽論)·용수보살(龍樹菩薩)의 대론(大論)을 보아하면, 정업(定業)의 자(者)는 약(藥)이 변(變)해서 독(毒)이 되고 법화경(法華經)은 독(毒)이 변(變)해서 약(藥)이 된다고 쓰여있소.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2 조회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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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地)에는 삼십육기(三十六祇)·천(天)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수호(守護)하시는데다가·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천(天)이 그림자처럼 따르느니라. 소위(所謂) 一을 동생천(同生天)이라고 하며, 二를 동명천(同名天)이라고 하는데, 좌우(左右)의 어깨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을 수호(守護)하므로 죄(罪) 없는 자(者)는 천(天)도 벌(罰)하는 일이 없으니·하물며 선인(善人)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반드시 마음의 견고(堅固)함에 따라서 신(神)의 수호(守護) 즉 강(强)함이라」 등 운운(云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며 법전장(法戰場)이기 때문에 항상 신래자를 참가시켜서 활발하게 절복을 추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래자를 오게 한다는 것도 결국은 개인지도를 철저하게 해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좌담회의 의의와 절복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요는 신심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개인지도가 근본이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도 많은 개인지도를 하셨는데 그것을 모아 놓은 것이 어서(御書)입니다. 우리들은 개인지도를 철저히 함으로써 최고로 결집된 명랑하고 충실한 좌담회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도록 합시다.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난(難)을 만난다고 심득..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3 조회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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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經)을 듣고 받는 사람은 많지만, 진실(眞實)로 듣고 받은바와 같이 대난(大難)이 오더라도 억지불망(憶持不忘)하는 사람은 드무니라.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난(難)을 만난다고 심득(心得)해서 갖는 것이니라, 「즉위질득(則爲疾得)·무상불도(無上佛道)」는 의심(疑心)없느니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대사(大事)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염(念)함을 갖는다고 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호지불소촉(護持佛所屬)」이라 하였느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가로되 「신력(信力) 때문에 받고 염력(念力) 때문에 가짐」 운운(云云). 또 가로되 「이 경(經)은 가지기 어렵도다, 만약(萬若) 잠시(暫時)라도 가지는 자(者)는 내가 바로 환희(歡喜)하노라, 제불(諸佛)도 또한 그러하니라」 운운(云云). 불에 장작을 가(加)할 때는 성(盛)하니라. 대풍(大風)이 불면 구라(求羅)는 배증(倍增)함이라. 소나무는 만년(萬年)의 수명(壽命)을 갖는 고(故)로 가지가 구부러뜨려진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불과 구라(求羅)와 같으며 장작과 바람은 대난(大難)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구원장수(久遠長壽)의 여래(如來)니라, 수행(修行)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이 이후(以後)는 차경난지(此經難持)의 사자(四字)를 잠시(暫時)도 잊지 않고 생각 하실지어다.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법사(法師) 중(中)의 대법사(大法師)이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4 조회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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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法)이란 제법(諸法)이고 사(師)란 제법(諸法)이 곧 스승이 되는 것이며, 삼라삼천(森羅三千)의 제법(諸法)이 곧 스승이 되고 제자(弟子)가 되어야 하느니라.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법사(法師) 중(中)의 대법사(大法師)이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개각(開覺)이 나타나고 보면 지옥(地獄)의 등연맹화(燈燃猛火)·내지(乃至)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족(具足)하여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사(法師)이니라. 또 가로되, 법(法)이란 제목(題目)이고 사(師)란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나는 일본(日本)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5 조회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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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結局)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當)하여라, 신명(身命)을 바칠 뿐이로다. 신자(身子)가 육십겁(六十劫)의 보살(菩薩)의 행(行)을 퇴전(退轉)한 것은 걸안(乞眼)의 바라문(婆羅門)의 조름을 참지 못한 때문이고, 구원대통(久遠大通)의 자(者)가 삼오(三五)의 진(塵)을 경과(經過)함은 악지식(惡知識)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善)에서든 악(惡)에서든 법화경(法華經)을 버림은 지옥(地獄)의 업(業)이 되느니라, 대원(大願)을 세우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위(位)를 물려주리라, 법화경(法華經)을 버리고 관경(觀經) 등(等)에 붙어서 후생(後生)을 기약(期約)하라, 염불(念佛)을 부르지 않으면 부모(父母)의 목을 베겠노라는 등(等)의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이 출래(出來)한다 할지라도 지자(智者)에게 아의(我義)가 타파(打破)되지 않는 한(限) 채용(採用)하지 않으리라, 기외(其外)의 대난(大難)은 바람 앞의 먼지와 같으니라, 나는 일본(日本)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盟誓)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6 조회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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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가로되 「무상보취(無上寶聚)·불구자득(不求自得)」 운운(云云). 우리들의 기심(己心)의 성문계(聲聞界)니라. 「나와 여(如)히 동등(同等)케 하여 다름이 없노라.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은 이미 만족(滿足)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化)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노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대저 능(能)히 이 경법(經法)을 호지(護持)하는 자(者)는 즉 이는 나와 그리고 다보(多寶)를 공양(供養)함이니라, 내지(乃至) 또 모든 여기에 오신 화불(化佛)의 모든 세계(世界)를 장엄(莊嚴)하고 광식(光飾)하시는 자(者)를 공양(供養)함이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우리들의 불계(佛界)이니라. 그의 뒤를 계소(繼紹)하여 그 공덕(功德)을 수득(受得)함이니 수유(須臾)도 이를 들으면 즉(卽)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구경(究竟)할 수 있음」이란 이것이로다.
