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야낭자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벽골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는 단야낭자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벽골제가 있다.
벽골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경남 밀양의 수산제, 충북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수리시설' 중 한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처음으로 쌓기 시작해 신라 원성왕 6년(790)에 증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4차례에 걸쳐 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종 2년에 홍수로 무너졌고, 일제강점기에는 간선 수로를 설치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가 1975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된 단야낭자
신라 원성왕 때의 일이다.
신라의 조정에서는 오래된 벽골제를 보수하기 위해 당시 최고의 토목기술자였던 원덕랑을 김제로 파견했다.
원덕랑은 김제 태수와 함께 일을 했다.
태수에게는 미모가 빼어나고 성품 또한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단야낭자라 불렀다.
단야낭자는 원덕랑을 보자 첫눈에 호감을 느꼈고, 연모의 정은 점점 깊어져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원덕랑은 벽골제 보수작업에만 열중했다.
원덕랑은 신라에 약혼녀 월래가 있었기에 단야낭자의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벽골제 공사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큰비가 내려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당시 벽골제 인근에는 백룡과 청룡이 살고 있었는데, 심술궂은 청룡이 백룡과의 싸움에서 이기자 더욱 더 심하게 행패를 부렸고, 벽골제의 제방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힘들게 보수공사에 참여했던 마을사람들은 청룡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원덕랑을 만나기 위해 신라에서 약혼녀 월래가 왔다.
태수는 자신의 딸 단야가 남몰래 원덕랑을 사모한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월래를 청룡의 제물로 바칠 음모를 꾸몄다.
이러한 아버지의 음모를 알게 된 단야낭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오랜 고민 끝에 ‘나만 희생하면 제방도 완성되고, 원덕랑과 월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더욱이 아버지의 살인까지 막을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생각하며,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되기로 결심했다.
청룡이 제방을 공격하자 단야는 청룡을 막아서며,
“수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힘들게 쌓은 제방이니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무너뜨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간청한 후 청룡이 사는 못에 몸을 던졌다.
이후 청룡은 단야의 희생으로 노여움을 풀었고, 벽골제의 보수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또한 원덕량은 월래와 함께 신라로 돌아가 결혼했고, 마을사람들은 단야의 효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단야루’와 ‘단야각’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