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수필
마루타 731부대에서의 분노
김정오
수필가,문학평론가
731부대와 마루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에는 일본 육군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로서 "인간 도살장"이었던 731부대 자리가 있다. 부대 입구에 침화일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侵華日軍第七三一部隊罪証陳列館)'이라는 표시판이 있다. 731 부대는 히로히토 천황의 칙령으로 꾸렸으며, 천황의 막내 동생이 그 부대의 장교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1931년 만주를 빼앗은 일제는 이듬해 8월 도쿄에 있던 세균연구기지를 하얼빈으로 옮겼다. 겉으로는 ‘정치부 및 전염병 예방 연구소’로 생물·화학 무기를 개발한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그때, 가까이 있던 8개 마을 땅을 모두 빼앗고, 수 만 명을 강제로 끌어드려 "인간 도살장"을 만들었다. 공사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부대의 사령관은 군의관 출신 이시이시로(石井四郞) 육군 중장이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세균학 및 위생 병리학을 연구했다. 야심이 매우 큰 사람이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소변과 오수를 여과시킨 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그는 뇌막염 치료약인 수막(water filter)을 만들고, 1925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국제법으로 막고 있는 세균 병기를 연구했다. 일본이 1931년 중일전쟁에서 이긴 후 만주를 빼앗았을 때, 이시이(石井四郞) 는 군의과대학 박테리아학 연구소장이 되었다.
731부대는 중일전쟁(1937)을 거쳐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 까지 치명적인 생체 실험으로 악명 높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한국, 러시아인들과 백인들까지 붙잡아 가두고 사람을 여러 부위로 나누어 특수 유리병에 담아 보관하면서 생체실험을 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마루타(丸太-통나무)라 한다.
생체 실험당한 마루타들의 참상
마루타들을 잡아 올 때는 기차와 특수 자동차를 이용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본 군복을 입혔고, 도착 후 이들을 두 개의 특별 감옥에 가두고, 마취도 없이 세균실험, 해부실험, 냉동실험, 진공실험 및 신경실험, 가스실험 등 여러 가지 생체실험 재료로 썼다. 생체실험은 세균실험, 해부실험, 냉동실험, 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 과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원심분리기에 산사람을 집어넣고, 수분이 빠져 나가는지를 보는 실험, 소총의 성능을 검사하기 위해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총알을 관통 시키는 실험, 화염방사기 실험, 수류탄 실험. 목을 매달아 죽는 시간을 재는 실험,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실험, 지하 감옥에 사람들을 가두고 콜레라, 페스트균이 든 음식을 먹인 후 전염병 진행과정을 지켜보는 실험, 대상자들이 눈치를 체면 묶어 놓고 강제로 균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여 죽이기도 했다.
또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세균을 집어넣는 실험, 동맥에 공기를 넣고 혈관이 막히는 과정을 보는 색전 진행 실험, 세균을 주사한 뒤 배설물 반응 실험, 남녀의 생식기를 잘라 바꿔 다는 실험도 했다.
또 의무병과 간호원들에게 산 사람의 팔 다리를 잘라내고, 배를 갈라 장기를 빼내고 온갖 세균을 집어넣는 실험을 하도록 하였으며, 마취도 없이 임산부의 배를 수직으로 갈라 태아를 꺼내고 척수를 보는 실험, 동맥에 공기를 집어넣는 실험, 바닷물과 생리식염수를 혈관에 넣는 실험, 말의 소변을 신장에 주사하는 실험, 혈관에 말과 원숭이의 피를 주사하는 실험 등 온갖 종류의 실험을 다했다.
또 세균을 주사한 뒤 배설물 반응을 보는 실험, 피부를 벗기고 세균을 집어넣는 실험, 동맥에 공기를 넣고 혈관이 막히는 과정을 보는 색전 진행 실험, 말의 소변을 신장에 주사하는 실험, 혈관에 말과 원숭이의 피를 섞어 주사하는 실험을 했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윤동주 시인과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도 그런 실험으로 희생되었다.
이시이시로(石井四郞)는 국제법으로 엄격히 막고 있는 대규모 세균전을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세균폭탄 항아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수만 마리의 쥐를 잡아다 페스트균을 옮긴 후 풀어놓아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또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과 건강한 사람들을 한방에 가두고 감염과정을 지켜보았다.
1945년 초에는 미국 본토에 세균폭탄을 떨어뜨리는 밤 벚꽃이라는 암호명의 작전을 계획했다. 잠수함에 소형 항공기와 가미카제 조종사들을 태우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뿌리는 작전이었다. 예정 날은 9월 22일이었으나 8월15일 항복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패전 후의 전범들
일제는 1945년 봄부터 전쟁에서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731부대의 죄상을 감추기 위해 8월 9일부터 13일까지 본부 건물을 뺀 나머지 건물들을 모두 폭파시켰다. 지금도 본부 건물 뒤에 그때의 웅덩이가 그대로 있다. 수백 명의 수감자들을 독가스로 목숨을 끊고 8개의 구덩이에다 집어넣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버렸다.
