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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장자와 차자, 적자와 서자, 주류와 비주류의 차별이 없습니다.
** 성경를 읽고 전해도 라합과 살몬(살마)은 멀리했던 우리의 일반적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살마(살몬)와 베들레헴 사람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수 6:25)
살마(살몬)와 라합, 라합과 가족들은 처음에는 고향 여리고 성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살마는 기생 라합과 살기 전에 본처가 있었을 것이지만, 라합과도 자녀를 낳고 함께 살았다고 보아야 합니다(마 1:5). 그러나 가나안 땅 토지분배로 여리고 땅이 베냐민 지파의 기업으로 돌아가자(수 18:21), 부득이 장소를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라합 가족들은 유다 지파를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왔고, 베들레헴에서 살았기 때문에 라합의 후손은 베들레헴 사람 보아스입니다(룻 4:11,21, 마 1:5).
한편, 훌의 아들 살마와 그 자손들도 가나안 진입 후 베들레헴에서 살았고, 그 자손들은 베들레헴 인근 각지에서 집성촌(종족 마을)을 이루어서 살마를 “베들레헴의 아비(조상)”라고 부릅니다(대상 2:51~54).
한편, 출애굽 초기부터 모세와 함께하며, 측근에서 도운 모세의 처가 사람들이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와 그의 아들 호밥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성막 공동체에 필요한 행정 조직을 개편하도록 조언을 하였고, 아들은 광야 행진에서 길을 안내하고, 진지 구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드로는 미디안 제사장으로 지역 공동체를 운영해 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호밥 역시 유목민 생활을 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군할 광야의 지리를 알며, 장막을 짓는 기술도 익숙한 경험자이므로 광야 생활에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와 호밥의 가족들은 겐 족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겐 족속은 이방 족속이라서 기업이 없이 외진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사 4:11). 겐 족속은 가나안 진입 초기에 여리고(종려나무 성읍)에서 살았으나 나중에 유대 땅 아랏 남방 황무지로 옮겼습니다(삿 1:16). 그 일부가 살마의 고향인 베들레헴 인근 지역, 곧 야베스에서 서기관 생활을 하며 살게 됩니다(대상 2:54,55). 이것 역시 여리고가 베나민 지파의 기업이 되어서 라합 가족이 베들레헴으로 옮겨야 했던 것과 시대적 배경이나 사정이 비슷하며, 겐 족속이 베들레헴에 정착지를 정한 것까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역시 황무지(삿 1:16), 산지, 구릉, 지파들의 경계지역이나 변방에서 목축하며 살았습니다. 겐 족속은 이방 족속이지만,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신실하였습니다. 겐 족속 중에 레갑의 아들 요나답 후손을 레갑 족속이라고 하는데 생활은 금욕적이며, 독립심이 강해서 장막에서만 살았습니다(렘 35:6~10).
한편, 훌은 갈렙이 본처 아수바가 죽은 후에 재혼한 후처 에브랏(또는 에브라다)에서 난 아들입니다(대상 2:18,19). 그래서인지 훌의 후손들, 곧 베들레헴 사람 살마와 그 자손들은 족보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특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갈렙의 후손들은 다른 족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사용할 필요가 없는) 지역 이름과 “종족(족속)”을 표시하면서 계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대상 2:50~55).
그러므로 라합 가족도 겐 족속들처럼 이방 족속이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갈렙은 워낙 큰 공을 세웠으므로 모세나 여호수아로부터 기업 분배의 우선권이 주어졌지만(신 1:36, 신 14:13), 다른 이방 족속들은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내릴 수 있는 추정은 이러합니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훌은 출애굽 초기부터 특히 첫 전투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참가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진입 당시 여리고선 정탐에도 훌의 아들 살마를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이것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훌과의 사적인 친분이 두터워서 그의 아들을 정탐꾼으로 보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훌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 그의 아들 살마를 정탐꾼으로 택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처가 사람들인 겐 족속 자손들은 모세의 장막과 아론의 성막 가까이에서 남다르게 활동을 해온 자들입니다. 겐 족속은 성전에서 수종을 들거나 성전 기구를 만들며, 성전 봉사자로 있었고, 일부는 서기관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들 신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무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유다 지파는 겐 족속에게 말씀과 영적인 삶을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특히 겐 족속의 일파인 레갑 족속, 요나답은 바알 숭배에 빠진 아합왕 때 예후와 함께 바알 우상을 척결하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왕하 10:11~17).
