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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만남입니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막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부모와 형제자매를 만나고 점점 자라면서 잘랄루딘 루미가 ‘당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삼라만상 우주와 만납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랄루딘 루미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이 세상 삼라만상 우주와 만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시인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가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인지를 체득하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냅니다. 시인은 ‘만남’을 통해 감동할 때마다 자신의 어깨 위에 신의 손길이 얹힘을 뜨겁게 느낍니다. 이처럼 신의 손길이 뜨겁게 느껴지는 감동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의 경우,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고마워하고 행복해 하고 사랑할 때 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게 저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 실베트가 “머리에서 나온 것은 머리로, 가슴에서 나온 것은 가슴으로 전해진다.”고 했듯이 이 축복은 가슴으로 전해져 옵니다. 시는 손끝이나 머리에서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서 태어납니다. 저 깊고 깊은 심연의 끝에서 솟아오르는 싱싱한 샘물처럼 심장에서 태어납니다. 헬렌 켈러는 만약에 자기에게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멀어 우주를 전혀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도 이러한 기적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영화 ‘블랙’이나 ‘어둠 속의 댄서’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모두 가슴으로 삶의 기적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허형만, 「영혼의 눈」 전문
저의 ‘영혼의 눈’은 맑고 깨끗하게 닦여 있는가. 이것이 저의 하루를 시작하는 첫 물음입니다. 안경알을 닦듯 영혼의 눈도 잘 닦여 있어야 새로운 하루, 새로운 우주와 만날 수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새로운 ‘만남’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까.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모은다면, 그들은 함께 기적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 스타벅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의 신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는데도 이러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한 편의 시도 이처럼 같은 목표를 가진 우주와의 협동이 없으면 탄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시와 삶 속에서 세 가지 신비에 감격하곤 합니다. 그 세 가지 신비란 첫째는 빛과 소리의 신비요, 둘째는 만남의 신비요, 셋째는 은총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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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솔벵에 갔네
이백 십여 년 전 세워진 산타 아이네스 성당에 들어가
잠시 묵주기도를 드리고 마당에 나오니
뜨락 한쪽 양귀비꽃이 나를 환히 반겨주었네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별빛과 안개를 털어냈을까
몇 광년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었을까
양귀비꽃은 나의 볼에 입을 맞추어주었네
은은한 감촉이 촉촉했네
나는 눈을 감았네
이 눈물겨운 만남의 신비를 어찌할까
사랑이여
잠시나마 그대와 함께 있기 위하여
칠십 평생이 걸렸구나
-허형만, 「양귀비꽃」 전문
파도를 보면
내 안에 불이 붙는다.
내 쓸쓸함에 기대어
알몸으로 부딪치며 으깨지며
망망대해
하이얗게 눈물꽃 이워내는
파도를 보면
아, 우리네 삶이란
눈물처럼 따뜻한 희망인 것을.
-허형만, 「파도」 전문
제4강 시쓰기 입문 및 시창작을 위한 명상 - 허형만 교수
우주 앞에 겸손한 시인의 시가 좋은 시입니다
우리에게 봉사하고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몸이 낮추어지고 눈물이 납니다. 저의 시는 우선 이러한 생각의 통로를 거쳐 탄생합니다. 탄생한다? 시가 씌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탄생한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보다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각으로 나날을 고맙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감동적인 글을 통해 첫째,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둘째,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셋째,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고 당부합니다. 시인의 자세가 바로 이래야 한다고, 시인은 이 세 가지 당부를 잊어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의 시는, 어떻게 하면 잘 쓸까, 어떻게 하면 잘 만들까, 고민했던 과거의 시 쓰기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탄생시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물론 시 한 편을 탄생시키기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리고 우리에게 쉼 없이 봉사하고 있는 우주 앞에 겸손해 하면서 말입니다.
지리산 깊은 터에서
아흔 줄 어머니
고구마 덩굴을 들어 올리신다
줄줄이 딸려 나와 세상을 밝히는
저 붉은 고구마 앞에 나는
두 손 모아 절한다
바로 옆 참깨 밭에서
잘 여문 어머니 독경 소리가
우루루 쏟아진다
그 독경 소리 앞에서도 나는
두 손 모아 절한다
그렇게 한나절이 갔다
-허형만, 「절하다」 전문
저는 늘 생각합니다. 우주 앞에 겸손한 시가 좋은 시라고. 저는 저의 생애에서 선생을 40년이나 했지만 학생들 앞에서 더욱 겸손하려 했고, 더더욱 시에서는 절대 가르치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시에는 훈계성(訓戒性)이라거나 득도연(得道然) 하는 게 없습니다. 저는 우주로부터 그리 할 만한 자격이나 능력을 아예 부여받지 못
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에 나와 붉은빛을 뿜어내는 저 고구마 덩굴의 찬란함 앞에 두 손 모아 절을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잘 여문 참깨가 스스로 우루루 쏟아지는 소리, 한 생의 절정에 이른 그 생명의 환희 앞에 역시 두 손 모아 절을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길을 가다가 오래된 적송이나 인간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묵묵히 드러내 보이며 소담스럽게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 앞에서, 그리고 겨울 끝자락 땅바닥을 기며 피어나는 봄까치꽃 앞에서, 두 손 모아 절을 합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위의 「절하다」를 비롯하여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낳습니다.
이 나이가 되니
땅바닥의 봄까치꽃 앞에서
무릎을 꺾고 고개를 조아리게 되네
봄까치꽃 품에 잠이 든
어린 햇살에도 고개를 조아리게 되네
누군가 말했지
고개를 조아리는 자만이
배알문을 들어갈 수 있다고
배알문에 들면
마음을 낮추는 下心을 배우게 된다고
그래, 세상을 건너가노라면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배알문 아닌 곳 어디 있으랴 싶으니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개를 조아릴 줄 아는 철이 드나 보네
-허형만, 「下心」 전문
문학은 사랑입니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다.”
