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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귀 형님 72세 생신 축하 3박 4일 여행기-충북제천 당양길-오수봉 출렁다리-박달재 목굴암-
여행 일정표
2021년 11월 29일.월요일, 맑음
<충북 제천 단양길 잔도>
<옥수봉 출렁다리>활옥동굴-팔봉출렁다리-뮤주음산- 원주소금산-제천 치유의 숲
-비 온뒤 대나무 죽순이 옥빛처럼 푸르다는
퇴계 선생의 이야기에서 지은 이름
-ES 리조트에서 숙박
11월 30일. 비 오는 날
<박달재 목굴암> <박달재 찻집><꿩 샤브샤브집>
<활옥 동굴>
<수주팔봉 출렁다리>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다 하여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향수>가 생각나는 마을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맑음
<뮤지움산(Museum SAN> 의 워터 가든과 미술관, 종이박물관 관람
-제임스 터렐의 시각 예술 감상(그림)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국립 제천 치유의 숲><측백나무 숲 걷기><두무산 전망대와 형제봉의 황홀함>
11월 29일 월요일( 단양길 잔도. 옥순봉 출렁다리 여행)
서울 형님 72세 생신 축하 여행 행사로 제천 만천하 모노레일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갔다. 우리가 미리 도착해서 모노레일 매표소를 찾아 올라가니 매주 월요일은 개장하지 않는단다. 뒤이어 오신 형님 내외분을 맞으니 그저 반가워 껴안았다. 아주버님이 사업에서 은퇴하던 2016년에 나도 퇴임하다 보니, 그때부터 우리 부부랑 해외여행을 같이 다녔는데 요즈음 코로나 19 때문에 함께 여행 다니지 못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던가? 그저 만나 얼굴 보는 것부터 가슴이 ‘펑’ 뚫려왔다.
① 단양길 잔도
아즈버님이 다음 코스를 안내하셨다. 단양강 잔도길을 걸으러 가잔다. 남한강변을 끼고 강가에 사다리를 세우듯 세워 만든 나무 길이 1.2 km 길이로 놓여 있는데 나무길 옆에 서 있는 가로수들이 운치를 더해 낭만이 1.2km로 연이어 있는 것 같다. 12월 들머리인데도 포근한 햇볕을 쬐니 따스한 봄날 속을 걷는 듯 온몸이 행복 포대기에 돌돌 말려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점심때가 되었으니 배 속도 채워줘야 더 행복해질 테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다원’이라는 떡갈비 집을 찾아 들어가니 넓은 홀 마루에 손님이 군데군데 앉아 있다. 코로나 시절인데 이렇게 손님이 많다면 맛집이란 뜻이겠지? 남편은 쇠고기,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어 냉면을 시켰더니 아주버님도 떡갈비 먹자고 들어오셔 놓고 냉면을 시키신다.
‘굳이 동생을 위해서 저런 배려까지 하실 필요가 없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어 냉면 2인분에 떡갈비 2인분과 된장국과 공깃밥을 시켜 먹었다. 먹고 나니 포만감에 행복해졌다. 배를 쓰다담으며 옥순봉 출렁다리로 갔다.
② 옥순봉 출렁다리
옥순봉 출렁다리는 한 달 전 10월에 개통했는데 그전에 와본 형님 친구는 이 다리를 건너보지 못하고 갔단다.
‘아니, 우리가 이런 기회를 누리다니?’
싶으니 222m 출렁다리가 울릉증이 있어도 그다지 무섭지 않고 끝까지 걸어보고 싶어졌다. 남편의 팔짱과 형님의 팔짱을 번갈아 끼면서 청풍호의 푸른 물빛을 보며 걸었다. 청풍호 다리 교각 밑으로 하얀 유람선이 사람을 태우고 유유히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물빛 맑은 오스트리아에 여행 와서 바라보는 듯 신비롭다.
‘아유, 저기 물에 비친 햇살 좀 봐라! 물빛이 너무 곱다. 저것 사진 찍어둬야지!’