이처럼 유다 지파에 들어온 이방 족속들은 모두 유다 지파의 족보와 기업을 찾고 잇는데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겐 족속들은 영적인 삶에 철저하여서, 유다 지파가 말씀의 양육과 영성을 유지하는 데 그들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나님은 겐 족속이 보여준 순종의 삶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렘 35:14,18,19). 그러나 민수기 11장을 보면 모세와 야호수아가 의견 차이가 있고, 12장에서는 모세와 미리암(아론 포함) 간에는 다툼이 발생합니다. 모세의 아내가 십보라인 데 십보라가 미디안 사는 겐 족속이라고(합 3:7) 형제들이 트집을 잡았다가 나병이 걸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비주류인 겐 족속인 장인 이드로와 처남 호밥이 들어와서 장인의 조언으로 70인 장로제도가 조직된 후 조직에서 아론과 미리암이 소외되는 것에 대한 갈등의 표출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와도 하지 않으셨느냐"라고 모세에게 하는 항변은 공동체 내 지도부에서 형제들의 알력과 세력 다툼을 뜻합니다(민 12:1,2). 이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아서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만,여기서는 논제를 벗어므로 상세한 설명은 하지 못합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정통과 이방인,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조짐은 공동체 70인 조직에서부터 최고 지도부 안에서 이미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대에 이방 여성, 귀화인, 기생, 적통 장자가 아닌 서자 출신 등 비주류들이고, 기업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사용하여 주류들이 하지 못한 유다 지파의 기업과 혈통을 이어주며,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층민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 모여서 사는 시대가 바로 기생 라합과 살마(살몬)가 시조가 되는 시사시대입니다. 주류가 중심이 되어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는 사람의 생각과 비주류라도 믿음을 먼저 보는 하나님의 뜻은 이처럼 현장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세상 역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나손의 아들 살마(살몬)와 훌의 아들 살마의 재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라합의 남편 살마(살몬)는 나손의 아들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살마(살몬)를 훌의 아들로 보려고 합니다.
필자가 살펴본 유다 지파의 족보는 시대적 격동기마다 계보가 끊어지고, 그때마다 계대결혼, 여성 상속, 상속자 대체 등으로 대를 이어서 내려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애굽 종살이 400년간 헤스론과 람 사이에 약 5대가 끊어졌고, 바알 숭배로 혼탁한 사사시대에도 살몬과 보아스 사이는 약 5대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왕조시대에 와서도 마태복음 족보는 남왕국 유다가 바알 신과 바알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때 3대(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가 족보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여호야긴)도 아들이 없을 것이 예고되었고(렘 22:30), 37년간 옥살이를 하여서(왕하 25:27, 렘 52:31), 친아들은 있을 수 없으므로 여성 상속법을 따라 대를 이은 것으로 봅니다. 여고냐의 후계자 스알디엘도 대가 끊어져서 계대결혼으로 스룹바벨이 그 계보를 이어야 했습니다.
