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명월 제천의 숨은 명소 약초시장
충북, 강원, 경북의 좋은 약재가 다 모였네
찬바람이 쏠쏠 부니 따뜻한 한방차가 더 그립다. 예전엔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보약을 찾아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겠다. 제천에 오래된 약령시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는 길, 내내 뭘 사올까 설레는 마음이다.
기차에서 내리니 마침 제천의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여행에 우연히 장날이 겹치면 로또 첫 번째 숫자라도 맞은 양 들뜨게 된다. 장날 분위기를 햇빛에 잘 마른 고추가 한껏 잡고 있다. 여기에 오래된 고물상도 있고, 조악한 색깔이 특징인 아이들의 플라스틱 장난감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향긋한 약초 냄새가 바람에 솔솔 실려온다. 발길을 돌려보니 온갖 약초를 길에 내다놓고 파는 노점상이다. 자연산 영지버섯, 복분자 열매, 하수오, 결명자, 구기자 등 아는 것도 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있고, 이름은 아는데 처음 보는 것도 있다. 한결같이 오래된 됫박에 봉긋한 산을 이루며 풍성하게 담겨 있다. 역시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어찌 먹는 거냐 물으니 잘 씻어서 차로 달여 마시거나 술 담가 먹으면 좋단다. 얼마 전 아는 한의사에게 ‘기운이 없어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복분자차를 내주며 많이 마시라고 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이것저것 다 눈길이 간다. 이렇게 먼저 눈요기를 했으니 어서 약초시장에 가봐야겠다.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약초시장은 잘 정비되어 있어 ‘시장’이라기보다는 ‘전문상가’ 같은 분위기다. 노점상이 있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약간은 실망스럽다. 여기저기 퍼져 있던 약초상을 1993년 정비하여 단지로 만든 것이란다.
제천시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제천은 조선시대부터 약령시장이 있었는데, 주로 도매상들을 상대하다 보니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단다.
제천에 이렇게 좋은 약재가 많은 것은 주변이 충북, 경북, 강원 3도가 접경을 이루어 산간 자연생 약초가 많은 탓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백운산, 주론산, 월악산 등 많은 산이 겹겹이 이루고 있고, 물이 맑고 깨끗하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겠다. 특히 석회암지대가 많아 약초 뿌리가 단단한 것도 이곳 약초의 진가를 높이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곳에서 난 약초는 다른 곳보다 보존 기간이 훨씬 길단다.
그중에서도 제천은 황기로 유명해서 전국 유통량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한다. 황기는 기혈이 약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등의 환자에 효과적인 약초로, 차로 마시기도 하지만 백숙 등에 넣어 먹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황기가 흔한지라 아예 황기 물을 우려 이것으로 두부도 만들고, 밥도 짓는 음식점까지 있다. 황기 우린 물로 지은 따끈한 밥이라…, 말만 들어도 구미가 솔솔 당긴다.
약초시장 내의 운화물산(043-652-6868) 김선하 사장은 “여기 있는 게 산지를 다니면서 다 직접 수집한 거예요. 우리나라에 구하기 힘든 감초하고 계피 빼고는 전부 다 국산이니까요. 여기서는 믿고 살 수 있으니 좋은 거죠”라고 한다. 약초를 사고 싶어도 하도 매스컴 등에서 중국산 재료가 어떻다느니 하는 소리를 자주 듣다보니 오히려 병이 나겠다 싶어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믿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반갑다. 황기 한 묶음을 들어 가격을 물어보니 1만원이라고 한다. 시중에서 2만5000원은 줘야 하는 것인데 도매시장이라 역시 가격이 부담 없다. 때문에 이곳에 한번 안면을 튼 사람은 아예 택배로 계속 주문해서 먹는다고 한다.짙은 약초 향내가 계속 코끝을 간질인다. 이것도 몸에 좋겠거니 하며 간간이 숨을 깊이 들이쉰다. ‘올여름 삼계탕도 못 먹었는데…’하며 황기를 챙겨들었다.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진다. 서울로 가는 길이 멀다.
글 송수영 기자 사진 양미경(프리랜서) 취재협조 코레일
Info
구입방법 제천약초시장은 아직 도매상의 성격이 강하고, 얼마 전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포장을 하고 있다. 시장 입구 쪽의 상가에서는 일반인들도 구입이 가능하다. 문의 043-642-1036 www.jcyakcho.org영동고속국도 → 원주 → 중앙고속국도 → 제천IC → 제천역 → 공설운동장 앞
772-495-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