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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맺는 달☜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으니라*
수 2:1-13절) 두 정탐꾼과 기생 라합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부패하고,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여리고 성을 폭파*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城)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기생 라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과 라합을 만나게 하셨고 라합을 구원하신 후에 여리고 성(城)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싯딤이라는 곳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城)에 보냅니다. 그곳에서 기생(妓生)라합을 만나게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해서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 두 정탐꾼을 보낸 일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라합이 여리고 성에서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Ⅰ.정탐꾼 파견과 하나님의 뜻
2:1절)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여호수아에게는 요단강을 건너기까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흘이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사흘 동안에 무엇을 할까? 아마 어떤 사람은 사흘 동안 *나는 기도하면서 보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기도원으로 갈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지형(地形)을 살피기 위해 강 상류 쪽으로 내려가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사흘 동안을 여리고 성(城)에 정탐꾼을 보내어 여리고의 사정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가 정탐(偵探)꾼을 보낸 일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여호수아가 단독(單獨)으로 결정한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이미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왜 이런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서까지 정탐(偵探)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명령하신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마음에 정탐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기생 라합을 구원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신약 시대에 많이 사용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선(善)한 충동을 일으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직접 말씀하셨지만, 신약 시대는 우리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런 식으로 하신 것이 그(여호수아)의 인격(人格)을 얼마나 존중해 주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되, 노예나 로봇처럼 사용하지 않고, 우리의 인격을 제시(提示)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2:2절)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도 문제로 남습니다. 그래서 주관적(主觀的)인 확신이 강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은 장애(障礙)가 있고,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생깁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자기 욕심 때문에 이렇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길이 열리고, 생각지도 앓은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준비된 길과 준비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시작했는데, 계속 장애(障礙)가 생기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수가 왜 인간적인 방법으로 정탐꾼을 보낼 필요가 있었겠느냐? 는 것입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만 내리신다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답지 않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정탐꾼을 보내는 방식은 40년 전 모세가 사용했다가 실패한 방법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족장을 한 명씩 뽑아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우리는 절대로 가나안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과거에 실패했던 모세의 방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호수아 자신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지 여호수아는 여리고의 사정을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전에 철저한 여론 조사를 통해서 그 지역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지역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지만, 부딪치는 중에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인간적인 정보나 지식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정보만 믿다가 모세가 보낸 정탐꾼처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 시대의 정탐꾼들이 실패했던 이유는 자기들이 얻은 정보를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낸 것은 그야말로 여리고 성의 동정(同情)을 알아보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리시기 전에 미리 사람들을 통하여 정보를 주실 때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문의해서 어떤 지식을 얻게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에 불과한 것이지,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은 될 수 없습니다.
Ⅰ.라합의 거짓말
여리고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行進)에 대하여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정탐꾼은 금방 여리고 사람들에게 정체(正體)가 들통 나는 바람에 추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두 정탐꾼이 들어간 곳은 기생(妓生)의 집이었습니다.
2:1절)...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라합의 집은 여관(旅館)을 겸하여 술과 음식도 팔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의 돌아가는 소식을 듣기에는 이런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여관(旅館)이 좋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겨 신고하는 바람에 여리고 왕(王)의 군대가 라합의 집으로 들어 닥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단순히 사정을 알아볼 생각으로 두 정탐꾼을 보낸 것인데,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고, 두 정탐꾼은 금방 정체(正體)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역시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낸 일이 실수가 아니냐? 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戰爭)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붙들려서 처형(處刑)을 당하거나, 잡혀 있다면,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信賴)도 크게 손상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士氣)도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설사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책임지고,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을 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모든 것을 형통(亨通)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約束)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아서 실수한다 해도 그 실수를 바꾸어서 아주 좋은 작전(作戰)이 되게 하십니다.
만약 혹시 실수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다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승리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있고,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의 방어(防禦)체제가 이 정도로 잘되어 있는지 모르고 정탐꾼을 보내되 사자 굴에 집어넣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이 일을 통하여 두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도움을 받게 하시고, 또 여리고 성에 대한 정보까지 알아오게 하십니다.
2:2절)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라고 왕에게 보고합니다. 이때 2:3절)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사람들이 이 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라합의 집에 묶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여리고 왕(王)은 군인들을 보내어 그 집을 수색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간단하게 기록되었지만, 실제 상황은 아주 급박(急迫)하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리고 성에서 병사(兵士)들에게 쫓기다가 결국 라합의 집으로 피한지도 모릅니다. 라합은 이 두 사람의 정체(正體)가 탄로 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이들을 숨겨줍니다.
