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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rd. Apr.(일)
청승스럽게도 짖궂은 비가 내린다. 온 하늘이 뒤덮여 있는 걸 보면 쉬이 그칠 비가 아니다. 오늘 일찍 나가려 했는데-. 몇 시 도착이라고 물을 때는 비 때문에 분명히 알 수 없다던 사람이 10시경 도착했다고 데려가겠느냐고 묻는다. 도대체 이놈의 동네는 약속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지킬 수도 안 지킬 수도 없다. 그저 잠자코 기다려야만 하는 상태다. 여차하면 출동해야 하는 소방수 모양-. 우중에 나가다. 도중 Mr.Kishinani만나다. Las행 서류 전하고. 왜 양하를 중단했냐? 고 따졌다. 걱정 말란다. 3일 후면 다시 입항한다나. 오히려 표정이 나보다 더 진진하다. 또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란다. 새로 온 냉동사 崔完植군. FAO 16기생. 甲2機면허소지자다. 회사의 서신 그리고 아내의 편지. 책. 고기포 등이 한꺼번에 모처럼 입을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지게 했다. 옥 차장의 말마따나 최후통첩(?)을 개인 앞으로 했다고 한다. 당장 C/E가 번의를 비친다. 좌우지간 미친 작자다. 어째서 딴 면허장인지는 몰라도 그것 하나 때문에 골치를 썩혔다. 최후 수단으로 새로 보낸 최군을 C/E로 고입시켜 보냈고 현 1/E를 C/E 대리근무 시키도록 조치했다. 골치가 안 아플 수가 없다. 그렇게 멀고 긴 항해가 아니라면 덜하겠는데 -. 어제 그제의 그 강경했던 임동길의 자세가 당장 비굴하게 저자세로 바뀐다. 어쩌면 나도 저런 걸 배울 수 있을까? 회사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만 특히 정 상무의 사신은 예상한 그대로다. 아무튼 이제 결말은 난 것이다. Assaf의 Ticket수배가 D-day일 뿐이다.
모처럼 대한 아내의 글씨가 한결 친밀하게 느껴진다. 항상 바쁜 걸음을 시켰고 이제는 귀가 시간 아닌 귀국시간도 안 지킨다고-. 맞다. 백번 맞다. ‘어찌 그 모양이요?“ 들을 만하지. 별고 없다니 무엇보다 안심이다. 그럼 나도 별일 없다구. 그저 늦어져서 탈이지. 무사히 편지 받았군. 애들 때문에도 이제 집에 들어앉아야겠는데 -. 그러면서도 집을 뭣하러 시작하려고 - 원참. 아무리 감정이 없대도, 내 존재를 그 주위에서 멀리 물리 친데도 그래도 월급날은 날 생각한다면 됐다. 그게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다. 귀한 고기포는 또 많이 사 보냈다. 고놈의 메뚜기가 아무래도 신기하다. 역시 감정은 살아있다. 집에서는 실상 비싸다고 사다 먹지 않은 것들인데 -. 차라리 얘들이나 사다 주질 않고.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찡하게 뜨끈한 침 한 덩어리가 목구멍을 넘어가고 어금니가 주근주근 씹힌다. 9개월 채우고 오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단 9일이 급한 지금인데-. 형님을 따로 만났단다. 별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럴 정도라면 구태여 형님한테 의논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실수일런지 모른다. 내 뜻과 다르다. 얘들의 문제. 집 관계 등 어서 가야겠는데- . 무엇인가 자꾸만 용감해져(?)가는 아내도 염려가 된다. 얘들을 돌 볼 틈조차 앗기면서 집을 시작한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 그만큼 날고뛰는 세상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그의 본분에 지나친 일이다. 수술을 받는 눈이 시원치 않아 안경까지 쓴다면서 -. 그 본연의 자세를 찾아줘야 하는 지금의 내 심적부담이 클수록 여기 머물러 있기가 조급증을 더하고 있다. 찍어 보낸 입술연지에 조용히 내 입술을 포개 본다. 온 전신에 짜릿한 전율을 일으킨다. 아! 어서 당신 곁에 가고 싶을 뿐이다.
24th. Apr(월)
대아에 냉동사 무사히 도착했음을 타전. Canpex에 작업비 송금의뢰를 Telex했다. 德丸측에서도 Las Charter측에 의뢰 귀국자 6명 항공편 수배. 보유 80톤. Sign으로 주부식구입 등 Agent에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 이쪽의 돈 쥔 놈은 쉬이 해주지 않는 데는 대리점도 도리가 없다. 며칠 더 있어야 무슨 연락이 있을 거다. 적어도 Mr. Kishinani와 Tikam이 서로 얘기가 오간 뒤가 되리라. Mr.육와 강이 오늘 Las로 간다고 알려왔다. K/Reefer 출항. Flo 입항하다. 이제 다시 볼 수 있다면 부산에서 일 것이다. “멍던 항구 Lagos. 한 번 더 오소” 하나가 뜨면 또 하나가 온다. 8일경 입항한 아진호가 그냥 머물러 있고 Blue Matsuyama(松山)과 Kochi(高知)호가 입항중이다. 모래쯤은 또 한 차례 쌀이라도 사러 보내야겠는데 -. 그래도 유일한 우리의 구원처가 되고 있다.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종일 신동아 3월호만 읽다. 사 보낸 소설문예 3권과 더불어 일본까지 항해에 심심찮은 벗이 되겠다. 역시 아내의 마음을 읽듯이 차곡차곡 읽어 나가자.
