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0일 금요일
해파랑길 걷기 32일째.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새벽 3시 4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걷는 49, 50코스를 살펴봤다. 특히 일부 구간을 택시를 이용해야만 하는 50코스를 다각도로 검토해 봤다.
아침을 먹고, 오늘까지 2박을 예약했기에 배낭은 숙소에 두고 생수와 간식 등만 챙긴 가벼운 차림으로 8시에 49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거진항의 일출을 감상하고, 거진해맞이봉의 등대공원을 지나 화진포소나무숲길을 걸었다.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서 어제의 추위보다 한결 나은 날씨였다.
능선을 따라 1시간 20분쯤 걸어가 응봉에 섰다. 얼음으로 덮인 화진포가 보였고 멀리 금강산도 선명하게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김일성별장을 지나 화진포둘레길을 걸었다. 얼음판 위에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앉아 있었다. 해변의 파도는 어제보다 더 높았고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초도항, 초도해변을 지나면서 보니 해변을 따라 쌓은 방파제용 바위와 테트라포드에 햐얀 얼음이 얼어 있었고, 넘친 파도에 의해 둘레길 난간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추위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진항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차진해변의 멋진 파도에 취해 사진을 찍다가 넘어져 오른손 손가락에 찰과상을 입었다. 피가 많이 났다. 가까이에 있는 금강산콘도 안의 편의점에 들어가 밴드와 연고를 사서 응급처치를 하였다.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하여 택시 기사와 통화를 하여 통일전망대까지 왕복 요금으로 7만 원에 합의하였다. 출입신고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택시를 타고 통일전망대로 갔다.
오후 1시 45분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해금강과 외금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꽤 선명하게 보였다.
택시를 타고 나오다가 제진검문소에서 내려 50코스의 걸을 수 있는 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명파해변을 보고 산길을 따라 걸어 오후 4시에 마차진해변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50코스 걷기 구간을 마쳤다.
이로써, 해파랑길 50개 코스를 32일간 완주하였다.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를 걸은 것이다. 관광명소나 문화유적을 보기 위해 코스에서 벗어났을 때도 있었고,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왔을 때도 있었으며, 시내와 항구를 구경하며 돌아다닌 때도 있어 걷기 앱에 나와 있는 누적 거리는 858km였고, 걸음 총수는 119만여 보에 이르렀다. 트레킹화의 닳은 뒤축이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만 딸과 함께 걷기로 한 것이 32일간의 완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 6일간은 딸과 함께 걸었고, 그 뒤로는 혼자 걷다가, 1월 4일부터 7일간은 윤교장님과 함께 걸은, 좀 특이한 걷기였다.
북서풍이 주로 부는 겨울철에는 고성에서 부산 방향으로 걷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데, 내 경우는 즉흥적으로 남쪽에서 시작하여 차가운 북서풍을 안고 걸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이 든 것이었다. 추위와 강풍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빠졌던 이 여정은 내 인생 걷기 여행 경험 중에서 의미 있는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힘든 이번의 걷기에 적응해 가면서 이 긴 거리를 큰 탈 없이 버텨준 두 다리와 내 몸이 고마웠다. 걷는 내내 격려를 해준 지인들도 고마웠다. 부모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었고….
1번 버스를 타고 거진항 숙소로 돌아왔다.
음식점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취하도록 마시며 윤교장님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주인과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전에 내가 교사와 교감으로 오래 근무했던 학교를 그 주인이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내가 가르친 학생의 학부모였고 학교 체육진흥회장을 맡았던 분과 동창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제도 이런 분을 2명이나 만났었는데… 세상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