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로 여는 오월
부산 환경미술협회 회장 정인성
봄의 분주한 다툼이 코로나19로 침체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람은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코로나19의 특성으로 스스로 억제하고 참아야 했다. 그렇게 참아왔던 일상의 절제가 한계에 도달한듯하다. 지금 미술계도 막혔던 체증이 뚫린 듯 전시회가 곳곳에서 활발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루고 취소되었던 전시회가 봄꽃이 피듯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몇몇 단체에서도 전시 준비를 위한 자료 모집이 진행되고 있고 이미 전시가 끝난 단체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인들의 단체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 등으로 전문성이 나누어진다. 미술이란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로서 그림, 조각, 건축, 공예, 서예 따위로, 공간예술, 조형예술 등으로 불린다. 또한, 미술의 종류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이 중 회화를 기준으로 한다면 미술 사조의 흐름에 따라 르네상스, 인상파, 야수파, 팝아트, 입체파 등으로 나뉠 수 있고 지역이나 국가별로 구분되는 서양화나 동양화가 있다. 그리는 대상에 따라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분류되며 기법의 종류에 따라 구상과 추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분류 중 가장 일반적으로는 물감의 종류에 따라 유화, 수채화, 아크릴화, 파스텔화 등의 구별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중심으로 동질의 작품을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룹을 구성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사례가 많다.
필자는 수채화를 주로 그린다. 그러다 보니 부산미술협회 안에서도 수채화 분과에 소속되어 있다. 얼마 전 부산시청 1.2.3전시실에서 부산미술협회 수채화 분과 회원전 <2021 부산수채화 페스티벌>이 개최되어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4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부산시청 2, 3전시실에서 <제43회 부산수채화협회 정기전>이 준비 중이다. 부산수채화협회는 1978년 6월에 부산을 중심으로 수채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모여 창립한 부산의 대표 수채화 단체이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수채화 단체는 한국수채화협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수채화협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채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로 구성된 단체로 1975년 9월에 창립하여 회원전을 비롯해 신인 발굴과 미술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한국수채화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수채화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수채화에 관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는 수채화 아카데미 행사와 더불어 1박 2일로 수채화 워크숍과 스케치 행사도 겸하고 있다. 또한, 회원과 비회원이 함께 전시를 펼치는 한국수채화 페스티벌도 있다. 올해는 <제13회 한국수채화 페스티벌>이 전주에 있는 한국 소리 문화의 전당 개관 20주년 기념을 겸한 행사로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펼쳐질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5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사) 한국수채화협회가 세계화 시대에 수채화의 대중화를 위하여 국내 수채화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수채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함께 아름다운 자연과 행복한 삶 속에서 수채화의 넉넉한 물맛과 감동을 함께 나누는 행사로 기획한 대규모 수채화 전시회이다.
수채화란 물감을 물에 풀어 종이에 그리는 그림을 말하고 유화는 안료顔料를 기름에 섞어 만든 물감을 이용해 캔버스canvas에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그러나 두 종류 다 서양화 범주에 속하며 최근 수채화 인구가 많이 늘어남으로써 그 수요에 걸맞게 수채화를 따로 분류하여 구분하고 있다. 유화와 수채화를 좀 더 세분화해보면 물과 기름을 사용하는 재료의 속성에 따라 작업의 방법도 반대인 경우가 크다. 딱 잘라서 이렇다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예술의 자유성을 무시하는 경향일지 몰라도 보편적으로 유화는 어둡게 그려서 밝은색을 덧칠하며 표현한다. 수채화는 종이의 밝은 부분을 잘 남겨야 하므로 점차 어두운 곳을 묘사하여 완성한다. 그래서 유화를 잘 그리는 화가는 흰색을 잘 쓰는 사람이며 수채화를 잘 그리는 화가는 종이의 흰 부분을 잘 남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수채화 초보자들의 작업을 지켜보면 초벌 작업에서 좋았던 느낌이 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묘사가 진행되면서 종이의 흰 부분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지나친 덧칠로 탁하고 어두운 부분이 많이 생겨나 그림을 망치는 예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어둠의 표현도 그냥 어둡게만 그려서는 안 된다. 어둠 속의 깊이나 색의 다양성이 내포되어야 미적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 방법은 오랜 습작을 통한 경험으로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 수채화는 대단히 어렵다. 대다수 사람은 유화보다도 쉬울 것이란 생각으로 수채화를 시작한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수채화가 유화의 밑그림이나 재료의 간편성으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그림으로 인식되어 온 탓이다. 또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미술 도구로 접하기가 쉬워 유화보다 질이 떨어지는 재료라 인식하는 사람도 많아서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입시 미술의 영향으로 유화물감을 사용하기 전의 기본적인 연습단계로 치부되어 그 입지가 좁아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채화를 그려본 사람이면 수채화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점성과 부피를 지니고 있어 질감 표현이 가능하며 고착성이 강한 유화물감과 달리 수채화는 물의 유동성에 따라 물감이 한곳에 장착하지 않고 변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과 물감의 혼색 농도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며 이때 종이 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물리적 현상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필자가 기획한 수채화 전시회에 수채화 작업을 하다가 유화 작업으로 전환한 선생님 몇 분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전시회 자료 마감날이 지나도 자료 제출이 없어 연락하니 한결같이 수채화가 어려워 작품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채화는 까다롭고 예민한 작업이다. 특히 수정이 힘들어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채화는 맑고 투명한 특성과 물맛을 잘 살려야만 만족한 그림이 나온다.
오월에는 수채화로 자연을 그리고 싶어진다. 산이나 들판에 나가보면 싱그러운 청춘의 물빛이 가득하다. 부는 바람결에 푸른 하늘과 신록의 상큼한 향기가 온몸을 적신다. 마을의 담장을 덮은 덩굴장미의 화려한 빛깔이나 길섶에 수줍게 숨은 들꽃의 순박한 색이 화가의 화폭을 가득 채워 준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은 풍경 화가가 하늘을 그림의 소재로 채택하지 않은 것은 가장 유용한 도구를 버려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에서 하늘은 빛의 근원이고 만물을 주관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오월은 높고 푸르른 하늘처럼 깊은 물빛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그것은 자연 앞에서 자연의 진실에 겸손해질 때 불현듯 일어서는 경이로운 미적 영감을 수채화의 물맛으로 표현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