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을 받으며 들깨를 턴다
털어낸 들깻단이 초가집만큼 쌓여도
작고 작은 들깨알은 겨우 서너 말
김 씨네 들깨 터는 일을 한나절 거들었더니
갓 짜낸 들기름을 생수병에 담아 선물한다
에티오피아 미인처럼 황금빛 갈색으로
황홀하게 춤추는 들깨의 여신들
허허, 요것이 커피 몇 잔 값이나 될까
돈 보고는 못히여
농사는 말여, 사람 보고 후대 보고 하는 거지
돈 보고는 못히여
돈만 보면 수입하고 사다 먹으면 편하지만
저 윗논 좀 봐, 1년 농사 안 지으니 말여
쑥대밭에 토양이 다 쓸겨나가잖어
그럼 강물은 어찌 되겄어
바다는 기후는 어찌 되겄어
난 말여, 내 손으로 정갈히 갈아지고 씨 뿌려서
파랗고 노랗게 피어나는 논밭을 걸을 때면 말여
참 보기 좋구나 사는 게 아름답구나
자연의 손길이 신비하고 감사하구나
마치 내가 위대한 예술가이고 시인인 양
내가 장하단 생각이 든단 말여, 하하하
토지가 망가지고 자연이 병들면 말여
사람인들 살아남을 길이 있간디
땅바닥에 벌어지는 일은 고스란히
사람에게 벌어지고 옮겨붙는단 말여
돈 안 된다고 농사꾼 푸대접하는 나라에
인간성인들 대접받을 수 있느냐 말여
도덕심은 수입이 되간디, 사는 맛은 수입이 되간디,
요새 이 지역 땅값 뛰고 나서 인간들 다 망가졌어
땅 팔아 부자 된 우리 동기들 인간성 다 베렸어
난 말여, 텔레비나 신문에 나와서 말여
나라 걱정에 선진화에 떠들어대는 놈들 말여
정치가나 지도층이나 배운 자들 보면 말여
안 믿어, 제 손발에 흙 안 묻힌 자들 난 안 믿어,
땅을 돌보지 않고 생명을 길러보지도 않고 말여
살림살이에 대한 아무 감도 없는 자들이 말여
오직 돈만 보고 돈 되는 길만 쫓는 자들이
뭐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겄냐 말여
40년 넘게 농사짓다 보니까 말여
세상에 젤 무서운 인간이 돈만 보는 인간이고
세상에 젤 무서운 병이 돈에 돌아버린 병이여
야아, 그나저나 들기름 빛이 곱다 고와
들깨 미인이 해 아래 춤추는 것만 같네 그려
땅과 하늘과 내 손이 공동 연출한 춤사위가
차암 곱네 그려
김 씨와 나는 텃밭의 채소를 뜯어다 들기름에 무쳐
벌써 세 병째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마시며
돈에 돈 놈들도 입맛은 살아 있어 갖고 말여
요 꼬소한 들기름 맛 한번 보면 팔라고 하것제
아예 유기농 브랜드 만들어 붙여 팔자고 하겄제
지랄, 돈 보고 했으면 들깨 미인의 춤이 보이것냐
안 팔어,
난 안 팔어,
죽어도 안 팔어!
아니 근디 당신은 왜 가만~히 있능겨
당신 팔겨?
아차, 나도 안~팔어!
김 씨와 나는 어깨동무를 걸고서
안 팔어, 오른팔 왼팔 내지르며
안 팔어, 선창 복창 후렴까지 붙여 가며
노을 지는 농로 길을 전문 시위꾼처럼
들깨 여신의 춤사위로 걸어 나갔다
..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