포로기 바벨론 생활의 연속인 스룹바벨과 아비훗 사이도 약 5대, 여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로마가 통치했던 중세 암흑기에도 약 3~4대는 단절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룹바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같은 기간에 누가복음 족보는 대수가 20대이지만, 마태복음 족보는 11대뿐이기 때문에 그 차이만큼 족보가 단절된 것으로 봅니다. 같은 기간에 총 9대가 단절된 것으로 추정하고, 스룹바벨과 아비훗 사이의 누락 대수 5대의 중복을 제외하면 중세 암흑기는 약 4대가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4대 = 누가족보 20대 - 마태족보 11대 - 스룹바벨과 아비훗 사이 5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시대별로 추정한 족보의 단절 및 대수
시대 구분 | 족보 관련자 | 단절 대수 | 단절 관련기 | 관련추정연도(주전) | 비고 |
①애굽 종살이 | 람⇔아미나답 | 약 5대 | 약 400년 | 1876~1446 | 횃불언약의 성취 |
②광야 생활 (필자 사견) | 나손에서 살마(살몬)로 | 1대 교체 | 38.5년간 지연·사망 | 1406년 (1446~1406) | 약속의 땅 악평과 사망 (나손 아들 ⇨ 훌의 아들) |
③사사시대 혼란기 | 살마⇔보아스 | 약 5대 | 약 300년 | 1406~1106 | 바알 숭배와 사회 혼란 기업 없는 비루류 족보 |
④왕조시대 |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 3대 | 45년 | 841~796 | 바알 신과 바알 제도 도입 (10회 490년 희년법 불순종) |
⑤포로시대 초기 | 여고냐, 스알디엘 | 2대 | 약 50년 | 616~566 | 포로기 족보 단절 및 계대결혼 (여고냐~스룹바벨 탄생) |
⑥바벨론 포로 생활기 | 스룹바벨⇔아비훗 | 약 5대 | 70년~ 140년 | 586~444 | 나라 패망, 포로생활 |
⑦로마 및 중세 암흑기 (필자 사견) | 아비훗~예수 (불확실) | 스룹바벨~예수 탄생(⑥~⑦의 기간) 누가족보 11대, 마태족보 20대 (9대 = 누가 20대-마태 11대) |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대수 비교 (포로기 아비훗 이후) | ||
종합 평가 | 시대의 대표적 책임자 | 대수·기간·연도는 모두 추정된 근사치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족보에 오를 대표자를 탈락시켜 시대의 책임을 묻고 징계함 |
** ①~⑦에서 ②와 ⑦은 필자의 사견이며, 나머지는 <박윤식, 구속사 시리즈>를 참고로 필자가 임의로 요약한 것
표를 보면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우상을 섬기고, 반역하고, 이방 제도를 끌어들여 백성들이 큰 고통에 빠졌을 때마다 족보에 이름을 빼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시대적 죄과에 대하여 그 시대의 장자권자로서 족보에 이름이 오를 대표자에게 그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광야시대에 약속의 땅을 악평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된 징벌의 책임은 장자권자인 나손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손은 아들이 없거나, 있어도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는 살마(살몬)와 라합입니다. 이들은 생활 터전을 베들레헴에 두고 있고, 후손들은 보아스, 이새, 다윗까지 모두 베들레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살마(살몬)의 아버지 나손은 연고지가 베들레헴이라는 지리적 근거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가진 살마(살몬)의 아버지와 훌과 그 후손들은 아내도 베들레헴 에브라다, 후손들도 베들레헴에 살고 있다는 것이 역대기 족보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훌은 광야시대 초기 인물이고, 살마(살몬)는 가나안 진입 당시 정탐꾼이었으므로, 40년 간격은 연대기로 보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계보가 부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나손의 아들이 아니고, 훌의 아들로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야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징벌받은 기간은 족보에서 제외하여 온 전체 흐름에서 볼 때, 하나님의 구속사가 일관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헤스론의 직계자손인 훌의 아들 살마가 족보에 이름이 오른다고 보아야 합니다. 살마를 누가·마태·룻기 족보는 살몬이라고 하고 역대기 족보는 살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헤스론은 아브라함 이후 다윗까지 14대 족보에서 이새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장남 신분으로 적장자 계보입니다. 그러므로 헤스론과 베들레헴 조상 살마의 계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른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흠이 없는 계보입니다.
註)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는4대는 모두 차자이며, 유다의 아들은 엘·오난·셀라 중에 살아 있는 셀라가 혈연과 법통으로 적장자이지만, 계대결혼으로 태어난 베레스가 대를 잇는다. 그다음 대인 헤스론이 처음으로 적장자로서 계보에 오른다. 그다음 헤스론의 아들 람은 차남이며, 아미나답은 입적된 계보, 나손은 약속의 땅 진입을 거부한 징벌로 대를 잇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며, 살마와 보아스도 적장자는 아니다. 보아스도 본처가 있었을 것이므로 아들 오벳이 적장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고, 다윗은 막내(여덟째) 아들이므로 아버지 이새가 온전한 적장자다.
