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분석요법으로 병고病苦 해결
/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근래에 와서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동양의 도(道)와 서양의 정신분석이론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동양의 도와 서양의 정신분석이 점차 접근되고 있고 통합되어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할 ‘자기분석(Self-Analysis)은 서양의 정신분석이론 중의 하나이지만 그 분석과정은 동양의 수도(修道)의 과정과 유사하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자기성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서양의 정신과 치료에는 크게 나누어 약물로써 정신적 안정과 신체적 기능의 회복을 가져오는 약물치료와 정신분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신치료가 있다. 정신분석은 모든 정신치료의 가장 근간이 되는 치료법으로 환자와 의사와의 깊은 대화를 통하여 환자의 무의식적 갈등을 의식화시킴으로써 증상을 해소시키고 자신에 대한 이해 및 인식의 증대를 통해 인격적인 성숙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환자의 경제적 여유와 시간을 크게 필요로 하고 또한 치료를 하려는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풍부한 경험과 원숙한 인격을 갖춘 분석가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분석의 제약을 줄일 수 있는 정신치료가 여러 가지 개발되었는데 행동치료, 단기치료, 가족치료, 집단치료, 싸이코드라마 등이다.
그밖에 스스로 행한다는 점에서 치료적 개념은 아니지만 ‘자기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자기의 의지나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자기를 분석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자기분석이론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은 호나이(K.Horney)인데 호나이는 설리반(H.S. Sullivan), 에릭 프롬(Erich Fromm)과 함께 문화학파로 지칭되는 신분석(Neo-Freudian) 학파의 대표적 분석가이다. 호나이는 자신의 자기분석 체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기분석은 가능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자기분석에 대한 호나이의 체계적인 연구가 나오기 전에도 자기분석이라고 볼 수 있는 분석을 행한 실례가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정신분석학의 시조인 프로이드는 자신의 꿈 분석을 통해 자기분석을 하였고 키에르케고르, 니이체도 자기분석과 유사한 분석을 하였다. 루소의 <참회록>도 일종의 자기분석이라 볼 수 있다.자기분석은 본질적으로 자기가 평소 느끼고 행동하는 이면의 진짜 동기를 밝히고자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두통이나 위장장애, 불안과 같은 특정의 증상의 해결에서부터 그러한 한정된 장애의 해결을 넘어서서 자기 인격 전반에 걸쳐서 성장을 저해하는 모든 요인을 다 다루게 되는 것이다.
자기분석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한 경험은 귀중한 체험이 된다. 이것은 마치 기존의 등산로가 아닌, 자기 스스로 찾아낸 길을 통해 산을 정복하는 것과 같다. 이미 알려진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몇 배 힘든 과정을 거치고 설사 결과는 똑같다 할지라도 내적인 성취감과 자신감은 말할 수 없이 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긍지는 앞으로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그것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극복해 나갈 내적인 힘을 갖게 한다.
자기분석을 살펴보면 여기에서는 우선 자신이 환자와 분석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 먼저 분석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인격을 전체적으로 관찰하여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다음에 환자의 역할로서는 가능한 한 충실하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야 되는데 이에는 ‘자유연상’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자유연상이란 그 때 그 때 마음속에 즉각적이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한다. 자유연상을 하는 동안에 연상의 흐름에 방해가 안 될 정도의 간단한 기록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빠트리지 않게 될 뿐 아니라 후에도 그 연상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다.
자유연상을 한 다음에는 그 연상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잘 모를 때는 덮어두었다가 후에 다시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되는 수도 있다.이러한 자기분석의 과정을 거치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는데 이는 정서적인 체험으로서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 후에는 자신에게 문제되었던 장애나 증상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고 아울러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유연상을 통해 이루어진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 인격에 크나큰 변화도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분석을 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고 스스로 끊임없이 경계해야 되는 것이 ‘저항’이라는 자기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석에 반대하는 강한 힘이다. 이 저항의 정도에 따라 자기분석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이 자신의 마음에서 강렬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의 현 상태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자기가 처했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고 적응책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쉽사리 버리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항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을 보면 연상이 안된다든지, 자기분석을 하기 싫다는 막연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 등이 있다.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항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기분석을 통하여 두통을 해결한 한 가지 실례를 소개하여 보겠다.
