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위기
아주 험악한 부부도 있다. 집이 부자여서 정신장애인이면서도 대학, 대학원 다닐 때 자가용 몰고 다니며 친구들 만나면 자기가 밥값이며 술값이며 다 내던 친구가 있다. 대학원 다닐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대학원 마치고 한때 연구원 생활도 1년쯤인가 했다. 당시만 해도 집이 부자라 부모님이 아파트 사주고 한 달에 2백만원쯤인가? 생활비를 대줬다. 내가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다. “제 힘으로 돈 벌어 결혼하게 하셔야 해요.” 말을 안 들으신다. “며느리 저한테 데려오세요. 교육시켜야 해요.” 그래도 말을 안 들으신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백수로 지내며 부모님께 생활비 받아쓰고 주치의에게 매주 한 번에 10만원씩 내는 유료 정신치료를 10년 이상 계속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머니가 더 이상 생활비를 대줄 수가 없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별거하고 최근에는 이혼소송 중이다. 부부만이 아니라 집안 간에 서로 원수가 됐다. 아내가 초등학생인 애들을 데리고 살며, 얼굴도 못 보게 해서 힘들어한다. 지금은 어머니와 아들이 전월세로 살고 있다. 어머니가 행상하고 아들도 최근 취업해서 간신히 먹고 살기는 하지만 재산이 전혀 없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가 아버지 유산 5억을 숨겨놓고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며느리도 한 동안 그렇게 믿었다. 아들은 수시로 “돈 내놔라.” 하며 어머니에게 폭언하고 폭행한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엄마 목을 졸라서 거의 죽을 뻔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남아 신부를 데려다 결혼시킨 경우도 있다. 한 때 정신장애인 가족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게 공부도 시켜주시고 제게도 데려 오세요. 정신장애에 대해 교육시켜야 해요.” 해도 말씀을 안 들으신다. “밖으로 돌다보면 바람나서 가출하는 경우가 있다.”고 감시감독만 철저히 하신다.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다. 수년째 연락을 않고 지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비장애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는 많다. 한 당사자는 남편 될 사람이 “정신장애 있다는 얘기를 굳이 말할 필요 뭐 있나?”라고 해서, 시댁에는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결혼했다. 2년쯤 살다가 애기 가지려고 약을 끊었다가 재발했다. 2개월 동안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이 면회를 오지 않았다. 집에 가보니 술병만 잔뜩 쌓여있고 남편이 ‘어째야 하나?’ 혼자 고민만 하고 있었다. 화가 나서 그 길로 집을 나와 이혼해 버렸다.
이혼 위기에서 마음을 잡고 잘 사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가 헌신적인 경우다. 이들의 공통점은 ‘병에 대해 알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병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을 스스로 가족협회 연구위원이라 칭하시는 분이 있다. 영어독해 능력이 뛰어나서 정신장애에 대해 영어로 쓰인 단행본과 논문을 많이 읽으셨다. 직장생활하시며 30년 세월 조현증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아끼며 사신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이 가게해서 돈 벌어 평생을 남편 옷 잘 입히고 용돈 두둑이 줘서 멋지게 살도록 뒷바라지 하신 분도 있다.
최근 가족교육 시간에 어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10여 년 전에 이혼위기 때 교수님 책보고 마음을 잡았어요. 교수님 가족교육을 듣고 싶었지만 8회기 교육비 5만원이 없어서 교수님께서 교재로 쓰시던 책만 사갔어요. 그 책 읽고 마음을 다잡고 책에 쓰인 대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신다. 마음이 뭉클했다. 「정신분열병과 가족」이라는 책이다. 가족교육을 하며 10년에 걸쳐 고치고 고쳐 쓴 책이다. 손명자·배정규 공저다. 1부 새로운 관점, 2부 정신분열병, 3부 재발방지, 4부 환자와 가족의 생활로 구성되어 있다.
내 눈에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게 좋아 보인다. 덜 외로워 보인다. 노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혼을 잘 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정신장애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부부싸움 않고 화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하며, 재발위기 때 마음을 잘 안정시켜주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같은 당사자끼리 결혼하는 게 유리한 것 같다. 비장애인과 결혼한 경우에는 정신장애에 대해 반드시 교육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을 권하여 읽게 하고, 가족교육 강의를 듣게 해야 한다. 가족협회에도 가입시키고 가족모임에도 나가게 해야 한다. 외래진료 때 주치의에게 데려가서 인사시키고 종종 같이 진료 받으러 다녀야 한다. 결혼 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무조건 예뻐 보이고 잘해주는 건 신혼 때뿐이다. 2~3년만 지나면 늦다. 권태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배우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부부싸움을 하면 정신장애는 무조건 악화된다. 싸움을 하고 증상을 보이면 병을 핑계로 이혼 당한다. 또는 당사자가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해 이혼해 버리고 만다.
첫댓글 "잡초인생" 140-143쪽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