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를 가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밤 11시차를 타고 달려 카우나스 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한 버스는 계속 달려 빌뉴스 파노라마 정거장에 도착했다.
건물이 너무 커서 버스터미널인줄로 착각했고 또한 많은 승객들이 하차하기에 이곳이 목적지로 오인할 수밖에 없었다.
도착예정시간이 지났는데도 기다리기로 한 비다가 보이지 않아, 그때야 도착지가 예정했던 곳이 아님을 알았다. 비다에게 전화로 현재의 위치를 알렸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비다가 도착했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자동차들이 많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오후가 되서 요가일래가 학교를 마치고 귀가한 후 함께 점심을 먹고, 이레나와 함께 구도시를 보기위해 나갔다.
구도시를 거닐다가 광장의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한 후, 다시 대학교를 지나 대성당이 있는 광장을 지나 음식점들이 있는 곳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이 날은 전승기념일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한다고 한다.
요가일래를 태우고 온 비다와 함께 빌뉴스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 시내를 전망했다.
발그스름한 지붕색이 매우 예쁘게 보였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언덕을 나려와 구도시를 안내해준 이레나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 만들기를 준비해 놓고 나갔던 후라 집에 들어온 후 바로 김치를 담그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이곳은 이른 시각에 동이 트기 시작하여 늦은 저녁까지 화하게 빛이 남아있어서 북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밤을 설친 여파가 있는지 바로 잠들었다.
빌리우스의 상징, 게디미나스 성
게디미나스 광장 동쪽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이 성은 빌뉴스의 상징이다. 1420년에 세워진 것으로 탑 정상에는 리투아니아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으며 탑의 내부는 작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성이 세워질 당시의 복원도와 중세 빌뉴스 시의 모형, 중세의 전투무기들과 방어구나 생활용품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매우 흥미롭다. 현재 모양은 처음 건설 때와는 사뭇 다른데 17세기에 치러진 러시아-폴란드 전쟁의 전쟁터로 이용되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성 정상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빌뉴스 시내의 전경은 대단히 아름답다.
빌뉴스 올드 타운은 유럽에 남아 있는 구시가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중세 시대부터 지어진 1500여개의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70여개의 거리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고딕 양식부터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까지 역사적으로 유행했던 모든 양식의 건물들이 한 군데 모여 있으니, 아무리 돌아다녀도 질리지 않는다.
빌뉴스 올드 타운의 중심은 빌뉴스 대학교이다. 빌뉴스 대학교는 4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로, 유럽 내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리투아니아 화폐 100리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빌뉴스 대학교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유럽 문화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학자를 수 없이 배출했다고 한다.
빌뉴스 대학교는 올드타운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관광객은 학교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하는데, 날마다 방문할 수 있는 건물이 따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빌뉴스 대학교의 주요 건물을 모두 보려면 3일 정도는 방문해야 한다.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리투아니아어: Lietuva)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공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공화국(리투아니아어: Lietuvos Respublika 리에투보스 레스푸블리카)이며 수도는 빌뉴스(과거에는 카우나스)이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 해, 남서쪽은 러시아(월경지 칼리닌그라드 주)와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고 넓다.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1941년부터는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다시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이었다.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9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남부에 있다.
민족구성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다.
전체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식품 및 담배가 29.6%, 기계장비가 18.3%, 섬유의복·가죽제품이 17%이다.
6세부터 11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990년 종교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로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리투아니아가 제일 북쪽에 위치한다.
현재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국이다.
2015년 부터 유로를 통화로 사용한다.
발트해 연안에 있는 나라로 소련, 독일의 지배를 받고 1990년 독립선언 후에 이듬해에 완전한 독립을 이룬 나라이다.
약 5만개 이상의 십자가들로 뒤덮혀 있는" 십자가언덕 " 약간 으시시한 느낌이 들만한 관광지일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십자가언덕이다.
나무대신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세워져있거나 층층이 놓여있는 곳으로 1831년에 일어난 반러시아 민중봉기 때 희생당했거나,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당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곳이라고 한다.
빌뉴스는 일명 '향기 나는 도시'라고 부르는 여행지인데 붉은 벽돌로 휘감긴 고풍스러운 바로크양식들이 주를 이루는 여행지다.
볼만한 관광지로는 중세고딕양식의 최대 걸작품인 ' 성오나성당 ',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에 있던 ' 카우나스성 '
발트3국이 독립한 때는 1991년. 고르바초프 개혁정책이 큰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발트3국 국민 약 200만 명이 리투아니아에서 에스토니아까지 627㎞에 이르는 길에서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든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그 길을 두고 `발트의 길`이라 부른다.
수도인 빌뉴스는 전형적인 중세도시 모습을 오늘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궁전 등이 볼거리.
구시가는 하루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성 오나 교회는 1501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의 환상`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붉은 벽돌이 특히 인상적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 길에 이곳을 지나다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 일화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