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鳳山아래 여섯정승 發福地 이야기
경기도 의왕에 오봉산이 있는데 원래 산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五峯 이라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五鳳山"이라 바뀌어 불려지고 있으며 오봉산에 얽힌 육 정승(六政丞)에 관한 전설이 청풍김씨 문중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風水地理師가 역적의 죄를 뒤집어쓰게 되자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서해바다를 건너 조선 땅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급히 도망하여 피신하다보니 가지고온 재산도 없이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이리저리 떠돌다가 의왕 까지 흘러오게 되였다.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저자(市場)거리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지나치던 청풍김씨 한분이 그를 딱하게 여기고 집으로 데려와 음식을 대접하고 옷도 새로 마련하여 주면서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그때 마침 청풍 김씨댁 할머니가 중환이어서 매우 위독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어 집안사람 모두가 근심이 가득하였다.
그러자 중국 지관은 할머니의 병환을 살펴보더니 도저히 소행할 가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청풍김씨에게 " 의술은 잘 모르지만 노부인의 병환을 보니 아무래도 회춘하시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조선으로 도망와 생면부지인 당신의 도움으로 몸도 많이 회복되었으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중국에서 약간의 지술을 배웠으니 노부인 모실 산소라도 하나 보아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청풍김씨는 중국 지관의 말이 하도 고마워 함께 산소자리를 보러 나섰는데 앞에 바라보이는 오봉산을 건너다보고 함께 그리로 가자하기로 중국지관의 뒤를 따라 오봉산 뒤편으로 가니 외딴집 한 채가 있고 마당 앞에 장독대가 있는데 중국지관의 말이 이 집터가 노마님의 음택(陰宅)으로 장독대 밑이 광중이라고 알려주면서 주인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청풍김씨는 참으로 딱한 노릇 이였다.
아무리 자기 어머님을 모실 자리로 명당을 추천받았다고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니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양보해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시간을 끙끙거리다가 큰마음 먹고 그 집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찾아온 뜻을 말하였으나 집주인의 노여움만 산채 쫓겨나오고 말았다.
김씨는 처음부터 승낙을 받을 것으로 생각지는 않았으나 집 주인에게는 이만저만한 노여움만 산 것이 아니라 사과의 말을 하고는 되돌아올 수 밖 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청풍김씨가 묘 터를 보고 돌아온 그날 밤에 어찌된 영문인지 오봉산 뒤 그 집에 불이 나서 몽땅 타버리고 말았으며 바로 그날 밤 청풍김씨 댁 노부인도 그 시각에 운명하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멀쩡히 잘사는 주인에게 집을 산소자리로 내어 달라고 한 것도 이야기 거리인데 거절하였더니 그날 밤으로 이상하게도 원인 모를 불이 나 집 한 채를 몽땅 태웠고 청풍 김씨 댁 노부인이 또한 시간을 맞추어 운명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풍 김씨 댁에서 집터를 산소자리로 쓸려고 일부러 불을 질렀다느니
혹은 불이 난 것은 그 집터가 청풍 김씨 노부인 산소자리로 이미 하늘이 정해 준 것이어 서 그렇다느니
그것은 하필이면 그 불이 난 밤에 노부인이 운명하실 것이 무엇 이냐?
그것으로도 이미 하늘이 정하여준 것이다. 등등 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나 갔다.
어쨌건 산소자리를 위한 이야기가 당시 양가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결국은 원만 한 합의를 얻어 그 타버린 집터에 청풍김씨는 묘를 쓰게 되었다.
장사를 치르기 전날 중국에서 온 지관은 다시 청풍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노부인을 모실 자리도 확정되었으니 저로서도 그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노부인을 모시기 위하여 땅을 파서 광중을 만들 때 얼만 큼 파 내려가면 펑퍼짐한 돌이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더 파지 마십시오. 꼭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옷을 가다듬어 입고는 이번엔 떠나는 인사를 하였다. "이제 저는 중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乾坤을 보아하니 억울함이 밝혀져 역적의 누명이 깨끗이 씻겼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거듭 부탁드리는데 광중에 펑퍼짐한 돌이 나타나거든 그 이상 파내려가지 말고 돌 위에다 그냥 하관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훌쩍 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장례날 산역을 하고 상여를 모시고 온 집안이 떠들썩하였다.