관심(觀心)의 본존초(本尊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연계해서 읽고 깊이 사색해야 할 중요한 어서말씀들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2.07 조회수: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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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계해서 읽고 깊이 사색해야 할 중요한 어서말씀들 ※※※
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가로되 「무상보취(無上寶聚)·불구자득(不求自得)」 운운(云云). 우리들의 기심(己心)의 성문계(聲聞界)니라. 「나와 여(如)히 동등(同等)케 하여 다름이 없노라.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은 이미 만족(滿足)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化)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노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관심(觀心)의 본존초(本尊抄) 246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자(自)의 자(字)는 십계(十界)이며, 십계(十界) 각각(各各)이 득(得)하느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그러한 까닭으로 이 문(文)은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골육(骨肉)이니 깊이 깊이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운운(云云).》
어의구전권상(御義口傳卷上) 727쪽
그런데 재가(在家)의 몸은 다만 여념(餘念)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고 승(僧)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 간심(肝心)이외다. 그것도 경문(經文)대로라면 수력연설(隨力演說)도 있어야 할 것이로다. 세상(世上)살이가 힘겨울 때도 금생(今生)의 괴로움조차 슬프니 하물며 내세(來世)의 고(苦)에 있어서랴고 생각해서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기쁠 때도 금생(今生)의 기쁨은 꿈속의 꿈이며 영산정토(靈山淨土)의 기쁨이야말로 진실(眞實)한 기쁨이라고 생각하시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퇴전(退轉)없이 수행(修行)하여 최후(最後) 임종(臨終)의 때를 기다려 보시라, 《묘각(妙覺)의 산(山)에 달려 올라가 사방(四方)을 쫙 바라보니 아아, 유쾌하도다, 법계(法界)는 적광토(寂光土)로서 유리(瑠璃)를 가지고 땅으로 하고 금의 밧줄로써 팔(八)의 길에 경계(境界)를 했으며, 천(天)으로 부터 사종(四種)의 꽃이 내리고 허공(虛空)에서 음악(音樂)이 들리며, 제불보살(諸佛菩薩)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바람에 산들거리고 오락(娛樂) 쾌락(快樂)하시느니라. 우리들도 그 수(數)에 들어가서 유희(遊戱)하고 즐기게 될 것은 벌써 다가왔도다. 신심(信心)이 약(弱)해서는 이와 같이 가장 좋은 곳에는 갈 수 없다, 갈 수 없느니라.》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1386~7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남녀(男女) 공(共)히 여래(如來)이고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여여래공숙(與如來共宿)의 자(者)이니라,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
어의구전권상(御義口傳卷上) 737쪽
과거(過去)의 숙연(宿緣)이 뒤쫓아와서 이번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음인가. 《석가(釋迦) 다보(多寶)만은 알고 계시리라.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이란 설마 허사(虛事)는 아닐 것이로다.》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8쪽
묘(妙)란 법성(法性)이고 호(法)란 무명(無明)이며 무명(無明) 법성(法性)이 일체(一體)임을 묘호(妙法)라 하느니라. 렌게(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因果一體)이니라. 쿄(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 음성(音聲)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經)라 한다고, 《혹(或)은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렌게(蓮華)란 팔엽구존(八葉九尊)의 불체(佛體)이니라,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어의구전권상(御義口傳卷上) 708
《생(生)의 기(記)가 있으면 반드시 사망(死亡)하는 것이며 사(死)의 기(記)가 있으면 또 생(生)하느니라, 삼세상항(三世常恒)의 수기(授記)이니라.》
어의구전권상(御義口傳卷上) 730쪽
《일념삼천(一念三千)은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불계즉구계(佛界卽九界)라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 경(經)의 일자(一字)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이며 일구(一句)는 제불(諸佛)의 종자(種子)가 됨이니, 이것들은 기근(機根)의 숙(熟) 불숙(不熟)은 차치(且置)하고 때가 이르른 까닭이라. 경(經)에 가로되 「지금이 바로 이는 그 때로다. 틀림없이 대승(大乘)을 설(說)하리라」 등(等)운운(云云).
선시초(撰時抄) 256쪽
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 주머니가 더럽다고 하여 금(金)을 버리지 말지니라. 이란(伊蘭)을 미워하면 전단(栴檀)은 있을 수 없느니라. 계곡(溪谷)의 연못을 부정(不淨)하다고 싫어 한다면 연(蓮)꽃은 취(取)하지 못할 것이며 행자(行者)를 퇴박 하신다면 서원(誓願)을 깨뜨리심이라. 정상(正像)이 이미 지나 버렸으니 지계(持戒)는 시중(市中)의 호랑이와 같고 지자(智者)는 인각(麟角)보다도 희귀(稀貴)하리라. 달이 뜨기 전(前)에는 등(燈)불을 의지할 것이며 보주(寶珠)가 없는 곳에는 금은(金銀)도 보배(寶貝)로다. 백오(白烏)의 은(恩)을 흑오(黑烏)에게 갚고 성승(聖僧)의 은(恩)을 범승(凡僧)에게 갚을지니라.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 1351~2쪽
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15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