72세 우리 형님은 바라보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는, 아직도 소녀 감성이다. 이런 형님 옆에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고운 기운에 전염된다. 푸른 호수에 비쳐 퍼지는 햇살들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는 아쉬워 손을 내어 뻗쳐 보았다. 손바닥에 햇살이 묻어와 반짝이고 멀리 옥순봉이 바라보인다.
‘왜 이름이 옥순봉이람?’
얼핏 옥순 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연상시키지만, 네이버에서 찾아봤더니 퇴계 이황 선생이 ‘비 온 뒤 솟아나는 옥빛 대나무 순을 닮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비 온 뒤 솟아나는 대나무 순이라면 얼마나 청정하며 푸른빛을 띨까? 그런 옥순봉을 올려다보며 걸으니 신선의 기운으로 온몸이 정화되는 듯하다.
‘남는 건 사진뿐인데?’
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고운 걸 발견하고 눈여겨보는 감각이 유다른 형님을 따르지 못하는데, 거기다 아주버님은 한 수 더 떠서 예술 사진을 찍으신다. 그러느라 늘 우리 뒤에서 사진 찍다가 오신다. 아주버님이 좋은 풍경 앞에 멈춰 서서 풍경 사진을 찍으면 우리는 나중에 그 사진을 넘겨받을 생각으로 그냥 지나쳐온다. 얼마나 감사한가? 벤츠 S500 승용차 기사 겸 예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 아주버님을 모시고 다니는 여행! 이보다 더 품격 있는 럭셔리 여행이 있을까?
③ 형님 생신 축하 잔치
형님네가 회원권을 가지고 계신 ES 리조트로 들어와 802호를 찾아 들었다. 현관에서 불을 켜니 마주 보이는 유리 창문 덧창에 말라붙은 담쟁이가 입센의 <마지막 잎새> 작품을 엮어둔 듯 예술작품 한 장을 걸어놓은 듯하다.
“아이구, 담쟁이덩굴 좀 봐라!”
형님의 환성에 너도, 나도 자기 손전화기의 카메라를 눌러 자연이 그려놓은 예술품을 담았다.
그리고는 가져온 식품들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넣는데 형님이 김장김치를 한 통 들고 오셔서 냉장고에 넣고 꺼낼 때마다 무거워 손목이 아플 참이었다. 김치와 김만 있으면 밥은 꿀맛이지. 저녁을 먹은 뒤 내일 형님 생신을 당겨 생신 축하 상을 차렸다.
대구에서 가져온 과일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멜론, 파인애플, 배, 감, 토마토, 사과를 담은 바구니 안쪽에 해바리기 꽃(조화)을 끼워 세워보니 <곽동귀 여사님 72회 생신 축하, 21년 11월 30일. 시동생과 동서 일동>이라고 앞 쪽에 써 붙인 글씨가 환해 보였다. 사실 한 평생 이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헌신해오신 형님의 생신이니 시동생들과 동서들이 모여 해드려야 하는데 코로나 시대인 만큼 우리가 대표로 해드리는 기분으로 준비를 했다. 축하 케이크 대신 호박멥시루떡과 완두 배기 찰떡으로 축하 떡바구니도 조그많게 준비했다. 그리고 아주버님이 형님께 드릴 축하 꽃바구니도 장미 조화로 준비했다. 이것들을 식탁에 올려놓고 축하식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곽동귀 여사님의 72회 생신 축하식을 하겠습니다. 먼저 아즈버님이 축하 꽃바구니를 전하겠습니다.”
내가 사회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주버님의 축하 꽃바구니 증정식에 이어 남편은 형님께 축시를 읽어드렸다.
<곽동귀 우리 형님 73회 생신을 축하하며
곽재우 후손 가문에서 귀히 자라던 분이 우리 가문으로 오신 이후
동쪽 해처럼 집안 대소사 밝고 환하게 챙겨 오시며
귀한 맏며느리의 도리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오신 분이시여!
세월 가면 말하리라
한 사람의 온전한 헌신이 거름 되어
대소사 온 식구가 큰 품에서 쉬었노라고>
그리고 금일봉도 축시 밑에 넣어 전해드렸다. 그리고는 생신 축하 노래를 부르며 손뼉 치고 웃었다. 축하 떡을 한 개씩 맛보며 나는 떡 맛에 내심
‘이만하면 축하식이 화려하지 않았나?’