그리고 사사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살마(살몬)와 보아스, 이새와 다윗으로 이어지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족보상의 가계를 잇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다 지파의 직계자손으로 베들레헴에 토박이로 살아서 “베들레헴의 아비(조상)”로 불리고 있는 훌의 아들 살마(대상 2:51,54, 4:4)가 우선적으로 족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필자의 사견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른 살마(살몬)는 훌의 아들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수치로 말하면 그 가능성은 90% 정도입니다. 다만, 아직은 모두가 살마(살몬)가 나손의 아들로 알고 있고, 필자도 10% 정도는 불확실한 측면도 있어서 추후의 검토 과제로 남겨둡니다.
다만, 여기서는 살마(살몬)가 나손의 아들이든, 훌의 아들이든, 관계없이 생활 연고지는 베들레헴 사람이 맞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살마(살몬)의 족보 계승자는 베들레헴에 기업을 가진 보아스이기 때문입니다(마 1:5, 룻 4:11). 따라서 이후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온 사사시대의 사람들은 역대기 족보가 소개한 베들레헴 족족들(대상 2:51에서 4:4까지)로 보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의 인적, 지리적 특성
살마의 자손들은 베들레헴과 느도바 족속과...(대상 2:54)
역대기 족보에 이름이 오른 베들레헴 사람들을 찾아보니 이들은 모두 살마의 자손들이며, 거주지는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입니다. 또한,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의 자손들은 종족별로 구분된 집성촌(종족별 집단 거주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훌의 자손인 소발과 살마의 자손들이 살아온 지역을 찾아보면 대체로 이런 곳입니다.
①기랏 여아림(대상 2:50) : 기랏 여아림의 아비(조상)가 소발이며, 그 자손들 중 한 파가 소라 족속이다. 훌의 두 아들인 소발과 살마 중 소발의 자손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바알라로 알려진 기브온(수 9:17), 유다 지파의 성읍(수 15:9)이고, 단 지파가 라이스로 가기 전에 600명이 진을 쳤던 곳이다(삿 18:7~13). 블레셋이 보낸 법궤가 20년간 보관된 곳이다(삼상 6:21, 7:1,2).
②소라 (족속)(대상 2:50, 51~54, 4:2) : 유다 지파 성읍이나 단 지파가 처음 살다가 라이스로 옮겨갔고, 그 후 소발 종족과 살마 종족이 반반씩 섞여서 산 소라 종족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③갈렙 에브라다(대상 2:24) : 헤스론이 살다가 죽은 곳이다. 아들 갈렙의 아내 이름으로 나오는 에브랏(대상 2:19)과 훌의 부모 에브라다(대상 2:50, 4:4)는 같은 사람이다. 이 이름을 가진 여성이 사는 곳이 지명으로는 베들레헴이다(창 35:19, 미 5:2). 성경에서 에브랏과 에브라다는 베들레헴 외에 다른 곳에 나오지 않는다.
④베들레헴 : 베들레헴의 아비가 살마이다(대상 2:51,54).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며, 예루살렘 8~10km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미 5:2, 마 2:3). 지리적 기반과 인적 구성을 볼 때, ④베들레헴은 ①기랏 여아림, ②소라, ③갈렙 에브라다, ⑤느도바, ⑥마나핫, ⑦에담, ⑧야베스와 같은 지역 또는 지역 생활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⑤느도바 (족속)(대상 2:54) : 베들레헴 남동쪽 유다 성읍에 사는 살마의 자손들이다.
⑥므누훗, 마나핫(마하낫)(대상 2:52,54) : 유다 지경의 한 성읍으로 베나민 족속 일부가 거주(대상 8:6), 원주민은 마나핫 족속이며, 소발의 자손과 살마의 자손들이 반반씩 섞여 살던 곳이다.
⑦에담 (대상 4:3) : 유다 지파 거주지, 베들레헴 남쪽 3km 성읍, 에담 족속 이스르엘이 살던 곳은 예루살렘 남쪽 작은 성읍(수 15:56). 주위(베들레헴 9km)에는 드고아, 목축에 적당한 광야가 있다.
⑧야베스(대상 2:55) : 베들레헴 인근 지역이며, 서기관 출신인 겐 족속(또는 레갑 자손들)이 사는 곳이다.
