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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 출처 : 정요한목사님 대하설교 ' [347 마태 5:17-48 너희도 온전하라]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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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18, 율법의 파기자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선지자들과 같은 단순한 율법의 대언자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지니신 율법의 제정자이시자 율법의 수여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래의 말씀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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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17절上: 내가 (구약의)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
→ 17절 상반절과 같은 표현은, 예수님께서 당시 추종자들에 의해 율법 폐기론자로 오해받고 계셨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효화 시키신 것으로 또는,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분리시키시거나 단절시키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편협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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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下: ...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율법 폐기론자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다.
18절上: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 18절 앞부분의 ‘진실로’ 는 헬라어로 ‘아멘’ 인데, ‘신실하다, 믿을 수 있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의미를 가진 아멘을 사용하신 것은 18절의 말씀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다. 즉, 예수님의 독특한 강조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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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율법의 일점 일획’ 이라는 표현은, 구약 율법 가운데 아무리 작은 율법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모두가 중요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임을,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 주사랑교회 성도들은 신약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구약의 말씀들 역시 중요하며, 구약과 신약은 동일한 하나님의 절대 진리의 말씀이라는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구약의 말씀을 너무나 소홀히 여기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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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20, 율법 준수의 철저성과 천국 시민에게 요구되는 ‘의’ 의 수준
지난 시간, 크리스천은 소금과 같이 맛을 내는 삶, 등불과 같이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서 세상 사람들을 전도해야 함을 배웠다. 이제 살펴볼 19-20절은, 그러한 삶의 수준, 의의 수준을 제시하시는 내용이다. 크리스천의 맛을 내는 삶의 수준, 크리스천의 빛을 내는 삶의 수준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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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율법, 하나님의 말씀)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지극히 작은 율법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전부를)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 가운데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율법이 있는 반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덜 중요한 율법도 있다는 말씀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지적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모든 율법은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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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떤 인간적 욕심이나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가 아니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하나라도 소홀히 여길 것이 없고, 전부를 성실히 가르치고, 전부를 성실히 배우며, 전부를 성실히 지켜 행하려는 태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오늘날에도 그릇된 교회 전통, 인간적인 안목과 욕심에 따라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은 취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말씀은 버리는! 말씀을 취사 선택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진 종교인들과 신앙인들이 아주 많이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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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절을 통해 주님께서는, 각기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이 다름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다. 말씀에 대한 성실도에 따라서 천국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말씀에 대한 성실도에 따라서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다. 19절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은 소홀히 여길 것이 없으므로 모든 율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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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당시 율법교사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천국의 왕께서, 천국의 주인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구절들은 반드시 구원론에 포함시켜야 한다. 20절에서 ‘너희 의’ 는 13-16절에서 언급된 소금과 빛으로서의 선한 행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율법에 순종하는 선한 행실이 당시의 율법교사들보다 더 나아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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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경은, 내면에만 머물러있는 의가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와 겉으로 표출되는 참된 의를 말씀하고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삶의 기준을 교회 성장이라는 욕심으로 하향평준화 시켜서는 안 된다. 에베소서 4:13의 말씀과 같이 성도의 삶의 수준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두고, 예수님의 온전하심을 본받으려고 힘쓰고 애쓰도록 지도하고 안내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겉으로 표출되는 의로움이 없다면! 그런 거짓 믿음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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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48, 새로운 교훈의 5개의 실례들
앞서 20절에서 언급되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높은 의가 무엇인지를 5개의 명제를 통하여 설명하시는 내용이다. 율법을 행함에 있어서 당시 율법 교사들보다 어떻게 더 나은 의로움을 가질 수 있는지를 예수님께서 설명하고 계시다. 우리에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하시는 매우 중요한 말씀들이 열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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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26, 살인에 대한 새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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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1절: 옛 사람에게 말한 바(구약 율법으로 말씀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절上: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
→ 여기서 의로운 분노는 제외되어야 한다. 예수님, 세례요한, 사도바울 등도 악한 자들에 대한! 악한 일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발하신 적이 있었다. 본문은 그런 정당한 사유가 있는 의로운 분노가 아닌, 개인의 미성숙한 감정이나 성격,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에서 비롯된 분노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미성숙한 감정의 대표적인 열매가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노를 발하고 화를 내는 모습이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경고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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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2절中: ... 형제에 대하여 ‘라가’ 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
→ ‘라가’ 의 의미는 ‘머리가 텅 빈 멍청이’ 이다. 인격을 모독, 모욕하는 심한 욕설이다.