‘한국명사자녀들의 결혼신상’ 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해도 역시 재벌임으로 행해지는 ‘정략결혼’ ‘동업결혼’ 등은 한국적인 이상현상이 아닌지? 이제는 자식들의 결혼을 위해서도 부모가 금력 아니면 권력이라도 있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그러기에 누구의 의사나 요구에 강요받음 없이 자기들 스스로의 뜻을 펴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가정이 된다면 얘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어느 재벌 며느리는 “부잣집보다 판자집에 시집가서 마음대로 떠들어대고 실컷 웃고 살았으면” 했다는 실토가 있었다니 오히려 富가 부담이 됨을 짐작한다. 없는 자들에겐 그처럼 꿈같은 얘긴 없을 테지만 -. ‘쇠고기’에 대한 生活放談도 느끼는 게 많다. 600g에 2400원한다니 삽화처럼 소가 사람을 요리해 먹을 만하다. 이제 내 가족을 데리고 갈비 뜯으러 간데도 만 원 한 장 갖곤 발도 못 붙일 일이다. 안 먹으면 되지 - 하면서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묘한 인간의 심리. 없고 귀하다면 더 먹고 싶은 그놈의 욕심이 문제다. 연일 굽고 볶아주는 쇠고기가 물릴 지경이다만 제대로 실컨 먹도록 해주지 못하는 얘들과 마누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다 먹어 치울 수밖에 없다. 허나 지금은 금송아지 구운 놈 보다 콩나물과 된장찌개, 얼큰한 시락국이 더 군침이 돌게 한다. 아마 이때쯤은 햇 채소가 싱싱함과 보들보들함을 갖고 상위에 오를 때다. 맵싸한 고추장과 시큼한 식초에 절인 갓무친 배추김치도 땀께나 흘리게 하지만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당장 며칠 후면 전원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되는데도 이처럼 생각키우는 것뿐이니 아마도 마음은 벌써 여길 떠나고 없는 것은 아닐까? 변화무쌍한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해풍에 밀리는가 마치 가을볕처럼 따갑기도 하다. 내일은 또 무슨 소식이 있을려는지?
4월 25일(화)
선내 보유 $를 수집. Blue Nagoya에 R/O를 보내다. 아무래도 기다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우선 쌀이라도 좀 장만해야겠다. 야채는 비싸드래도 Lagos에서 구할 수가 있고 고기는 있으니까 쌀과 간장, 된장만 있으면 된다. 다음 기항지에서 충분한 보급을 전제로 하고-. 연일 밥 굶은 시어미 상판처럼 찌푸린 날씨가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부상자 2명 그리고 기타 귀국자에 대한 Ticket이 연락이 왔다. Owner측으로부터 두 번째 연락이다. 이미 Las에서 수배를 했고 Lagos에도 Confirm이 됐다고. 그런데도 일이 쉽지 않고 있다. A유도, Cash Advance, 식료품 구입 등 본선요구에 따라 주기로 했다고. 그러나 정작 실행해야 할 Assaf에서는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았다니 더 이상 진척이 없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이곳의 키시나니와 Las의 티캄사이에 뭔가 잘 안 되고 있는가도 싶다. 직접 Trans-con에 가 볼까도 했으나 내일쯤 입항가능성이 있다는 Assaf의 말에 한 이틀 더 기다려 보기로 하다. 종일 신동아만 읽다. 간간이 얘들용 영어 동화책을 새삼 사전을 찾아가면 읽어 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처음 일본어를 공부할 때 소학교 3-4학년 교재를 더텃고 소년소녀 소설을 읽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도 하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중・고・대학교의 영어교육방법상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느낀다. 숱하게 보아오고 외워온 문법과 단어! 그러나 번연히 아는 단어와 간단한 문맥도 말이 안 되고 아이들이 읽는 책도 쉬이 해득이 되지 않는다니-. 쉬운 것을 철저히 터득하고 실상 문법에 앞서 그 나라 언어 관념에 먼저 젖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외국어 습득의 첩경이다. 그런대로 이왕 마음먹고 사온 책이니 한 번씩 훑어보기로 하자.
