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유식사상의 의궤화
1)초지즉극(初地卽極)의 유가사상
밀교가 성립될 당시 5~7세기에 이르는 인도불교의 교리적 전개는 중생의 현실이 곧 붓다의 실상과 다르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논리학이 체계화되고 있었다. 반면에 이 같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전개는 밀교에서 진언 등의 수단을 통해 붓다의 실상을 중생의 세계에서 실현하려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밀교의 수행은 유가유식(瑜伽唯識)에 기초하여 다양하고, 정교한 수행법으로 전개되었는데, 『대일경』에서는 이를 최초로 진언문(眞言門)으로 명명하여 현교와 다른 수행문의 존재를 정의한 사실을 볼 수 있다. 경전에는 밀교수행과 관련해 다양한 관법이 설해지는데. 밀교가 유가유식으로부터 계승한 유가(瑜伽, yoga)의 의미는 밀교에서는 상응, 또는 가지(加持, Adhiṣṭhāna), 입아아입(入我我入) 등으로 해석되어 중생이 여래와 동일한 지위에 오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수행의 측면에서 유식의 교리는 중생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붓다와 다르지 않다고 보고, 중생은 자신의 8식에 대해 그 실상이 붓다의 4지(智)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전식득지(轉識得智)'설을 펼쳤는데, 밀교도 이러한 유식의 수행관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승장엄경론』에는 "전도된 마음에 굳게 사로잡혔다는 것에서 전도란 '상락아정(常樂我淨)'에 대해 집착함이 있는 것이다. 만약 수행자가 전도된 가운데서도 능히 무상(無常)과, 무락(無樂)과, 무아(無我)와 무정(無淨)을 잘 알고 있어 물러남이 없다면, 신속히 보리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여, 자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전도된 마음을 회복하고, 마음의 번뇌를 끊는 것을 수행의 요체로 간주하였다.
유식과 밀교의 수행에서 수행자의 물리적 현실을 바꾸지 않고, 심식을 불지(佛智)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말할 수 있으며, 즉신성불의 수행은 밀교에서 현교의 보살수행과 같이 다겁(多劫)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단박에 10지 이상을 넘는 초지즉극(初地卽極)의 성불을 주장하고 있다. 『대일경』의 관련대목을 살펴보면 「입진언문주심품」에서
비밀주여! 보살이 깨끗한 보리심문에 머무는 것을 초법명도(初法明道)라 이름한다. 보살은 이를 무학함으로써 노력과 고통이 오래지 않아 일체개장삼매를 순식간에 얻는다. 이것을 얻은 자는 곧 모든 불‧보살과 동등하게 머물며, 마땅히 오신통을 발하고, 무량한 음성의 다라니를 얻고, 중생의 마음가는 곳을 알고, 모든 붓다가 보호하신다. 생사에 처해 있어도 물듦이 없으며 법계의 중생을 위해 피곤함을 마다하지 않고, 무위(無爲)의 계를 수지함을 성취하도록 권하여, 사견을 떠나 정견에 통달토록 한다. 또한 비밀주여! 이와 같이 일체의 개장을 물리친 보살은 신해력으로 인해 오랜 수행에 힘쓰지 않아도 일체의 불법을 만족한다. 비밀주여! 요약하면 이 선남자 선여인은 무량한 공덕을 모두 성취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초법명도의 실체에 대해 『대일경』은 마음의 번뇌종자를 크게 거친 종자[麤]와 미세한 종자[細]. 극히 미세한 종자[極細]로 나누고 각 번뇌종자를 정화하는데 1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대일경소』의 요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범어의 겁파(劫跛)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시분(時分)이고 하나는 망집이다. 일반적 해석으로는 3아승지겁을 지나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데, 밀교적 해석으로는 1겁을 초월하는 유가행은 곧 160심 등 추망집(麤妄執)을 벗는 것이므로 1아승지겁이라 한다. 2겁을 초월하는 유가행은 또 160심 등 세망집(細妄執)을 벗는 것이므로 2아승지겁이라 한다. 진언행자가 다시 1겁을 초월하며 160심 등의 극세망집(極細妄執)을 벗으면, 불혜(佛慧)의 초심에 이르게 되므로 3아승지겁 성불이라 한다. 만약 일생에 이 3망집을 벗으면 곧 일생에 성불하므로 어찌 시간을 논하겠는가?1
이처럼 성불은 많은 연기의 겁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심식상의 번뇌를 파척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을 벗어나는 논리에 의해 초지즉극의 성불이 가능하다고 설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일경』의 진언문으로 정의된 밀교수행은 근본적으로 유가행파의 실천 원리로서 유식학의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마음의 번뇌종자를 정화하는 것은 현교에서 볼 수 있듯이 3아승지겁의 아득한 시간이 아니라 일생에 단박에 성불에 이르는 속질성불(速疾成佛)인 것이다.
<인도밀교의 성립 배경 연구/ 배관성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