22절下: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한국어 성경에는 점잖게 번역을 했지만 역시 심한 욕설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죽인 그 실제적인 살인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동기인 그 마음에까지 살인죄를 확대 적용하고 계시다. 정당한 이유없이 습관적으로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것까지 살인에 포함된다는 살인의 새로운 기준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고, 이러한 죄를 짓는 자가 받게 될 형벌이 지옥임을 또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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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3-26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예루살렘 성전 번제단에) 드리려다가(예배를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22절과 같은 죄 지은 일이 생각나거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어차피 그런 상태로 예배 드려봐야 받지 않으시니까)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예배)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22절과 같은 피해를 입은 자)와 함께 (인생)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하나님)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지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없이 (인간이 스스로)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지옥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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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대신 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오늘날 교회들이 자꾸 예수님께 성령님께 떠넘기고 있다. 22절과 같은 인격 모독의 죄, 인격 살인의 죄를 지었을 경우 반드시 피해자에게 급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선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26절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으면, 마치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옥에 가더라도 지옥에서 죄를 청산하면 다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가톨릭의 연옥 교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이런 해석의 여지는 전혀 없어진다. 왜냐면, ‘다 갚기’로 번역된 ‘아포도스’ 는 가정법 부정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현재나 미래에 갚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다 갚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즉, 22절과 같은 문제를 생전에 미리 해결해야만이 지옥의 형벌을 벗어날 수 있음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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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32, 간음에 대한 새교훈
앞선 21-26절의 내용은, 십계명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라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었다. 이제 살펴볼 27-32절은, 십계명 가운데서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 라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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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7-28절: 또 (제7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보는’ 이 가장 중요한 표현이다. ‘보는’ 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렛토’ 는 단순히 ‘보다’ 라는 의미 이상의 단어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다’ 라는 매우 적극적 의미의 단어이다. 즉,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여자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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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음욕을 품고 여자의 몸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자는 실제적 행위로는 십계명의 제7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경우도 이미 마음으로 7계명을 어긴 것이므로 역시 제7계명을 어긴 것으로 단호히 해석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 과연 십계명의 제7계명을 예수님의 이런 해석을 따라 지켜 행하고 있는 크리스천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레위기 20장17절 중반절에서도 살펴보았던 것처럼, 성행위 이전에 벌거벗은 것을 보는 것도 악한 성범죄라고 율법의 원어는 말씀해주고 있다. 또한, 벌거벗고 보여주는 것 역시도 동일한 악한 성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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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성들이 마치 벌거벗은 듯하게 자신의 몸이나 자신의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한 죄악이다. 그리고 지나친 화장 역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세상의 외모지상주의에 편승하는 모습은 자신도 세상과 같이 악하고 음란하며, 자신도 세상과 같이 쾌락주의자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어리석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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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29-30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오른눈과 오른손 같이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고 편리하며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범죄의 도구가 된다면! 과감히 그 범죄의 도구를 빼내버리고 찍어내버릴 단호한 각오를 해야 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질이! 어떤 자리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가! 범죄의 도구가 되고 있다면 과감히 찍어 내버릴 수 있는 단호함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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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절下: ...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음행과 간음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시면서 지옥에 던져진다는 경고의 말씀을 2번이나 강조하고 계시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도 정직하게 구원론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십계명의 제7계명의 참된 의미를 지키지 않는! 성적으로 타락해버린 현대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과연 구원의 반열에 이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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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 본문은 신명기 24:1-4의 율법을 말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위한 법적 보호장치 였다.
(보충설명: 당시는 여자를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맛없게 차린다든지, 코가 못생겼다든지, 누명을 뒤집어씌우기도 해서 아내를 언제든 내다 버렸다고 한다. 또, 여자는 직업을 가지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에 남편이나 아들 없이 혼자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별하거나 버림받거나 해서 남편도 아들도 없는 여자는 시댁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시대였고, 버림받았는데 이혼증서까지 없으면 재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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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아내를 함부로 버릴 수 없고, 반드시 공적으로 인정되는 법적 근거인 이혼증서를 공적으로 써주어야만 아내와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시 약자였던 여성들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24:1-4의 율법은,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보호명령 또는 경솔한 이혼 금지명령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 율법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공적으로 인정되는 법적근거, 이혼증서를 써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다는 본 의미가 전도된 그릇된 풍조를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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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시 인간의 욕심으로 이혼 금지법이 이혼 장려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오용(誤用: 잘못 사용함)을 해결하시기 위해 한 가지 규정을 추가하신다. 아내의 외도, 아내의 음행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혼할 수 없다는 규정을 추가하심으로써, 당시 약자였던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선언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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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경솔한 이혼과 경솔한 재혼을 경계하고 계시고, 배우자의 외도(外道)만이 유일한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