오후 시간에 다시 붓을 들었다.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아련하다. 이것도 그렇다. 햇수로는 만 6년을 넘는다. 아직도 기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꾸준히 할 기회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독학(?)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작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만큼은 돼야 하는데 -. 모두가 중도에서 머문 상태다. 미지근한 내 성격탓이리라. 보다 적극적이거나 끝까지 집착하지 못하는 어줍잖은 사고방식이 내 모든 생활 자체뿐 아니고 하는 일까지도 그렇게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전공 이외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外道’라고 金思達박사가 얘기했다만 그런 의미에서라면 얼마든지 외도를 해도 좋은 것이다. 반드시 기회를 가져야 하고 계기를 마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테니-. 오히려 진정한 자신의 외도는 자기가 스스로 찾고 만들고 노력해야 하는 데 의의가 있고 그 과정이 있으며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엇 한 가지 특출한 것도 없다. 그것을 그냥 평범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평범 속에서도 자신만은 가질 수 있고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붓을 잡는다는 것도 처음 뜻은 그랬다. 작품을 만들고 大家를 꿈꾸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고 정성을 들여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주체 못할, 마치 논 가운데 우뚝 놓인 집체만한 바위처럼, 시간 중에 한 순간만이라도 내 스스로를 까마득하게 잊고 자신의 무한한 경지 속으로 함몰할 수 있는 것은 붓을 들고 획을 그어 가는 시간이다. 그나마 다소 안정된 정신적 자세를 찾았다는 증거가 되리라. 볶은 메뚜기 뒷다리 가시에 긁혔는가 입천장 한 가운데가 벗어졌다. 별미라 맛이 고소하지만 역시 어린 시절 손수 잡아 병에 넣고 벼이삭에 뀐데기를 끼어 집불에 구어 먹던(참기름은커녕 들기름 한 방울 바르지 않고 구워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우선 메뚜기 자체부터가 너무 작다. 그 놈들도 현대병에 결렸는지? 이번 가을에는 우리 얘들에게도 한 번 체험을 시켜보자. 메뚜기 입에서 내 놓은 시커먼 물에 질겁을 할거다만, 독한 농약에 살아남을 메뚜기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만 죽어서 비행기로 Paris를 거쳐 Africa까지 온 놈이 있는 걸 보면 희망은 있으리라.
26th. Apr(수)
Flo가 입항 2일만에 외항으로 쫒겨 났다. 역시 10,000N 벌금 경고장을 받은 모양. “그런 일이 있으면 즉시 Lagos 외항 Habour Master(?)인 나한테 보고하고 문의할 일이지, 원참” “이거 어쩌면 되오?” 난 벌써 20,000N의 경력 소유자니까. 얘길 듣고 안심한 모양이다. 종일 VHF앞에서 보내다. Ajin호도 죽을 쑤는군. “이런 경우엔 Lagos Pilot 부르지 말고 Chief Pilot를 불러 문의 해보시오.” “그게 어떻게 다른데?” “그것까지 난 모르고,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들 해왔으니까”. Trans-con의 Mr.Santani가 어찌보면 의식적으로 통화하기를 꺼리는 것도 같다. 금요일쯤 입항 예정이란 저네들의 통화를 도청(?)해서 알긴 했으나 정작 당장 필요한 제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안주는 군.
아무래도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정식 통고를 하고 정식 통로를 이용할 수밖에-. 내일을 다시 나가서 한 번 더 만나보자. Agent로서 본래의 임무와 책임을 잘 알고 있는 Mr.Assaf이 이 일을 미루거나 Trans-Con에 전가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빌어묵을! 이권 놀음은 저희들이 하고 고생은 우리가 해야 하다니. -. Greece선 Lass 그리고 Friodolfin의 두 선장이 가끔 부른다. 뭐 좋은 소식이 없냐고-. Lass는 내가 중계를 해준 배이고 F.D은 우리 배 다음에 접안키로 되어있는 배다. 특히 Lass는 외항대기 2개월째라고 한다. 아마 Refeer가 아닌 모양이다. “하하! Capt 나는 3개월이 넘었오. Relax!” “Oh! Sorry”한다. 기다리는데도 선배가 있는 격이군, 감옥소의 감방장이 있는 것처럼-.
C/E의 태도가 180도로 회전했다. 비굴하리 만치 친절(?)해지고 접근전을 펴온다. 따라서 C/O, 1/E 그리고 전 선원들의 태도 또한 볼만하다. 인간의 심리란 것이 기계처럼 아니면 어떤 공식처럼 되어 있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찌 되었을까? 철학, 종교, 그리고 전쟁 등이 있을 수 있었을까? 사정이 그러니 이해를 하고 면허를 따라던 얘길 듣고 웃던 1/E의 심정은 헤아릴 수 있다. 역시 찌푸린 날씨 태풍 그리고 노호하는 저기압을 제외하고 이처럼 잔잔한 해상인데도 날씨 걱정을 해본 적은 지금 끝 없었다. 비야 오지 말아다오. 내가 Lagos를 뜰 때까지는-.
