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족구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큰 놋쇠주전자에 떠온 물로 연병장 바닥에 선을 긋고, 네트 대신 적당한 장애물을 중간에 세워놓거나 그마저 없으면 중립지역을 만든다. 몇 명이 됐든 절반으로 갈라 양팀을 나누고 공은 축구공이나 배구공 중 가까이 있는 것을 사용한다.
규칙은 천차만별이다. 그 자리에서 정하는 게 규칙이다. 장소가 좁으면 좁은 대로, 인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족구는 그 어떤 종목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이 됐다.
경기 군포시 한세대학교 체육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공은 족구공이다. 배구공보다 조금 크고, 축구공보다는 작은 낯선 공이 1년 내내 굴러다닌다. 원래 농구장으로 지은 체육관 바닥에는 녹색테이프로 족구라인이 그려져 있고 벽에는 ‘Bounding Volleyball’과 ‘JOK GU’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정식 대학 족구팀이 한세대에 있기 때문이다.
팀원은 모두 다섯 명. 강승호 감독(30)과 강성준(19)·이승호(19)·권혁진(19)·이광재군(19) 등 4명의 선수로 구성됐다. 강감독은 ‘플레잉코치’다. 대회에 출전하면 조카뻘되는 어린 선수들과 코트에서 호흡을 맞춘다.
강감독이 족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이다. 강원 춘천시에서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학창시절에 운동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족구는 군대에서 처음 배웠다. 부대 체육대회마다 족구대표로 출전해 연전연승을 거뒀다. 한때 강원도 내에서 족구를 제일 잘한다고 소문이 났고 강원도대표로 전국대회까지 출전했다.
2001년 군생활을 마치고 바로 ‘현대 파워텍’에 입사했다. 현대 파워텍은 사내 족구 동호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사들 중 하나였다. 강감독은 “정식 족구팀은 없어도 기업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족구선수로 스카우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2003년에는 최초로 정식 실업팀이 생겼다. 스포츠용품업체 ‘매니푸니’에서 팀을 창단했다. 우리나라 최초 실업족구선수로 동료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회사사정으로 팀이 1년만에 해체됐고 지난 3월 한세대학교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세대는 지난해 학교 홍보를 위해 운동부 창단을 검토했다. 학교재정 규모에 가장 알맞은 종목을 찾다가 족구로 결정을 내렸다. 족구는 생활체육으로 분류돼 있어 다른 운동종목처럼 체육특기생 규정이 없었다. 족구연합회에서 선수를 추천받은 ,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족구대회를 찾아다녔다. 직접 눈으로 보고, 스카우트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강원 진부고와 평창고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지금의 한세대 선수들이었다.
족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팀에서 세터를 맡고 있는 이승호군은 “처음에는 사기꾼으로 생각했다”며 “족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정식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선수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하루 4시간씩 훈련하고, 대회를 앞두고는 지방을 순회한다. 지방에 있는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포스코 등 강호들과 연습하기 위해서다.
족구를 시작한 지 3~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지난 9일 열린 ‘문화부장관기 시도대항전’에는 군포시 대표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또 전국 8강으로 선정돼 지난 23일부터 충북 음성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족구 최강자전’에도 출전하고 있다.
선수들의 꿈은 하나. 실업족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강감독은 “축구나 농구처럼 공중파에서 족구를 중계할 날이 있을 것”이라며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들이 꼭 성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족구 정식규칙
장소의 크기와 인원에 구애받지 않고 융통성있게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족구의 매력. 그러나 정식대회에서는 국민생활체육 전국족구연합회에서 만든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경기장=경기장은 사이드라인이 14~16m, 엔드라인이 6~7m의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지며 중간에 높이 1~1.1m의 네트를 설치한다.
▲경기규칙=한팀은 주전 4명과 후보 3명으로 구성한다. 즉 4인제가 기준이다.(전국최강자전은 5인제) 15점 3세트의 랠리포인트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듀스를 적용해 19점을 상한선으로 한다. 서브는 바운드를 시키지 않고 공중에 던져 바로 차 넣어야 인정된다. 배구와 다르게 서브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경기 중인 선수라면 아무나 넣을 수 있다.
바운드와 선수의 공 터치는 모두 3회 이내로 제한하며 반드시 목 위나 무릅 아래의 신체부위를 사용해야 한다.(전국최강자전은 바운드 2회)
▲경기구=12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게는 330~360g, 지름은 200~205㎜로 축구공과 배구공의 중간 정도 크기이다.
▲경기화=정식 족구화는 축구화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바닥에 스파이크가 없으며 경기시 주로 사용하는 안축이 다른 부위에 비해 두껍다. 전국족구연합회에서 지정한 족구화는 4종류이며 이외의 것은 공인대회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민족구기’족구의 역사
전국족구연합회 관계자들은 족구를 ‘민족구기’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태동한 유일한 구기종목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삼국시대에도 족구와 유사한 놀이가 있었다고 주장할 정도다.
오늘날의 족구는 1966년 시작됐다. 출발점은 군대다.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제101전투비행대대 조종사들이 조종복을 입고 비상대기를 하면서 즐기기 위한 운동으로 고안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배구장에서 네트를 땅에 닿도록 내려놓고 축구공이나 배구공을 사용했다. 축구처럼 손을 제외한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할 수 있었고, 배구와 같이 3번만에 상대편 코트로 공을 넘겨야 했다.
68년 같은 부대 소속 정덕진 대위와 안택순 중위가 경기규칙을 만들어 국방부에 상신해 장관 표창을 받았고, 동시에 육·해·공군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으로 족구 규칙이 게재된 책자 역시 74년 국방부가 발간한 ‘체력관리’이며 이후 오늘날의 4인제 족구규칙이 정착됐다.
90년 대한족구협회가 발족하면서 족구는 동호인 7백만명(족구연합회 추산)을 아우르는 생활체육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국규모 대회가 매년 2~3회씩 열리고 전국적으로 24개 시·도 지부가 설립됐다. 94년에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 정식으로 등록됐다.
족구대회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연중 개최된다. 대부분 최강부, 일반부, 청소년부, 여성부로 나뉘어 열리며 ‘전국연합회장기’와 ‘문화부장관기’ 대회가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