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세우면 어느 정도의 이문을 얻을까요?"
젊은 시절 여불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여불위) 미곡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글쎄 한 10배의 이득은 보겠지~~
(여불위) 그럼, 보석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아마 100배의 이득은 보지 않을까?
(여불위) 그렇다면, 만약 한사람을 한나라의 왕으로 세운다면요?
(아버지) 글쎄. 그 이문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겠지..
중국 전역이 진초연제위한조 등 7웅으로 분열되어 각축을 벌이던 전국시대말, 여불위는 한나라 양책 출신의 거상이었다. 장사를 하며 이리저리 중국 전역을 떠돌던 여불위가 어느날 조나라 수도 한단에 머무를 때였다.
장사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각종 정보망을 풀가동했던 여불위는 당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잊혀진 태자 자초를 발견한 순간, 속으로 ‘대박이야’를 외쳤다. 왕위계승전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름없는 서자 자초에게 조용히 다가간 여불위는 진의 황제로 만들어주겠다는 자신의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초나라 안국공의 이십번째 아들로 그것도 후궁의 자식이라 왕위계승전에는 한참 밀려있어 볼품없이 조나라에 볼모로 떠돌고있던 자초에게 초나라의 king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여불위의 제안은 그야말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제안이었다.
당시 전국시대의 패자중 하나인 진나라는 소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왕의 태자가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차순위 서열인 안국공에게 갑자기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안국공의 정실부인 화양부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권력이란 때가되면 기우는 법. 아무리 안국공의 사랑을 독차지하더라도 아이가 없다면 나중에 안국군이 죽을 경우 본인은 아무 볼품없이 뒷방마님으로 물러나야 할 것임을 잘아는 화양부인의 아픈 속내를 여불위는 정확히 꿰고 있었다.
킹메이킹을 향한 여불위의 그랜드 마스터플랜은 안국공의 서열 20위 밖에 있는 자초를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여 적자로 내세운 다음에 왕위를 물려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자초로 하여금 조나라의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하는 등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시골에서 막올라온 싹수있는 신인을 전국구 연예인으로 키워나가는 스폰서와 유사할 것이다.
조나라와 진나라 조정에 자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남기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여불위는 자초에게 무지막지한 거금을 투자해 단기간에 조나라 귀족사회에서 돈잘 쓰는 떠오르는 히어로로 만든다. 2단계 작업으로 여불위는 자초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주어 진나라의 화양부인에게 각종 금은보화를 선물토록 한다.
물론 킹메이킹 과정이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진나라와 조나라간에 그 유명한 장평대전이 터진 것이다. 참고로 장평대전은 조나라의 신출나기 군사인 조괄이 진나라의 노회한 장수 백기장군에게 일패도지해 무려 40만명의 대군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맞게되는 전국시대 최대의 전투다. 2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전쟁터 근처에서 몰살당한 조나라군사들의 유골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이후 조나라가 몰락하게된 직접된 원인이 된 전투였다.
장평대전의 여파로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온 자초에게 제왕의 길은 고사하고 생사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낙담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자신의 애를 임신했던 애첩 조희를 주며 달랜다. 이윽고 조나라 왕이 자초를 죽이려할 때 여불위는 미리 매수해둔 조나라 조정 대신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진나라까지 탈출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 수도 함양에 도착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초나라옷을 입혀 갖은 금은보화와 함께 화양부인을 알현케한다. 화양부인이 초나라출신임을 알고 초나라 옷을 입혀 그 마음을 산 것이다. 결국 자초는 화양부인의 수양아들로 들어가 안국공이 죽은후 제위를 물려받아 장양왕이 된다. 물론 King making의 일등공신이었던여불위도 진나라 승상이 되어 문상후에 봉해졌다.
장양왕은 왕이 된지 3년만에 죽고 여불위와 조희의 자식으로 알려진 태자 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제다.
태자 정이 성인이 될때까지 당시 진나라는 여불위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상당기간 여불위는 태자인 진왕 정을 대신해 섭정을 하며 ‘여씨춘추’를 발간하는 등 정치문화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권력이란 너무 가까이 가면 불에 타죽고, 너무 멀리가면 얼어죽는 속성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도
진왕 정이 성인이 되면서 마침내 실각하게 된다. 진왕 정을 대신해 섭정을 했던 여불위로부터 권력을 뺐아오기 위해 수년간을 절차 부심하며 지내던 진왕정은 자신의 어머니 조희와 여불위가 붙인 조희의 대리남편 노애의 역모사건’을 계기로 여불위까지 연루시켜 유배를 보낸다. 그러나 진왕 정의 노여움을 살피지못하고 권력의 맛에 취해있던 여불위는 결국 유배지에 가지도 못한 채
사실상 자신의 아들인 진왕정(진시황)의 압박에 못이겨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도 킹 메이킹을 통해 거부가 된 사례가 많다.
먼저 21세기의 천문학적 거부 로스 차일드의 스토리다.
마이어 암스 로스차일드는 18세기경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Guetto에 살던 천대받던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천대를 받았으며 법적으로도 군인이나 제조업, 곡물거래 등에 종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나았던 유태인들은 제한된 범위내에서 고리대금업으로 연명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전후 일본내 재일교포들이 공무원 등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보다 빠진코나 여자,고리대금업 등 음지의 세계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주요 사업원은 귀족을 상대로한 골동품 사업이었다. 마이어는 떠돌이 상인으로 유럽의 주요공국을 돌아다니면서 “부자를 상대로해야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귀족들과의 연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는 귀족들 사이에 기념주화와 훈장등의 골동품사업이 유행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전쟁터를 누비며 탈영병, 사망한 군인들의 군복을 뒤져 주화와 훈장을 수집했다. 당시 유럽은 백년전쟁부터 종교전쟁까지 수많은 전쟁과 전투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었기에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시체를 뒤지며 귀중한 주화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집한 주화를 로스차일드는 프랑크푸르트의 귀족들에게 팔기위해 나름대로 독창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주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카탈로그를 만든후 고관대작들에게 일일히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중에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며 귀족들의 신뢰를 얻는데 주력했다. 마이어의 목표는 단순히 주화와 훈장을 귀족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게 아니었다. 그의 최종목표는 당시 유럽의 중소 공국중 한 왕실과 연을 맺는 것이었다.