주최 측 혼자 자부심을 가지며 내일 새벽 아침상은 미역국을 끓여드리겠다고 예약해 두었다.
18,575 걸음으로 13.79km를 걸었다.
2021년 11월 30일 목요일.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즐기며
아침부터 비가 와서 눈 오는 날 가봤던 박달재로 가보자며 우산을 챙겨 리조트를 나섰다.
④ 박달재
박달재는 해발 453m의 충북 제일의 고갯길로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절한 사랑이 전해져 오는데 1997년 터널 개통 이후 사랑의 테마 관광지가 되었다. 우리가 박달 공원에 도착하니 금봉 아가씨가 비속에 서서 기도하는 동상에 빗물이 콧물 되어 코끝에 달랑거리며 달려있고 볼에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박달도령을 못 잊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애절하게 비속에 젖어 내렸다.
⑤ 목굴암
목굴암에는 불교 수행자 500인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만든 오백나한 상과 여러 목각 조각품들이 1, 2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었다. 표정들이 해학적으로 익살스러우면서도 깊이와 품위를 담고 있어 여러 장 손전화기에 작품을 담았다.
⑥ 박달재 찻집
비 오는 날 박달재 공원 한켠에 찻집이 있어 들어갔다. 군고구마 굽는 통을 갖다 놓아서 군고구마를 사려고 했더니 식었다며 그냥 주겠단다. 형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찻집 본채에 비닐을 씌워 만든 좌석에 앉아 창가에 놓아둔 다육식물이랑 붉은 감이 앙증맞게 어울려 있는 조화로운 모습에 눈길이 빼앗겼다. 상화차를 시켰더니 조그맣고 노란 초란을 동동 띄워 가져왔다. 상화차 맛도 상큼하고 진해서 좋았다. 찻잔을 앞에 놓고 비닐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아, 비에 젖는 나무들’이 좋다. 군데군데 세워 놓은 박달 도령과 금봉 아가씨의 비에 젖는 모습도 더 애달파 보인다. 비 오는 날 이렇게 여유 있게 차 마시는 찻집 분위기가 상화차 맛에 운치를 더해준다.
⑦ 활옥 동굴
약 1000년 동안 활옥, 백옥, 활석 등을 캐던 광산인데 동굴 길이가 57km, 지하 높이 711m에 동양 최대 규모의 산업화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보통 동굴이라고 하면 어둡고 컴컴하여 한발 떼어 놓기도 조심스러운데, 이 활옥 동굴은 2019년에 힐링과 체험 동굴로 바꾸면서 백색불빛으로 조명을 설치해두어서 동굴 속이 밝고 화려한 빛의 세계에 들어온 듯하였다. 동굴 속은 11~ 15도 온도인데 이 속에서 관람 번호를 따라 들어가니 18개 동굴이 저마다의 볼거리를 저장하고 있었다.
500마력 권양기 → 300마력 권양기 → 동굴공연장 → 청정연못 →해양세계 빛의 공간 → 사갱 운반차→ 미지의 산책로 → 상상의 홀 → 동굴농원→ 와인 저장고 → 선착장 → 동굴 보트장 → 동굴 오락실 → 광산 체험장 → 체험장 → 야광벽화까지 보고 나서야 출구로 나오게 된다. 관람하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이 중에서 500마력 권양기와 300마력 권양기도 인상적이었고, 청정연못도 인상적이었고 동굴 보트장에서 보트를 타도록 설치해둔 것도 인상 깊었고, 해양 빛의 공간이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환상적 야광벽화 앞에서 찬란한 빛 속 세계를 느껴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굴 농원이었다. 채소들이 동굴 속에서 백화점 매장에 놓인 식물처럼 진열장에 놓인 채 파란색을 띄우며 자라고 있었으니……
어둠의 세계를 밝은 빛의 세계로 바꾸어버린 것도 한 사람의 상상력에서 온 것이리라. 경로우대로 천원 할인된 6000원을 내고 들어간 동굴이었지만 구경거리는 그보다 열 배의 가치가 있는 동굴이었다.