나머지 시체들은 그대로 구덩이에다 묻기도 하고 마대에 담아 송화강에 던져 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든 증거물들을 불태웠으며, 실험으로 얻은 극비자료는 이시이시로(石井四郞)가 가지고 사위가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쳤다.
이시이시로(石井四郞)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극비 문서를 미군에 넘기는 대신 천왕 히로히토와 함께 전범 재판을 받지 않았다. 미국은 이들의 범죄를 눈감아 주었고, 전범수사 기록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시이시로(石井四郞)와 그의 부하들은 생물학자로서의 명예를 이어갔다.
이시이 시로는 도쿄대학 학장까지 지냈으며 몇 사람은 동경도지사, 일본의과협회장, 올림픽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이시이시로(石井四郞)와 가까이 있던 일본 여인 기네코 준이치(金子順一)소령에 의해 그 만행이 밝혀졌다. 그녀는 731부대에 관한 논문 6편과 세균실험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죄상을 온 누리에 알렸다. 그 후에도 731부대의 만행은 여러 경로를 통해 더욱 자세히 알려졌다.
1988년 작가 정현웅이 장편소설 『마루타』(도서출판 다나) 5권을 출간했다. 그는 이시이시로(石井四郞) 중장 등 731부대 실재 인물들의 만행을 소설로 그려냈다. 중국 정부도 2001년 3월부터 731 부대를 세상에 알렸다.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한국인 희생자 수는 258명이었다. 거의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간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6명의 이름을 잡혀간 순서대로 밝힌다. 1,이기수(李基洙), 1913년, 함북 신흥군 동흥면에서 태어남, 1941년 7월 20일 잡혀감, 2,고창률(高昌律),1899년,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에서 태어남, 소련 첩보원, 1941년 7월 25일 잡혀감, 3, 한성진(韓成鎭), 1913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남, 중국에서 활동, 1943년 6월 25일 잡혀감, 4,김성서(金聖瑞), 함북 길주에서 태어남, 중국에서 활동, 1943년 7월 31일 잡혀감, 5,심득룡(沈得龍),1911년, 중국 동안성(지금의 흑룡강성) 요하현에서 태어남, 소련 첩보원으로 일하다가 1943년 10월 1일 잡혀감, 6,이청천(李淸泉), 항일 독립운동가, 1944년 7월 중국과 몽골 국경지대에 있는 네이멍구 자치구의 하이라얼에서 반일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잡혀감.
그 후, 2014년 초, 중국 길림성의 기록 보관소가 1936 년부터 제 2 차 세계 대전 때인 1945년까지 731 부대의 만행에 대한 문서를 세상에 알렸다. 이 자료는 1 권 당 400 페이지 이상의 종이 책 81 권과 시청각 자료 70 건이나 된다. 신화 통신은 관동군이 철수 할 때 없애지 못한 자료라고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731 부대가 중국 20개의 성에서 161회나 생물 무기전(武器戰)을 하여 27만 명이 죽고, 237만 명이 전염병에 걸린 과정을 알리고 있다. 특히 생체 실험 대상이 된 한국· 중국· 소련 몽골 사람 372명이 731 부대로 끌려갔으며, "남경시에만 조선인 위안부가 36 명이 있었는데 위안부 한 사람이 많을 때는 10 일 동안에 병사 267 명을 상대했다"는 내용도 있다.(조선일보 2014년 1월 11일 1면)
중국 정부는 2001년 3월부터 731 부대의 시설을 공개했다.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도 했다. 731부대는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일반인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군인들이 줄을 지어 끔찍했던 장면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중국인 대학생은 일본의 만행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를 터뜨리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사죄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베 신조(安倍晉三)일본 총리는 V자를 그리며 사진 찍은 전투기의 번호가 731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독도 망언과 위안부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오(金 政 吾 )
=약 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숭실대에서 박사학위 받음,
중국연변대학교 객원교수,
러시아 국립극동연방대학교 교환교수 역임,
한겨레역사문학연구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역),현 자문위원,
국제 펜클럽한국본부 이사(역),
한국일보 수필공모 심사위원장(역),
아시아문화대상심사위원장,
안중근의사기념관 홍보대사,
「지구문학」 편집인,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수상,
법무부장관상, 교육부장관 상 외 여러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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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빈 가슴을 적시는 단비처럼-
그 깊은 한의 강물이여-
양처기질 악처기질-
한이여 천년의 한이여-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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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 이야기-
(외 논저 및 평론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