산소자리까지 상여를 모시고 광중이 다 되기를 기다리며 하관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하던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광중을 파는 주위에 꾸부리고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더 파야지. 너무 얕지 않아?"
"아냐, 그만 파라고 했어 여기 봐 돌이 놓였지 않아?"
"그렇지만 이렇게 광중이 얕아서야 …"
"상관없어, 더 파지 마."
"이럴 게 아니라 상주에게 직접 보이고 결정하세."
결국은 상주인 청풍김씨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처분을 바랬다.
청풍김씨는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가보았다.
분명히 중국 지관이 말한 대로였다.
그러나 광중으로서는 너무 얕아 보였다.
그도 혼자 결정하기가 망설여져 일단 작업을 중단시키고 급히 가족회의를 열기 위하여 산소 가까운 곳에 대기 중인 상여 앞으로 가서 구수회의를 가졌다.
이 때 광중을 파던 산역꾼들도 한동안 쉬기 위하여 광중으로부터 멀리 떠나 나무그늘 밑으로 갔고 청풍 김씨 막내아우만이 홀로 광중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광중을 파게 되면 반드시 한사람은 지키고 있게 마련이다.
혼자 광중을 지키고 있던 막내는 지금 말썽이 되고 있는 펑퍼짐한 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광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펑퍼짐한 돌 위에 올라서봤다.
그러자 밑에 무슨 돌이 있는지 어떤지 그 돌이 기우뚱 거렸다.
무심코 그는 그 돌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밑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그 펑퍼짐한 구들장 같은 돌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다보는 순간,
그는 `윽!`하면서 다시 돌을 놓아버렸다.
그 순간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넓적한 돌은 제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막내는 놀 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돌 아래 펼쳐졌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돌 밑에는 돌로 된 옥동자 다섯 개가 앉아 있었고 그들을 향하여 그들 보다 조금 더 큰 옥동자 하나가 서 있었다.
흡사 옥동자 다섯에게 무엇인가 일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막내가 너무 놀라 쳐들었던 돌을 놓는 순간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생각하고는 그 돌 위에서 구석구석을 밟아 보았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돌을 쳐들기 전까지는 기우뚱거리던 그 넓적한 돌이 이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꽉 제자리에 이가 맞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까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는 바로 그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있던 옥동자의 머리가 부러진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 머리가 부러 지기 전에 넓은 돌이 그 키에 걸려서 기우뚱거렸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이윽고 상여 앞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면서 광중의 돌을 제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의논하였으나 끝내는 중국 지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돌 위에 그냥 하관을 하고서 묘를 만들었다.
산소가 다 치성되고 나서도 이 막내는 그러한 광경이 너무 무서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산소에 관한 비밀은 이 막내만이 알고 그냥 지켜져 온 것이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간 지관의 아버지는 갖은 고생을 겨우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너는 너의 목숨을 아껴주고 구해준 조선땅의 청풍김씨 댁에 은혜는 갚지 못할망정 역적의 집안으로 인도하였으니 그럴 수가 있느냐. 어서 되돌아가서 그 산소를 옮기도록 하여라."
아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선땅 에서는 가장 좋은 길지로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되는 데요."
중국 지관의 아버지는
" 너는 아직 아직 멀었다. 그 자리는 5정승을 거느리고 역적모의를 하는 또 하나의 옥동자가 있었느니라. 그가 바로 그 집안을 역적 집안으로 만들 후손이다."
중국의 지관은 새삼 자기 아버지의 지혜에 탄복하고 그 길로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청풍김씨댁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난 청풍김씨 댁에서는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지관은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잡아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제의하면서 서둘렀다.
그 때 청풍김씨의 막내도 한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집안 식구와 중국 지관 앞에서 장례식 날 광중에서 겪은 일을 모조리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중국 지관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면서,
"그럼 되었고, 그 부러진 것이 바로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있던 옥동자의 목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이제 역적은 사라지고 그 대신 6정승이 나올 것입니다."
하면서 마음을 놓는 듯 하였다.
그 후에 정말로 이 청풍김씨 집안에는 6정승이 계속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봉산 봉우리가 그 산 이름처럼 다섯 개지만 사실은 가만히 바라보면 한쪽 끝에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모두 여섯 개 봉우리가 6정승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기이한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