마음씨가 착한 사업가 J씨는 결혼한 지 5년이 되었는데 하루는 처와 두명의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러갔다. 극이 공연되는 동안 계속 도통을 느꼈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다. 왜냐하면 극장에 가기 전에는 기분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두통의 원인으로서 연극이 나빠서 저녁시간을 낭비해 속이 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보통의 경우 연극이 나쁘다 해서 두통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게다가 그 연극이 그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좋아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의 연극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가 좋아했던’이라는 말 한마디가 마음에 떠올랐으며 여기서 그는 순간적인 분노를 느꼈고 그 연관된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즉 어떤 연극을 보러갈까 하고 의논을 할 때 그의 의견은 항상 묵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는 이번에 보러가는 연극이 재미있을 것이다 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연극을 보러가야 되는 것에 대해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자 두통은 사라졌다. 억압된 분노와 두통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으나 그 문제에 관하여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며칠 뒤에 그는 또다시 뻐개지는 듯한 두통을 느끼면서 일찍 잠을 깼다. 그는 전날 밤에 그가 소속한 단체의 간부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나고 함께 술을 마셨는데 처음에는 두통의 원인이 과음 때문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잠을 청할려고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그의 얼굴주위를 윙윙거리면서 날아다니는 날벌레가 그를 화나게 했는데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심한 분노로 변했다. 그러면서 좀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종이로 빈대 두 마리를 짓이겨버리는 꿈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모형을 만들었던 종이가 연상이 되었다. 그 종이를 가지고 예쁜 모형을 접어 어머니에게 자랑하려고 보였으나 어머니는 다만 형식적인 관심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종이는 다시 간부회의를 생각나게 했다. 회의 중 종이에 낙서를 했는데 그 까닭은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낙서를 한 것이 아니라 간부회의의 의장과 자기의 반대자에 대해 풍자만화 같은 것을 그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자’란 말이 떠올랐는데 평소에 그가 반대자라고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간부회의에서 결의안은 투표에 부쳐져 채택되는데 그는 결의안에 대해 막연히 꺼림칙했으나 확실한 결함을 찾아내지 못했고, 이에 반대되는 의견을 그가 제시하였으나 의장과 반대자의 방해로 별로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패배한 것이다.이렇게 생각을 진행하다가 꿈에 나타난 빈대의 의미를 깨달았다. -의장이나 반대자들은 흡혈동물과 같은 자들이었는데, 빈대만큼이나 싫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반대자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빈대를 두려워했던 것이다-이제 최소한 꿈에서라도 복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두통은 다시 사라졌다. 그 후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위에서 J씨는 정신분석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분석을 통해 극적으로 두통을 해결하고 있다.자기분석은 정신분석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자기성찰을 함으로써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서양의 정신분석적 방법을 통하여 자기를 분석해 나가는 과정은 동양에서 도를 닦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자기 마음의 갈등, 즉 걸림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왜곡되어 보인다. 예를 들면 화가 마음에 가득 찬 사람은 타인과 세상에 대해 화를 가지고 대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과 마음을 알기 어렵다. 자기 마음에서 화가 빠져야만 남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분석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서 밝혀내고 그렇게 해서 밝혀진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나아가 삼라만상의 실상(實相)을 여실히 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사실 이 과정은 도를 닦는 것이 쉽지 않듯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불가능한 엄청난 일도 아니다. 그 때 그 때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보고 느끼려는 노력을 하면서 그런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점차 정신적인 여유를 잃고 거대한 사회조직의 부품처럼 전락되어 자기중심과 주체성을 잃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기분석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로서 제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