⑧ 수주팔봉 출렁다리
박달재를 나와 수주팔봉 출렁다리로 찾아갔다. 높이가 493m로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있다.
‘왜 팔봉 출렁다리라고 했을까?’
팔봉 마을에서 동쪽의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래서인지 봉우리들이 바위 절벽에 수직으로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이곳 반대편 팔봉 유원지 방향에서 드라마 <빈센조> 17회를 촬영했다고 한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촬영 모습은 송준기와 전유진 여주인공이 등을 붙이고 저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드라마를 안 봐서 실감은 안 났지만 아름다운 연인의 뒷모습과 풍경이 잘 어울려 보였다. 나무 데크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보니 달천으로 흐르는 강물이 맑고 투명하다. 달천 중·상류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 야생 생물인 수달이 살고 있단다. 출렁다리의 길이는 47.75m, 폭 1.7m로 다리 가운데 서면 앞으로 팔봉 마을이 보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팔봉 칼바위 폭포가 흐르는데 1960년대 초반 농지 확보를 위해 오가천 물길을 달천으로 연결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 폭포지만 이 폭포가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달천이 휘돌아 감은 팔봉 마을은 마치 ‘강물이 휘돌아 흐르고’하는 정지용의 ‘향수’ 노래 속 한 구절을 이 풍경을 보고 지은 가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라서 향수 노래를 불러 보았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박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강을 사 안고 휘도는 강물의 정겨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변 모래사장에 차박할 차들이 드문드문 와 차를 세워두고 있는가 보다. 출렁다리를 건너 오른쪽 전망대에 오르니 '뷰 포인트' 전망대라고 표시를 해두었다. 멀리 두릉산과 물레산까지 바라보며 걸으니 출렁다리 끝지점까지 가게 되었다.
돌아오면서도 연신 내 입에서는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하는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있었다. 이 달천마을의 실개천이 휘돌아 흐르는 풍경은 잊을 수 없을 만큼 푸근하고 좋았다.
ES 리조트로 돌아와 늦은 저녁 시간인데 형님은 리조트 내 언덕배기에 있는 식당을 어둠 속에서도 더듬거리며 용하게 찾아내었다. 형님이 리조트의 단골이라서 지리에 훤한 것도 우리로서는 다행이었다. 된장국과 멍게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오늘은 7,929걸음으로 5.87km를 걸었다.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제천 ES 리조트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날씨가 화창하여, 형님을 따라 야외 여행에 좋은 원주 오크 벨리 곁에 있는 뮤지움산을 찾았다.
⑧ <뮤지움산(박물관)에서 워터 가든과 미술관 관람>
원주 뮤지움산(Museum SAN)은 제주 본태 박물관과 섭지코지의 유민박물관을 설계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로 물과 빛으로 완성되는 건축물이라 한다. 뮤지움의 산은 space(공간), Art(예술) Nature(자연)의 약자를 따 만든 이름이다. 산속에 있는 덕에 사방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워터 가든을 들어서니 빨간 게가 집게발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조형물이 물 가운데 높이 세워져 있는데, 관리인은 장화를 신고 얼어있는 얼음들을 밟으며 얼음의 잠을 깨워내고 있다.
‘그냥 두어도 좋을 텐데?’
생각하며 형님과 빨간 게발 앞 조형물 밑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 게발 조형물이 뮤지엄산 워트 가든의 상징물인가 싶다. 입구에서는 이 뮤지엄산 도안을 드로잉, 팬 드로잉, 조감도 버전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어쩐지 세련미와 신선미가 느껴지는 건물 앞 물을 들여다보니 빨간 게발 조형물이 주인공이 아니고 게발 조형물을 담고 있는 물이 주인공인 듯 아름다웠다. 물과 빛과 건물이 만나 이뤄내는 예술성에 흠뻑 빠져들어 보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철로 만든 빨간 대형 사람이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야야!” 외치고 있는 포즈로 서 있다. 조각가 세자르가 조각한 작품 <빌 르타뇌즈의 사람>이란다. 설명판을 읽으니 볼트, 너트, 철근, 프로펠러 등을 섞어 인간 형태로 만든 작품이란다. 작은 고철판을 용접하여 거대한 날개를 불균형으로 만들어 산업사회의 일회성을 풍자한 조각이란다.