훌의 두 아들 중 소발의 자손들이 산 곳이 ①기랏 여아림과 ②소라입니다. 여기는 유다 지파의 땅이었지만, 단 지파가 라이스로 이주하기 전후로 살던 곳이며, 접경 지역이라 블레셋 침략이 자주 있었습니다. 기랏 여아림은 법궤가 20년간 보관되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①기랏 여아림과 ②소라, 그리고 소발 자손과 살마 자손이 절반씩 섞여 사는 마나핫(므누훗) 지역을 제외하면, ③갈렙 에브라다, ④베들레헴, ⑤마나핫, ⑥에담, 그리고 서기관인 겐 족속들이 사는 ⑦야베스까지 모두 베들레헴과 관련된 인근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대체로 산지(수 15:48~60)나 황무지(삿 1:16), 또는 지파별 경계가 불확실한 접경 지역(대상 8:6)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갈렙의 후손들인 소발과 살마에 대한 소개는 다른 일반 족보와 비교하여 특징이 있습니다. 갈렙의 후손들은 족보에서 지명부터 소개하고, 거기에 혈통을 알리는 족속 또는 종족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개역 성경은 족속으로, 개역 개정판은 동족으로 표기함). 역대기 족보에서 갈렙의 후손들에게 종족이라는 표현은 15회가 넘게 나옵니다. 이것은 갈렙의 자손들이 유다 지파라도 주류들과는 달리 인적, 지역적 특징이 다르고, 이방 족속과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같은 족보라도 역대상 2:3~49까지 나오는 유다 지파의 자손들은 “낳다”, “낳다”로, 3장에 나오는 다윗의 계보는 “아들이요”, “아들이요”라고 간단하게 이름만 소개합니다. 그러나 다윗 후손의 족보인 역대상 3장을 제외하면, 같은 역대상 2:50부터 4장 23절까지 갈렙의 자손들은 “기랏 여아림의 아비(조상)”, “소발의 자손들”과 “베들레헴의 아비(조상)”와 “갈마의 자손들”이라고 하여 모두 지역과 종족을 구분하여 이름을 소개합니다. 이 족보 안에는 그니스 사람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후손들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기 족보에서 족속이나 종족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는 그 시대에 주류인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족속들을 구분하여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가나안 족속”, “겐 족속”, “모압 족속”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예입니다. 아니면 동족이라도 인구조사와 같이 12 지파별로 혈족을 분리하여 계수할 필요가 있을 때 "종족"이라고 했습니다(민 26:22). 그러므로 유다 지파 안에 있는 베들레헴 종족을 유다 지파와 분리하여, 그 종족을 별도로 알리고 족보를 소개하는 것은 이들 신분이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곧 베들레헴 종족은 이스라엘 민족 또는 유다 지파 중에서도 주류와는 다른 특수(이질적)한 계층 또는 위치에 있는 혈통(자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마의 자손들은 신분이 특이하여 사사인 입다의 경우와 같이(삿 11:2)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류들이 사는 성읍이나 평지는 살지 못하고, 산지나 변방 외진 곳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 촌락 중의 한 지역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여기서 촌락은 “하쪼레르”로 작은 마을을 뜻합니다.
살마의 자손들에서 이런 현상을 보고 톰슨 성경 주석자는 역대상 2:42~49(49절은 50절의 오기 추정)는 바벨론 추방 이전(포로기 이전)의 갈렙 족속이고, 2:50~55는 바벨론 추방 이후(포로기 귀환 후)의 족속으로 나누어진다고 했습니다(톰슨 성경, 1986년, 기독지혜사, 612쪽). 그런데 헤스론은 이미 베들레헴의 다른 이름인 에브라다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대상 2:24). 갈렙의 재혼한 아내 이름도 베들레헴 지명과 관련된 에브랏(에브라다)입니다. 갈렙과 에브랏이 낳은 아들 훌과 손자 브사렐은(대상 2:19,20) 출애굽 초기 시대 인물이며(출 31:2), 그 훌의 아들이 바로 베들헴의 조상 살마입니다(대상2:51,53).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포로기 이전에 헤스론이 살다가 죽어 장사된 곳으로 지역적 연고가 있었고, 그 후손들도 혈연과 지연으로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포로기 이후에도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귀환한 살마의 후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기생 라합, 작은 베들레헴, 베들레헴 사람들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눅 3:31,3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미 5:2). 작은 마을이라서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촌락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베들레헴은 이처럼 가장 작은 마을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으므로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닙니다(마 2:6).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를 열은 유다 지파의 시조는 이방 여성이자 기생인 라합입니다(마 1:5). 그 남편은 살몬이며, 후손은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 보아스입니다(룻 2:1). 그런데 역대기 족보는 라합의 이름이 없으며, 족보에 보아스의 이름은 있으나 다른 성경에서 행적은 소개가 없습니다. 곧 라합과 보아스는 족보만이 아니고 구약 전체에서 홀대를 받습니다.
