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반찬 가게의 비법
모현숙
물방울 튕기던 손도 늙어간다. 매운 불맛 라면 광고에 귀찮은 저녁 한 끼를 뜨겁게 매운 라면으로 예약한다. 게으른 손은 먼저 미안했지만 금세 당당해지기로 한다
손맛 좋은 반찬가게엔 귀찮은 손들이 긴 줄 선다. 긴 줄에 끼어든 나는 반찬 가게 주인에게 이 많은 반찬을 어떻게 매일 요리하느냐고 물었더니,
"죽을힘으로 만듭니다."
그녀 대답, 오래 발효된 저염도 건강식으로 걸어 나왔다
죽을힘으로 무친 파래와 김치의 비법을 내 비법 마냥 詩의 밥상에 차린다. 손끝에 물방울 튕기며 쓴 내 詩는 밍밍하거나 짜다. 사람들은 간이 맞지 않는 내 詩에 무관심했고, 감동으로 푸짐한 상을 차려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밥상은 늘 허술했다
봄은 겨울을 건너온 나무에게만 깨소금 같은 꽃을 허락하고 있다. 그 반찬가게의 비법에 뿌린 그녀의 고단까지 질투하는 내 詩의 밥상은 아직도 끓고만 있다. 암만해도 더 죽을 만큼 고단하게 그리워해야 입맛 도는 詩가 될 모양이다
<시작 노트>
내 詩의 밥상은 늘 허술해서 밍밍하거나 과하게 짜서 입맛에 맞지 않았다. 다른 시인들의 詩는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는데 나는 늘 전전긍긍이었다. 목련시장 반찬가게 주인이 뱉은 “죽을힘으로 반찬을 만듭니다.”라는 그 한 마디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詩는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나누며, 죽을 만큼 치열하게 쓰는 일인 것 같다. 나는 詩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가 갈수록 된통 혼나는 중이다. 그러나 감동과 위로가 되는 詩를 쓸 수 있는 날을 늘 품고 산다. 그래서 허술한 밥상 앞에서도 여전히 詩를 쓰고 있다.
댓글1 박윤배
반찬가게라는 일상의 한 장면을 그려놓고 거기서 끌어낸 의미를 직관화 하고 다시 내 반성의 도구로 삼아서 쓰는 시 잘읽었습니다. 시의 교과서 적인 기법이지만 막상 시를 쓰는 사람들이 소홀히 하곤하는데, 모현숙 시인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진정성을 바탕에 두고 참 맛있게 무쳐내었다는
댓글2 김상환
호모 사피엔스sapiens, 즉 현명한 인간은 음미吟味하는(sapio/sapere) 자라고 하지요. 그 맛의 비결은 발효와 혼混에 있는 법. 그것은 “겨울을 건너온 나무”로서 봄이지요. 건너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를 수도 없는 지금 여기, 그리고 시와 식찬食饌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