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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093-9140 2011.0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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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서울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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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Theater In Seoul 제10호 2011. 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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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잡지에 실린 내용은 서울연극협회나 연극기록실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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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서울연극협회, 연극기록실 발행인: 박장렬 편집인: 오세곤 편집위원: 양기찬, 조만수, 최은옥 기자: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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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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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의 글 | 오세곤
1부 Review
- 고등어 | 이주영 - 도시야경 | 김태희 - 못생긴 남자 | 김민승 - 산불 | 강양은 - 유실물 보관소와 바람개비 | 장청옥 - 호랑이를 부탁해 | 예서희
2부 재수록
- 유년의 뜰 | 박연숙 - 연변엄마 | 박정기 - 우르따인 | 박정기 - 저승 | 박정기
정책기록실
-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10)
편집 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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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 생명에 대해 생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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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이론 수록> 박연숙(철학박사/ 숭실대학교 베어드 학부대학 조교수feelogo@naver.com)
작/연출 이양구 출연 김철홍 조시현 최설화 유명상 이나리 박례영 제작 극단 해인 공연 장소 혜화동 1번지 공연 일자 2011년 6월 3일 ~ 6월 12일 관람 일시 2011년 6월 12일 3시
나르키소스가 물가에 서서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듯, <유년의 뜰> 작가 이양구도 수면 위로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물 속 깊이 잠긴 어린 시절의 집, 뜰, 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다시 거닐 수 없는 공간을 추억한다. 그 추억 속에서 어린 나, 어머니, 아버지, 형, 대추나무 그리고 새 둥지를 건져내고 마침내는 생명 자체의 소중함과 스러지는 생명에 대한 애도에 이른다.
작가 자신의 기억 속 풍경
<유년의 뜰>은 철저히 작가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연출자이자 작가인 이양구가 수몰된 고향을 찾아 떠나는 과정과 심경을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는 작가역의 성인 배우(유명상 분)가 카메라를 들고 등장하여 “작가가 살았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단돈리 숲거리 마을은 1983년부터 1985년 사이에 충주댐에 수몰되어 사라졌습니다. 여기 혜화동 1번지 극장에 수몰되기 전 작가가 살았던 집안의 풍경을 옮겨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객석에 자리하면, 무대로 등장한 어린 양구(이나리 분), 어머니(최설화 분), 완구(박례영 분), 홍구(조시현 분)가 어느 저녁 날의 풍경을 보여준다. 객석에 앉아 있는 작가는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이들의 전체 풍경이 아닌 어머니의 반짇고리, 약탕기, 농약병 등 어느 한 사물에 집중된 영상을 잡아주는데 이 영상은 무대 뒤편의 흰 천에 투영되어 무대의 배경이 된다.
이 작품의 미덕은 향수와 자연스러움이다. 영상은 거칠듯이 흔들리고 작가의 말투는 어눌한 그대로 이다. 영상을 투사하는 막 역시 규격화된 스크린이 아니라 마당에 널린 이불 호청처럼 자연스럽게 펼쳐 있다. 늦은 밤 귀가하신 아버지가 세수하는 소리나 아이들이 장난치며 씻는 소리가 무대 뒤편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데 그 소리가 몹시 정겹다. 객석 벽면에 설치된 대추나무는 그 뿌리가 객석을 향하고 가지가 무대 천장을 타고 올라가 있어 친근하고 다정하다. 객석의 관객을 작가가 살았던 마을의 이웃처럼 동화시키는 무대이다.
부모님과 삼형제의 일상이 전개되는 과정은 사랑스럽고 재미있다. 형제간의 위계와 어머니의 다독임이 반복되고 생활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고독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전부라면 <유년의 뜰>은 진부한 가족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생명, 나고 스러지고 또 나고....
이 작품의 깊이는 생명 자체에 대한 고민에 있다. 아버지(김철홍 분)의 귀가가 여느 때보다 늦어진 이유는 뱀에 물려서 였다. 아버지가 들어오시기 이전에도 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완구가 휘파람을 불며 음악 숙제를 하는데, 양구가 휘파람을 못 불게 말린다. 그 이유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 양구에게 뱀은 무서운 존재이다. 뱀에 물려 절뚝거리며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죽은 뱀을 주루막에 넣어 가져오셨다. 큰형 홍구가 뱀이 든 주루막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무대 뒤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소리) 어쩌다가 뱀에 물렸어요? 아버지: (발을 씻으며. 소리) 낸들 아나. 뭐가 따끔해서 보니까 저 놈이 발뒷꿈치를 물고 있더라고. …화자 아부지가 잡아줬어. 피도 빨아주고.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모르고 내가 먼저 건드렸으니까 저도 놀라서 문 거지.” 아버지의 생명과 뱀의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뱀을 잡을 의도도, 죽일 의도도 없었지만 누군가는 뱀을 죽여야 했다. 아버지는 뱀에 물린 것에 대해 아버지가 먼저 뱀을 건드려 뱀이 놀라서 물었다고 추측하였다. 사람이 아니라고 뱀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아버지의 순박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뱀과 아버지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둘 중 하나는 남고 다른 하나는 스러져야 했다.
수몰이 결정된 지 2년 후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이주하고, 아직 이주하지 못한 몇몇 가구만 마을에 물이 차 오른 탓에 산 위로 올라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을의 나무를 베어가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아버지는 그런 일을 힘겨워 했다. 수몰이 결정된 직후 아버지가 주저하며 집어든 농약 병이 아버지의 깊은 절망을 암시해 준다. 아버지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마을의 나무들을 베는 동안 아버지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더 냉정한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아버지 자신과 식구들, 이 마을, 이 나라의 계획과 번영을 위해 나무들은 베어졌고, 마을의 생명들도 점차 스러져갔다.
이 작품의 절정은 양구네 마당에 있던 대추나무의 처분에 있다. 양구가 필사적으로 지키려했던 대추나무지만, 집에 물이 차오를 때마다 나무는 숨이 막혔을 것이고, 언젠가 이 마을의 모든 것이 잠길 때 나무도 죽을 것이다. 도끼를 든 아버지는 나무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나무를 바라보는 모습이 비디오 카메라에 담겨 영상으로 비춰지고, 그 모습을 또 다시 영상으로 반복하여 비춘다. 이러한 영상은 아버지가 나무를 보는 것인지, 나무가 아버지를 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무와 아버지의 분리는 해체되고 합일에 이르도록 연출가가 의도한 장면이다. 분신과도 같은 나무를 베어야 하는 아버지는 울 수밖에 없다. 베지 않을 수 없기에 끝내 도끼로 나무를 내리 친다. 관객을 극도로 긴장하게 하는 장면이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신혼 모습이다. 나무 위에 새 집을 올려놓고 수수를 넣어 두자 새가 날아든다. 새는 이 부부에 의해 잉태될 새로운 생명을 향한 소망과 기원이다. 이 가족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작품의 에필로그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관객은 몇 년 후 이 나무가 베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가족이 이 집을 떠나야 하는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게 된다. 생명을 향한 희망과 그 생명의 어쩔 수 없는 사멸의 운명을 목도하게 한다.