27th. Apr.(목)
Agent 그리고 Trans-con 찾았다. 보유, 귀국자 항공권 청구서 등 Las에서 이미 Arrange했다는 전제를 단 정식 공문이다. 그러나 Mr.Samtani, Assaf 아무도 없다. Trans-Con의 태도가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모두가 한결 같이 내일 입항이라는 등. 그러면서도 정작 만나야 할 삼타니는 없다. 짖궂은 더위 속에 얼굴을 태워가며 헤맨 보람이 없어진다. Agent의 키다리 Mr.Saka 그리고 비서놈과 같이 그들 고유한 점심을 먹다. 거름더미가 쌓였고 썩은 물이 고인 진흙탕 옆에 움막 비슷한 몇 채의 집이 전부 식당이다. 부근에서 일하는 검둥이 녀석들의 단골인 모양. 정말 먹을 거냐고 다짐을 세 번이나 하는 Saka란 놈. 그 뜻을 저네들 말로 하자 두 여인 (한 사람은 많이 늙었으나 생김새는 동양인을 닮았다)이 신기한 듯 보고 웃는다. 가끔 길거리서 본 노란 옥수수가루를 반죽하여 그대로 쪘다. 마치 찐득한 찰떡(고물 안 묻힌)같다. 큼직한 유리컵에 따라준 물에 손가락도 씻고 마시기도 한다. 또 한 접시는 물고기의 찜이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나 일단 말려서 빨간 고춧가루 양념 속에 넣고 조린 것이다. 옥수수 떡 한 접시에 고기 한 접시다. 물은 그냥 마시지 못하고 콜라 두 병을 청했다. 물론 수저는 없다 오른손으로 유리컵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다음 옥수수 떡을 조금 떼고 거기다 고기살점을 떼어 같이 입에 넣으면 된다. 그런데 그놈의 물고기 조림이 너무 맵다 입술이 따갑고 화끈거리다. 또 한 가지 그네들은 손가락에 옥수수 떡이 하나도 묻지 않은 체 접시에 묻은 것까지 닦아가며 먹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손가락뿐아니고 손바닥까지 떡 칠갑이다. 아마도 주위에서 나 먹는 것만 쳐다보는 것을 보니 무슨 구경거리라도 돼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억지로라도 다 먹어 치웠다. 주인 아주머니가 돈 안 받을 테니 한 접시 더 먹으란다. 떡은 그만두고 고기 한 마리를 더 달랬다. 어쩌면 이놈들이 한국사람들 보다 훨씬 맵게 먹는가보다. “Too hot!” 했더니 매운 게 건강에 좋단다. 더운 곳인데도 음식을 그냥 먹는 것은 없다. 그 더위 속에서도 숯불이나 장작불에 끓이고 조린다. 물고기 조림도 맨손으로 먹기에는 뜨거울 정도로 보관을 두었다. 결국 이놈들 먹는 것이 결코 낮은 영양가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우리들보다 더 많은 양의 담백질을 평균적으로 섭취하고 있지 않는지? 길가나 혹은 부두에 팔러오는 소고기, 양고기구이나 소의 내장 간 등을 꼬지에 끼어 구워 파는 것이 많고 또 맛이 독특하게 강했다. 시장에서 많이 본 누런 염소, 긴 뿔을 가진 물소 등이 바로 그 고기인 듯도 싶다. 더위보다 그 매움 때문에 흘린 팟죽 같은 땀이었다. 그래도 다 먹어 치우자 박수까지 쳐주는 놈들도 있다. 좋은 경험이다. 밥값은 기어이 자기들이 낸다. 아예 주인아줌마도 나한테는 받지 않겠단다. 아직도 순수한 사람의 정, 인심이란 것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먹는다는 것은 세상 어디가나 있다. 그들의 음식을 함께 먹어본다는 또 먹어준다는 사실 자체에서 풍기는 풋풋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항순서 역시 Tincan No.1 Whest Star호의 양하가 끝나면 우리가 붙는단다. 내일이나 늦어도 일요일까지는 틀림없겠다지만 중간 중간에 ‘I hope so' 혹은 'May be'가 사람 간을 졸이게 한다. 그게 붙으면 앞의 말을 암만 강조해도 예정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
청구서만 제출, 아직 Approval이 없단다. 그럼 난? 며칠 더 기다리자고-. 이젠 체념인가 습관이 됐는가 아무런 마음의 느낌이 없다. 아예 그러려니 하는 생각뿐이다. 그래 때가 되면 해결되겠지. 급히 서둘러 귀선. 한 동안 요란스런 스콜이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물에 빠진 새양쥐가 될뻔했다. 신동아 4월호로 바꾸다. 혼자 마신 맥주 3깡에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고 계속 씹은 어포에 턱뼈와 관자노리가 꿍하다. 과연 Lagos을 떠날 날이 있을 것인가? 착각이겠지. 상병자 2명에 대한 Medical Certificate 만들다.
28th. Apr(금)
어제 저녁때의 소나기가 아침까지 서늘한 기분을 준다. 차츰 일교차가 심해져 가는 느낌이다. 밤중이나 새벽으론 저절로 이불을 어께까지 끌어 덮게 한다. 수평선 끝에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아무런 느낌 없이 그저 짜증스럽게 보일뿐이다.
묵호를 처음 가서 방파제에 부딛고 치솟는 물기둥을 보고 “당신이 뱃사람이 아니면 저 광경이 감격스럽게 보였을텐테 -.” 하던 아내의 심정이 새삼 떠오른다.