<밤의 장막>이라는 조각은 입체파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루이즈 네벨슨작인데
책상, 의자, 상자 등을 재구성한 아상블라주 작품이다. 어두운 꿈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광택이 나지 않는 검정색을 사용하였다는 설명판이 서있다.
워터 가든을 걸어 뒤편으로 들어서니 야외 정원에 두 나이 든 연인이 각자 벤치에서 양쪽에 대각선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흰 석고상으로 만든 작품이 놓여 있다. 석고상 연인이 상징하는 의미는 뭘까? 눈이 올 것 같은 이런 날 야외 벤치에 앉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담? 좀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석고상 연인이었다. 조금 더 들어서니 경주 고분 크기만한 돌무덤이 경기도, 경상도 이름을 달고 9개의 돌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작가는 저 거대한 돌무더기를 설치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작가의 품은 뜻은 읽히지 않고, 내가 읽은 것은 이것이었다. 원주 석산에서 채석한 돌이라는데 저렇게 큰 돌을 채석하고 → 운반해서 거대한 돌무더기 산으로 짜 맞추기까지의 과정에서 인부와 작가에 이르기까지 들인 수고가 큰 산처럼 놓여 있는 것만 읽혔다.
큰 산의 의미가 읽혀지지 않는 까닭은 언젠가, 경남 화동군 지리산 청학동 끝자락에 신화를 바탕으로 성벽처럼 쌓아놓은 돌탑(유튜브에서 본)이 떠올라서 이리라. 강민수라는 초로의 남자가 화전민이 살다 떠난 터 120만 평에 곡괭이 하나로 돌을 파고 땅을 낮추어 기를 받으며 50년간 쌓은 돌탑인데 돌탑 구멍마다 얼굴상이 다른 석상 삼천 개가 놓여 있다. 거기에도 뮤지움산같은 능이 하나 있는데 그 능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당이라는 개념으로 앞에는 원방각이 놓여 있다. 언뜻 보면, 요즈음 유행하는 오징어 게임 그림 석 점이 그려져 있는 것 같은데 아니다. 둥근 하늘을 뜻하는(천)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네모 땅(지) 인간을 나타내는 삼각형 (각)의 뜻을 담고 있다. 강민수 씨는 마음에 무엇이 맺혀 여기까지 왔을까 스스로 반문하며 정체성을 찾던 중, 단군을 모신 <건국전> 세 글자를 의식하여 민족의 제대로 된 정체성을 찾으려고 고조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돌 위에 옮겨와 새겼고, 돌탑을 통과 할 때마다 고대 문자가 천장에 펼쳐지도록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스케치한 문양을 천장에 그려넣었다. 죽선자 돌부리 능에는 좌 청룡, 우 백호 남 주작 북 현무를 새겼고, 본래 물이 솟아올라 넘치는 분지를 7년 걸려 깊이 10m 넘는 호수도 만들었다. ‘선생님은 신선같아요.’하는 PD에게 ‘신선은 참 나를 찾아서 사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신선의 기운을 받아 영혼을 담아 돌탑을 쌓아온 참 조각가였다고 평하고 싶었다. 그가 지어놓은 돌탑은 <신선 선국>이라는 주제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 강민수의 50년간 공부하며 공들인 돌탑에 비하면 이 뮤지움산의 안도 타다오의 9개 능은 제아무리 세계적인 건축 조각가라 해도 영혼 없는 돌무더기, 주제 없이 엉터리로 사기 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의 소치라 해도 내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다.
씁쓰레한 기분으로 외부 명상관의 문을 여니 내부 바닥이 따뜻하고 요가 매트를 둘러서 동그랗게 둘러앉도록 자리를 만들어 두었는데 앉으니 모니터 화면에 명상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제임스 터렐의 시각 예술 감상법 그림이 화면에 비쳤다. 설명서에는
<하늘과 빛을 관조하는 가운데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누리며 그 시간을 통해 내면의 영적인 빛을 마주하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제임스 터렐 감상 방법을 찬찬히 읽어보고 한 번 좋은 경험을 해보리라 집중해보았다.