2013년 1월 24일에 개봉한 로저 도널드손 감독, 안소니 홉킨스 주연(버트 먼로 역)의 감동 실화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인디언’은 바이크(오토바이)의 브랜드 이름으로 1920년산 시속 54마일의 구형 바이크를 말합니다.
1962년 63세의 나이에 1920년식 ‘인디언’이라는 낡은 바이크를 본인이 직접 개조하여,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달려보고 싶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보너빌 스피드웨이라고 불리는 소금평야에서 열리는 바이크 대회에 참가합니다. 주인공은 보너빌 대회에 아홉 번이나 참가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 번이나 세우고, 68세 때인 1967년에는 47년 된 바이크로 1,000CC 급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르지요. 주위에서 다들 너무 늙었다고 핀잔과 우려의 목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이렇게 바꿔봅니다.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
세상은 ‘열려있는 책’, 즉 ‘오픈 북(Open Book)'이지요. 이 ’오픈 북(Open Book)'은 재즈 피아노의 대가인 프레드 허쉬가 가장 최근에 낸 스튜디오 앨범 이름입니다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은 눈뜬 자에게만 보이는 열려있는 책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늘 마음속에 품고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중에 ‘문학’이 있습니다. 『훈계의 책』은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고 훈계합니다. ‘문학’은 바로 이 훈계를 받아들인 결과물인 정신적 자산이지요.
문학(文學)의 ‘문(文)’이라는 문자는 본래 사람의 몸에 심장을 그려 넣은 모습입니다. 즉, ‘문(文)’은 사람의 몸에 주술적 그림을 그려 넣었던 문화를 알게 하는 중요한 단서인데요, 좀더 자세히 말하면, 죽은 사람의 가슴에 심장을 그려 넣음으로써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의 한 과정이었지요.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글자로서의 기록이 아닌 주술적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당사자들의 모든 감정과 애원과 느낌이 듬뿍 담긴 그림으로 후일 인간의 모든 기록을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기록 중에서도 감성이 담긴 기록을 말하는 ‘문학(文學)’인 것입니다. 이 ‘문학’의 장르는 일반적으로 시, 소설, 수필, 평론, 희곡, 시나리오 등으로 나누어 말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본래의 ‘문(文)’이라는 문자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은 역시 시입니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 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허형만, 「겨울 들판을 거닐며」 전문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허형만, 「뒷굽」 전문
제6강 시쓰기 입문 및 시창작을 위한 명상 - 허형만 교수
좋은 시를 쓰려면
좋은 시를 쓰려면 어린이의 마음,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합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는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문자도 없는 백지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곧 아이들이 장차 커서 발휘하게 될 재능의 종류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지요.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시를 탄생시키는데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시인은 태어날 때의 ‘백지상태’로 우주를 보고 우주와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봄철 이 나라 산천 가득 돋아나는 쑥이 목성(천문학의 기호 R)의 정기를 받고 자란다는 사실, 목성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가장 큰 효력이 있는 천체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시 속에서 숨 쉬게 할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늘 어린애의 마음, 어린애의 눈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은 시는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시는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후려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손주의 커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손주로부터 나의 시에 대한 ‘통변(通變)’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통하여 변하는 정신, 이것이야말로 시가 갖추어야 할 핵심이니까요. 이 ‘통변’의 정신을 가르치는 어린아이의 천진성과 맑고 깨끗한 눈망울이 아니고서는 글자로 씌어지지 않고 글로 표현되지 않은 살아 숨 쉬는 글, ‘不字不書之文’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나도 어느덧 하래비가 되어
손주 녀석 사진을 품고 다닌다
방글방글 입으로 웃고
싱글싱글 눈으로 웃고
앙글앙글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라니
배내똥도 향그러운
두 달도 채 안 된 손주 녀석
덕분에 이 하래비 또한
틈만 나면
남몰래 상글방글 웃는 모습이라니
-허형만, 「하래비」 전문
두 달도 채 안 된 어린아이의 웃음은 얼마나 맑고 향기로운지요. 먼지 한 점도 묻지 않은 순수의 결정체를 보며 저도 어린아이가 되어 틈만 나면 그 웃음을 따라 배웠습니다. 저는 하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인 손주에게 “아가의 눈동자는/밤 하늘의 별보다 더 빛나고/아가의 웃음은/한낮의 햇살보다 더 환합니다/아가의 입에선/늘 향내가 풍기고/아가의 손은/늘 신비로운 꿈을 쥐었다 폅니다”라고 「아가를 위한 노래」를 바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 어린아이의 눈으로 우주와 접할 때 비로소 살아 영동(靈動)하는 운치, 즉 생취(生趣)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태어나는 시야말로 감동의 기운을 일으키며 그 시를 읽는 독자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스킨십의 효과를 줍니다. 미각과 같이 촉각도 8가지 이상의 자극을 가진 복합체입니다. 촉각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는 손가락 끝, 입술, 혀 등에 가장 많은 수용체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촉각의 감지 효과를 노리는 스킨십은 시에서 더 다양하고 깊고 은은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렸을 적 서당에 다닐 때 어머니, 아버지는 저의 이름 부르기가 어려웠던지 꼭 “횡만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 ‘횡만이’ 시절의 눈과 마음이 녹아든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떠한가요?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샌 후
얘야! 문 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허형만, 「아버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