구약에서 이름 한번 오르지 않고, 천년의 세월이 지난 신약시대에 와서야 마태·누가복음 족보에서 라합과 살몬, 그리고 보아스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라합과 살몬, 그리고 룻과 보아스, 특히 살마(살몬)과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들어간 인물들인데 성경에서 이름과 행적이 없습니다. 다만, 살마(살몬)는 역대기 족보에서, 보아스는 역대기 족보에 이름만 소개합니다. 보아스는 룻기에서 중심 인물인데 다른 곳에는 행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족장시대의 아브라함, 왕조시대의 다윗, 포로기 이후 시대의 스룹바벨은 성경에서 이름도 자주 나오고 주요 행적도 알려줍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 살몬과 라합, 사사시대의 주역이었던 룻과 보아스는 이름도 행적도 없습니다. 족보상으로 한 시대의 시조인 살몬, 족보상 한 시대에 주역인 보아스가 다른 시대의 시조나 중심 인물과는 달리 다른 곳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필자는 이렇게도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역대기 족보를 에스라보다 열왕기를 쓴 기자가 기록했다면, 라합과 살몬, 베들레헴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달랐을 것으로 봅니다. 에스라는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고,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유다 지파의 레위 지파를 중심으로 그 역할과 특징을 부각시켜 역대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바벨론 포로가 된 연유가 이스라엘 지도자와 백성들이 지은 죄악 때문이므로, 그에 따른 형벌이 포로 생활이라는 점을 알려가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왕기 기자가 족보를 기록하였다면, 기생 라합의 가족들과 이방 족속들, 그리고 서자들과 같이 사회적 냉대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베들레헴 사람들에 대한 소개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역대기 족보는 갈렙이 후처 또는 첩에게 태어난 자손들이나 베들레헴의 아비(조상) 살마와 그 후손들의 족보는 좀 다르게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이 사람을 차별하고 푸대접을 하나요? 하나님이 그렇게 했을까요?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지요. 하나님이 구속사를 그렇게 인도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름 있는 사람들, 곧 주류들이 이끌어가는 사사시대 사회는 진멸해야 할 이방 족속들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각기 자기 소견대로 살아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주류들이 진멸해야 할 바알 신과 바알 풍습을 받아드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도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주류들은 사사시대의 사사, 입다가 당한 것처럼(삿 11:2) 이방 족속은 물론 첩의 자손에게도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두 아내가 있을 경우, 미움을 받는 아내라도 그의 아들이 장자이면 두 몫을 주라고 하였으므로(신 21:15~17), 이를 유추 해석하면 서자라도 기업을 분배하고 상속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주류 사회는 서자를 홀대했습니다. 계대결혼이나 서자 출신은 공동체에서 배제하기를 좋아하며, 주류들은 직업을 보고도 세리 같은 사람들은 저급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들은 정통이라고 신분을 추켜세우는 부류들입니다(눅 18:10,11).
그런데 이러한 사회의 주류들은 스스로 높이는 교만과 일탈로 인하여 하나님의 법을 멀리하기 때문에 비주류들(이방인, 여성, 계대결혼, 첩, 서자 등)이 없으면, 그들은 족보도 이어내지를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깊이 들여다보면 주류와 적통 계보는 여호와께 범죄하여 계보를 끊어지게 하는 사람들이고, 그 끊어진 계보에 씨와 기업을 어어 주고, 믿음을 지켜주는 자는 그 시대에 주류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비주류들입니다.
