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로코코>
1. 화려하고 장엄하며 과시적인 특징을 지녔던 프랑스 바로크 시대(‘위대한 시기’)는 루이 14세의 죽음(1714)과 함께 막을 내린다. 뒤를 이은 프랑스의 통치자들(오를레앙 섭정왕, 루이15세, 루이16세)들은 외향적인 활동보다는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과의 사적인 만남을 더욱 선호하였으며, 그들의 개인적 성향은 프랑스 왕실의 문화적 성격도 변화시켰다. 왕실은 베르샤유에서 파리로 이동했으며, 문화의 중심은 ‘왕실’에서 ‘도시’로 변모하였다. 문학과 예술은 화려한 외양보다는 내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고 표현은 우아하고 유미적이며 내적인 특징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2.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왕들의 개인적인 성향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변화와 사회구성원들의 힘의 역학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상공업의 발달과 ‘자유방임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경제적 질서는 부르주아지들의 부와 영향력을 확대시켰고 이들의 의식과 행동이 점점 중요한 영향력을 갖게 만들었다. 귀족들 또한 부르즈아지의 사고방식에 동조하면서 왕의 권한은 축소되었다. 결국 ‘로코코’라고 불리는 새로운 예술양식은 바로 부르주아지와 귀족들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왕의 권한과 지배력이 약화되었을 때, 두 계급의 경쟁과 함께 사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하나의 양식은 결코 소수의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새로운 양식에 동조하는 사회적 세력의 등장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3. 로코코 시대에는 전원적인 목가풍의 작품들과 연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목가풍’의 작품들은 특권계급들의 이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복잡한 사교계로부터의 일탈과 사교계의 관습으로부터의 도피라는 내적인 심리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문명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면서 문명의 주는 부정적인 측면으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꿈꾸는 일종의 심리적 놀이에 불과했다. 당시의 대표적인 소설 <아스트레>에서 보여주는 양치기 소녀와 귀족과의 사랑 또한 구체적인 현실의 욕구라기보다는 상상을 통한 도피적인 시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우저는 목가풍의 작품 속에서 나타난 허구적인 특징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허구는 현실과의 일체의 연관을 잃어버리고 순수한 사교적 놀이가 되었다. 목가 생활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적 현실과 하루하루의 자기 존재로부터 한순간 빠져나가게 해주는 하나의 가면무도회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4. 로코코는 바로크와 초기 낭만파 운동의 중간에 위치하는 예술양식으로 서구 사회에 보편적으로 확산된 사조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아름다운 것이 예술적인 것’이라는 동의어적 표현이 통용될 수 있는 최후의 양식을 대변한다. 르네상스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예술양식들의 이율배반, 즉 “형식상의 엄격주의와 자연주의적 무형식성, 건축적 집중과 회화적 해체, 정과 동의 모순” 대신에 합리주의와 감상주의, 유물주의와 정신주의의 대립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개인적 특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로코코를 대표하는 문학과 예술이 오랫동안 고전적 지위를 획득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로코코 예술의 성격이 특권 계급의 향락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코코는 사실 돈많고 권태로워진 향락가들을 위한 하나의 에로틱한 예술이다. 그것은 자연에 의해 한계가 그어져 있는 향락의 능력을 끌어올리려는 한 수단인 것이다.”
5. 로코코 시대는 곧바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와 감성을 강조하는 초기 낭만주의의 대립 속으로 이동한다. 부르주아지의 성장은 예술의 구매층을 탄생시켰고 예술가들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술가들은 점차 독창성과 주관주의를 지닌 예술적 천재의 이상과 창조적 개성의 이상을 강조하였고 근대의 ‘자아’를 추구하였다. 로코코 시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옅어져가던 중세적 색채가 본격적인 근대적 시대로 전환되는 마지막 중간 시기였는지 모른다. 이제 ‘개인’이 주목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궁정적·귀족적 사회의 시대에는 한 인간의 존경도가 그의 후원자의 지위에 따라 결정되었지만, 이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대에는 이와 반대로 개인적 구속에서 더 자유로울수록, 그리고 상호관계에 기초한 타인과의 비개인적인 거리에서 더 성공적일수록, 그만큼 더 그는 존경받게 되었다.”
첫댓글 - 화려함과 우아함, 사치로 둘러싸인 사회에서의 생활상 이면에는 또하나의 사회가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