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가스펠, 흑인 음악의 모티브를 제공하다
미국 흑인 음악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노예로 팔려 가는
아프리카 흑인들은 배 안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백인 노예상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춰야 했다. 신대륙에 도착한 노예들이 생명의
위협, 불안한 미래, 고된 노동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떠나온 고향의 음악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는 삶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일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음악의 전통적인 응답 형식(call and
response)은 선창자의 노래를 시작으로 회중과 서로 주고받는 구성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흑인 음악의 기원인 영가와
노동요(work song)가 생겨날 수 있었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목화밭에서 중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불렀던 그들의 노동요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장주들에 의해 장려되면서 널리 퍼졌고, 영가와 함께 미국 흑인 음악사에 주요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또 한 백인들에 의해 전해진 기독교 신앙을 통해 흑인들은 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은 부당한 삶을 강요당한 채 살아가는 흑인 노예들에게 가나안을 꿈꾸게 했고, 만인을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구원과 평등 사상의 기독교 정신은 목적 없는 흑인 노예들의 삶에 희망과 신분 해방이라는 명분을 주었고, 이런 소망들은 영가(spiritual)라는 음악과 샤우트(shout)라는 종교적 몸짓으로 표현되었다
가스펠의 근원, 영가
백인들의
찬송가는 흑인 노예들에 의해 새로운 화음으로 덧입혀졌고 응답 형태를 띤 초기 찬양은 간단한 구조를 통해 많은 자유가 부여되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하면서 즉흥적인 흑인들의 찬양은 악보대로 부르는 백인들의 그것과 달리, 상황에 따라 후렴구를
자유롭게 선택해 부를 수 있었고 즉석에서 독창 부분을 가미해 다양한 멜로디와 화음을 만들어 냈다.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는 등
몸짓으로 표현되면서 황홀경의 음악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영가의 시작이 되었다. 영가는 18세기 말 미국에서 크게 일어난
대각성 운동의 캠프 집회를 통해 급속도로 대중화되었다. 백인 영가에 싱커페이션이 가미된 새로운 찬양 형태를 통해 많은 흑인
노예들이 전도되고, 캠프 집회가 부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 음악의 용어인 가스펠은 블랙 가스펠, 즉 흑인들의
가스펠만을 의미한다. 그 기원은 캠프 집회나 대중적인 집회에서 부르기 쉽게 만들어진 찬양 모음집인 「가스펠송」에서 비롯되었다.
필립스 블리스(Phillps Bliss)가 1874년 출간한 이 모음집에 파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 아이러
생키(Ira D. Sankey) 등 당시 유명한 작사·작곡가들이 만든 “하나님의 진리 등대”, “장미꽃 위에 이슬” 등 현재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백인들은 이 책을 통해 가스펠로 명명된 새로운 찬양들에 영국의 민속 풍 음악을
가미해 ‘서던 가스펠’이라는 독창적인 음악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1960년대 록 음악과의 모색을 통해 현대 대중적 크리스천
음악을 지칭하는 CCM으로 발전했다.
한편 캠프 집회를 통해 크게 대중화된 흑인들의 영가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재즈
리듬을 가미하면서 블랙 가스펠 형태로 더욱 활발하게 발전해 나갔다. 본격적인 흑인 가스펠의 정립은 찰스 틴들리(Charles A.
Tindley)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틴들리는 민속 음악 상태로 놓여 있던 영가들을 출판해 발전된 가스펠 형태로 정립시켰다.
틴들리가 가스펠의 선구자라면 ‘돌아온 탕자’ 토머스 도시(Thomas A. Dorsey)는 가스펠 대중화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가스펠, 주류로 부상하다
가스펠은 교회를 중심으로 선데이 뮤직의 한정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다가 토머스 도시에 의해 가스펠 콰이어 중흥 시대로 발전했다. 가스펠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풍부한 선율을 소화할 수 있는 대규모
콰이어나 코러스 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발전은 재능 있는 솔리스트들이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가스펠 싱어들이 대거 등장한 1940~1960년대를 가스펠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스펠 여성 싱어인 마할리아 잭슨은 가스펠을 세계적으로 알리며 많은 소울 가수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 마할리아 잭슨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그녀가 부른 “We Shall Overcome”은 당시 인권 운동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그녀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과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집회에도 참석하는 등 음악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표적인 가스펠 가수였다.
마할리아 잭슨 Mahalia Jackson (1911-1972)은 1911년 10월 26일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주, 뉴올리언스(New Orleans)출생, 1972년 1월 27일 사망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는 잊혀진 흑인 여가수이다. 6.25 피난 시절, 전투 중인 주한 미군 위문 차 그녀는 내한한다. 미군은 물론 한국의 지식인들도 그녀의 열창에 환호했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스펠 여성 싱어이다. '가스펠의 전설'로도 불리운다. 가스펠 송은 그녀에 의해 전세계에 전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비롯한 여러 소울 가수들의 영웅이 바로 마할리아 잭슨이다.