무대, 연기, 연출에 대한 단상
객석 벽의 대추나무와 무대 뒤편의 부엌 공간이 무대를 친근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맨바닥에 차려진 방안 풍경조차 정겹다. 삼형제의 연기가 조화를 잘 이루어 즐거운 관극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양구 역을 맡은 여배우의 연기가 돋보였고, 완구와 홍구 역의 배우 역시 각 인물에 맞게 개성을 잘 살려 주었다. 배우의 나이와 경륜 탓인지, 어머니 역의 배우가 다소 어색했지만 자신의 주어진 역에 충실하려 애쓴 모습은 역력했다. 아버지 역의 배우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역의 배우는 이 극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뚜렷한 개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아버지는 이 극의 절정을 소화해야 할 중요한 인물이다. 타고난 순박한 심성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훼손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뇌가 충분하지 못했다.
<유년의 뜰>은 영상이 주도하고 있는 연극이다. 처음 7분 이상이 실제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양구의 나래이션이며 가족의 풍경 속에서도 영상은 끊이지 않고 배경으로 남는다. 이 작품의 절정인 대추나무와 아버지의 대결에도 영상이 주요 매체이다. 그런데 이 영상이 효과적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초반 7분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현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과 이 작품의 의도를 연결 짓는 후반부 영상도 구차하다. 현 정부의 정책과 상관없이도 생명에 대한 경외와 생명에 대한 성찰은 충분할 수 있다. 작가 역의 배우가 간단히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구태여 차를 타고 고향 찾는 길을 영상과 작가의 육성으로 세세히 보여 주고 들려 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물 하나를 계속 보여주는 영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짇고리, 약탕기, 농약병 등등을 비춰주는데, 그것은 나무가 기억하는 단편을 의도한 연출이지만 그러한 연출가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유년의 뜰>의 드라마 구조는 단절적이다. 기억의 파편이 그러하듯 단절적인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었다. 양구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와 3학년일 때 그리고 아직 태어나기 전인 3가지 단편 에피소드들의 모음인데, 이 세 가지 단편으로 생명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이해할 수 있다. 뱀을 통한 생명체끼리의 대결과 긴장, 대추나무를 통한 다른 생명체와의 분리와 합일, 새둥지를 통한 생명의 기대와 희망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이다. 영상과 나래이션을 절제한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생명 존중으로 이어질 철학적 작품이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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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동체 그린피크의 김은성 작 박상현 연출의 <연변 엄마>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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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명 연변엄마 극단 창작공동체 그린피크 작 김은성 연출 박상현 공연기간 5월27일-6월12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일시 5월29일 5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창작공동체 그린피크의 김은성 작 박상현 연출의 <연변 엄마>를 관람했다. 신예 김은성 작가는 2010년 서울시극단의 연극 <순우삼촌>에서 당시 잠실 토박이이자 농부인 <순우 삼촌>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잠실개발과 그에 따른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정부시책에 마지못해 끌려 다녀야만 했던 당시 거주민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함으로써, 4대강 개발이라는 작금의 상황과 비교해 가며, 인간성 회복과 환경보호를 의미 심중하게 다룬 작품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2011년에 김은성 작가는 대학로예술센터의 연극 <연변 엄마>에서, 딸을 찾아 한국으로 온 <연변 엄마>의 눈을 통해, 현재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좌우이념, 입국동포의 인권과 차별, 젊은이들의 현실을 보는 시각과 세태, 효와 불효, 거짓과 위선 등을 비수보다 날카로운 시각과 금강석으로 뚫는 천착(穿鑿)으로 꿰뚫어 간다. <연변 엄마>가 가정부로 들어간 가정에는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사업가인아버지와 도시풍의 며느리, 대학생 아들, 여고생 딸이 살고 있고, <연변 엄마>가 딸을 찾기 위해 찾아간, 같은 연변 족 사람들은 대부분 진정성이 결여된 인물뿐이다. 할아버지의 치매는 상황에 따라서는 정상인보다 더 정상적일 때가 있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은닉한 국보급 불상의 소재를 파악해, 일확천금을 마련하려는 아버지의 집요한 설득과 노력이 계속되고, 가족이 없을 때에는 할아버지를 구타 학대하는 우리나라 극소수의 며느리의 모습이 어머니의 행동을 통해 보여지고, 공부보다는 시위에 전념하고,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는 아들과, 여느 여고생처럼 외국청년에게 솔깃해 몸과 마음을 빼앗긴 딸의 갈등과 고민이 <연변 엄마>의 눈에 충격으로 비쳐진다. 결국 할아버지의 금동불상소재 발설로 아버지는 거액을 매각대금으로 수수하게 되고, 소시적 진보진영의 투사였던 아버지가 시위진압장비 판매로 거부가 된 사실이 들어나, 학생회장투표에서 패한 아들에게, 세상의 모든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라며, 밥그릇을 꽉 움켜쥐라고 설득하는 아버지, 불효지만 그와 상관없이 주식투자로 횡재를 하는 어머니, 외국인 씨를 잉태한 딸을 친딸인양 감싸고 돌보는 <연변 엄마>의 지극정성이 차례로 펼쳐진다. 대단원에서 아들의 평상인으로서의 변화된 모습이 보여 지고, 딸은 할아버지가 늘 가족 앞에서 장난처럼 휘두르며 발사한 총에 맞아 절명한다. <연변 엄마>는 자신의 딸이 성매매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실명을 하고는 뭍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외국인 감호소의 수감자 신세가 된다. <연변 엄마>는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방관하는 연변 족 문제를 김은성 작가가 용기를 가지고 파헤쳐 보임으로써 우리에게 메가톤급의 충격을 던진 문제작이다. 강애심, 김재건, 류태호,서진, 김태윤, 노수산나, 신덕호, 이해성, 정은경, 서동갑, 이동영, 이철희, 강보람, 김다인, 김태훈, 김비비, 황미영, 이정호, 임기향, 박하늘의 열연과 손호성의 무대, 김창기의 조명, 이유선의 의상, 민경현의 음악, 이동민의 분장, 신성환의 영상, 김수정과 김주희의 안무, 김명환의 무대감독, 마학봉의 방언, 하정아의 사진, 허정의 마케팅, 다홍디자인의 그래픽, 김준원의 조명오퍼, 곽동현의 음향오퍼, 정지인의 영상오퍼, 전성현의 기획, 송정안과 이필주의 조연출이 비범하고 탁월한 연출가 박상현의 진지한 연출력과 힘을 합하여 김은성의 작의를 200% 전달시켜 <연변 엄마>를 관람한 관객 모두에게 깊은 성찰과 가슴 아픔을 감동으로 심어놓았다. <연변 엄마>를 공동 기획한 한국공연예술센터 최치림 이사장, 김은성 작가, 박상현 연출가,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에게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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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주변인들의 후안 까베스따니 작 오민아 역 서충식 연출의 <우르따인>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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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단체 극단 주변인들 공연명 우르따인 작 후안 까베스따니 역 오민아 연출 서충식 공연기간 6월23일-7월6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일시 7월1일 20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주변인들의 후안 까베스따니 작 오민아 역 서충식 연출의 <우르따니>를 관람했다. 