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는 최양업 신부 선종 163주년 기념일(6월 15일)을 앞두고 담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의 날을 지내며’를 발표하고 모든 신자들이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기도를 바쳐줄 것을 요청했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길 위의 목자‘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린다. 혹독한 박해의 시기에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힘들고 고단한 사목활동의 여정 끝에 안타깝게도 40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 안건은 교황청 시성부에서 영웅적 덕행에 관한 성덕 심사를 통과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 이로써 ’가경자‘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다음 절차는 기적 심사다.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인 최양업 신부의 시복은 기적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지만, 신앙 선조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그분들에 대한 현양의 의미와 함께 우리 스스로의 구원과 신앙 성숙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미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그분의 정신을 본받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반성과 함께 시복을 위한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복을 추진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우리 스스로의 영적 성숙이 이뤄지고 선조들의 굳건한 신앙이 오늘날 우리 안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이에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은 이 특별한 시기를 맞아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제 3396호 23면
가경자 최양업 신부 시복 위한 전구 기도에 동참을
15일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의 날’이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1861년 6월 15일 40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선종했다. 사망 원인은 과로와 장티푸스였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은 한국 교회의 오랜 염원이다. 최양업 신부는 스승 신부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늘 자신과 조선 교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지금은 최양업 신부를 위한 열성적인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현재 교황청 시성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심사 중 그의 전구를 통해 일어난 기적 1건을 입증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순교자가 아닌 최양업 신부가 복자품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그의 전구로 얻게 된 1건의 기적 사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복 심사에서 기적 사례 못지 않게 중요하게 보는 요소가 있다. 바로 한국 교회 신자들이 최양업 신부를 얼마만큼 현양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시성부는 “기도 없이는 시복이 어렵다”면서 “한국 교회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양업 신부는 단순히 한국인 두 번째 사제라서 시복 시성 대상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조선 왕조의 박해 상황 하에서 해마다 7000리 곧 2800㎞를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 성사를 집전한 ‘참 사제’였다. 또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우리말 기도문과 교리서를 간행·보급했고, 주님과 성모님을 향한 사랑에 기초한 성덕으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한 ‘신앙의 증거자’였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하느님과 우리를 사랑과 친교의 끈으로 이어줄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제1764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