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치료의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사람은 어떤 말을 듣냐에 따라 믿음이 납니다. 또 어떤 걸 보느냐에 따라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대한민국에 복음을 들고 선교사님들이 왔습니다. 성경이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성경책을 찢어서 벽지로 붙힌 사람이 그것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한결 같이 지금까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합니다. 책에 딤아 영혼들을 살립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사 30:8)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홍역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얼굴이 벌집에 쏘인 것처럼 벌겋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동네 친구들과 막 뛰어 놀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음식을 잘못먹어 얼굴이 홍역에 걸린 것처럼 뽀루지가 벌겋게 났습니다. 나는 성령님께 억만 번이나 감사했습니다. “성령님, 날마다 깨끗한 피부로 살게 해 주셨는데 뾰루지가 났네요. 그동안 억만 번이나 감사했습니다.” 성령님은 치료하는 분입니다. 그동안 복음으로 건강하게 피부를 지켜주신 성령님께 감사해서 그런 것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성령님께 이 말을 하고 시작합니다. “성령님, 오늘도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우리 힘으로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과도 같이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감정은 성령님만이 다룰 수가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나는 예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고 다 나앗다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 날 뾰루지가 더 심해졌습니다. 그 전 날에 남편은 내가 화장한 모습만 봤습니다. 다음날 퇴근하는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현관앞에 나갔습니다. 눈과 입술 화장만 한 남편이 나를 보자마자 ”얼굴 왜 그래?“ 하고 놀랬습니다. 신발 벗기도 전에 “약 사올테니 한 번만 먹어” 하고 말했습니다. 불볕 더위에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은 나를 위해 약국에 갔습니다. 성령님께서 남편 말을 들으라는 마음을 주셔서 약을 먹었습니다. 나는 약을 먹을 때 이렇게 말하고 먹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병은 떠나가라.” 하루 지난 후 뾰루지가 희미해졌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우리는 언제나 최고의 치료의 의사이신 성령님께 물어보고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무조건 의사나 약사의 말을 듣지 말고 성령님께 물어보십시오. 응급한 일 아니면 성령님께 묻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우리 대신 모든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되십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냠편들에게 아내를 위해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지난 내 삶을 통해 너무나 잘 압니다. 당신이 아내라면 그 사실을 온전히 믿으십시오. 당신의 믿음 대로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실상만 말하고 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상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왜 하나님의 말씀이 실상일까요? 첫째, 우리는 그분의 하나 밖에 없는 한없이 소중하고 귀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은 신부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서 다 줬습니다. 그분이 육체의 남편을 통해 뭔든 주지 않겠습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둘째, 우리에게 들려 주신 말씀이 실상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도 성령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이 실상입니다. 현상은 지나가는 안개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