스카이스 페이스/스스페이스 디비전
① 의자에 앉아 타원형 하늘빛을 본다
② 스카이스페이스 내부를 걸어본다
③ 중앙에서 바닥을 보면 하늘빛이 보인다
④ 출입구 통로에서 위를 보면 동그란 원형이 보인다
호라이즌룸
① 의자에 앉아 사각형의 하늘을 본다
② 하늘을 보면서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간다
③ 호라이즌 룸 외부를 걸으며 자갈 고리를 들어본다
웨지워크
① 어둠에서 안개가 낀 붉은 색의 공간을 감상한다.
② 푸른색 선이 선명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다
간츠펠트
① 의자에 앉아 색의 변화를 확인한다.
② 계단을 통해 4각형의 화면 안쪽으로 들어간다
③ 왼쪽/오른쪽 벽을 보며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경험한다. (내구 공간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어 위험하니 안내선 이내에는 들어가지 마라)
설명서에서 내면의 영적인 빛을 마주하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깊이에까지 끌려들지 못하는 내 수준과 감성이 안타까웠다.
내부로 들어와 실내 미술관에 들어섰다. 한국 미술의 산책 방에 들어서니 친근한 이중섭의 게를 그린 작품과 박수근의 아이 업은 여인 모습 등 눈에 익은 명화 들 몇 점이 보여 반가웠다. 구상과 회화 대작들도 보였지만 그보다 식물의 방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방이라면서 <멈춤, 그리고 바라보기> 제목 밑에 설명을 적어 두었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자 치유 힘을 갈구할 때 자연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호기심 있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그저 바라보고 관심 기울이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STOP
-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춘다
- 호흡하며 숨을 몸으로 들여 마시고 내쉰다.
- 관찰한다.
- 신체 감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한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라고 쓰여 있다.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하고 식물을 둘러보았다. 웅장한 건물 한 방에 나뭇잎을 채집해서 채집한 날짜와 장소가 적힌 채집 물을 압화로 눌렀다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뭇잎 한 개씩 주워 와서 종이에 붙이고 자기만의 생각을 일기로 적은 종이가 학교 교실 뒷벽처럼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한 뒤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라.’는 뜻일 텐데, 결과물들을 읽어보니 초등학생들의 평범한 학습물 같은 전시물로 보였다. 야외 안도 타다오의 9개 돌무덤과 합해서 19,000원(경로 할인은 15,200원)들인 관람료가 아까웠다.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 속이 상했다. 긴 복도를 돌아 나오니 의자들을 놓아놓고 의자의 변천사를 설명해둔 코너도 보였다.
⑨ <뮤지움산(박물관)에서 종이 박물관 관람>
옆 건물은 종이 박물관이었다.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로 종이의 가치를 재발견을 할 수 있도록 옛날 종이 제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종이 관련 유물들과 옛 종이 제작 기구들도 있었다. 닥종이 제작 방법도 닥나무 채취→ 씻기 → 삶기 →한지 뜨기 → 물 짜기 →한지 말리기 과정별로 설명해두었다. 한지는 100번의 공정(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하나하나의 작업 단계)을 거친다고 백지라고 하였다하니 종이 한 장 만드는데 드는 수고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갔다. 닥종이로 만든 민속 공예품 중에서도 비 오는 날 신을 신발을 만들기 위해 한지에 방수 효과가 있는 기름을 먹이거나 옻칠을 하거나 콩 땀을 먹이고 징을 박아 진신을 만들어 둔 것이 한참 동안 마음에 끌렸다. 물건이 흔하지 않던 그 옛날에 신발 한 컬레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느라 모인 종이며 수고가 얼마나 되랴 싶으니 그 신발 한 켤레가 참으로 귀중하게 여겨졌다. 호랑이 모양의 한지 베개도 보였다. 호랑이 모양 베개를 베고 자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는데 호랑이가 지켜준다고 믿어서 그럴까? 한지를 기름을 먹여 아코디언 식으로 간편하게 접어 쓰는 접등도 인상적이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공들인, 제대로 된 전시장이라면 이 종이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다.
