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와 여신들
1. 인도에서 비쉬누와 함께 지고의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시바이다. 시바 또한 세계의 창조, 보존, 파괴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인드라를 비롯하여 자연을 의인화한 신들은 특정한 것들의 현현이라는 제한된 한계를 갖고 있다. 우주의 절대적인 신비와 지혜인 ‘브라만’이 의인화될 때 그것은 ‘시바’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비쉬누가 한 파괴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시바도 하나의 창조자이며 보존자이다. 그의 본성은 살아있는 세계의 일체 대립을 동시에 초월하고 포함한다.”
2. 힌두의 신화와 철학의 기본적인 인식은 ‘일원론이고 일신적’이다. 수많은 신과 초인간적인 존재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은 단지 특수화, 특수한 덕, 태도들, 성분들의 면모일 뿐이다. 인도의 샴캬 철학은 우주의 생성이 세 가지 구나들(평온과 고요의 자질인 사트바(Sattva), 활동과 불같은 에너지의 자질인 라자스(Rajas), 암흑과 장애 그리고 분노의 자질인 타마스(Tamas)) 속에 현시되고 다음에 이것들은 5가지 물질(에테르, 물, 공기, 불, 흙)을 만들어내며, 이것들이 혼합되어 일체의 현상적인 형식들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한다. 즉 “절대자인 브라만으로부터 우리의 개체화된 형상들의 세계 즉 한계들, 양극성들, 대립들과 협력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우리의 경험적 체험의 복잡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연의 에너지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3. 시바는 바로 이러한 대립성이 하나로 총합된 존재이다. 시바의 다양한 모습은 그의 총합성이 구현된 현상일 뿐이다. 시바는 자비스런 모습으로, 때론 파괴적인 모습으로, 방랑하는 걸인으로, 춤추는 자들의 왕으로, 위대한 주로 등장한다. “시바는 명백히 두 개의 상반성을 지닌다. 즉 그는 원형적인 금욕주의자인 동시에 원형적인 무용수이다. 한편 그는 모든 차별들이 용해되고 해체되며 모든 긴장이 정지하는 절대자의 공허 속에서 심취하고 자기 자신 속에 몰두한 내부로 향한 고요라고 할 완전한 평온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완전한 활동이다.”
4. 시바는 다양한 모습의 예술적 작품으로 표현되어 있다. 가장 익숙한 춤추는 시바는 ‘우주적 춤’을 통한 시바의 본성이 가장 잘 나타난 모습이다. 그의 춤추는 형상 속에는 인도인들이 대사을 묘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대립적인 표현이 모두 적용된다. 그의 춤은 영웅적이고 야성적이며, 매혹적이지만 혐오스럽기도 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시바는 코끼리 악마와의 대결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 춤을 춰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 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가죽을 벗겨 쓰고 또다시 춤을 춘다. “그의 무용은 생명 자체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것과 상서로운 것의 혼합물이며 파괴와 죽음과 생명의 승리에 대한 병치와 통일인 동시에 끓어오르는 용암의 화산과 같은 생명의 폭발이기도 하다.”
5. 시바의 삼위신 조각에서는 하나의 실체가 가지고 있는 양성적 특징이 표현되어 있다. 중앙의 얼굴 옆에 한 쪽은 남성의 얼굴이 다른 한 쪽에는 여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우주와 우리들의 개성은 중앙의 두상에서부터 나왔음에도 그것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는 이들 남성과 여성의 옆모습의 현상적 출현이 참인것처럼 실재적이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브라만과 마야는 공존한다. 마야는 브라만의 계속적인 자기 현현이고 자기 위장이며 브라만의 자기 계시는 다섯가지의 색깔을 띠지만 장막에 가려있는 비밀이다.”
