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박혜숙
수탉이 꼬끼오 암탉을 부른다. 살찐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오면 헛간 짚더미를 콕콕 찍는다. 암탉 날개를 펴고 안는다. 이렇게 수탉이 며칠을 살펴 알 품을 자리를 지정한다. 달걀 가지러 온 아내 반색을 한다.
“아니, 수탉 너 욕심도 많다. 세 군데서 알을 품네. 이 암탉은 육 개월뿐이 안됐잖아.”
“자. 이 만큼 병아리를 까야 돼.”
아내가 달걀을 알 날 자리를 잡은 곳에 죽 펴주자 날개와 따뜻한 배의 온기로 감싸 안는다. 이제 병아리가 되어 나올 때가지 꼼짝 안고 알을 품어야 한다. 알을 품은 암탉을 보자 아내, 눈물이 핑 돈다.
캠퍼스 뒷산에서 지금은 남편이 된 그와 데이트 중이었다. 학생들이 없는 곳에 가려고 틈나면 후미진 곳을 찾았다. 용트림을 하는 붉은 소나무가 나란히 걸 터 안게 누워 있다. 그녀를 품에 안자 소나무가 흔들린다. 소나무 끝자락이 땅에 닿은 곳에서 꿩이 날아오른다.
“어머, 꿩이 알을 품고 있었나 봐. 참다못해 날아갔어.”
“빨리 비켜주자. 우리가 흔드는 바람에.”
우리는 까투리가 다시 돌아와 품기를 빌며 떠났다 와 봤지만 알은 그대로 깔려 있었다. 이 알을 품기까지 고생 많았을 텐데 우리가 알을 까서 이 숲속에 풀어주자. 아내는 그 알을 가져와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놓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업보로 이렇게 닭들의 알까기 시중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듯하다.
남편은 식빵을 물에 적셔 수탉 부리에 넣어준다. 아들 하나 낳아 장가보내고 저수지 가에 터를 잡아 부부만이 호젓하게 사는 자신보다, 세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는 수탉이 대견해 보여서다.
“어머. 얘 좀 봐. 식빵을 넘기지 않고 여기에 두었네.”
“어쩌나 숨어서 보자.”
부부가 사라지자 수탉은 식빵을 암탉에게 먹인다. 식빵 많이 사다 넉넉히 줘야하겠네. 오빠 생신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해. 휴가 피크라 용평 길 말도 못하게 밀릴 텐데. 12명 대식구가 그들 부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정오를 넘겼는데 고속도로를 겨우 빠져나온다. 남편이 대대장할 때 올케 네를 초대했던 날도 이랬다.
일본에서 온 처제네 식구와 부하 몇 가족을 식사하려고 불렀다. 점심 먹으러 오라고 막연하게 통보를 한 처제 말을 듣고 하던 빨래 널고 산속 부대까지 가느라 많이 늦어 대기하던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스트레스 받으며 먹은 게 체해 구토를 했던 그 날의 회식 업보도 이렇게 되갚고 있다. 인과응보는 쉼 없이 이어지며 인생길을 구불구불 넘어간다. 각본도 없이.
아내는 농사지은 강낭콩과, 매실을 따서 직접 담근 매실 청, 복숭아 바리바리 내놓는다. 넓은 뜰에 부지런히 가꾸지만 가져다 먹을 사람도 없어 기회만 닿으면 가져다주고 택배로 부쳐 먹어달라고 하소연한다. 조카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네비게이션에 능이백숙 집 주소를 치는데, 두 대는 이미 출발을 했다. 손이 느리다. 제일 먼저 가야하는데 처남 네 부부를 싣고 간다. 무궁화 가로수가 불편한 마음을 잠재운다. 저건 백단심 화심이 빨갛고 흰 꽃잎, 저건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겹 흰 무궁화, 분홍 잎에 붉은 화심은 재래종을 육종 시켰나 엄청 크네. 처남댁이 흥분하여 무궁화 꽃을 휴대폰에 담는다.
남편은 미 서부에서 보았던 2미터도 넘는 아름다운 무궁화 꽃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이제까지 본 중에 제일 멋진 가로수다. 남편은 장병들을 이끌고 나설 때 저 무궁화와 태극기를 품고 다짐했다. 특전사는 절대지지 않는다. 싸워서 이긴다. 조국을 위해.
모양 빠지게 꼴찌로 도착했다. 오리 한 마리에 능이버섯을 한 줌씩은 넣었는지 시커먼 빛의 오리는 잡 내도 없이 건강한 맛이다. 아이들까지 잘 먹는다. 조카들은 이 맛을 못 잊어 휴가 때면 으레 이 집에 와서 여름 보양을 한다.
자리를 옮겨 남대천 가 소나무 숲, 커피숍 정자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손주 4명이 서로 촛불을 불려고 할아버지보다 아우성을 치며 커팅을 마친다. 하지만 남편은 초조하다. 5시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하자 아내는 깜짝 놀란다.
“아니, 그런 약속 왜 얘기 안했어요?”
“친정 식구 준다고 바리바리 짐 챙기는데 어떻게 말해. 나 혼자 갈 테니까 쉬다 와.”
“암탉 세 마리가 알을 품고 있어 가야 해요. 아쉽네.”
“수탉들은 늘 힘들어. 내가 열 몇 시간 운전하면 여기저기 다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 숨겼는데 휴가철 고속도로가 안 받쳐주네.”
밀리지만 안으면 5시까지 갈 길을 8시가 되어 도착했다. 군대 동기들은 그들 부부를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그들도 다 힘들고 빠듯하게 살아가는 수탉들이기에 허둥지둥 온 전우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남매의 혈연도 전우애도 끈끈하기는 마찬 가지다. 수탉들의 고된 행진이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