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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
① 주장의 근거
ⅰ. 로마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 근거해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성인(聖人)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부인하며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불경건한 자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ⅱ. 이처럼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가기보다는 성인(聖人) 중 한 분에게 먼저 가라고 가르친다.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서 있는 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 잘 들으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ⅲ. 따라서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인(聖人)들에 대한 간구를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일이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지원을 요청하는(성경적으로 인정된) 행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② 성인(聖人)에게 하는 기도의 실제.
ⅰ. 2005년에 별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에서 미사를 주관하는 주교는 기도를 인도하면서 죽은 교황을 위해 그들이 인정하는 역대 성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많은 시간을 드려 그들에게 기도하였다. 예컨대 주교가 “성 어거스틴이여, 교황이 천국에 가도록 기도하여 주소서”라고 간구하면, 모두는 “우리가 비나이다”라고 반복해서 화답했다.
ⅱ.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인(聖人)의 조건은 먼저 복자(福者)에 선정되어야 한다. 복자(福者)의 조건은 해당 인물이 죽은 후 일어난 한 가지 이상의 기적이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테레사 수녀의 경우, 한 인도 여인이 그의 사진에서 빛을 보고 성모 마리아 메달을 몸에 댄 후 위암이 완쾌된 사례가 기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ⅲ. 복자 다음 단계인 성인(聖人)으로 선포되는 시성(諡聖)은 복자 승인 이후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야 진행될 수 있다. 현재 264대에 이르는 동안 성인(聖人)으로 승인된 교황은 78명이다. 대부분 서기 1000년 이전의 인물이고, 성인(聖人) 선포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1500년 이후로는 2명에 불과하다.
ⅳ. 한편 우리나라는 1984년 교황 바오로 2세 방한 때 김대건 신부 등 순교자 103명이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되었으며, 순교자들의 ‘기적 심사’는 면제받았다.
③ 성모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의 실제.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인 외에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며, 그녀에게 기도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다음은 오늘날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묵주기도’ 중에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기도문을 발췌한 것이다.
a. 묵주기도 시작의 감사기도
“어지신 어머니 마리아님. 어머니 머리 위에 얹어드린 꽃다발을 묶기 위해 이 신령성체의 기도를 바칩니다. 오 어머니, 장미송이로 엮어 만든 꽃다발을 저의 영적 선물로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그리고 제 소망을 같이 빌어주소서.”
b.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 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c. 성모 찬송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한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2)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에 대한 반대
개혁자들은 한 결 같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인에 대한 기도행위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① 제 2스위스 신앙고백
하인리히 불링거가 작성한 신앙고백을 일부 수정하여 1566년에 공표한 것으로 라틴어로 ‘헬베틱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기도의 대상에 대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성자들이나 다른 신들을 경배하거나 예배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기도하지 아니한다. 또 그들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의 중보자나 중재자가 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만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께서만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리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주지 아니하리라’(사42:8)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② 즈네브교회 요리문답
234문
“오직 하나님만이 기도를 받으시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님 되심에 적합한 영예로써 이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235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오직 그분으로부터만 은혜를 기대하는 것이지 그분 이외의 어떤 다른 의뢰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해 주시는 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울 능력과 수단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시는 한 우리는 사람들에게서도 도움을 구합니다.”,
236문
“우리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되 사람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그들을 대리자요 분배자로 삼으셨다는 이유에서 도움을 구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십니다.”
237문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친절에 대해 그들에게 감사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닙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재화를 전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감사할 의무를 우리에게 지우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그들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38문
“천사들이나 세상을 떠난 성인(Saincts)들에게 기도해서는 안 되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인들에게 우리를 도우며 보조해 주는 직책을 부여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천사들에 대하여는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돕기 위해 그들을 사용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기도한다거나 그들에게 품의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239문
“주님께서 내리신 명령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주님의 뜻에 배치되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불신앙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직 자신에게로만 부르시는 데도 우리가 천사들이나 성자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 한다면,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그들을 의지하는 데로 돌아선다면,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두라고 한 것은 그들과 나누는 것이 되므로, 우리는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 됩니다.”
