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를 확인하고 다시 차를 탔다.
“목마르지 않으세요. 준비해온
따끈한 차가 있는데…”
“그래요. 흰 눈을 감상한
후 차 한 잔… 차가 가장 향기로운 때는 아침무렵이에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는 주부들에게는 가끔 휴일에 고운 차향기를 머리맡에 놔주는 배우자가 있으면 모든 시름이 날아갈 때가 있어요. 새벽공기와 함께 차향기가 방에 퍼지면 기분좋게 휴일 아침 눈을 뜨지요. 그때는
한 주간 외롭게 일어나서 움직이던 아침에 누군가 선물을 가지고 찾아와 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젠
이런 장면들을 광고들이 너무 써먹어서 낡은 이야기죠.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드물어서, 가끔 여자들이 모이면 흔한 남편자랑의 소재로 써먹곤 했었어요. 지연씨는
어떤 차를 좋아해요? 커피는 세련된 도시 미인의 친구, 차는
세련된 도시 남자의 장식품.”
두번째 블록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5분 남짓을 큰 도로와
몇번의 좌우회전을 거쳐서 도착을 했다. 호수를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그만 이태리식 브런치를 할 수 있는 외국향이 물씬 풍기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었다. 아직 손님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가게 앞에 크게 눈에 띄는 글씨로 27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맞은 간판의 글씨는 온통 눈으로 뒤덮혀 있어서 뭐가 뭔지 보이지 않았다.
외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검은 스틸에 검은 브라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가게는 언덕의
맨끝에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그 곳을 넘어가면 길은 없다. 막다른
골목길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는 가게의 운치는 꽤 매력적이었다. 내부에서 보기 좋게 켜놓은 밝은 노란색
등들이 오전 무렵이지만 길 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들어갈까요?”
“나이가 든 사람들은 도시의 미시들이 즐기는 이런 분위기는 항상 좀
지나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한가한 오전에 브런치를 즐기는 주부들은 항상 뭔가 덜 성실한 것 처럼
보이죠. 뭔가 너무 넘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일에 충실하지
않은 시간과 여유가 넉넉한 사람들이나 그곳에 모일 것 같은 그런 종류의 편견. 지연씨에게는 뭔가 이곳에서
찾아야 할 답이 있을 거예요.”
들어가서 언덕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아직 아무도 차지하지
않은 넉넉한 테이블에서 선택권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기분이다. 마치 아주 부지런한 누군가에게만
가끔씩 주어지는 선물처럼. 언덕아래 저 너머로는 강이 보인다. 강은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가뭄과 수해를 겪으면서 가뭄시에는 새들의 유일한 샘물처럼, 홍수시에는 거대한 수마처럼 변한다. 강의 성격은 항상 그렇게 극단적으로
이질적이지만 항상 너무 도도하고 너무 유유하다.
크고 작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구석구석엔
허물어지지 않은 작은 허름한 집들이 있다. 그 건너편에는 새로지은 화려한 건물들이 또 즐비하기도 하다. 허름한 집들은 대개 비밀을 가지고 있다. 가령 도시의 부동산값을
둘러싸고, 거대자본으로 빌딩을 지으려는 사람들과 한판 자존심싸움을 하면서 팔지 않고 버틴 사람들의 집인
경우들이 있는데, 대개 그 아버지는 후손으로부터 질타를 받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그 때 조금 싸게 넘기셨으면 우리는 이 허름한 집을 탈피해서
아파트 한채를 마련했을 거예요.”
“ 그 놈들은 그게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거져 먹으려고 했었어. 그런 놈들에게 그걸 거져 줄 수는 없지. 우린 이 집에서 엄마와
함께 너희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교육시키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어.”