라합과 살마(살몬)는 믿음에 합당한 예우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하나님은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비밀리*에 뽑아서(수 2:1), 그 사회의 비주류들을 중심으로 사사시대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족보에 이름이 오를 수 없는 여성으로, 기생 신분으로, 이방 족속으로, 그리고 기업도 없이 그 사회에서 제일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밑바닥 백성들을 선택하여 사사시대의 주역으로 삼으시고, 그 시대에 필요한 쓰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기자는 이런 라합의 행위를 믿음의 본보기로 들고 있습니다(히 11:31, 약 2:2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한 행위가 수반된 믿음을 가진 자가 우선하여 이름이 오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장자와 차자, 적자와 서자, 주류와 비주류의 차별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도 하지 않고, 대를 잇는데 이바지했거나 관계가 있으면, 여성 이름도 족보에 기록합니다.
* 註) 살마(살몬)를 정탐꾼으로 뽑을 때 여호수아는 가만히 보내서 여리고성을 정탐하게 한다(수 2:1). 여기서 “가만히”는 히브리어 “헤레쉬(또는 하라쉬)”로 ‘조용히’, ‘엄밀하게’라는 말이며, “엿보다”는 “라아”로 ‘살피다’, ‘관찰하다’라는 뜻이다. 엿보는 것은 여리고 성을 탐지하는 비밀 첩보원의 역할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가만히 보낸 것은 살몬(살마)을 정탐꾼을 뽑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알리지 않고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살마(살몬)가 그 당시 공동체의 행진을 주도하던 주류가 아니고,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어서 주변 지리나 정보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탐꾼으로 뽑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류가 아니므로 공동체에서 있을 수 있는 불만을 염려에서 대표를 비공개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개역 개정 성경은 여호수아 2:1에서 “엿보다”는 두고, “가만히(헤레쉬)”는 단어를 빼버리고 번역하였다. 아마도 정탐꾼을 선발하는 숨은 뜻을 모르므로, “가만히(비밀)”라는 말은 어색하다고 보아 빼버린 번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족보를 말하면서 기생 라합이 나오면, “라합은 이방 여성이지만, 족보에 이름이 들어간 것은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 진입 당시 라합의 집에서 내린 신호용 붉을 줄(수 2:21)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증표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풀이나 전언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 말하고 라합의 행위나 삶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라합은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행위를 보이며,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진입할 수 있도록 도웁니다. 그래서 라합은 자기 가족들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라합과 가족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이 없습니다. 유대 지파의 주류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사회는 그러한 라합을 어떻게 대해 주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기업이 없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없으면, 희년법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말하면 순수해야 할 복음에 잡티(지프라기)가 끼어든 세상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라합은 이방 여성이자, 기생이므로 살마(살몬)에게서 낳은 자손들은 윤리 도덕적으로도 순수 혈통으로 볼 수가 없다고 보고, 아예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도저히 이름이 오를 수가 없는 이방 여성, 직업이 기생인 라합”에 대해서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남편 살마(살몬)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버립니다. 여기에 이들이 살아온 베들레헴은 그 당시에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불모지라서 주류들 사회에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는 지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사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주류들은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 장소를 모르고 소동을 일으킵니다(마 2:3). 하나님은 약한 것들을 들어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고전 1:27).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인 라합과 살마(살몬)가 어디에서 거주지를 두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근거가 미비하여 찾지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라합과 살마(살몬)는 한 사시시대를 열은 시조이므로,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족장시대 아브라함, 왕조시대 다윗이 이스라엘의 시조나 대표 인물이라고 드러내고 싶다면, 사사사대의 시조인 살몬과 라합에 대해서도 아브라함과 다윗처럼 대하지는 않더라도, 사사대의 시조라는 신분에 합당한 예우는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라합과 살마(살몬)를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들이 시대에 맞는 쓰임을 받도록 인도를 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밑바닥에서 살아온 라합의 후손을 통하여 속량(고엘, 구원자)의 본보기를 보여준 보아스, 다윗 왕국을 일으킨 다윗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업도 없이 베들레헴에서 밑바닥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시조로, 한 시대의 주역으로 쓰임을 받게 한 라합과 살마(살몬)는 그를 인정하여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라합과 살마의 후손인 룻과 보아스가 희년법 무르기로 기업을 되찾아서 쇠락하는 가계와 사사시대를 지키고, 이어서 다윗 왕국을 탄생시킨 구속사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 족보를 따라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눅 2:9)를 알 수 있고,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야영하면서도 아기 예수를 만나는 목동들처럼(눅 2:8), 다시 오실 구세주를 영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