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 이연희
책을 덮자, 북소리가 그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던 소리가 다시 들릴까 조심스레 귀 기울인다. 약하기만 하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내면에서 울리는 그 소리에 맞춰 몸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었다.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멋들어진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몸 전체가 늪에 스며들 듯이 나는 책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긴 여행을 떠났다. 책을 읽으며 어느덧 나도 그 여행길의 동반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 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픈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독자의 흥미를 솔솔 돋게 만드는 게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다.
나는 그런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억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어릴 적에도 나에게도 내면의 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종지도 三從之道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유교 집안이라 내가 북소리에 반응을 보이면 집이 시끄러웠다. “여자가, 계집애가”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북소리는커녕 당연히 상의해야 하는 직업을 구하는 일마저 내 의견은 뒷전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나 대학 진학 심지어 취직도 내 생각과 관계없었다. 그때부터 아예 북소리에 귀를 막고 살았다. 부모님의 북소리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울려야 할 내 안의 자명고는 찢어져 버린 것이었다.
결혼 후에는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수십 년간 북소리, 아니 북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자식을 위해서는 용케도 북소리를 내었다. 그들이 그 소리에 반응을 보이면 열심히 북을 두드렸다.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멀리서 격려의 북을 울리는 것밖에 없었다. 잠시 일탈을 시도했던 아들은 엄마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딸은 나와는 달리 자신의 소신대로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바꾸어 가며 정진했다.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멀리서 격려의 북을 울리는 것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북소리가 강요와 강압의 소리였다면, 나의 그것은 격려와 응원의 속삭임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나와 아이들의 북이 화합을 이루어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자식들이 성장해 품을 떠나니 움츠렸던 내면의 북소리가 서서히 울렸다. 조심스레 북장단에 맞춰 흔드는 작은 변화에 가족이 가장 먼저 호응해 주었다. 습관적으로 억누르며 사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끼가 많은 사람이 억누르기만 하면 병이 된다며 이제부터는 마음껏 발산해 보라고 했다. 가족의 성원에 힘입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오카리나를 배웠다. 몇 년간 연주 봉사하며 방과 후 오카리나 강사로 인생 2막을 살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에 따라 움직이느라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역마살이 있는 나는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여행도 자기 성찰의 기회이며 북소리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다. 차근차근 여행 계획을 세워 진행 중이다. 언제 떠나느냐고 재촉하는 북소리가 낯설지 않고 정겹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내면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있기 마련이다. 그 울림은 남을 응원하는 소리이며, 나 자신을 찾는 소리이며 격려하는 소리이다.
나는 오래전에 찢어진 자명고를 꿰매고 있다. 그 자명고가 나를 춤추게 하고, 이웃을 북돋우는 울림이면 좋겠다. 나는 그 울림에 따라 어깨춤을 추며 인생의 언덕길을 내려가고 싶다.
첫댓글 와우 멋진 글
그 북소리의 파장이 두근 두근 주변으로 번져가기를^^
늦지 않았습니다.
북소리는 영원합니다
와우~~ 자명고가 이미 울림을 주고 있네요
자명고 수리가 잘 된 것 같으네요.소리가 곱게 멀리 퍼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