6. 시바의 파괴적인 위대함은 때론 세 도시(하늘, 지평선, 대지)를 장악한 악마로부터 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쏜 우주적 화살의 힘에서 나타나기도 하며, 때론 절대적 신에 도전한 악마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모습에서 보여 진다. 그것은 잔혹하지만 강력한 힘의 구현이다. 인도의 민간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시바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비록 두렵지만 명백한 악마를 굴복시키는 힘에 대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시바가 우주적 춤을 출 때 휘날리는 머릿털은 ‘생명’의 그 자체적 힘을 상징한다. 그것은 우주적인 에너지의 구현이기도 하지만 세속적인 욕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금욕적 삶에 돌입할 때, 머릿털을 자르는 행위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7. 시바는 어떤 신보다 여러 배우자와의 관계가 매력적인 방식으로 묘사된다. 그의 배우자는 특정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남녀의 뜨거운 사랑과 결합의 모습으로 서로 다른 것들의 화합적 에너지를 보여줄 때 그의 배우자는 파르바티이며, 시바를 발로 누르고 그의 육체를 장악하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나나날 때 그녀는 칼리 또는 두르가로 불린다. 시바와 여신을 묘사한 그림 중에서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여신과 두 명의 시바가 겹쳐져 누워있는 모습이 있다. 아랫 쪽에 누워있는 것은 ‘니스칼라 시바’이며, 위 쪽에 있는 것은 '사칼라 시바'이다. 여신은 사크티 마야이다. 그것에는 우주적 에너지의 상승과 하강에 대한 상징적 해석이 담겨 있다. “니스칼라 시바는 절대자이며 그 자체가 신적인 본질로서 사건과 변화를 초월한 불활성의 잠자고 있는 공허이며, 사칼라 시바는 절대자가 우주에로 미분화되어 가는 자기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상태이다. 사크티 마야는 자체를 현현하고 자기의 정적인 휴면을 출산력있는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절대자의 에너지이다.”
8. 여신이 시바를 발로 누르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시바에서 동시에 남성과 여성이 나타난 모습도 남아있다. 인도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남녀의 결합 또한 이런 대립적인 것들의 결합이라는 인도적 지혜의 구현인 것이다. 그것은 성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던, 파괴의 형태로 표현되던, 우주를 구성하는 대립적인 것들의 현상를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실체로부터 나온 특수화된 모습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주(시바)를 밟고 서 있는 여신의 극단적인 상징은 저들 상호관계에 대한 또 다른 징표, 즉 ‘반(半)여성의 시바’에의 평정을 유지하게 된다. 여기서 절대적인 원리들은 한 겹의 우주와 그 속에 거주하는 인간의 타고난 이중적 본성에 대한 역설과 전형이라 할 단일 유기체를 구성하기 위해 결합된다.”
<전체적인 결론>
인도의 시간관, 비쉬누와 시바의 이중적 본성과 대립적인 것들의 통합은 인도적 사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도인들은 우주적 본질인 ‘브라만’과 그것의 현세적 실현인 ‘마야’를 구분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근본적인 동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현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존재들은 마야의 희생자로 보았다. 우리들 내부에 있는 생명력이 갖고 있는 맹목성과 욕망이 우리를 망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세계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감지하고 또 그것에 반응하는 세계로서, 우리 자신의 마야 혹은 망상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사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야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야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마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브라만의 현상적 표현인 마야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자신의 타고난 샤크티(내면적 에너지)의 속박, 자기 존재의 목적과 추구하는 것들에 대한 마야, 자신을 위해 자기 환경의 대상들을 착색하는 원망과 공포, 두려움과 즐거움의 강렬한 색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모든 위대한 인도 철학의 주요 목표들이다.”
첫댓글 - 오늘날의 삶의 현장 인도를 보면 시바신이나 브라만이나 모두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목표를 상실해버린 인간을 속박하는 존재로서 그 기능을 하며 높은 형이상학을 배울 수 없는 민중들의 고통을 하나의 업보로서 믿게해버리는 교활한 통치체계로서 존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