직업의식에서 오는 탓일테지. Trans-con이나 Mr.Assaf은 오늘 입항이랬고 키다리 Mr.Saka는 일요일이랬다. 어느 놈이 진짠지는 두고 볼일이지만 아무래도 실무를 보는 놈의 말이 맞을 것만 같다. 종일 VHF앞에서 마치 갓 시집온 새각시가 저녁때 서방 기다리듯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예상외로 술이 떡이 되어 어슬렁거리며 집을 들어서는 서방을 보는 새댁의 심정이 이럴지도 모르지. 처음 쫒겨 날 때 Mr.Assaf이 27-8일경이라고 했으니 어지간히 때가 되긴 됐는데-. Mr. Hakeem이란 놈이 귀국자 있단 소리를 들었나보다. List를 보내란다. Ticket나왔냐? 아니란다. 그럼? 제놈이 담당이니 아무래도 한 건 생겼다고 보는 모양이다.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보낼 사람 어서 보내고 싶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더 이상 둬봐야 득 될 게 없다. C/S가 번의의 뜻을 비치다가 R/O가 펄쩍 뛰었단다. 자업자득. 사람이란 반드시 오늘 그리고 눈앞의 현실만 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어제까지 간다고 심지여 같이 갈 냉동사에게 “이왕 가는데 뭘 그래 열심히 할 것 있냐?”고 했다가 1/E에게 호되게 당한 C/E. 모두가 자승자박이다. 결국은 더 이상 여지를 갖지 못할 만큼 스스로가 궁지에 몰리고 벼랑 끝에 서고 말았다. 연일 선주 德丸에서는 Las에서 전화로 연락했다고 하나 이쪽 사정은 담 넘어 불구경이다. Canpex에 Telex를 넣어도 역시 무답. 입항시까지도 이대로 답신이 없으면 또 최후 통첩을 띄울 수 밖에 없다. 양하거부한다고-. 전번에 곰같이 능글맞은 검선자가 다녀가더니 이번에 또 새로운 녀석이 온다고 “よろしく(잘 부탁함다)”한다. 뭔가 매선이 잘 안돼서 그런가 그 반대로 잘될 가능성이 농후해져서 그런가? 일본 도착 후 대아와 해약되는 경우는 매선 아니면 Manning회사 변경의 두 가지 경우가 예상된다. 어쨌든 다문 6개월이라도 좋으니 내가 하선한 이후에 좀 더 계속하다가 해약되었으면 싶다. 작년 TungHo No.3도 내 탓이 아니라고 해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아에서 떠났는데 금년도 또 그런다면 -. 한척이라도 더 늘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의 실정엔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것도 내 水德이고 水運이라 할 것인가?
‘The Strange House’ 일독을 마치다. 송아지 장화신고 냇물 건너듯 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29th. Apr.(토)
비록 믿을 수 없는 이놈의 실정들이라 매일매일의 기대에 결국은 지쳐 버리고 마는 하루하루이지만 그래도 아침을 맞는 순간만큼은 희망과 기대에 부푼다.
‘오늘은 설마 -.’ 그것이 아침의 바램이다. ‘Ticket 나왔냐?’ ‘아직’. 그럼 List는 아직 필요 없을 것이고 -. 토요일. 그리고 내일 일요일은 만인이 쉬는 공일이다. 4월도 끝장이다. Byron 입항하다. “진짜 부산갔다 왔능교?” 농담도 나올만 하다. Byron이 Lagos를 출항 한 것이 3월 8일 밤이었다. 남미 Santos부근에서 역시 Fish를 싣고 온 모양. Flo와 교신 꼭 만나고 싶단다. Boat 내리는 김에 R/O는 과일구입, C/O는 Tincan No.1에 보내 Whest Star의 현황을 알아보게 하다. 전번 Christos. K의 경우처럼 그게 가정 정확한 소스다. 대신 Bridge에 앉아서 Byron에서 남의 욕하는 소리, 그리고 잡담들만을 듣고 지껄이며 보냈다. 두 김 선장 사이에 새로운 고민도 생기고 희망도 느껴지는 모양. 같은 선주에 같은 Korea해운소속. 출국 전 서로 말로만 들었고 한때는 Rival의 입장에 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동승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같은 조건이면서도 사실상 선원들이 가장 불만을 갖고 있는 제반 계약관계과 고민거리고 함께 Owner측 사장을 만나면 다시 뭔가 붙어볼 건덕지가 있다는 그들만의 속셈이 희망적이다. 아무려나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선원들을 제3자 앞에서 서스럼없이 비판 혹은 비난을 가하는 Flo 김 선장이 다시 뵌다. 비록 좁은 선내 생활이지만 그 배가 항해를 계속하는 바다만큼이나 넓은 포용성을 필요하고 있음을 느끼고 실천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움을 올 것이다. C/O의 보고, 5월 3-4일이 돼야 끝날 것 같단다. 월요일 끝난다고 Stevedore측은 장담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단다. 차라리 그때를 D-day로 보는 게 속이 편하겠다. 내일 안 된다는 게 분명한 이상 하루래도 마음 푸근하게 쉬자. 만사를 잊고. 補油 그리고 귀국자만 해결되면 아직은 좀 더 버틸 자신이 있다. 오기도 있고 -.