극단 주변인들은 2010년에 공연한 <살라메아 시장>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페드로 깔데론 데 라 바르까 작 서충식 연출의 <살라메아 시장>은 평범한 시민이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이, 자신의 딸을 강제추행한 군 장교를 군법정에서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 직접 처형함으로써, 왕과 장군의 권한을 침범하였다는 책임자들의 항의에 “정의를 행함에 있어, 절차나 방법은 부수적인 문제다”라는 논리로, 책임자인 왕과 장군을 설득시켜, 종신시장으로 임명된다는 내용으로, 당시에 왕이나 귀족 그리고 군이 서민보다 우위에 있어, 초법적인 행위와 권력의 남용을 비판한 걸작연극이다. 후안 까베스띠나(Juan Cavestany)의 <우르따인(Urtain)>은 2008년에 초연된 작품으로, 내용은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에 한 남자가 건물 10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가 바로 전설의 복서 <우르따인>으로, 30연속 KO승을 거두고, 두 번의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권투선수였고, 명성과 부와 수많은 여인과 관계를 맺은 <우르따인>은 프랑코 총통시절의 스페인의 상징이자 복싱영웅이었다. 스페인 국민은 <우르따인>을 통해 암울한 독재정권하에서 한줄기 희망과 꿈을 얻었다. 프랑코 정권이 붕괴되고, <우르따인 >역시 유럽 챔피언십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잃게 된 후, <우르따인>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차츰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결국 죽음을 택한다는 줄거리다. 무대중앙에 사각의 링이 마련되고, 등받이 없는 벤치가 링 아래 좌우에 놓여있다. 링 오른편에는 전자건반악기와 연주자가 보이고, 커다란 스크린이 천정에 드리워져 있어, 공연 중간 중간에 영상으로 시대적 상황과 역사인물들이 객석에 소개된다. <우르따니>의 대결장면이 상대선수 없이 전개된다. 특이한 것은 12회전이라는 숫자판에서 시작이 되고, 연극의 진행에 따라 10, 9, 8, 7...식의 역으로 <우르따인>의 시합과 내용이 펼쳐진다. <우르따인>이 링 위에 다운된 채 널브러져 누워있는 상태는,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상태와 일치되고, , 그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공연이 대단원까지 계속된다, 전자건반악기의 연주와 가수의 노래가 출연자들의 열연과 어우러지고, 상대선수, 매니저, 기자, 아버지, 부인, 장관, 바 마담, 무희, 해설자, 마을사람 등 출연배우들이 1인 다역(多役)을 하며, 대단원에서 <우르따인>이 친구들에게 밟혀죽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실제로 복싱경기장에서 관전하는 입장에서 관극을 하게 된다. 승의열, 김웅희, 허정도, 엄옥란, 이서림, 안영주, 홍성기, 황성현, 송은미의 호연과 황미나의 연주가 작곡/연주 채한울, 조용경과 어우러졌고, 박찬호의 무대, 안희경의 조명, 황연희의 의상, 안창홍의 음향, 백승우의 영상, 최은화의 안무가 무대감독 강민재, 조연출 이은주의 열정과 일체가 되어 후안 까베스따니 작, 오민아 역, 박상순 예술감독, 김선욱 드라마터지, 김성진 협력연출, 서충식 연출의 <우르따인>을 대중성 있고, 관객의 공감대를 100% 형성시킨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극단 주변인들의 차기작에도 기대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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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집단 반과 극단 바람풀 공동제작의 가오싱젠 작 박정석 연출의 <저승(冥城)>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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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명 저승 극단 바람풀 작 가오싱젠 역 오수경 연출 박정석 공연기간 6월1일-12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 관람일시 6월4일 16시
6월 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집단 반과 극단 바람풀 제작의 가오싱젠 작 오수경 역 박정석 연출의 <저승(冥城)>을 관람했다. 가오싱젠(高行健)은 1940년 중국 동부 장시 성[江西省] 간저우에서 은행 간 부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연극과 글쓰기에 흥미를 갖도록 교육했다. 중일전쟁직후의 혼란 속에서 성장했으나, 여유 있는 가정환경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고 미술적 재능도 갖추었다. 훗날 그가 소설가로, 극작가로, 비평가로, 또 화가로 전방위적 예술 활동을 펼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이와 같은 유년기의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다. 베이징[北京] 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1960년대 이후의 청년기는 그의 문학의 토대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새뮤얼 베케트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우제네 이오네스코 등을 통해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학과 실존주의연극을 접한 그는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작품들을 손수 번역해 중국에 소개하는 한편, 1975년부터는 문예지 〈중국 재건 中國再建〉의 프랑스 문학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희곡과 소설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문학적 주제라 할 수 있는 실존주의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당국의 지식인 하방(下放)정책에 따라 시골로 강제 전출된 데다가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아픔까지 겹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써온 많은 원고를 불태워야 했던 기억은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고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집필을 계속했고 1979년 마침내 작품 출판과 외국 여행의 자유를 얻었다. 1980~87년 그는 단편소설·평론·희곡을 왕성하게 집필하는 한편 문학논쟁의 중심에 나섰다.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에 도전한 평론 〈현대소설기교초탐 現代小說技巧初探〉(1981)으로 격렬한 논쟁과 당국의 집중 감시를 촉발했으며, 브레히트와 베케트, 앙토냉 아르토에게서 영감을 얻은 실험적인 희곡 〈절대신호 絶對信號〉(1982)를 베이징 인민예술극장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 그 여세를 몰아 희곡 〈버스 정류장 車站〉(1983)을 무대에 올렸으나,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서양문학과 공모한 정신적인 공해'라는 당국의 비판에 당면했다. 이어 소설 야인 野人〉(1985)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1986년에는 희곡 〈피안 彼岸〉의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의 평론 〈현대희곡이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對一種現代戱劇的追求〉(1987)가 이러한 표현의 부자유에 대한 문학적인 대응이라면, 그가 같은 해에 프랑스 망명을 결행한 데 이어 톈안먼 사건 뒤 중국공산당을 탈당한 것은 분명한 정치적 대응이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영산 靈山〉(1982)과 내면세계의 탐색을 더욱 심화시킨 <한 사람의 성경 (一個人的聖經)〉(1999), 희곡 〈버스 정류장〉 등의 작품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고, 작품 <영산(靈山)>으로 200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가오싱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중국 당국의 정치적 검열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한 변방의 작가가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하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의 문학이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며 신랄한 통찰, 참신한 언어로 중국 소설과 희곡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30여 차례 국제적인 전시회를 가진 화가답게 자신의 작품집 표지를 손수 그리며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이 초로의 중국계 망명작가에게 프랑스 정부는 8년 전 문화예술훈장을 수여했다. 