평범하게 남과 견줄 필요가 없던 아들에게 갑자기 들어선 현대식 공법의 빌딩과 아파트들은 극심한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간혹 드라마에서 네모난 중정이 있는 오래된 한옥에서 여름 등목을 하는 덜 세련된 아들들의 모습을 보여줄때마다
아들은 화가 치밀곤 했었다. 모든 것을 계급주의 논리로 이해하는 아들은 중산층이라고 믿었던 계급이 갑자기
하층민으로 분리가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고, 방송이 해대는 낡은 것에 대한 섣부른 낭만주의나 미화
따위는 개나 주라고 외쳐댔었다.
“저 윗층 놈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고급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고 여기
등목하는 아버지의 떨어진 난닝구 차림을 식후 커피를 마시면서 즐겨보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는 행복이라고 여기시느냐구요?”
아들은 늘 반쯤 성난 목소리로 아버지를 쪼아댔다.
“그래도 여긴 내 집인거야. 내
추억이 담긴, 너희들의 추억이 담긴.”
“우리 뭐 먹을까요? 아이스크림
와플이 식후에 좋긴 한데. 과일 크레페는 어떨까요?”
“간식은 항상 식사를 먹을 여유를 두고 먹는 것이 낫겠죠. 과일 크레페 하나로 나눠먹고… 난 오렌지 주스가 좋을 것 같아요. 여기는 생과일 쥬스를 판매하네요.”
“저는 커피가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먹고 우리 식사가 가능할까요?”
“못먹을 정도가 되면, 점심을
건너뛰는 것도 괜찮아요. 우리 딸은 성당을 다니면서 금요일이면 금식을 지켜보라고 했더니, 글쎄 아침늦잠을 자고는 밥을 굶은 것을 금식이라고 하는 애예요. 어쨌든
거른 것은 거른 것이지만… 가끔 너무 허기가 졌을 때 식사를 앞에 대접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 줄만 알면 세상에 대해서 많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도 해요.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 일부러
밥을 못 챙겨먹을 계기를 만들곤 했어요. 자주는 아니고 일년에 한 두번쯤. 그리고는 엄마의 소중함에 대해서 꼰대처럼 일장연설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화를 내요. 자라면서 가끔 어디가서 굶는 일이 생기는데, 철들
무렵이나 사춘기가 되면서는 각자 자기밥을 스스로 챙겨 먹는 습관도 만들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들을
위해서 식사대접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하지 않아요.”
“저희 엄마는 늘 바쁘셔서 항상 남이 챙겨주셨어요. 그러고보니까 저도 언니와 자주 식사 해결을 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테이블 위로 크레페가 준비되기 까지는 10여분이 소요가 되었다. 서빙을 하는 세련된 미시 아주머니는 이 카페의 주인이었다.
“이 메뉴판에 걸린 사진은 <시네마
천국>의 사진 아닌가요?”
그건 이번주간 시네마 타임에 상영하는 영화예요. 요즘은 카페에 죽치고
공부하고 스터디 하거나 혹은 그냥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서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저쪽에 하얀 빈
벽이 보이시죠? 저기에 상영영화를 걸어요. 그러면 각자 볼
사람들은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보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일을 하죠. 잠깐 틀어드릴까요?”
그녀가 틀어준 장면은 마지막에 키스를 하는 장면들을 모아둔 장면들이었다.
“웬지 뭔가 마지막 살아있는 낭만의 장소 같기도 하네요.” 아주머니는 웃음을 지었다.
지연이 낀 헤드폰에서는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곡을 히트 시키고 그 남자는 성대결절로
가수생활을 한동안 접었었다.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품안에 잠든 너에게 워우우 워우 워우 너를 사랑해 … “ 미성의 한동준의 그 시절은 노래하는
시인이었었다. 피식 웃다가 헤드폰을 빼고는
“우린 우리 대화를 나눌래요.” 지연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엄마와 딸처럼 포크로 전투를 가끔 해가면서 크레페를 나눠먹고 돌아서면서 계산을 하는데,
“아 이 카페의 이름이 <너를
사랑해>였었구나.”
지연은 웃지도 않은 채로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