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은 생명의 땅
매년 장마철이면 낙동강 수위가 높아지게 되어 토평 천 하류로부터 역류되어온 물길이 우포에 닿게 된다. 우포는 낙동강 본류가 만들어 놓은 배후습지이다. 늪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물풀들처럼 우포늪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우포는 호수의 나라처럼 고요롭다. 바람이 약간만 움직여도 물결 일렁임이 있다. 그러나 여름이 더욱 깊어지면 점점이 떠 있는 저 물풀들의 식구가 불어나 우포의 물빛은 보이지 않는다.
늘 물기를 머금은 축축함의 땅, 우포의 새벽은 몽상적이다. 안개 맞이하러 이슬 털고 생명의 길에 들어서면 온 몸에 짜르르 소름이 돋는다. 쪽지벌에는 자운영 꽃 지고 나니 젓가락나물, 쥐손이풀들이 자리하고 서걱거리는 초록바람소리, 주인은 억새와 갈대다.
우포에서 7월의 한낮은 참으로 뜨겁다. 자연의 분주함과 조용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포늪 초입에 들어서면 자귀나무 꽃향기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지나는 길섶엔 눈만 맞추었다 하면 아름다운 풀꽃과 정겨운 나무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여뀌, 흰까치수영, 붉은토끼풀, 산사나무, 노박덩굴, 메꽃, 쥐꼬리망초, 거북꼬리, 주름조개풀, 딱지꽃, 젓가락나물, 조팝나무, 석잠풀, 으아리꽃, 박주가리, 배풍덩 여우주머니, 제비꽃, 질경이, 환삼덩굴......, 물위에는 생이가래, 좀개구리밥, 마름, 자라풀, 창포, 왕버들......, 불러도, 불러도 다 못 부를 이름들이다.
걸어가는 길 앞자리에서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유난히도 날고 있다. 반가움의 표징인가. 풀잎위엔 거미 여치 투명한 우유 빛 몸매를 한 모시나비도 만났다.
갑자기 첨벙 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팔뚝보다 더 큰 잉어 물위로 뛰는 소리였다. 토평 천을 거슬러 내려가면 샛노란 꽃 입술 뽀조록 물위에 내밀고 햇빛바라기 하면서 무리지어 물놀이 즐기고 있는 노랑어리연꽃도 만난다.
우포늪의 조용함 가운데 수초를 헤치며 돌아다니는 물닭의 모습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들의 부리보다 몇 배 나 큰 마른 나뭇가지, 갈대들을 물어 나른다.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 알 품을 자리를 만들기 위한 물닭 들의 바쁜 몸놀림 이다. 물닭은 알집을 품을 때 암컷만 품는 것이 아니고 수컷과 교대로 알을 품어준다. 부부애와 동시에 부모애를 지닌 물닭,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우포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제의 아침과 오늘의 아침은 정녕 다른 모습이다.
오늘 아침과 저녁의 느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때문인 것 같다. 사지포 가는 길엔 멧대추 나무 다보록하다. 비가 좀 내렸다 싶으면 다리가 잠긴다 하여 사지포 제방 옆 세월교를 우리는 잠수교라 부른다.
세월교 아래엔 곱게 빗은 삼단 채 머리처럼 말즘도 가지런히 물살을 타며 자리 잡고 있다.
깨끗한 물가에서만 서식한다는 까만 날개를 가진 물잠자리는 세월교를 맴돌며 말즘과 어울리고 있다. 저 건너 화왕산에서 비 묻어온다 싶으면 둑 머리에 올라 비 마중이라도 하고픈 마음이 드는 곳도 이곳 세월교다. 그러다 비 그치고 햇살이 돋움하면 초록물결 일렁이는 우포늪위로 떠 오른 무지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무벌(목포늪)의 왕버들은 물속에서도 천연덕스럽다. 느긋하고 중후한 모습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감싸 안아준다. 황로들이 왕버들 가지 끝에서 날갯짓하며 놀고 있다 요즘 밤의 우포에선 애반딧불이도 심심찮게 만난다. 까아만 밤빛 속으로 아주 작은 푸른 점 하나 날아간다 싶으면 연이어 또 날아간다. 우포에 오면 바쁠 것이 없다. 그저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보인다. 가까이에서 더 가까이에서 자연과 공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어 더 좋다. 우포는 두발로 걸어가면서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가슴 가득 넣어가도 누구하나 탓할 이 더더욱 없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 비오면 비와서 좋고 바람 불면 바람 불어 좋다. 물비린내 슬쩍슬쩍 지나쳐도 상관없고 촉촉이 젖어 있는 땅, 생명의 땅, 언제라도 불쑥 마음 내키면 갈 수 있는 넉넉한 물의 땅 우포늪, 우포늪이 메마른 이들의 가슴까지도 적셔 주리라. 여름 깊어지면 사지포(모래벌)에선 보랏빛 물옥잠 피었다고 기별 오리라.
물옥잠 핀 소식 오면 여기저기서 가시연꽃 봉오리 맺었다고, 마름꽃 피었다고, 자라풀꽃 피었다고, 앞 다투어 꽃소식 전해 오리라. 우포늪 생명의 땅, 젖은 땅의 역사는 지금도 물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송미령
창녕군 학교숲 코디네이트. 창녕문화원 편집위원
첫댓글 봄.여름. 가을. 겨울.중 해가 젤 길때쯤 우포에 가면 우포를 거닐고있는 식물들을 볼수 있겠네요~
글을 읽는 동안 내가 지금 우포에 봄에갔다가 겨울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요즘 뜸하셨네요 연꽃차는 다 하셨어요
계속 바빴습니다.
17집에 실을 글이면 합평회방으로 옮길가요?
반갑습니다. 우포늪에 꼭 가보고 싶어요. 가끔 티브이에서 화면으로보긴 했지만 글이 생명력이 넘치네요.
아주 특색있는 수필 잘 감상했슴당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