연극 <저승>은 원제가 명성(冥城)으로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의 장주(莊周)가 그 부인의 정절(貞節)을 시험하는 과정에서의 발생한 부인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과와 저승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부인의 입장과 저승에서 겪어야 하는 온갖 수모와 고통을 중국 대대로의 고질(痼疾)인 남성본위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문학성이나 예술성보다는 정치성 위주로 수상작이 대부분 선정 발표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수상작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선적으로 들여다 소개하고, 희곡으로 발표된 작품은 장기 공연하는 경향까지 있어 당연시되고 있지만, 금번 저승공연은 세계초연이라는 놀라운 기록까지 창출해 내었다. 물론 가오싱젠이 중국의 반체제 작가이고,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절대 공연될 리가 없어 우리나라 지성들의 의리적 결단으로 가오싱젠의 희곡을 <명성>을 공연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나, 작품의 주제는 전근대적(前近代的) 사고로 창출된 것이라 기이한 점도 있었으나, 관극 후 필자는 생선을 낚으러 갔다가 인어를 잡은 격이라, 극단 반과 바람풀의 공연은 칭찬받을 만했다. 특히 박정석은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우리나라로 바꾸어 전통연희방식으로 공연을 이끌었기에 탁월한 연출이 되었다. 무대는 소극장 벽면에 철제 빔을 마치 공사장의 작업대를 연상하게끔 가로 세로 엮어 무대 좌우에 설치해, 연기자들이 기어오르거나 매달려 연기를 하도록 만들었고, 배경 막 중앙에 등퇴장 로와 객석 출입구도 등장 로로 사용했다. 연극이 시작되면, 무대 오른 쪽 철제 관 바로 뒤에 타악기와 아쟁 연주자가 자리를 잡고, 무대 좌우로도 출연자들이 등장해 자리를 잡는다. 도입에 장주의 상여가 상여꾼들의 소리와 함께 무대 오른쪽 극장입구에서 등장하고, 관이 열리면 장주가 살아 등장하고, 충격을 받은 부인이 도끼로 자진을 하면 곧바로 저승장면으로 연결된다. 각종 저승 문지기 원숭이 무리와 저승 속 온갖 괴물들이 등장하고 염라대왕으로 이어지기까지, 연출가 박정석은 저승보다 더 저승답고, 지옥다운 무대를 공포와 충격으로 창출해 낸다. 저승에서 미모의 장주의 부인이 겪는 온갖 고통과 시련은 가학적이고 변태적 성적충동으로도 느껴지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겪는 해괴 발칙한 장면들이 대단원에서 한편의 질탕한 놀이였음이 객석에 전달된다. 장주역의 박상종과 미모의 부인역의 천정하의 연기가 돋보였고, 염라대왕역의 김동영의 깜짝 변안(變顔)의 변검술이 놀라웠다. 양승한, 정종훈, 송현석, 이영진, 남동진, 문창완, 윤미애, 이계영, 최수빈, 정성우, 이승우, 김지희, 박선혜, 이훈희, 최재승, 정혜영이 열연을 했고, 김수보, 강학수, 윤세리의 소리와 연주도 출중했다. 트레이너 풍성호, 변검제작과 중국어 통역 김동영, 음악 이재진, 박기덕, 노래지도 송지선, 음향 박정훈, 분장 한금주, 분장보 이민영, 김명화, 박민지, 김수지, 무대 최영환, 무대보 이재인, 조명 류백희, 조명보 최재호, 조명오퍼 곽현주 감독, 의상 박근여, 의상보 이영순, 소품 정효정, 사진 최지욱, 박주혜, 그래픽 김솔, 기획 김현, 이창훈, 장윤미(한강아트컴퍼니) 진행 공시한, 조연출 권재근의 열정이 박정석 연출과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루어 오수경 역의 가오싱젠의 <저승>을 걸작 총체극으로 창출시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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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록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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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한국의 연극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10
주제 : 연극인 교육에 대하여 참석자/ 송선호(연출가), 김태수(연출가), 전용환(연출가)‘ 채승훈(사회, 연출가), 김한아(배우, 기록) 일 시 / 2011년 6월 11일 대학로 민들레영토
채: 지난 시간에 이어 연극인 양성에 관해서 얘기해 볼까요. 오늘은 연출가 부분에 대해서 말씀들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연출가 양성을 위해 학교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졸업한 다음 극단에서의 연출가 양성이나 본인 스스로가 찾아서 하는 연출 교육 같은 것은 어떤지 그 현황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70~80년대 연출가들은 대부분 대학극회 출신이었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의식만은 꽤 단단했다고 봅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대학 내에 연극과도 많이 생겼고, 대학로 등에서 공연되는 연극편수도 많아졌고 극장도 많아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전보다 기회는 좀 더 쉽고 많아 진 것 같기도 한데.... 경제적 여건은 어떤가요? 연극 연출하면 다 굶어 죽는다는 자조적인 말들도 많이 하고... 잠깐, 토론 전에 일단 ‘예술인 복지법’에 관해서 얘기 좀 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복지법에 관한 요즘 상황은 이런 것 같습니다. 즉, 야당 쪽에서 입법하겠다고 장담했었던 국회의원은 지자체 선거로 가버려서 복지법과는 거리가 멀어졌구요. 여당에서는 문광부 장관이 한번 제대로 해볼 것처럼 얘기하다가 평창이니 뭐니 하는 데로 역시 가버려 신경도 안 쓰고 있고, 아직도 답보 상태입니다. 며칠 전에 예술인들, 연극인들, 여러 단체가 모여 복지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대학로포럼에서도 예술인 복지법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구요. 이에 대해서, 도대체 복지법이 왜 답보상태에 있는지 일반연극인들이 환기될 수 있도록 성토를 좀 했으면 합니다.
김: 가장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복지를 신경 쓰지 않으니 한참 후진국이죠. 국회의원들, 전 장관들, 김명곤 장관, 유인촌 장관, 최종원 의원은 뭐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연극인 중에 장관까지 나왔는데 아무 일도 안하고 끝난 것인가요? 하려면 못하나요? 그거? 장관까지 갔는데?
전: 제가 알기로는요. 그 답보상태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야쿠르트아줌마, 화물운전자 등 모두 비정규직으로 복지가 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데 왜 예술인한테만 4대 보험을 주느냐는 등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니까 부담을 갖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쪽으로도 예술인들이 같은 연대로 논리적으로든 타당성으로든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해서 주춤거리지 않고 밀어붙여야 하지 않아야겠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밀어붙이고 탄력을 받으려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중요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들구요. 저는 고용보험까지는 아니어도 산재보험이나 연금이나 의료보험 정도는 최소한 저렴하고도 합리적인 선으로 첫발을 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해서든지 입법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채: 정부 예산은 한정되어있고, 사회 각 분야의 복지문제를 다 해결하려면 여기저기 돈이 들어가야 하고, 형평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회나 정부, 정치인들의 겉치레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성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항상 그 때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태도 말입니다.
