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은 다음 웹툰으로 누적 조회수 10억건에 이르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결국 20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웹툰을 본적도 없고 주위 사람 모두가 이 드라마를 볼 때도 드라마를 자주 즐기지 않기 때문에 나는 보지 않았었다. 이 드라마가 직장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란 것을 알았을 때 내용이 많이 답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보는데 크게는 지장 없었다. 물론 주제 특성상 그리고 부조리를 표현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건지 뭔지, 직장인의 좋은점보다는 나쁜점이 부각되었다. 사실 직장인이 되면 좋은점이 있나 싶기도 하다. 사회생활의 100퍼센트를 그대로 축소만 시킨 드라마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보는데 꽤나 기분이 나빴다. 부조리를 그대로 혹은 간단히 표현하긴 하지만 구성원들은 거의 다 거기에 순응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비판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이 작가가 여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지않았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 통틀어서 회사 직원으로 나오는 여자 캐릭터는 안영이, 선차장 두 명이다. 심지어 공장 현장직도 아닌 무역회사 사무실인데 말이다. 내가 생물학적 성별이 여자인 탓에 보면서 그러한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라는 사실이 그사람의 유일한 특징으로 잡히면서 선배에게 혼을 날때도, 승진을 해서 회사 생활을 할 때도 부각 되어 그것으로 스토리 텔링을 하는 것이다. 남자 회사원을 설명할 때는 전혀 육아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여자 회사원의 회사 생활에는 빠지지 않는 요소로 다뤄진다. 굉장히 능력있고 승진도 빠르게 한 선차장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게 현실이야라고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너무 그것만을 부각시킨 느낌이다. 여자 회사 직원도 장백기 처럼 야망이 있거나 오과장처럼 초최한 몰골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를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안에서 여자 캐릭터는 확실히 남자 캐릭터보다 성격이나 외모가 훨씬 제한적이다. 영업을 할 때 술과 여자가 빠지지 않는 점도 너무 뻔하고 이제는 그게 당연한 영업의 과정이 된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장면에선 오직 약자만이 불편해 한다. 을의 입장인 오과장의 모습이 그랬다. 어색해하지만 또 이건 아니다라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을이라 내색 안 하고 그저 호탕하게 웃는다.
다른 느낀점으로는 군대의 위계질서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회사 문화가 매우 저급해 보였다는 것이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표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부하 직원에게 막말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과 거래처에서 서로 갑질하기위해 기싸움하는 모습은 고학력의 허무함마저 보여주는 듯 싶었다. 방송 심의라는게 있으니 이런면은 현실이 드라마보다 독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와닿지는 않는다. 인상깊었던 점은 여기가 군대야??라고 극중 캐릭터가 소리 지르지만 내가 보기엔 군대랑 다를 게 없어 보였다는 사실이다. 전무, 부장, 과장, 대리, 사원, 인턴. 이 철저한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무슨 짓을 하든 다 군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윗사람이 하라면 무조건 해야하고 안 하고 다른 더 좋은 제안을 하면 불이익이 돌아오고, 신입 사원의 군기를 잡고 하는 모습은 적나라하게 군대를 연상시켰다. 회사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속물적인 회사생활 속에서 장그래라는 인물의 역할은 매우 특이하다. 약간 그 세계에 속하지 않는 인물을 이용해 그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묘사를 극대화한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면 뻔한 모습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게다가 의외로 순진한 모습과 더불어 강단있고 거침없는 모습이 평범한 회사원들과 대비된다. 바둑을 이용해 드라마를 진행하는 모습도 색다르고 더 한눈에 보였다. 흔히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웹툰과 함께 진행되는 대국이 웹툰 속 인간 생활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연출이 극적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바둑에 관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바둑에 대한 얘기가 전혀 뜬금 없지 않고 실생활에 잘 적용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드라마를 통해 아직 회사 경험이 없는 나는 회의 모습, 인턴 생활, 최종 면접 모습, 동기들끼리 서로를 대하는 모습 등을 자연스럽고 디테일하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정말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겪을 수 있었다. 회사에 모이는 인간들의 일처리 방식과 모든 말과 행동이 그사람만의 가치관과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주 잘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회사생활은 혼자하는게 아니야라는 오과장의 말 한마디로 회사생활의 모든 애환, 돌아가는 시스템, 벌어지는 일, 해결하는 방식 등이 이해가 됐다. 전에는 왜 그렇게 하는걸까 라는 불만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개인은 정말 필요없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팀이, 구성원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것을 생각하니 예비 취준생 입장에서 참 착잡해지는 드라마였다. 고생고생해서 취준하고 면접보고 들어간 곳이 당연히 꽃밭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똥밭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