노트를 바꾼다. 꼭 8개월의 발자취가 이 한 권에 따라온 셈이다. 지나간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부가 얇다, 240일, 한해의 3분의 2라는 세월이 이 속에서 잠들어 있음을 생각하면 그처럼 덧없이 지나 가버렸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한다. 남은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초라할뿐이다. 개미 채바퀴 돌 듯한 한정된 삶 속에서 별난 것을 찾는 그 자체가 이상스러울는지 모른다. 이 마지막 장을 맺기 전에 내 가족의 품에 돌아가리라 믿으며 남은 빈칸을 채워 나온 것이 결국은 어제가 되고 과거가 된 체 아직도 머물고 있다. 낯설던 Lagos가 익숙해 질 만큼 변해가고 있으나 아직도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야 할 만큼의 긴 여로가 남아 있다. 그 끝에 내 조국이 그리고 그리운 아내가 귀여운 세 딸들이 서 있다. 닿는 날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곧 내 정신력의 승리라고 해두자. 보낸 과거보다 남은 내일이 더 어렵고 험한 고비가 될 각오를 버리지 말면서 -. 대학노트의 한 권을 마치면서....
30th. Apr.(일) 1978
4월을 마지막을 보낸다. 이맘때쯤이면 가정에 돌아가 마누라, 얘들과 더불어 새봄의 서정을 맘끗 누리리라 기대에 부풀었던 때가 벌써 아득하게 되어 버렸다. 결코 한 달이라는 이름을 붙여 30일로 묶어둔 세월이지만 이렇게 쉬이 덧없이 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봄도 이제 한창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벌써 마음은 저쪽으로 흘려보내 버린지 오래고, 그래서 고무줄 없는 뭐 같이 축 쳐저 있는 허탈뿐이다. 결국 두 달만 더 있으면 금년도 분수령을 넘긴다는 소린데 아마 그간은 줄곳 땅을 딛지 못하고 말 것은 뻔한 일이고 보면 좌우지간 허송세월이라는 생각뿐이다. 그처럼 간절하고 절실하던 마음이 차츰 그 빛을 잃고 날이 무디어 가는 듯 하더니 차라리 월급이라도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나 자신을 느낀다는 마누라가 훨씬 행운아적인 편이라는 생각이다. 월말이자 일요일, 집 앞 큰길에는 아침부터 성지곡 찾고, 생활에 지쳐 자연에 굶주린 장터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룰 것이다. 낮도 많이 길어졌고 한가한 휴일을 즐기는 기분이다. 마치 백만장자가 그의 욧트를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 띄우고 살찐 배를 내밀고 일광욕을 즐기듯이 -. 신동아 4월호에 실린 오유권씨의 ‘응달’ 그리고 ‘교단이야기’란 넌 픽션이 거의 같은 내용을 하고 있으면서도 직접 내가 몸담고 있었고 또 현재 아내가 겪고 있는 일이라 관심 깊은 것이었다. 넌픽션의 저자는 나하고 같은 해에 교단에 섰던 사람이다. 과연 내가 여지끝 그대로 머물렀다면 어떤 교사상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의 표현대로 ‘문제교사’가 됨직 했을 것이다. 윗사람 찾기는 죽기보다 싫고 학부형 찾아서 돈 얘기하기는 내 주머니 털어 넣기보다 어려웠기도 했으니 -.
그래서 중앙초등학교 시절, 기발하게 생각해낸 소위 ‘정재달군의 얘기’는 아마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얻어먹고 사는 정 군에게 운동회비 가져오란 소리가 하기 싫어 고민 고민 하던 어느 날 오후 부모 잘못 만나 지지리도 못살던 정재달이가 그래도 천진난만하게 운동장에 뛰어 오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아디어. 그 녀석을 불러 내 돈 300원 쥐어 주며 “임마! 이걸로 내일 아침에 운동회비 내라” 했더니 얼씨구나 하고 받아갔다.
다음날 아침 학급조회 시작하자마자 이 녀석이 눈치도 없이 “선생님 운동회비” 하고 코 밑에 갖다 내미는 순간 교실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야 정재달이 운동회비 냈다” “진짜?” “진짜다” “야 재달아 니 정말로 운동회비 냈나?” “응”.
그걸로 학반내의 운동회비 시비는 끝이 났다. 가만있어도 저절로 가져왔다. 안 되면 그냥 “재달이도 냈는데....” 한마디면 됐다. 그래서 느긋하니 목표량을 채우고도 구두 한 켤레 값은 떨어졌지 아마?