전: 의료보험이라도 최소한의 금액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저희 극단에는 의료보험증을 만들 수 없어서 남의 것으로 쓴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침에 신문배달 한다고 일하다가 다쳤는데 의료보험이 안 돼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제 이름으로 대신 쓰고 두근두근하면서 걸릴까 봐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구요.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의료보험이라도 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김: 4대 보험이 뭐였죠? 고용보험, 의료보험, 또?
채: 고용, 건강, 산재, 국민연금이요. 특히 고용보험은 실업수당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 이렇게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4대보험에 가입 되면 연극인들한테 실업수당이 나오는 것을 알면 좋아하겠네요.
채: 현재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할 수 있어요. 부담이 문제이겠지요.
김: 의료보험료가 지역보험이면 부담이 많다는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최호순씨가 제안을 했다고 해도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고 기본 법안을 만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법안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재산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불편한 게 없을 것 아니에요. 그 사람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식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니까 어영부영 시간만 끄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렇잖아요?
모두: 그렇죠.
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앞세우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다른 사람들에 관한 관심도는 굉장히 낮은 게 아닌가. 왜냐면 자신들은 불편하지 않으니까 하는 척하다 마는 일들이 반복되고 시간만 지나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우리나라가 경제뿐 아니라 문화까지도 선진국가가 된 후에나 겨우 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채: 정치인들을 보면 이중인격자란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예술인들 앞에서는 마치 금방이라도 다 해줄 것처럼 하지만 그게 결국 자신들의 면이나 세우려는 일시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백번양보해서, 아까 전 선생님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비정규직이나 사회소외계층, 극빈층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라 하더라도, 그 전 단계인 ‘예술인 공제회’라든가 복지재단기금의 확충이라든가 하는 단계적 논의조차 없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 유감스럽습니다. 참 사기꾼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지요. 모든 문제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대학 반값등록금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것도 냄비처럼 끓다가 금방 이야기 들어갈 겁니다. ‘반값’이 아니라 10% 만이라도 되는지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모든 일들이 항상 그 모양으로 흘러가지요. 그렇다면 이럴 때에 도대체 예술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사회 소외계층과의 형평성에 관해 조금만 부연하자면,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인들은 좀 다르게 바라봐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인들은 일을 하는 반면 고용자가 존재치 않는 특수한 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이 그 분들과는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 어차피 노동의 대가가 순수예술의 경우 비정규직 분들보다 더 열악하잖아요?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이 월100만원을 번다고 해도 연극해서 많은 경우가 연봉으로 100만원 200만 원 뿐이 되지 않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에서 해줘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채: 그렇습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예술인들의 복지문제 등에 대해서 전혀 진전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복지법 까지는 아니라 해도 ‘예술인 공제회’의 설립은 대통령 중요공약이었지요. 하지만 정권초기에 잠깐 논의를 하는 듯하더니,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연극인 출신 인사가 장관이 되어도 연극인복지재단에 단 일 푼도 정부 측의 기부가 안 이루어졌습니다. 도리어 연극예산, 문화예산의 비율이 답보 내지는 후퇴를 해버렸습니다. 오직 밭고랑 엎어버리듯 조직이나 시스템만 뒤엎어버리고 낙하산 인사에나 신경 쓰는 한심한 정책만 일삼았지요. 일부 연극인들은 그 옆에서 고언이라도 해서 그런 부분 신경 좀 쓰게 해야 하는데 고생하는 동료 연극인들 복지문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낙하산 인사나 묵인 동조하고 자신들의 보신만 신경 쓰는 저열한 행태만 보였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예술인들이 정치인들의 전유물, 말잔치의 희생양으로 전락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자괴감이 안들 수가 없습니다.
김: 우리 지난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의 정부 그때도 손 놓고 지나갔는데 지금 여당으로서는 더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잖아요? 일종의 기득권, 자기네들 잘사는 사람끼리 잘살면 그만이다 하는 ‘당’인데, 그전에 그러니까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 입법 되었으면 좋았을걸.. 아쉽네요.
채: 예술인들의 복지문제가 화두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비판에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원로 선배님들이시죠.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시대가 지속되어 왔으니까요. 적어도 20세기 말까지는. 그러다가 21세기가 되고나서,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데 예술인들의 암울한 현실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비롯된 거죠. 누구를 평가하고자, 혹은 비판하고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극인 복지재단의 경우, 지난 정부 때 문광부에서 협조해서 재단설립이 이루어지고 얼마간의 기금도 조성이 되었지요. 반면 현정부들어서는 연극인 복지재단에 단 천 만 원도 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또 예술인 복지에 관해서는 여, 야가 없지 않느냐 하면서, 마치 복지법 금방 통과 시켜 줄 것처럼 하다가도 또 그렇게 되고, 최 고은양 사고 났을 때도 떠들어대다가는 수면 밑으로 금방 내려갔고, 연말 되면 선거철이 되기 때문에 차기에 국회의원,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또 나와서 립서비스 반복할 것 생각하면 환멸스럽구요.
송: 얼마 전 국회에서 예술인들이 모임을 가지고 예총, 민예총이 한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데, 그래도 매체가 다루는 걸 보면 약해요. 액수나 많으면 모를까 연간 560억, 대강 5만 명 잡은 것 같더군요. 어떻게 나온 숫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면 신경 쓸 덩어리가 아닌 거죠. 표에 별로 영향을 줄 수치도 아니고, 힘도 없으니 언론도 그렇게 밖에 다루지 않는 거예요. 문광부 통계를 보니까 예술인 월평균 수입을 묻는 설문에 ‘없다’가 가장 많아요. 100만 원 이하가 25 프로 넘고... 힘이 없어서 설득을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득하는 방법이 대단히 서툰 것 같아요. 이게 왜 필요한 지 이유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도 도와달라는 식이니 무시당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없는 사람들이 떼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모양새는 피해야죠. 앞으로 몇 년간 복지는 화두가 될 테니 이번에 통과가 안 되더라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나라를 지키는 군대에는 돈을 많이 쓰잖아요. 우리는 정신을 지키는 또 다른 군대인 ‘예술’인데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잖아요. 전투조종사 하나 만드는 것과, 스타를 만드는 값이 산술적으로 거의 같다는데, 전투조종사는 정부의 돈으로 이루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피땀과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런 스타 한명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면 똑같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며 하나는 보이고,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인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모른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문화 후진국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채: 그렇습니다.
김: 국방부에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거기에 덧붙여서요. 사실 우리가 연극을 하니까 연극의 내부에 관한 것들에 관한 부분은 듣는 것이 많겠지만 미술이나 음악이나 순수 음악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문을 보더라도 별로 복지 논의에 있어서 언급이 되지 않더라고요. 물론, 제가 연극을 해서 유심히 보는 바람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연극단체에 전담팀을 만들어서 복지법에 최소한의 커트라인 등을 설문조사와, 외국의 사례, 정부의 가이드라인 등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명확하게 정하고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또 다른 예술 장르와의 연대를 명확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힘도 약해보이고, 아쉬움이 있습니다.
