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2018. 5. 3. 칼럼<p class="0" style="text-align: center; letter-spacing: 0pt; font-size: 12pt; -ms-text-autospace:; -ms-word-break: keep-all;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오늘 하늘을 보았나요?황진숙  언제부턴가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자꾸만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그것이다. 길옆을 지키는 나무 가지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저마다 누워있는 것이 낯설고 아름답다. 그림과 여백의 절묘한 조화랄까. 어떨 땐 그 풍경이 아름다워 가만히 숨죽이며 보다가 버스가 온 것을 놓칠 뻔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언제나처럼 점잖게 서 있는 벚나무에서 선명한 초록색 구슬을 발견했다. 벚꽃이 진 자리에 어느 새 단단한 버찌가 맺힌 것이다. 그 푸른 생명력이 나를 아침부터 들뜨게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나의 이 습관이 언제, 왜 생겨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난해 가을, ‘첫 번째 질문’이라는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오사다 히로시’가 쓴 시에 수채화가 ‘이세 히데코’가 그림을 그려 넣어 출판된 시그림책이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이를 선두로 30개의 질문이 이어진다. 질문으로만 이루어져있는 시인 것이다. ‘오늘 누군가에게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천천히 저물어 가는 서쪽 하늘에 기도한 적이 있나요?’ 같은 질문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에 고요한 바람이 불었던 기억이 있다. 빽빽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샛길로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정신없이 달리다가 문득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다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분주한 일상에 숨을 불어넣는 시간이 되었었다. 그 후로 연수나 강의를 할 때, 서먹한 첫 시간에 선생님들께 이 그림책을 읽어준다. 모두에게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생각을 나누다보면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저마다의 울림으로 촉촉해지고 풍성해진다. 이 시를 읽으며 나의 아이에게, 나 자신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마음을,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라는 내 안의 질문에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드니, 나보다 키가 커서 높이 있는 것들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나무들이 내게 속삭이며 위로하는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벅찬 것이라고, 꿋꿋이 버티는 것이라고. 그래, ‘첫 번째 질문’ 그림책을 접하고부터였구나. 내가 하늘을 쳐다보게 된 것이.  송병주 목사는 그의 책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에서 고통과 절망을 이기는 힘은 바로 시인의 감수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투사가 되려고 하지 말라, 고통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철학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고통은 시인이 될 때 이긴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다. 시인이 될 때 고통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의 내가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 지치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더 나아갈 힘이 없을 때 내가 자꾸 하늘을 보게 되는 이유 말이다. 하늘을 쳐다보고, 길 가의 나무들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사정이 바로 시인이 되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시인의 마음, 시인의 눈을 가져서 고통과 절망을 이기고 싶었던가 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와 풀을 찬찬히 관찰하게 되면서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일상을 넉넉히 살아가는 힘을 얻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은 내 안의 시인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내 영혼의 작업이었나 보다. 내가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내 안의 시심이 발동했던 것이었으리라.   삶이 숨 가쁘고 벅차게 느껴지는가? 잠시만이라도 고개를 들어 보자.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같이 반겨주는 하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고요한 아름다움에, 그 깊이 있는 헤아림에 어쩌면 눈물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당신이 질문을 받을 차례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