확실히 교육계도 달라졌고 부형이나 교사 자신들의 교육관도 변했다. 문제아가 있었지 어찌 문제교사가 생긴단 말인가? 오씨의 ‘응달’은 소설이 아니라 바로 현실이다. 하기야 10년전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오죽해서 소풍 가는 날 제 아버지 피우던 담배갑을 가져다 선생한테 Present했을라고 -. 없는 집 애들이 공부 잘 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만큼 관심이 없고 후원이 없으면 자연히 그 어떤 권역에서 벗어나고야 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늑한 산골,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두서너간의 교실에서 2-30명의 얘들과 마치 얘기를 속삭이듯이 가르치고 배우는 꿈같은 ‘현재’가 어디엔가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 곳의 선생님들이 읽는다면 과연 믿으려고 할 것인가? 어서 아내를 그 교단에서 내려서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가고 조급증마져 나게 한다. 혹시 그것이 정화나 정주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이다. 선거를 해서 정화가 부급장이 됐단다. 장한 일이다. 군대에 가서 신병훈련소 시절 분대장 해보기 전까지는 분단장 한번 해본 일 없는 내게 비한다면 비약이다. 그러나 내가 정영 싫어하는 것은 내면이 없는 외형이다. 요란한 겉치레가 자칫하면 속마져 요란스럽게 만들 우려가 있다. 좀 더 침착하고 깊이 생각하는 정화가 되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늘 아내에게도 얘기했듯이 정작 너무 얕은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시간을 그리고 보다 더 깊은 전문성을 위해서 노력해 보라는 것도 결국은 내 자신의 욕심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을 가르치고 키운다는 것은 어렵고도 보람 있는 일이다. 같은 호에 실린 유진호 박사의 ‘사람답게 키우는 것’이란 대담도 많은 것을 지적하고 시사한다. 현금의 교육이 주어진 사회여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만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도 먼 훗날을 보면 딱한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을 더욱 폭넓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 보다 차원적인 것이다. 미국의 공군사관학교에서 기초원리 이외는 오히려 문학, 철학, 역사 등을 신중히 가르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던 그 바탕은 인간임에 틀림없는 이상 인간성을 회복하고 가져야 한다. 현재 산업문명이 차츰 사람을 기계화시켜 감으로서 생산과정의 한 부품화가 돼 간다고 말한 것이 사실인 이상 모든 학생들을 기능공, 기술자란 이름의 부품화가 가속화 되어간다. 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10년 후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런지는 예측키 어렵지만 지금의 이 추세가 정착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 불거져 나올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선은 셋이 모두 딸들인 이상 누구보담도 엄마 아빠를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자신을 알아가도록 일깨워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엄마가 같은 학교의 선생이란 입장에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서 좀 더 자기 위주의 학교생활을 갖게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아내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바람직하게 가정에서 돌봐주고 부담 없이 혹은 편견 없이 담임선생을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녁때 다시 무법천지를 연상케 하는 소나기와 돌풍이 지나갔다. 냉동유 유출건을 C/E가 보고한다. 역시 불안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기관장의 번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입장이 꼭 문틈에 끼인 손가락 꼴이다. 보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늦다. 전 냉동사의 재촉이 있었다는 기관장의 말에 직접 불러 얘기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곳 Lagos이고 또 우리의 현실”이라고 -. 그러기에 “이 배를 탄 그 자체가 하나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일 다시 대리점에 가서 이제는 직접 청구해서라도 빨리 보내야 겠다. 남은 사람의 들 뜬 마음도 가라앉혀야지. 저 마음 한 구석에서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고약한 심보가 있다. ‘빌어먹을! 이왕 늦은 것 6개월을 채우고 말자’고 -. 체면이라고 굳이 할 수는 없지만 결과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푸근하고 식욕이 되살아나고 글씨도 잘되는 느낌이다. 시간도 잘 간다. 똥벳짱이라고 불러두자. ‘Midnight Adventure' 이틀 만에 끝낸다. 아무런 보람도 없지만 내 정성과 시간을 집어삼킨 결과라는 데 큰 의의를 걸자.
1st. May(월) 1978]
해질 무렵의 트릿한 하늘이 아니다. 5월의 첫날답게 개여도 활짝 개인 아침이다. 이래서 더욱 어제의 일, 얼굴과 마음을 찡그리게 했던 모든 지난 일을 송두리째 앗아가 잊게 하는가 보다. 일찍 나섰다. Mr.Samtani만나서 유류청구서 주고 협조요청했다. Tincan 10의 Whest Star는 오늘 오후 끝난단다. Mr.Assaf의 대답도 명쾌했어나 또 문제는 있다. W.S의 全長(LOA)이 74m이니까 그 자리에 우리는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다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니 너네들이 알아서 해라. 이제 나도 똥배짱을 쓰자. 현재 재고 MDO는 5월 10일 Dead-Line이고 Ticket는 긴급수배하고 입항즉시 Shipchandler보내라. 그러면 나는 앞으로 한 달 더 있어도 된다.