빌리 할리데이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가난한 딸로 태어났기에 악보도 알파벳도 읽을 수 없었고 식당종업원, 청소부를 전전해야 했지만 고난의 삶을 딛고 최고의 가스펠 아티스트가 되었다.
1911년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침례교회를 다니면서 가스펠을 체득했다. 가스펠을 배우면서도 마할리아는 마 레이니(Ma Rainy)와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같은 재즈와 블루스에 심취했다.
열 여섯 살이던 1927년부터 그녀는 침례교회의 집회나 성가대에서 탁월한 가창력으로 가스펠을 부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7년 뒤 1935년 한 장례식에서 노래한 것이 레코드 관계자의 눈에 띄어 직업 가수로 활동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스펠의 전설''이 된다. 이후 영혼을 울리는 고도의 테크닉과 폐부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탁월한 음빛깔은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킨다.
마할리아 잭슨은 1960년대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였던 흑인 민권 운동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녀가 부른 프로테스트 송 ''We Shall Overcome''은 당시 인권 운동의 찬가였다. 마할리아는 특히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워싱턴 연설에 앞서 열창했으며, 1968년 킹 목사의 장례식 때도 애도
곡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1972년 자신을 존경한 후배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장례식에서 가스펠
''Precious Lord''를 불렀다.
마할리아 잭슨은 1972년 1월 27일 투병 중이던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샘 쿡은 소울 스터러스(Soul
Stirrers)라는 블랙 가스펠 그룹의 리드 싱어 출신이다. 샤우트한 가스펠 특유의 창법을 가미한 팝 음악을 통해 가스펠과
팝계를 동시에 석권한 첫 인물이었다. 1964년에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대 소울 음악의 중흥과 록큰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스펠, 리듬앤블루스 그리고 소울
재즈나 블루스 같은 다양한 대중
음악을 흡수하며 발전해 온 가스펠은 새로운 장르 형성과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1950~1960년대 대중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리듬앤블루스(R&B) 계열 가수들 대부분은 교회에서 가스펠 특유의 리듬을 배워 장르를 발전시켜 나갔다. 현대 대중
음악에 가장 큰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록 음악도 역시 가스펠에서 시작되었다.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ely)나 제리 리 루이스(Jerry L. Lewis)에게서 남부 오순절 교회의 열정적인 찬양의 몸짓과 본성을 발견할 수
있고,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같은 록 스타들의 음악적 배경에도 어김없이 가스펠이 자리 잡고 있다.
가스펠
은 록큰롤에 밀려 쇠퇴하던 R&B를 대신하고 흑인 음악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선보이며 소울의 탄생과 대중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천재 맹인 가수 레이 찰스(Ray Charles)는 R&B에 샤우트한 가스펠적 창법을 그대로 도입해 소울 탄생에
크게 이바지했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도 침례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형성된 자신의 음악적 원류를 가스펠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며 소울의 근원이 가스펠임을 역설했다. 이렇듯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과 소망을 표현해 온 영가의 ‘적자’로서 가스펠은 다양한 장르적 파생을 유도하며 대중 속에서 큰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1960년대 많은 가스펠 가수들이 흑인 인권 운동에 가세하면서 가스펠은 흑인 음악의 원로 역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토머스 도시 - Precious Lord: The Great Gospel Songs of Thomas A. Dorsey
교
회에서 배척당하던 블루스 사운드와 재즈 리듬 그리고 극적인 연출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켜 가스펠을 대중화시켰다. 가스펠 콰이어와
코러스를 조직해 운영하면서 많은 싱어들을 배출해 가스펠의 황금기를 주도했다.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와
“Peace in the Valley”를 비롯해 1,000여 곡을 넘게 작곡해 ‘가스펠의 아버지’로 군림하고 있다. 1994년에
편집된 그의 대표적인 19곡을 수록한 앨범이다.
마할리하 잭슨 - Gospels, Spirituals & Hymns
최
고의 여성 가스펠 싱어 마할리아 잭슨이 1991년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으로 찬송가, 영가, 가스펠 등 흑인 음악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토머스 도시의 대표적인 가스펠 “Walk over God’s Heaven”, “Take My Hand, Precious
Lord” 등을 비롯해 영가 “Roll Jordan Roll”,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등
주옥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레사 프랭클린 - Respect: the very best of Aretha franklin
15
번의 그래미상을 차지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2002년 베스트 앨범이다. 전설적인 소울의 대부 오티스 레딩의 원곡을
리메이크해 넘버원 히트를 기록한 타이틀 곡 “Respect”에서 팝가수 조지 마이클과 듀엣으로 불러 그래미상을 안겨 준 “I
knew you were wating for me”에 이르기까지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 세계를 망라하고 있다.
레이 찰스 - Anthology
레
이 찰스를 탐구하기에 가장 좋은 앨범으로 R&B, 소울, 가스펠, 블루스 등 흑인 음악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
볼튼이 리메이크해 히트한 “Georgia on my mind”, 조 카커의 “Unchain My heart”, 그리고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가 리메이크한 “What’d I Say” 등 레이 찰스의 대표 히트곡들이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