③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79문
“우리는 하나님께만 기도할 것입니까?”
“하나님만이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요구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으며, 그만이 신앙과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 되실 수 있으므로, 예배의 부분인 기도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만 올려야 하고 그 한 분 외에 아무에게도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④ 칼빈의 기독교강요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강요(기도)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인에 대한 기도를 반대한다.
a. 성인들(혹은 마리아)에 대한 기도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인들의 중보기도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성경 해석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문장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억지 해석이다.
(a)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렘15:1)
렘15:1에서 죽은 ‘모세와 사무엘’이 산 사람들을 중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궤변이다.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라는 말씀은 모세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중재를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내가 전에는 모세나 사무엘 같은 사람들의 기도를 잘 들었으나,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이 백성의 변호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b)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리라”(겔14:14)
겔14:14에서 ‘노아, 다니엘, 욥'이 산 사람들을 중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 있을지라도”라는 말씀의 의도는 렘15:1의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라는 말씀과 같다. 나아가서 에스겔서는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리라”고 말씀함으로 ‘노아, 다니엘, 욥‘의 공로가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도울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c)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창48:16)
창48:16에서 야곱이 자기 자손들로 하여금 야곱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라는 말씀은 조상들에게 기도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죽은 이들의 중보기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며,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주의 언약이 그 후손들에게 유효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사야는 사63:16-17에서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이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조상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았음을 증거한다. 이사야는 조상들의 중보기도를 상기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의 효력에만 유의하였다.
(d)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시132:10)
시132:10에서 시편기자가 ‘다윗을 위하여’ ‘다윗의 얼굴’을 봐서 백성에게 자비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도 다윗에게 한 하나님의 언약을 고려한 것이지 다윗이라는 사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e)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22:4-5)
시22:4-5에서 기도에 응답 받은 사람들만 앞으로도 응답을 받으리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응답의 약속은 어느 한 사람이나 몇 사람에게만 한정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성인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야고보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엘리야에게 기도응답의 특권이 있기 때문에 엘리야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기도의 무한한 힘을 가르치고 우리도 엘리야처럼 기도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f)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시32:6)
시32:6의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는 말씀은 죽은 자들의 중보기도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5절의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 용서 받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뜻이다.
b.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의 언어를 성자들에게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ⅰ. 성인들에 대하여 “성 000시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성인들은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죽은 사람에게도 동등하게 돌리는 것이다.
ⅲ.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써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계시하며, 성인들의 중보기도에 관해서는 어떠한 말씀도 없다.
ⅳ. 만약 우리가 성인들의 중보기도를 의존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가리고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빼앗는 행위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와 죽은 사람의 기도나 공로를 뒤섞는 것은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자가 되시고자 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훼방이요 모독이다. 중보기도의 직무는 그리스도 특유의 일이다.
ⅴ. 로마가톨릭교회는 예배 때의 글과 성가(聖歌)와 산문에서 죽은 성자들에게 온갖 영예를 돌리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가르침은 인간의 지혜이다. 말씀에서 멀어지는 기도는 미신이며 영혼을 부패시킨다.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은 올바른 기도의 어머니다.
c. 성자들에 대한 기도는 하나님을 점점 더 멀어져 가게 만든다.
ⅰ. 성자들의 중보기도를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 떼어놓는 것이며, 우리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다정한 사랑을 부정하는 행위다.
ⅱ. 우리는 마리아나 성자를 향한 외침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의존함으로 하나님께 곧장 바로 나가도록 명령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d. 성자들에 대한 기도는 신자 상호 간의 기도 의무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
ⅰ. 성경은 우리에게 상호간의 기도 의무를 다하라고 권한다. 신자들이 교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믿으면서 자기와 다른 교우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신자 상호간의 기도는 서로의 어려움과 무거운 짐을 나누는 가운데 사랑을 촉진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의 교훈이며, 주님의 약속도 있다.