Life-boat, Byron과 Flo를 위해 늦게까지 일했다. 저녁 7시경 Mr.Assaf에게서 연락이 왔다. Las에서 연락을 받은 모양. 내일 좋은 소식 전한다고 -. 그래 고맙다. 잘해라. 그러나 아무래도 그놈의 걱정거리가 지워지지 않는다. 내일 AM MOVEMENT에 W.S의 출항은 있으나 우리의 입항은 없다. 끝까지 귀신이 붙었나 보다만 배짱을 그대로 밀어붙이자. 5월 아닌가, 벌써! 이달에 안 되면 6월이 있고, 7월도 있다. CANPEX 그리고 일본 선주측에 작업비 송금치 않으면 하역 거부하겠다는 통고를 하다. 이제 누가 뭐래도 믿을 수 없고 입항 접안 후가 아니면 타전하지도 말자. 신용없는 AGENT 말 듣고 하다가 나만 거짓말쟁이 될 뿐이다. 왜소한 일본 사람들이 ‘船長, なにをしているか?(뭘 하고 있소?)’ 할는지 몰라도 저나 내나 똥줄타긴 마찬가지 -. 이번 주일내에 접안되면 다행으로 보자. CASH ADVANCE도 수배 했다니 비싼대로 야채사고 GAS도 비누도 필요한 만큼 실으면 된다. 시간도 많고 돈도 벌고 -. 대신에 아깝지만 젊음, 귀한 청춘을 지불할 수밖에 도리는 없다만-.
콧수염을 기르기로 하다. 언젠가 한번 시도했다가 차츰 자라나는 수염에 따라 내 모습이 너무 영감님을 닮아가는 것이 싫어 밀어버린 있다. 코밑에 벌레들이 스믈스믈 기어 다니는 듯하여 기분이 상쾌하지는 못해도 요번에는 멋있게 한번 가꿔보자. 서양사람은 꼭히 마누라를 위해서, 혹은 마누라의 요구(?)에 의해서 싫어도 기루어야 한다고 하더라만-.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나도 찬동을 한다. 단. 당장 엉덩이 뿔난놈이라고 호통이 떨어지는 우리네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낡은 사고방식 때문에 기르지 못하기는 한다. 돈 안들이고 아내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데에 중요한 몫을 한다면 괜찮은 일이다. 땀을 흘린 후 잘 식힌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거의 습관화 돼간다. 심지어 목욕을 마치고 나면 저절로 목이 말라진다. 별게 다 버릇이 된다. 귀국하면 곧 여름이고 냉장고 있는데 빌빌거리며 노는 주제에 이 버릇 안 고치면 마누라한데 밉상받기 딱 알맞겠다. 찬물에 소주 타 먹더래도 목마를 땐 마셔야지 도리야 있겠나만 현실을 앞질러 치닫는 얄팍한 욕심이 탈이고 얄밉다.
2ND. May(화) 1998
예상되로 West Star 10시 출항. 본선 입항 소식은 없다. Chief Pilot에 문의했으니 역시 ‘Negetive'다. 외판 Painting하다. Buyer Inspector가 와도 한결 첫인상이 좋겠지. 선주측, 작업비 및 수당은 저들도 노력할테니 제발 하역거부는 말라달란다. 급하기는 되게 급한 게 된 모양이다. 뭣이 내일은 희망이 있을라나 기분좋은 소리로 Mr.Toni가 부른다. Las에서 연락이 있다고 모든 것은 내일 접안하면 하자고 한다. 좋지, 너만 믿으마. 그러나 역시 내일 오전 Movement에는 히로시만의 ‘히’자도 없다. 도데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예 내일이란 소리가 없으면 그토록 바라지는 않을 건데-. 점점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실정이 되간다. 이곳 Lagos 물이 들어가는지는 모르나 Owner 측도 그렇다. 물론 일정이 명확하지 않으니 부득이한 일이기는 해도 이번 전보에 Las 얘기가 다시 나온다. Ref. oil이 현지공급이 안 되면 Las까지 어쩌고 한다. 아마도 공무부에서 타전했는지는 모르나 어딘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내 스스로도 어려움이 많다. 시간이 지체되는 그 자체도 그렇거니와 우선 전체가 먹는 것이 걱정이다. 요즘도 가끔 짜증스럴 때가 있다. 먹고 싶은 것, 이런 것도 좀 만들어 보라고 고함도 치고 싶지만 부득이하다. 확보해둔 달러도 차츰 바닥이 나간다.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는 여건이 돼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면 우선 선원들로부터 심한 반발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을 지킬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5월 10일까지 MDO가 바닥나고 다시 보유되는 날까지 접안하고 양하가 시작되지 못하면 더욱 사태는 심각하게 된다. 하루를 살아도 마음 푸근해야 하는데-. 이렇듯 보이지 않는 불안과 기다림 속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차츰 오후 느지막을 장식하는 소나기의 빈도가 잦아간다. 초속 20m의 돌풍을 수반하는 강한 빗방울은 더욱 암울해져 가는 마음을 먹구름처럼 진한 상태로 이끌어 간다. 외항 나온지 벌써 10일째다. 그런데도 돛 찢긴 범선처럼 휘말리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도 고국의 길, 내 집에로의 길은 먼 것인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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