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나들이
어머니 아버지 모처럼 아들네 집 나들이 오셨습니다.
같이 어시장에 왔습니다.
구경도 하고 술안줏거리, 반찬을 사볼까 합니다.
아버지 뒷집 지고 앞장서시고 어머니 그 뒤를 따라갑니다.
고등어를 저녁 반찬으로 사볼까 하고
진동 수산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어머니 내 옆구리를 쿡 찌르십니다.
"영감 고등어 안 좋아한다."
한마디 던지시고 어머니 아버지 따라가십니다.
어머니 둥지 상회 앞에 멈췄습니다.
“갈치 물 좋다. 생물로 3마리 주소.”
어머니 어물전에서 제일 인물 좋은 놈 세 마리를 주문합니다.
“생물은 비싼데 냉동 사지?”
아버지 가던 걸음 멈추고 어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됐소, 입이 얼마나 빌난지(별난지).”
갈치 세 마리 받아들고 어머니 웃으며 아버지 따라갑니다.
“엄니,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없다. 다 먹어 봤다. 돈 아껴라.”
제가 어머니께 괜한 질문을 했습니다.
어머니께 어시장에는 두 가지 해산물만 있습니다.
자식들 좋아하는 것과 아버지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있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은 늘어났고
자식들이 좋아하는 것은 줄어들었습니다.
조금 서글퍼집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것이 줄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 늘어나서입니다.
아버지 일호 횟집 앞에 멈추셨습니다.
“멍게, 신선하네.”
아버지가 앞만 보고 걸어가신 것은 물 좋은 멍게를 찾으시려고 그러셨나 봅니다.
멍게는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시는 해산물입니다.
멍게 한 봉지를 샀습니다.
“안 사도 되는데”
어머니가 부끄럽게 웃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란히 앞장서서 가십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나를 조금씩 비워 당신으로 채우기인가 봅니다.
함께 잘 산다는 거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데 하기보다
이거 저 사람이 좋아하는 데를 먼저 하는 정도이면 충분할듯합니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내 안에 당신이 채워지고 당신 속에 내가 채워져 둘이 나란해지나 봅니다.
“회 한 접시 사라. 너 아버지 술 한잔하신단다.”
어머니 아버지 저만치 앞서가십니다.
놀이터에서
산책 나왔다가 아이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동화책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책 주인은 지금 놀고 있는 아이 중에 하나겠지요.
어느 활짝 갠 겨울날에 개미들이 자신들이 여름철에 모은 낟알(곡물)들을 말리고 있었어요.
그때 굶주림에 다 죽어가는 베짱이 한 마리가 지나가다 “먹을 걸 조금만 나눠주겠니?”라며 빌었어요.
개미들이 베짱이에게 물었어요.
“그럼 넌 여름철에 곡물을 모아두지 않고 뭘 한 거니?”
베짱이가 대답했어요.
“놀 시간도 부족하던걸. 매일같이 노래하느라 다 보냈지.”
그러자 개미들이 조롱하며 말했어요.
“여름철 내내 노래나 하고 있을 정도로 어리석다면, 그럼 겨울엔 밥을 거르면서까지 춤만 춰대면 되겠네요.”
이솝 우화네요. 어린 날 이 우화를 읽고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노력해서 행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짱이가 노래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그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네요.
벤치에 앉아 아이들 구경하며 재미 삼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봅니다.
“여름철 내내 노래나 하고 있을 정도로 어리석다면, 그럼 겨울엔 밥을 거르면서까지 춤만 춰대면 되겠네요.”
개미들이 조롱하며 말했어요.
“놀 시간도 부족하던걸. 매일같이 노래하느라 다 보냈지.”
베짱이가 대답했어요.
“그럼 넌 여름철에 곡물을 모아두지 않고 뭘 한 거니?”
개미들이 베짱이에게 물었어요.
“먹을 걸 조금만 나눠주겠니?”라며 굶주린 개미는 빌었어요.
어느 활짝 갠 겨울날에 개미들이 자신들이 여름철에 모은 낟알(곡물)들을 말리고 있었어요.
거꾸로 읽어보니 베짱이는 어쩌면 게으름을 피운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짱이는 놀 시간도 부족할 만큼 부지런히 노래했다고 하잖아요. 베짱이는 노래로 남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을지도 모르지요. 개미는 대신 자신만을 위해 곡물을 모았을 뿐이고요.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요. 개미와 베짱이가 노래와 곡물을 나누며 함께 행복했어요. 철없는 생각인가요. 개미와 베짱이는 왜 일과 노래를 선택했을까요?
사노라면 끝없이 선택을 해야 하지요. 선택은 제비뽑기를 닮았습니다. 제비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요. 뽑고 나서야 결과를 알 수 있고요. 인생에서 선택의 결과는 제비뽑기보다 좀 늦게 알 수 있지요. 때로는 가까운 미래에 혹은 먼 미래에 또는 발표가 나지 않기도 하고요. 선택은 현재 나의 몫이고 결과는 미래의 것이네요. 그래서 살다 보면 가끔 떨리고 허망한 것일까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갔습니다. 놀이터는 비었습니다. 조용합니다. 아이는 벤치에 둔 책을 잊었나 봅니다. 혹시 베짱이와 개미는 해가 바뀌면 겨울에 수모를 견뎠더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구나! 이까짓 낟알을 모으자고 여름 내내 또 고생을 해야겠구나 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곧 해가 지려나 봅니다. 저녁 하늘이 붉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