2:4-6절)이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운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 하였으나.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거짓말로 여리고 왕의 군사를 따돌린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말을 해서 정탐꾼을 살린 일을 전혀 나쁘게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라합의 행동은 *선의의 거짓말*차원이 아니라, 자기 동족과 나라를 배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합이 취한 행동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항복(降伏)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 세상 나라를 배반하고, 하나님 나라로 망명(亡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에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라합은 여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信仰)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해서 자기도 살고, 가족도 살리고, 이스라엘 두 정탐꾼도 살렸습니다. 이것이 영적(靈的) 전쟁(戰爭)의 성격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때로는 사정상 모든 사실을 다 말할 수 없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회개(悔改)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원치 않는 일을 집요(執拗)하게 요구할 때, 우리는 다른 선약(先約)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집요한 요구를 뿌리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마음이 더 담대하다면, 다른 약속(約束)은 없지만,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의의 거짓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의의 거짓말이나 그와 같은 행동도 해야 할* 것입니다.
Ⅱ.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
대개 여성들은 약(弱)한 자들에 대해 동정심(同情心)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쫓기는 자들을 숨겨 주기도 하고,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라합이 두 사람의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는 단순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들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라합은 두 정탐꾼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말 합니다.
2:9-10절)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라합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뉴-스였습니다. 그 주위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알게 된 여호와는 온 세상을 주관(主管)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를 이기셨고, 홍해를 갈랐고, 요단 동편에 있는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들이 듣게 된 사실은 아주 강력한 신(神)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하나님)는 죄(罪)를 미워하며, 죄인(罪人)의 나라는 완전히 심판(審判)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난 40년간 뉴-스의 핵심이었습니다.
라합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일을 보고, 자기 나라 즉 죄악(罪惡)의 여리고는 반드시 망(亡)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라합은 직업이 기생(妓生)이었습니다. 그 당시 기생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술과 음식만 파는 사람인지? 아니면 하숙집 주인인지? 아니면 몸까지 파는 창녀(娼女)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라합은 이 모든 것이 다 해당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술과 음식을 팔고, 여관업(旅館業)을 하면서 매춘(賣春)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인간적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양심이 살아있었고, 언젠가는 이 죄(罪)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 왔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입니다.
만약 라합이 이 두 사람을 신고해서 군대에 넘겼다면, 많은 포상(褒賞)을 받았을 것이고, 술장사도 더 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런 생활에 환멸(幻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죄악(罪惡)된 여리고와 함께 멸망(滅亡)하고 싶지 않았고, 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어려운 위기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행동은 자기가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도 돌이킬 수 없었던 이유는 죄(罪)가 달콤하고 좋아서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여리고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죄악(罪惡)의 도시는 모두 멸망(滅亡)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러한 소문을 통해서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소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은 전도(傳道)의 지름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일단 교회에 대하여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그 교회는 부흥하기 어렵습니다.
②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11절)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세상의 죄악(罪惡)을 심판(審判)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쓰시며, 자기들이 심판(審判)의 대상(對象)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임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도 굴복(屈伏)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더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對敵)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회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罪人)이라고 해서 다 회개(悔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국토 부 소속 토공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은 멸망(滅亡)을 자초(自招)하는 것입니다.
③자기와 가족들에게 *인애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2:12-13절)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表現)은 *선대하다* (히)*쎄드*인데, 이것은 인애(仁愛)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은 이 *쎄드*입니다.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이것은 상대방에게 약속(約束)한 것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대가를 치르는 사랑입니다.하나님은 먼저 이 두 정탐꾼으로 라합의 사랑을 입게 하심으로 그들이 라합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하셨고, 결국 그들로부터 라합의 모든 가족들은 살려 주겠다는 약속(約束)을 받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라합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라합으로 하여금 이처럼 당당하게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의외로 보물(寶物)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도시의 타락한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라합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왕(王)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王)의 군대(軍隊)를 따돌리고, 두 정탐꾼을 살린 것은 왕(王)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라합이 여리고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여리고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하여 실망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우리를 배반(背叛)하고, 속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망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시기를 바랍니다.아-멘
그분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그러므로 癸卯年은 주(主)를 의지하여 독수리 같이 비상(飛上)하시길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354장 *주를 앙모하는 자*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 금주의 기도제목
주님! 분열된 남과 북이 복음으로 평화 통일되게 하옵소서.
주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분야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깃발 꽂게 하소서.
주님! 대한민국에 사탄의 어둠의 세력들과 우상과 미신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주님! 열방에서 진리의 복음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주님! 동탄에 교회갱신 성경연구원을 설립할 후원이사 동역자를 보내주소서.
주님! 신실하고 충성된 추수의 일꾼들과. 저를 주님 뜻대로 사용되길 원합니다.아-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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