채: 연극인들, 예술인들이.... 논리를 제공하거나,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일에 조직적이거나 단합되지 못하다는 것이 사실이긴 한데, 설사 이쪽이 그렇다하더라도 복지문제는 아주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납득이 된다면 입법을 하거나 논의를 진전시켜야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죠. 큰 문제는 마치 뭔가 이슈가 되었을 때는 거기 편승해서 얼굴이라도 더 내밀려고 당장 통과시키겠다고 하다가는 날이 새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죠. 전형적인 냄비습성이지요. 바쁘다, 다른 이슈가 더 급하다 하는 상투적인 태도를 반복하기만 할 뿐이죠.
전: 장관 취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으로 인터뷰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채: 기다려 보죠. 작년 9월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오고 있는 바, 심각하게 고려해서 입법화가 되도록 해주길 강력히 바라며, 우리 연극인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진척이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이어서 연극인 양성에 대하여 지난달에 이어서 연속으로 이어 나갈까 합니다. 지난달에는 배우와 극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연출가들의 교육, 양성에 관해서입니다. 현재 현장에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니까 여쭤보고 싶은데요. 요즘 김태수 선생님이 보시기에 연출가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40대의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연출가들하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요. 그들은 선배들보다 실험이나 도발, 도전정신이 약해져 소품 위주로 작품을 하는 것으로 비교하기도 하더라고요. 우리 50대, 그 시절에는 공동 창작이라는 열린 세계에 대한 흐름에 대해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실험들도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지금은 너무 상품화, 잘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아니면 관객 동원에 성공하자는 것에 기우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채: 연출가 배출 문제에서, 전환기가 되는 시점이 있는 것 같은데, 대략 2000년 정도를 그 시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학의 연극과라고 하는 데가 드물었고, 많은 연출가들이 대부분, 60~80년대를 지나오면서 주로 비전공자들 즉,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연출을 했었고, 그 이후에는 연극을 전공한 연출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구요. 이러한 변천과정이 있는데 우리가 현장에서 연극을 보기도 하고 후배들을 보기도 하는데 전공을 한 젊은 연출가들은 대체로 어떻습니까? 전용환 선생님 말씀해 주시겠어요? 대학에서 교육을 하고 계시고 커리큘럼을 알고 계시는 측면에서 현재 대학에서 연출가 교육이라는 것이 제대로 잘 이뤄지고 있나요?
전: 개인적으로 볼 때는 연출에 있어서는 연극과의 수업에 한계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연출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기술적인 것을 떠나서 폭넓은 교양과 사회인식이라던가 예술사라던가.. 저의 은사님들도 그렇지만 사실 연출들은 연극과에서 나온 것 보다 물리학, 철학과 등에서 나오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커리큘럼 자체가 너무 열악하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어 반값 등록금에 대해 이야기하면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연극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인가..... 시야가 좁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채: 인문학 쪽이나 다른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다는 말씀이신데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지?
전: 제가 연출 수업도 해보았는데요. 보통 두 학기 코스인데 한 학기는 연출의 이론적인 측면에 할애하고, 나머지 학기는 실습을 통해서 배우는 이런 커리큘럼으로 1년을 공부하는데, 짧다면 짧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능적인 측면이나 알려주게 됩니다. 연기수업에 있어서는 배우들에 연기에 대한 일종의 tip들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가르치기에는 굉장히 짧죠. 연출가들에 대한 대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기 보다, 시간과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채: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 연극과 에서 연출전공을 별도로 뽑는 데가 연극원을 포함해서 몇 군데 밖에 없습니다. 대다수 대학들은 연출전공을 뽑지 않거나 뽑아도 수능점수로 뽑거나 소수밖에 못 뽑는 등 연출지망학생들을 선발하는 채널이 극히 부족하다는 거죠.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꽤 있어요. 근년에 대중적 인기가 치솟다보니 일반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것이죠. 하지만 연극연출이 어떤 것인지는 전반적으로 모르고 있어요. 영화감독은 알아도 연극연출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이지요. 따라서 연출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지요. 그러므로 그 친구들을 뽑는 입학 기준도 애매모호한 상태입니다.
김: 채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기본적인 출발적인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대학교 자체 내에 연출가를 키우는 프로그램이, 그것이 기능적이건 예술적이건 인문학 적이건 간에 그들만을 위한 시간배정이 체계적으로 안 돼 있으며 극히 부족하다고 봅니다. 전혀 연출가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견이 안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교수가 많이 부족하구요. 그러려면 연출수업을 따로 해야 할 텐데 지금의 프로그램 가지고는 그렇게 다양하게 지도 할 수가 없지요. 연출가들을 하나 키워내려면 사실상 시스템을 통해서 연출가와 협동 작업을 해봐야 하고, 전담하여 코치해줄 수 있는 교수요원들도 소위 마스터 클래스 식으로 있어야 하는데 학생들도 그에 대한 인식도 없고, 지원자도 없을뿐더러 가르치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기에 배우는 사람은 어깨너머 방식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반 연기 교육하는 애들과 하는 방법밖에 없어서 방과 후 워크숍에나 참여하여 습득 할 수 있는 것이 다이기 때문에 단계적인 교육방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학생들 자질도 문제가 되는 것이 초등학교 교육부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창의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개성이 있는 교육이 아니라 말 잘 듣는 국민으로 만드는 교육, 사지선다형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우리 전통이나 무대 예술에 대한 그런 체험이 부족하니까요, 그나마 연극영화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영화나 대중성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로 보입니다. 연극이나 무대예술에 대한 깊이 보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현장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거 같아요. 무대예술을 꾸준히 공부를 하는 그런 분들이 많으면 문화적으로도 깊이 있는 사회가 될 것 같은데 대중성이라는, 겉에 보이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무대예술에 대한 통찰은 굉장히 부족하다고 봅니다.
채: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송: 그래서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가 안 되나 봅니다. 예술의 전당 이름 바꾸는 것만 봐도 사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거예요.
김: 그렇게 바꾸는 것을 본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 아니에요.
채: 바꿨대요?
송: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근거가 있다고들 생각하는 거예요. 10년 20년 뒤에 올 파급효과는 걷잡을 수 없을 텐데, 개의치 않는 거죠. 그것도 교육이 안 되어 있으니까 생기는 문제 같아요. 그래서 모든 문제가 교육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거죠. 연출 수업을 해보면 저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물론, 제가 출강하는 강사 입장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외로 시간을 쓴다고 해도 아마 부족할 겁니다. 커리큘럼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또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미처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이 많아서 워밍업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아마 대학도 학생 선발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연출을 전공할 만한 좋은 학생을 끌어올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겠죠.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어떻게 워크숍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됐냐고 물으면 대부분 리더쉽을 이야기합니다. 전공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거죠. 채 선생님이 말씀하신 연영과 학부 출신 연출자를 떠올려 보면 40대는 거의 없고, 30대도 드물죠. 외국에서 공부한 경우도 대학원이지 학부에서 전공한 경우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학부에서 연출을 전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세대와 이전 세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현실인 거죠. 연출에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대학이 끌어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전: 우리나라는 그런 선택의 여지없이 교육받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안된다면 최소한의 연극영화과 미학수업이라던가 예술사 등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나싶습니다.
