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바보 / 양선례
교감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발령이 났다. 주변에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현재 교감 선생님도 겨우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했다. 2년 선배라는 것 외에는 정보가 없었다. 베일에 싸인 그분이 궁금하여 카톡 프로필을 열었다. 수백 장의 사진이 있었으나 정작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일대기를 꿸 수 있을 정도로 손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만 가득했다. 손녀가 그리 이쁜가? 내 눈엔 다 거기서 거기구만.
드디어 5월 하순에 나도 첫 손자를 보았다. 하루에 평균 100장 가까운 사진과 영상이 사돈댁과 우리 집 구성원이 들어간 가족 앨범에 올라온다. 비슷한 장면이 스무 장 넘게 연속될 때도 많다. 좀 정선하여 올리면 안 되느냐는 푸념은 귓등으로 넘긴다. 순간이 중요하기에 버리기 아깝단다. 팔과 다리를 큰 대자로 펼치고 자거나 그 작은 입을 벌려 하품하고,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바락바락 우는 건 기본이다. 발가벗은 채 목에 튜브를 끼고 엉덩이와 발가락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욕조에서 목욕하거나, 응가를 하려고 몇 번에 걸쳐 힘주는 영상도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를 옆에서 같이 키우는 듯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다. 손자의 사생활(?)이라고는 없다. 이제는 잠시라도 영상이 올라오지 않으면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길들여진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실감이 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제주도로 날아갔다. 하필 휴가철이라서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쓸어 담았다. 아들이 사는 데는 시장이나 마트가 멀어서 부침가루 하나만 사려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부엌으로 직행한 것이 일주일 내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소연할 친구도,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지인이 전혀 없는 타지에서 이만큼이나 아이를 키운 아들과 며느리가 기특했다. 있는 동안이라도 잘해 주고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아들 부부는 중산간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풀벌레 소리가 보성에 있는 주말주택보다 더 요란했다. 2층 옥상에서는 멀리 푸른 제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이라서 에어컨 아래서 손자랑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피서법이었다.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아들은 그새 아이 돌보미 선수가 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먹는 우유의 양, 잠자는 시각, 배변 횟수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며느리와 공유했다. 부부가 시간을 달리하여 보살폈다. 게다가 낮에는 아이가 자고 있어도 커튼을 걷고 조명을 환하게 켰다. 반대로 밤에는 칭얼거려서 안아 달래거나, 기저귀를 갈 때도 간접 조명만 켜서 아이가 낮과 밤을 빨리 구분하도록 도왔다.
아들 내외가 어찌나 손자를 살뜰히 살피는지 대견했다. 모르는 것은 너튜브에서 찾아보고 조리원 동기들과도 수시로 연락한다고 했다. 걸핏하면 딸꾹질하는 손자에게 보리차를 먹이라고 했더니, 6개월 이전에는 우유 말고는 아무 것도 주지 말라고 소아과 의사가 그랬단다. 뒤꼭지가 납작하여 눕혀서 재우면 어떠냐니까 질식사 위험이 있어서 그러면 안 된단다. 엄지손가락을 빠는 걸 보고, 말려야 한다니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서 더 두고 보다가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그때 제재해도 늦지 않단다. 어려서 그런 버릇은 오히려 뇌 발달에 좋다나, 어쩐다나. 아이를 셋이나 기른 경험은 어느새 낡은 지식이 되어 버렸지만 그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이도 없는 녀석이 잇몸이 활짝 드러나게 웃으면 마음이 녹았다. 빙글빙글 도는 모빌을 보고 눈을 반짝이고 입을 모아 옹알이라도 하면 ‘세상에 어찌 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우리 집에 왔을까?’ 감탄했다. 배고플 때면 눈썹이 빨갛게 되도록 얼굴 가득 인상을 쓰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입으로는 우유를 먹고, 밑으로는 똥을 천연덕스럽게 쌌다.
‘손자를 보면서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되었고, 새싹 싱그럽게 돋는 넓은 초원이 되었고, 눈부신 햇살이 가득 넘치는 하늘이 되었다.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데 늙는 것이 어찌 다 아쉽고 쓸쓸하기만 하랴.’ 오래전에 조정래의 『누구나 홀로 선 나무』에서 인상적으로 본 구절이다. 꽃밭과 초원, 하늘까지는 아직 못 봤지만 큰 선물은 확실하다.
우리 손자, 나에게나 이쁘지 다른 사람 눈에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주 잘 알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는 영상과 사진을 기회만 되면 지인에게도 보여 준다. 하루에 한 번씩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은 걸 겨우 꾹꾹 누른다. 친해지고 나서야 뭔 사진을 그리도 많이 올려 놓았냐고 물었더니 "하이고, 아마 선생님은 더 할 것이네요."라고 답하던 교감 선생님 말이 예언이 되었다. 손자 태어난 지 백일 만에 나는 확실한 손자 바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