마이어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독일 전역을 누비며 수집한 주화와 훈장의 가치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이때 프랑크푸르트 인근 헤센왕국의 빌헬름공이 주화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환심을 사기위해 시중가격의 절반가로 주화와 훈장을 제공했고, 이로인해 빌헬름공도 많은 이윤을 얻게된다. 결국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왕실공급상으로 임명된다.
당시 유럽전역은 중세봉건제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전쟁들이 빈번했고, 빌헬름공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영국 등 각지로 파견하여 돈을 버는 용병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었다. 빌헬름공은 각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과 국채를 대리인인 로스차일드에게 맡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기 힘든 일들을 왕실대리인인 로스차일드의 이름으로 집행했다.
빌헬름공의 재산을 관리하게된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파리, 런던, 비엔나 등 유럽 각지로 보낸다. 당시 유럽각지는오늘날처럼 단일한 화폐를 쓰지않고 쪼개져있었기에 로스차일드는 다섯명의 아들을 활용하여 환전사업과 무역사업을 하였으며, 아들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빌헬름공의 자산을 불려주게 되었다.
로스차일드가 결정적으로 큰돈을 벌게된 계기는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나폴레옹전쟁이었다. 나폴레옹에 반대했던 빌헬름공은 나폴레옹군이 쳐들어오자 대부분의 재산을 로스차일드에게 맡긴후에 급히 타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나폴레옹군이 몰려왔을 때 빌헬름공의 재산 대부분을 자신의 저택 지하 2층에 은밀히 숨겨두었던 로스차일드는 온갖 고문과 구타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군에게 빌헬름공의 재산의 소재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힘들게 벌어들인 자신의 재산 대부분은 나폴레옹군에게 뺏겼으나 빌헬릉공의 재산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 전쟁이 끝나고 빌헬름공이 돌아왔을 때 로스차일드는 그가 위탁한 돈과 그간의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었다. 로스차일드의 충성심과 신뢰에 감동한 빌헬름공은 “자네에게 앞으로 20년 동안 이 돈에 대한 이자를 일절받지않을테니 잘 관리해 주게”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빌헬름공의 이 돈으로 로스차일드는 영국에 유학보낸 아들 조나단 네이선을 통해 영국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해 영국의 정재계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판로가 막힌 영국내 면화와 방직제품들을 헐값으로 사들인후 유럽으로 몰래들여와 엄청난 이윤을 얻게된다. 그는 런던과 파리, 빈, 이태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 요처에 파견해 놓았던 자신의 아들들을 최대한 활용해 영국 정부를 도와 동맹국들에 보내는 자금 운송과 대부 사업 등을 벌였다. 영국과 프랑스간 치열하게 싸웠던 워털루 전투에서는 사전에 아들을 통해 영국 전시공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했다는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큰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을 보면 아들 조나단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이 패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한후 아직 전쟁의 승패를 모르던 영국 공채거래소에서 급하게 공채를 파는 등 투매를 유도한후 조용하게 대량의 공채를 매입하는 스토리가 잘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설에 기초한 영국공채 대량투매 사기사건은 일본인이 쓴 '쩐의 세계사'라는 책에 보면 상당부분 과장되었다고 나오기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로스차일드 일가가 빌헬름공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음은 부인할수 없다. 현재 전지구상의 로스차일드 후손들의 재산이 현재 5경원에 육박한다는 설도 있다. 빌게이츠나 워렌버핏은 포춘 잡지에서나 집계하는 세계 최고의 부호일 뿐이며 사실상 세계 최대의 부자는 로스차일드 가문일 것이다.
'여불위'나 '로스 차일드'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상 최대의 비즈니스는 king making과 연계되어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6월이면 조만간 총선이 시작된다. 이땅에도 우리가 알게모르게 수많은 슈퍼스타 정치인들을 스폰하는 한국의 '여불위'들이 설치고다닐 것이다. 스폰서의 자금력으로 당선된 국회의원들과 지방 시군구 장들이 당선후 어떻게 사례를 할지는 더이상 말을 하지않아도 뻔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필자도 미래 무한한 대박을 안겨줄 '여불위'를 찾아야할텐데 내님은 어디에 있을까?
첫댓글 원장님의 출판책과 저자특강 강의 강추 드립니다
정말 2억으로 20억 상가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제가 부동산 재테크를 처음 시작한 건 2002년 8월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총 재산은 2억원이 아닌 2천만원이었습니다. 신혼때 3천만원 전세로 시작했다가 그것마저 주식으로 탕진해서 2천만원만 남아있던 상태였지요. 하지만 레버리지를 활용한 부동산 분양권투자와 경매투자로 현재는 역세권 70평 이상 상가만 5개 이상 있죠. 15년전 2천만원의 시드머니로 일어선 경험기는 전원장의 셀프경매라는 네이버블로그에 그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제가 투자할때는 운이 좋았고 정확한 타이밍에 과감한 베팅으로 레버리지 승수효과를 본 면이 있는 것 부인할 수 없지만 저의 리얼스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