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도가사상] 중에서.
노장에 의하면, 도야말로 순수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며, 모든 것을 산출하면서도 어떤 생성된 자 속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데 도의 이런 속성이 천․지․인․만물 속에 내재해 있다. 또한 인간만이 유독 자기의 본성을 근원적으로 반성하여, 자기 자신의 근원적 본성이 도의 본성과 통해 있으며 일치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 인간은 능히 육체적인 개별자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원한 도적(道的) 생명 및 그 본성과 일치된 진아(眞我)로서 살 수 있다. 장자가 ‘망(忘)’이라는 말로 추구하는 길은 바로 이런 길이다.
이렇게 볼 때,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허(虛)’․‘정(靜)’․‘무(無)’․‘망(忘)’ 등은 얼핏 보기에 매우 소극적인 삶의 길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삶의 길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서복관은 노자에 대해서 이렇게 평하고 있다. “노자의 유약함을 위주로 하는 인생 태도의 후면에는 실제로 일종의 강대한 자주적․인격적 존재가 있다. 그가 만물과 현동(玄同)한다는 것은, 곧 생명의 근원적인 덕으로서 만물 위에 초월하면서 동시에 만물을 포용하여 융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만물과 현동하는 동시에 곧 자기 개체적 생명의 가치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니, 결코 세상의 더러움(이해득실에 따른 분쟁)과 합류한다는 의미는 없는 것이다.”
또한 서복관은 장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식인마다 모두가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인 견해의 앎으로써 외물에 대한 욕망을 일으킴으로써 이기적이고 번민하며 서로 기회를 엿보고 서로를 감시하고 탈취하는 인생과 사회를 만들었다. ‘허정(虛靜)’은 곧 성견(成見)에 의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며 해탈의 공부이다. 또한 해탈 이후의 마음이 나타내는 일종의 상태이며 인생이 도달할 바의 정신경계이다. 장자에 있어서 ‘천지와 더불어 정신이 왕래한다’거나 ‘인이천(人而天)’과 같은 묘사들은 실제로 모두가 ‘허정’적 공부가 드러낸 허정한 정신경계에 대한 묘사이다. 허정한 마음은 본래 일체의 차별과 대립을 초월하여 만물을 포용․융합하는 마음이다. 장자는 노자의 ‘허의 극치에 이르고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킨다’라는 가르침을 계승하여 [장자] 가운데의 도처에서 발휘하고 있다.”
즉 서복관도 ‘허정’은 단지 객관적 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도의 본성을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경지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장자가 <인간세>에서 “도라는 것은 오직 허를 응집한 것이나, 허한 것은 심재(心齋)이니라”라고 말할 때의 ‘허’는 도리어 그 뜻이 ‘심(心)’에서 구체화되는 것이지 기(氣)에서 구체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덕충부>에서는 “낮과 밤으로 면전에 상대해서 나타나지만 지(知)는 그 시원을 알아볼 수 없으니, 이렇게 알면 그런 상대적인 상태들이 우리의 본성의 평화를 혼란시킬 수 없고, 우리의 영부(靈府:심령)를 침입할 수 없다”라고 한다. 곽상은 [장자주]에서 ‘영부’를 ‘정신지택’이라고 했고, 성현영은 [장자소]에서 “영부가 정신지택이라는 것은 이른바 ‘심’이다”라고 했다. 이로써 장자는 심을 존중하여 ‘영부’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자는 마음을 우리가 마땅히 방지해야만 할 심과 존중할 가치가 있는 심의 둘로 나눈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서복관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장자는 사람의 생활이 ‘여천위도(與天爲徒)’ 혹은 ‘입어천(入於天)’이 될 수 있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천은 ‘적막무위(寂寞無爲)’인데 인간의 심지적(心知的) 활동은 이 ‘적막무위’를 족히 파괴할 수 있으므로 특히 이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사람에게 심지(心知)가 없다면 사람에게 부여된 ‘적막무위’의 본성은 무엇을 통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각하게 할 것인가? 또한 덕이 이미 사람의 몸 속에 내재해 있으니, 사람은 반드시 심의 작용을 거친 연후에야 덕(德)과 형(形)의 상대 속에 있으면서도 덕에 대한 자각을 할 수 있다. 이에 덕의 본성은 또한 심의 본성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심은 형태로부터 초월하여 형체를 갖게 한 덕을 파악할 수 없다. 장자가 만약 진정으로 심에 입각점을 두지 않고 단지 기(氣)에 낙착하였을 뿐이라면 사람은 한 덩이의 물(物)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김항배 저, [불교와 도가사상], 동국대출판부, 1999)에서 인용.
[출처] [불교와 도가사상] 중에서|작성자 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