채: 정리하자면, 현재 대학에 연극과가 많아졌음에도 연출가들을 키우는 부분에는 절대적으로 지원자도 부족하고, 커리큘럼 자체도 빈약하고, 한마디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나마 연출에 대해서 늦게라도 호감을 갖고 해보겠다는 학생들이 조금 있는데, 그러나 막상 4학년이 되어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이 거의 다입니다. 현실적 경제성을 보는 거예요. 졸업 후에 버텨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앞선 세대와는 달리 시대가 누르는 힘이 없다보니 현실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이겠지요.
전: 제가 담당했던 몇 몇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끄집어 낼 수 있는 역량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거죠. 그러한 것들이 그 다음에 고쳐지고 채워져야 하는데 자기 능력에 대하서 쉽게 포기를 합니다. ‘이거 잘 안 맞는 구나..’ 하고..
채: 연출가 양성이 교육제도권내에서는 만족할 만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훌륭한 연출가들이 현장에 나오느냐하는 것에 대해서....
전: 인문학적 밑바탕들이 있어야지 오래 버티고, 계속 연출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나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요. 채 선생님이 그 시대에는 누르는 힘이 많아서 뚫고 나가려는 것이 연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던 것은 좋은 방향으로 갔던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한 비판이던, 예술자체에 관한 것이던 깊은 생각이 쌓여있지 않으면, 한 번 해보고 포기하는 악순환들이 계속 일어나지 않을까 싶구요. 연극원 같은 경우 연출전공자들을 위해서 ‘과’가 따로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 몇몇을 위해 다양한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연극과 같은 경우 연기자 지망 학생 중 한 명이 연출을 하는 등 좀 불합리하지 않는가, 또한 연출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수업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채: 연출가는 연기, 무대, 음악, 조명 등등 전체를 조율합니다. 또 그것과 더불어서 연출가는 한 작품을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 까지도 책임을 지는 유일한 사람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느냐, 어떤 사회성을 갖느냐 등등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연출가들이 그러한 판단을 하기위해서는 광범위하면서 깊은 세계를 통찰 할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지요.
전: 지금 생각이 난건데요. 외국의 경우에는 워크숍 수업이 대학원 연출전공이 연출을 하고 학부에서 배우들이 모여 함께 작업을 한다더라고요. 대학원생들이 나름의 공부를 했다면 했을 친구들이기 때문에 재학생들 입장에서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을까 십구요. 괜찮은 커리큘럼이라 생각합니다.
채: 거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하기가 힘들고 연극원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면 굉장히 좋겠죠. 하지만 문제는 모든 대학이나 대학원들이 연극원처럼 할 수는 없는 여건이거든요.
김: 그러니까 예술이라는 것이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스스로 하는 공부이고,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다른 과’ 공부하고는 달라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일단 해보고 적성에 맞다 하면 그 친구들이 계속 꾸준한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그런 창작의 늪에 한번 빠지면 돌이 킬 수없는 무대 예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겠구요.
전: 지금의 교육방식 즉 커리큘럼에서는 연출하는 친구나, 배우하는 친구나 서로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죠. 지도교수가 연출을 하는 셈이죠. 그러니 연출하는 친구들은 중간에 껴서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송: 문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게 교육인데, 대학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면 공공극장이 해줄 수 있겠죠. 물론 사설극장도 의지가 있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구요.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극장이 교육을 시킨다면 효율적인 교육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바로 그런 곳에 투자를 해야죠. 그 사람들이 앞으로 사회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책무를 맡을 사람들이니까요. 관객들도 공공극장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기관도 기업도 극장을 함부로 못할 텐데, 그런 기능을 못하니 예술의 전당처럼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극장에서 연출자가 해야 할 말이 뭔지를 극장이 직접 교육시킨다면 그게 바로 실질적인 교육이 될 거고, 그러기 위해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거고요. 또 하나는 저희 세대를 포함해서 큰 주제가 사라진 이후 연출자가 이슈를 못 찾고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못 찾는 것이지 없는 건 아니죠. 세계적으로 보면 다 찾아내잖아요. 스스로 억압 받고 있다고 느껴야 찾을 텐데,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못 찾는 거라고 봅니다. 그걸 찾는 훈련이 교육이고, 그래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거구요.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야 하는데, 내 의지로 굶는 건 어렵거든요. 굶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점점 좁아지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연출자라기보다 마니아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여기서 의미를 창출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 보다 말 그대로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서 그 부분에만 집중하는 거죠. 마니아는 자신이 좋아서 달려갈 뿐이지 사회적인 책임은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런 현상도 연출 교육에서 인문학을 더 강조하게 만드는 이유일 겁니다.
채: 대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젊은 작가, 신진연출가들에 대해서 의욕적으로 키울 수 있는 곳, 열린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연출가 인큐베이팅과 같이 실질적인 프로그램이나 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다양할수록 좋겠지요. 사실상 영화연출 지망하는 사람들은 메가폰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꿈을 접는 경우가 많거든요. 경제적인 규모가 크니까요. 연극 쪽으로는 어떤지요. 우리 연극도 이제는 자기부담으로만 하기엔 요즘 현실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나 여러 단체 쪽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이 있나요?
김: 앞서 말씀하신 인큐베이팅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채: 그것도 최근에 생긴 것이죠?
송: 공연예술 아카데미가 있죠?
김: 영국에 어떤 기획자라고하거나 우리나라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처럼, 직접 담당자가 인터뷰를 해서 뽑는 괜찮은 연출가가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서포터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대요. 공연위주가 아니라 공연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때까지 여러 번 검증하고 고치는 뒷바라지를 완벽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자기들끼리 작품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보고 검토해서 일반관객한테 선보이는 과정이 있는 그런 지원 프로그램이 우리는 없는 것이죠.
채: 후원 프로그램 같은 거죠?
송: 외국의 경우라면 아마 극장에서 할 거예요.
김: 예. 극장에서 주관한다고 들었습니다.
채: 우리 실정에서 연출가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것은 곧 천둥벌거숭이로 연극계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죠. 그러다가 온갖 고생을 뚫고 겨우 남게 되는데 남아도 항상 괴롭고.... 그런 형편인데, 지금의 친구들도 별다른 것이 없잖아요. 그런 기회들이 있어도 극소수에게만 주어지겠지요. 또 다시 선택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고.....
김: 40명 중 8명이 되고, 그들을 경쟁시켜서 마지막 1작품을 서울연극제에 올려주는 것이죠. 올해는 작년보다 연출가 인큐베이팅 지원자가 더 많았다던데요? 60명이 넘었답니다.
채: 영화분야 같은 경우 장편영화로 데뷔하기 전에 단편이나 독립영화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시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요. 전 세계적으로 그런 영화제가 무척 많으니까요. 해볼 만하지요. 그 기회로 데뷔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우리 연극계에도 자신들의 창조력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보다 열배는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꼭 두 시간 반짜리 장편이 다가 아니라 단막극이라도 좋고 말입니다.