출구를 따라 나오면서 보니 곳곳에 우천 시를 대비해 걸어둔 장우산들이 박물관의 품격을 말하듯 멋있게 보였다. 뮤지움산의 카페에 들어가 차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점심 먹을 일이 급해서 그냥 돌아 나와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로 갔다. 출렁다리 가는 길에 출렁다리 식당이라는 간판이 있어 들어갔다. 올갱이 해장국 2개와 된장국 2개를 시켰다. 밥 먹고 나오면서 식당 앞 노점에 두고 파는 말린 대추 썰어 둔 것을 한 되(15,000원) 사서 형님네랑 두 집에 나눠가려고 두 봉지로 나눠 차에 실었다. 돌아가, 대추차를 끓여 먹으며 여유와 향기를 즐겨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즐거워졌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우리나라 산악 보도교 중 최장, 최고 규모라는 원주 소금산에 오르려고 표를 끊는데 손목에 두르는 종이 팔찌를 주며 3,000 원을 받더니 2,000원짜리 상품권을 내어준다. 내려오면서 지역 경제를 살릴 먹거리를 사 먹으란다. 손목 종이 팔찌를 갖다 대면 입장 인원 체크 대가 열린다. 출렁다리라는 글씨가 새겨진 입구에서 사진 한 장 누르고 계단을 밟는데 578계단 중 몇 번째 계단이라고 친절한 계단 개수가 적혀 있다. 이 정도야 싶어 올라가는데 계단 표시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도 계단이 수없이 이어져 있었다. 걷고 또 걸어 올라가니 출렁다리 끝나는 지점에 울렁다리를 공사 중이었다. 칼바람 속에 공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의지의 한국인으로 존경스러워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 어묵과 달고나를 사먹으면서도 열심히 장사하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돌아와 체크해보니 오늘 19,881걸음으로 13.99km를 걸었다.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국립 제천 치유의 숲>
금수산을 배경으로 숲내음을 맡으며 자작나무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가느다란 자작나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서로 연결해 두었다. 자작나무 숲길을 기대하고 올 때는 러시아 숲의 울창한 자작나무 숲길을 연상하고 왔지만 이렇게 만이라도 함께 숲길 걷기가 좋았다.
<측백나무 숲 걷기 >
단양군 매포읍 영천리에 있는 측백 수림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활쏘는 국궁장 시설이 있어서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주인이 없어 포기하고 산에 들려는데 산 들머리에 짚으로 큰 우산 모양으로 지붕을 엮어 만든 밑에 <측백 숲 들머리>라는 글씨 판이 붙어 있다. 측백나무 길을 걸으니 비실비실하고 작은 측백들이 길 양쪽에 서 있어 ‘이런 나무를 두고 측백나무 숲이라 하나’싶어 아까 치유의 숲에서 자작나무 숲길이라고 내세웠던 명성에 실망했던 실망이 덧입혀졌다.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키 큰 측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연해 헤헤 웃으며 걷게 되었다. 측백나무에 대한 설명 판이 놓여 있어 읽었다. 이곳 측백 수림은 천연기념물 제62호. 면적 54,347㎡인데 이 일대는 석회암 지대로 측백나무 주변의 다른 식생은 거의 파괴되었단다. 민가 뒤쪽이나 바위틈에는 난대성 양치식물인 도깨비고비가 자라고 있고, 이곳이 서쪽의 자생북한지라고 나와 있다. 이들 측백나무 숲 사이에는 줄 댕강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몇 개 안 되는 자생지로 작은 집단이 먼 거리에 격리된 것은 식물 군락학 상이나 집단유전학 상 주목받을 일이란다.