ⅱ. 그러나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해서(딤전2:1-2) 성자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죽은 자들 중에 특정 인물들에게만 중보의 능력과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더욱 합당치 못하다. 야고보는 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약5:16)고 말씀함으로 무언중에 죽은 자들을 제외하였다. 성경에는 죽은 자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한 곳이 전혀 없다.
ⅲ.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자를 자기들의 대언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미신적인 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접근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성자들의 변호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우리가 무가치한 존재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인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중보기도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아무런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이 같은 사상은 바른 믿음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들은 대언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중보의 자격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e. 하늘에 있는 성자들은 인간과 의사소통이 안 된다.
ⅰ.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가 성자들에게 비치고 그 빛에 의해서 성자들은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 인간 만사를 내려다본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주장이다.
ⅱ. 모든 신자들은 한 몸에 연결되었으므로 죽은 성자들은 산 자들에게 대해 한결 같은 사랑을 나타낸다든가, 성자들은 일생 동안 경건과 사랑의 생활을 했으며 이 같은 그들의 욕망과 행위가 죽어서도 산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과연 우리의 음성을 들을 만한 귀가 성인들에게 있고, 우리의 곤란을 지켜볼 만한 눈이 성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누가 알려주었는가?
ⅲ. 성경은 산 자와 죽은 자와의 접촉에 대해 어떠한 교훈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것은 성경을 짓밟는 행위다. 성경은 우리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지혜와 원수가 된다고 천명한다(롬8:6-7). 또한 성경은 우리의 헛된 생각을 전적으로 정죄하며(엡4:17), 우리의 이성보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우러러보라고 명령한다(신12:32).
ⅳ. 기본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는 상호 간에 연락이 불가능하다. 죽은 자들은 지상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만약 성자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상호간에 나누는 친교의 범위 내에 머물러야 하며 그 범위 이상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f. 성자들은 천사들과 같은 직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ⅰ. 천사들이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신자들의 기도가 천사들의 손에 의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성인들도 천사들과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ⅱ. 현세를 떠난 성인들과 천사들의 임무는 다르다. 천사들은 부리는 영이고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임무를 받았다(히1:14). 천사들은 우리를 둘러 진 치며(시34:7),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는 임무(시91:11)를 위촉받았으며, 우리에게 경고와 격려를 한다. 다시 말해서 천사들의 직무는 우리의 구원을 돌보는 것이므로, 천사들은 신자들의 집회에 참석하며, 신자들은 천사들의 활동과 보고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죽은 성자들은 천사와 같은 임무를 받은 일이 없다.
g. 성자숭배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ⅰ. 성인들이 하늘에서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나아가서 성자들에게 기도함으로서 기적을 기대한다면, 이것은 자칫 성자들을 초자연적인 능력자로 생각하게 만들고 성자들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ⅱ. 실제 성인들의 중재를 생각하게 된 후로 사람들은 각 성인에게 특별한 능력을 돌리고, 어떤 때는 이 성인에게 또 어떤 때는 저 성인에게 중재를 기원한다. 나아가서 사람들은 어떤 한 성인을 자기의 수호신으로 정하고 그의 보호를 의뢰하게 되었다.
ⅲ. 과거 유다 민족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도시의 수에 따라 신을 설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리의 수에 따라 신을 정하였다. 성경은 이에 대해 “네가 만든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희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렘2:28),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 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렘11:13)고 책망한다.
ⅳ.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인숭배자들은 성인들의 조각이나 그림 앞에 엎드려 “우리 아버지”라고 중얼거리며, “하늘에서 내려와 종들을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며, 혹은 거룩한 동정녀가 그 아들에게 명령해 달라고 기도한다. 칼빈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이와 같은 신앙행위에 대해서 “각 개인은 특정한 성인을 후견인인 신으로 받아들여 그의 도움을 의지했다”고 비판했다.
ⅴ. 수도꼭지는 수도관에 연결돼야만 한다. 또한 그 수도관은 수도 본관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 수도 본관은 다시 저수지에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저수지는 샘이나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야만 한다. 수도꼭지는 그 ‘근원’에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생의 복(福)도 그와 같다. 복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복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기도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 줄 알고 그분에게 믿음의 관을 연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