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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24년 9월 7일의 일이다. 서울에서 ‘907기후정의’ 집회가 있었다. 2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여러 말이 있었지만, 그 말들을 하나로 묶으면 다음과 같다.
기후 아닌 세상을 바꾸자
이것이 어제 모임의 대표 슬로건이었다고 한다. 기후위기에서 탈출하는 길은 세상을 바꾸는 데 있다는 뜻일 것 같은데, 바꾼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그 가운데 농업은 어떻게 바꿔가야 할까?
나는 집회에 가지 못했다. 같은 시간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자연농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고 오며 생각해 보았다. 농업에서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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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농업도 기후위기에 한몫을 크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여러 농법 가운데는 자연농이 가장 탄소 배출이 적다. 자연농은 한편 너른 면적 재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자연농의 세계를 소개하기로 한다. 다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혹시 참고가 될 만한 기술이나 세계관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 논밭 갈지 않기.
잘 아시다시피 땅을 갈면 땅속에 있던 많은 양의 탄소가 나와 지상의 탄소 농도를 끌어올린다.
자연농에서는 무경운, 곧 땅을 갈지 않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한다. 밭만이 아니다. 논도 갈지 않는다.
2)풀 덮기
여타의 농법과 자연농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논밭의 모습이 아닐까? 자연농의 논밭은 벌거숭이 땅이 없다. 다른 농법은 모두 벌거숭이다. 그렇다. 어느 때부터인가 다른 농법의 논밭도 벌거숭이 땅이 사라졌다. 제초용 비닐과 매트를 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연농에서는 비닐 대신 풀을 베어 그 자리에 펴놓는다. 작물의 짚 또한 수확을 마친 뒤에는 난 곳으로, 곧 밭과 논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들로 자연농의 논과 밭은 벌거숭이 땅이 없다. 풀과 작물의 주검으로 늘 덮여 있다. 오래된 논과 밭은 그것들이 쌓이고 싸여, 부엽토 층을 이루고 있다.
자연농에서는 김매기를 할 때 제초제나 비닐 피복을 하지 않음은 물론 호미도 쓰지 않는다. 호미 대신 톱낫을 쓴다. 호미가 뽑는다면 톱낫은 벤다. 호미는 뽑아서 그 풀을 바깥으로 내고, 톱탓은 베어서 그 자리에 펴 놓는다. 벨 때도 한꺼번에 베지 않고, 한 줄씩 건너 뛰어 벤다.
3)수동 농기구만으로
경운이 탄소 배출 1순위라면 2순위는 무엇일까? 여러 기계와 농자재 사용이 아닐까?
트랙터, 컴바인, 비료나 농약 살포기, 거기에 들어가는 경유, 피복용 비닐, 비닐 하우스, 피복용 비닐 및 매트----등 끝이 없을 정도다.
자연농에서는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쓰지 않는다. 자급자족 규모에서는 수동 농기구만으로도 충분하다. 밭농사만이 아니다. 논농사도 그렇다. 아, 그렇다. 도정기만은 예외다. 그것은 전기를 쓴다. 탈곡기는 발로 밟아 돌리는 탈곡기를 쓴다.
4)땅과 햇빛과 물만으로
땅을 갈지 않고, 풀 두고 가꾸기를 하면 농약이 필요 없어진다. 생태계가 살아나고, 소위 종다양성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퇴비조차 넣지 않아도 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ㄱ. 풀과 작물, 그리고 그것들의 주검으로 논밭이 덮여 있어 비나 바람에 의한 유실이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맨땅에서는 비나 바람에 의한 침식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일 년을 두고 셈하면, 그렇게 없어지는 경토, 곧 갈이흙이 적지 않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비와 바람이 일 년 내내 거름을 도둑질해가는 것과 같다.
ㄴ. 줄기와 잎은 땅 위의, 뿌리는 땅속의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해마다 쌓이면 그만큼 땅이 비옥해진다. 풀을 덮어 도둑을 막고, 풀과 작물을 키워 창고를 채우니 그런 논밭은 해마다 비옥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아서 자연농에서는 제초제, 비닐, 매트, 여러 종류의 화학비료, 친환경 비료, 퇴비, 영양제---등을 쓰지 않는다. 나아가 작물은 물론 풀이 탄소를 잡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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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인구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유기농 인구조차 기계화학농 농가에 견주면 극히 적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세계가 다 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 농업은 기후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솔직히 말하면, 주범 가운데 하나다.
사실은 말하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는 그렇다. 자연농은 이상적이지만 넓은 면적 재배가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80억 인구를 먹일 수 없다.
과학은 스마트팜에서 새길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그 길 또한 기후 위기를 개선할 수 있는 새 길로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 시설+전기+기술 위에서 이루어지는 마치 식물 공장과 같은, 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다.
길은 정말 없는 것일까? 있다면 도시농업 농부들에게 있지 않을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 발이 부족하지만, 거기까지는 와 있기 때문이다.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의 농사는 텃밭 정도의 작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 그렇다. 세상을 바꿈으로써 기후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지구에 붙은 불은 끄는.
지구 위의 수많은 생물 가운데 사람만이 농사를 짓는다. 사람은 수가 많아 농업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적기는커녕 지구에 크게 불을 지르고 있다고 해야 한다.
농업. 인류가 빠져있는 동굴이다. 거대한 동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원죄다. 지구의 재앙이다. 인류는 새 길은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