<두무산 전망대와 형제봉의 황홀함>
측백나무 숲길이 끝나니 화필 봉이 보이는 두무산 전망대 팻말이 나왔다. 그 팻말을 보며 오르다 보니 ‘토정 이지함 선생님 수학하시던 곳’이라는 팻말이 나왔다. 차차 험산인데 한참을 올라가니 앞쪽에 덩치 큰 까만염소가 길을 막고 있다. ‘염소는 무리 지어 사는데 혼자 사는 염소라니?’ 무서워 뒤에 숨는데 남편과 형님은 앞서서 나아간다. 그러자 염소가 길을 비켜 쫓겨 간다. 자기 덩치보다 사람 덩치가 더 크다는 걸 가늠했으리라. ‘수에서도 우리가 우세하긴 하지.’ 한참 올라가다 보니 호랑이 굴이라는 설명 판이 나온다. 맞은 편 굴에 50년 전에 다불리 마을 앞에 있는 찍개 바위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단다. 마침 한의사가 지나가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쫓자 한의사의 어깨를 찢고 사라졌는데 한의사가 집에 도착해보니 호랑이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더란다. 그래서 싸우다가 호랑이가 돌아갔는데 그 뒤에도 3일 동안 찾아와 으르렁거려서 목침을 두드려 호랑이를 쫓았다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 굴이 호랑이 굴이라고?’ 하면서 돌아보던 남편이
“이젠 호랑이가 없으니 염소 굴이 되었네. 봐. 주변에 염소 똥이 널브러져 있잖아.”
했다. 호랑이 굴에서 염소가 산다니 얼마나 평화로운 굴인가? 주인이 기르는 염소인지, 야생 염소인지는 몰라도 염소의 평화를 기원하며 두무산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청풍호 주변도 아름답지만 좀 더 올라가며 바라보니, 형제 바위 두 개가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데, 미국 서부 여행 때 아리조나에 있던 엔델로프 캐년(협곡)을 봤을 때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되살아났다. 엔델로프 캐년은 비탈에 만들어진 사암의 균열이 휘돌아치는 물살에 침식작용으로 1~3m 폭에 깊이가 50m로 좁고 깊은 협곡이 되었는데 휘돌다 감긴 듯한 붉은 사암이 예술의 최고 경지에서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으로 보여, 돌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던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오늘 지금 내가 여기서 바라보는 형제봉의 검은 형상 돌무늬의 오묘한 모양은, 그때 이후 두 번째 울림으로 내 눈을 사로잡고 내 영혼을 홀렸다. 형제봉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고, 외국 여행 했을 때보다 더 보람 있었다.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잘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지만 그딴 영험은 필요 없을 만큼 신비롭고 쳐다볼수록 황홀경에 젖어 오랫동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었다. 욕심낼 것은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사진에 담는 작업뿐이기에.
<여행 마무리>
형제봉을 내려와 단양 ‘갈매기 식당’에 가서 갈매기가 아닌 염소탕으로 점심을 먹고 형님네는 서울로, 우리는 대구로 돌아왔다. 아주버님은 벤츠 S500 승용차를 새로 사서 운전해오셨는데 우리는 그 2억 넘는 차를 아주버님 덕택에 잘 타고 다녔다. 형님과 아주버님이 건강해서 함께 다닐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번 여행은 외국 여행보다 더 신나고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돌아와서 모임에 빠진 증거물로 장미회와 고친 단톡방에 여행 사진과 함께 올렸더니 모두 부러워하였다. 특히 양영순 교장이 길게 칭찬의 말을 올리며 부러워하였다.
“박 교장은 크로아티아 식당에서도 ‘우리 형님 내외분과 같이 왔어요.‘ 하더니만 이번에도 형님과 함께하시는 걸 보니 요즘 보기 드문 ’의좋은 형제‘ 내외분 같아 표창장 받아야겠어요. 형제 분보다 아내 분들이 잘해야 가능한데. 역시나 박 교장님이 형님 잘 따르고 화평을 위해 헌신하신 결과라 생각. 양영순 교장“
“우애 돈독한 것도 부럽고, 행복한 여행 되시길... 김점식 과장”
“박 교장 어쩜 그렇게 멋지게 사시나요. 정말 복을 많이 주셨네. 이재순 교장”
“헹제 내외분들의 모습이 늦가을임을 알게 하네요. 좋은 시간 많이 보내셔요. 최상만 교장”
19,430걸음으로 12.67km를 걸었다.(원고지 81매)