송: 지금 시작하는 사람들은 생존의 방식이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환경이 바뀌었으니까 거기에 맞게 능동적으로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해외 공연도 기회가 늘었고, 국내 극장도 젊은 연출자를 찾고 있으니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작업 환경을 만들어야겠죠.
채: 물론 당사자들의 의욕이나 나름의 희생, 투자도 전제되어야하겠죠. 그것 이외에 능력 있는 연출가들을 키워 내나가는 방법이 더 있으면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제 생각에는 외국으로 많이 보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연출도 어느 정도 재능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하나로 모아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숙성이 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다른 것도 많이 봐야하고, 지금 인큐베이팅 역시 단발성이라고 봅니다. 하나의 작품을 보고 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이것은 연출가라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보는 거거든요.
채: 여러 프로그램 속에서 선택이 돼서 나갈 수 있게 해주고 한다면 좋겠죠. 해외의 경향 들을 젊은 시절에 경험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결국 돈이 문제가 되겠네요. 말로만 국제교류국제교류하지 사실상 국제교류를 위해 마련된 재원도 빈약합니다.
김: 젊은 연극인들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실패도 하고, 창의성도 갖고, 여러가지 실험을 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공간 지원도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그러다보면 스스로 공부할 것이고.. 어쨌든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할 작업인데 감수성 좋은 20대 때 그런 풍토를 권장해 주면 치열하게 건강하고 재미있는 판이 저절로 돌아갈 텐데 누군가 공간을 쥐고 있는 거 같아 답답합니다. 열린 공간, 열린 마음, 열린 정책이 아쉽습니다.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극장 대관하고 포스타 팜플렛 티켓 전단 인쇄하고 기성의 흉내 내기로 만족하는 게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채: 좋은 말씀. 아까 말씀하신 해외프로그램이나 인큐베이팅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자유롭게 공연 할 수 있는 공간, 극장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각종 연극제에 프린지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지요.
김: 그렇지만 그 때는 관심들이 있었고, 관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극장도 많고, 올라가는 작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연극이 이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도 많고, 관객이 많이 와서 봤는데, 이제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이나 오고, 조금 이름이 난 연출이나 배우들이 있는 경우 관객들이 가서 보지 예전보다 관심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가 ‘뭔가 해봐야지’ 하는 의욕이 있었고 지금은 연극을 발판으로 티브이나 영화로 가려는 경향이 너무 커서 그런지, 무대 위에서 우리를 감동 시키는, 무대 위에서 빛나는 화려한 꽃은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채: 그래요. 옛날보다 발표할 공간도 많아지고 지원도 꽤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걸맞은 의식이나 의욕, 정신은 옛날보다 부족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연출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의 현상 중의 하나가, 한편으로 보면 진짜 연출을 하겠다고 하는 연출이 있는가 하면 연기자들이 많다보니 그들의 필요 충족에 의해 연출가들이 생성되고 있다고도 보이는데요. 아무튼 어떤 길로 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연출가가 배출될 수 있는지 본인들의 경험을 바탕삼아 마무리 좀 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저는 연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다양성이라는 측면이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또한 다양성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아쉽습니다. 새로운 시도들이 장려되고 관심을 받게 되면 좋겠습니다.
채: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자꾸 노크를 해야만 새로운 관객들도 형성이 된다는 생각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동감합니다.
송: 제 경우 영향을 받을 만큼 강렬하다는 느낌을 준 연출가들은 거의 철학자였습니다. 연극 예술가이지만 철학자에 가까웠어요. 아니면 사회과학자이거나. 재능도 있겠지만 고통 없이는 나오기 힘든 무대고, 그 정도 개념을 무대라는 형체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축적된 힘, 그 베이스가 뭘까, 어떤 배경이 저런 것을 만들어 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그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한테는 스승이 된 거구요. 우리는 연극사나 연출가들의 작업을 공부해서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그런 무대가 어떻게 나왔는지, 그 본질에 대한 심층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개인적인 것이고, 그 고민 속에서 자신의 성향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렇게 접근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 바로 교육일 겁니다. 또 한 가지 저희 극단 같은 경우 조연출이 없어요. 제가 아예 없앴습니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조연출이라는 일이 굉장히 힘든 작업이잖아요. 작품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고, 연출의 방식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연출자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조연출을 만나기 힘들어요. 우리나라는 연습실에 선생님이 너무 많아요. 나이 좀 들면 다 선생님이에요. 다 대접받으려고 하니까 조연출들이 작품에 몰두하지 못하고 심부름하고 있어요. 연출자는 지금 자기가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언을 얻어야 하는데 다른 일 하느라 바빠서 조연출이 역할을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연출이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정말 조연출을 해야 할 사람들은 기피하는 거죠. 바뀌어야죠. 연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자신들 의도대로 작업해 보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된 연출자와 제대로 된 작업을 단 6개월 정도라도 꼭 해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다른 연출가의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 자기 작업에서 얻는 것 이상의 몇 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 경험을 생략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분명히 나중에 나오거든요.
채: 연출가다운 연출가들은 철학가였다는 말은 참 인상적입니다. 다양한 예술가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연출가들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 선배연출가들과 학교에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연출가들을 키워내기 위해서 학교에서 교수나, 현장에서 선배연출가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단지 기능인으로 멈추지 않도록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전: 조연출은 저도 안 해본 편인데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 조연출을 앞으로 연출을 할 친구들이 아니라 일종의 심부름꾼으로 여기십니다. 앞으로 조연출에 대한 개념들이 다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조연출들은 굉장히 힘들고요. 사실은 무지 힘든 일이고요. 배우와 연출사이에 낀 심부름꾼이 아니라 하나의 영역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로 인정해줘야지 선배들에게도 배우고, 배우들도 인정해주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아무도 안하려고 하겠지요.
김: 정말로 현장에서 문제점이 조연출이 없다는 거거든요. 조연출을 안 하려고 하는 것, 어느 순간 없어졌어요. 또 너무 쉽게 연출을 한다는 거죠. 연출뿐이겠어요. 연기자도 그렇고... 아까 송 선생께서 문제의식을 잠시 이야기 했는데, 정반합 차원에서 문제를 만들어서라도 부정해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문제의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시절에는 저항도 해보고, 불온한 꿈도 꾸고 도전정신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드네요. 문제의식, 물음표가 없다면 자신이 할일의 방향이나 목적이 얻어지겠습니까?
채: 조연출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이야기 하자면, 지나고 보면 조연출을 한 기간은 마치 자신을 향한 거울을 보는 시간이 아닐까합니다. 그냥 그 연출가를 통해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섬긴 그 연출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는 것을 느꼈었지요. 아까 한 6개월 정도 지독하게 조연출 해보는 것이 좋다는 말씀하셨는데, 공감하구요. 연출자적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기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김: 장인정신하고 통하는 것이겠지요. 생각 같아서는 6개월이 뭐에요, 한 6년 이상은 해야 뭐가 보여도 보이겠죠.
채: 네, 장인 정신. 수고하셨습니다.
정책기록실은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개진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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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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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기자 jh4017@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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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던 비가 그치고 이제는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모두 건강유의 하세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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