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글벗에게
유회숙
안녕하세요! 오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이 어디쯤 와 있겠지요.
밤이나 새벽 최저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118년 만에 최장 열대야로 연일 기록이 경신되고 있어요.
간간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반가워요. 소리를 따라가면 이야기가 이어지고 가을은 마치 익숙한 옷을 입은 듯 편안해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산책하기에 알맞고, 수선스럽거나 수다스럽지 않아서 오랜 친구처럼 기다려져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시향詩鄕 동인은 가을을 닮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입속말로 이름을 불러봅니다. 생김부터 성격까지 다 다르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같지 않기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생각의 깊이도 깊고 넓게 소통되지요. 보이는 부분은 물론 말하지 않은 침묵까지 살피는 한결같음으로 이십육 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소중한 글벗이며 또한, 어머니이며 시인이라는 공통분모는 함께할 수 있는 동력이지요. 칭찬 릴레이 편지를 읽으면서 웃고 울던 추억이 떠올라요. 삼사십 대에 만나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서로에게 기대인 모습이 자연스러워요.
우리를 계절로 말한다면 어디쯤일까요! 작년엔 시향 제7집 동인지를 발간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문학적으로 열매 맺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지요. “건강하게 또 보자” 건배사를 외치며 마음보다 몸이 먼저 늙어감을 알아차리는 때지요. 해남땅끝마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는 즐거운 약속도 시향 동인이기에 가능하고요.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노랫말이 아니어도 그리움으로 때로는 간절함으로 편지를 써요. 편지는 긍정에너지이며 소통의 첫걸음이에요.
편지라는 말과 동시에 한국편지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특히 이곳 우정인재개발원에서 열리는 “2024 편지쓰기 문화지도사 캠프”에 참여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각 지회에서 올라온 명단에 아는 얼굴이 반이 넘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시간을 내서 오기를 잘했고 1박 2일 동안 편지를 주제로 계획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처음처럼 설렜어요.
편지! 참 오랜 만남이에요. 1994년 전국주부편지쓰기 대회를 계기로 한국편지가족에 입회했어요. 돌아보면 회원, 감사, 사무국장, 부회장, 지회장,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고문이며 회원으로서 편지 곁에 있어요. 단체 활동을 늘리기보단 하나둘 줄여야 할 때지만, 한국편지가족은 예외지요. 그만큼 애정이 깃들어 있고 이야기 속에 보람도 많아요. 한발 물러나서 참여하는 것도 성숙의 시간이에요.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어요. 누가 나를 말하라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편지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편지로 인하여 측은지심, 역지사지. 즉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글이나 일상에서 그런 나이기를 소망하는 것도 편지 덕분이에요.
가끔은 편지를 겸손으로 읽기도 해요. 미움도 사랑이 되어야 써지는 편지는 명사이며 동사가 아닐까요. 편지를 쓴다는 건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어느 날의 나와 상대방의 만남이며 객관적인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고백이지요.
글을 쓰다 보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글의 방향과 인식을 결정할 때가 있어요. 나 자신과 거리 조정을 잘못하면 스스로 합리화한다거나 누추해지거나 남 탓을 할까 싶어 보풀처럼 일어나는 번잡함을 다독이게 되지요. 불가근불가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배려와 마음의 향기가 글꽃으로 피어날 때, 자연의 섭리를 닮았을 때,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이 오가는 오솔길이 생기고 자연스레 다가앉을 수 있어요.
가을 단풍은 물드는 게 아니고 본래 가지고 있는 색깔이 드러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드러난다는 건 감추려 해도 밖으로 배어 나오는 마음의 바탕이지요. 마음밭에 편지라는 꽃씨를 심는 한국편지가족 회원이라서 행복해요. 가을을 닮은 글벗에게 쓰는 편지를 마치며, 팔월을 보내고 구월을 초대합니다.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가까이 와 있는 가을이 만져질 것 같은 날입니다. 그럼, 설악에서 한라까지 편지와 함께 웃음 가득하길 바랄게요. 안녕히 계세요.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우정인재개발원에서
유회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